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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나 인종과 같은 기원에 대한 환상과 고착을 구심점으로 만들어지는 근대의 경계들은 경계의 틈새에 위치한 존재들에 대한 배제와 폭력의 근거를 제공해왔다. 구효서의 소설 중에는 이와 같은 존재들의 미시서사를 통해 기록된 역사의 공백에서 명멸하는 존재들을 되살려놓음으로써 근대가 은폐하고자 하는 모순과 균열을 드러내는 것들이 있다. 이 작품들은 경계의 틈새에 놓인 존재들을 온전한 소속과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이들로 보며 국가와 소속을 강조하는 국민문학적 시선으로 포획하지 않고, 이들이 갖는 양가적 위치와 혼종성에 주목하고 있다. 질서의 균열에 위치한 이들의 작은 서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경계와 이름들이 은폐하고 있는 배제와 폭력이 존재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상징계적 질서의 외부와 교섭함으로써 그와 같은 폭력이 배제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위치를 획득하고 있기에 양가적이다. 또한 경계의 틈새에서 외부와 교섭하는 이들의 유동적이고도 혼종적인 정체성은 동일성의 논리로 타자를 포획하는 근대성의 시선에 대한 저항이며, 경계를 넘나듦으로써 미래로 나아가는 트랜스내셔널의 전망을 보여준다. 본고에서는 그의 두 장편소설 『랩소디 인 베를린』과 『나가사키 파파』를 통해 이와 같은 시각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먼저 다룬 『랩소디 인 베를린』은 두 ...

민족이나 인종과 같은 기원에 대한 환상과 고착을 구심점으로 만들어지는 근대의 경계들은 경계의 틈새에 위치한 존재들에 대한 배제와 폭력의 근거를 제공해왔다. 구효서의 소설 중에는 이와 같은 존재들의 미시서사를 통해 기록된 역사의 공백에서 명멸하는 존재들을 되살려놓음으로써 근대가 은폐하고자 하는 모순과 균열을 드러내는 것들이 있다. 이 작품들은 경계의 틈새에 놓인 존재들을 온전한 소속과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이들로 보며 국가와 소속을 강조하는 국민문학적 시선으로 포획하지 않고, 이들이 갖는 양가적 위치와 혼종성에 주목하고 있다. 질서의 균열에 위치한 이들의 작은 서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경계와 이름들이 은폐하고 있는 배제와 폭력이 존재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상징계적 질서의 외부와 교섭함으로써 그와 같은 폭력이 배제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위치를 획득하고 있기에 양가적이다. 또한 경계의 틈새에서 외부와 교섭하는 이들의 유동적이고도 혼종적인 정체성은 동일성의 논리로 타자를 포획하는 근대성의 시선에 대한 저항이며, 경계를 넘나듦으로써 미래로 나아가는 트랜스내셔널의 전망을 보여준다. 본고에서는 그의 두 장편소설 『랩소디 인 베를린』과 『나가사키 파파』를 통해 이와 같은 시각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먼저 다룬 『랩소디 인 베를린』은 두 디아스포라 음악가의 삶을 통해 경계의 틈새에서 방황하는 존재가 겪는 배제와 폭력을 드러내고, 그와 같은 폭력이 배제된 세계에 대한 소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국가나 민족과 같은 이름이 그들을 필요로 할 때 쉽게 배제되거나 포섭되는 존재들로, 이들이 갖는 여러 개의 이름은 역사가 할퀴고 간 여러 개의 상처일 따름이다. 이들의 서사는 지배권력이 은폐하고자 하는 폭력의 증거가 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계들과 그로 인한 배제가 당연하지 않음을 드러내며, 그것이 배제된 미래로의 소망을 드러낸다. 또한 경계를 넘나드는 교섭을 통해 얻어지는 그들의 혼종적 정체성은 그들의 음악을 통해 제시되며, 한 쪽의 일방적 논리로 상대방을 포획하지 않고 타자와 교섭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나가사키 파파』에서는 경계를 구획하는 동일성의 논리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비판이 드러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근대성의 구심적 담론에 의해 만들어진 경계의 틈새에서 배제와 차별을 경험한 인물들로, 지배체제의 교의적 담론이 분열되는 미결정성의 영역이다. 경계를 구획하고 개인을 포섭하고자 하는 지배권력의 일방적 시선이 개인의 진정한 욕망을 거세하고 그의 위치를 지우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경험한 그들은 자신들을 어느 민족의 일원, 어떤 국가의 구성원으로 고정하고자 하는 동일성의 논리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삶의 다양한 계기와 국면에서 수행적으로 형성되는 유동적이고 혼종적인 상태에 놓고자 한다. 이들은 각자의 동일성을 연기한 채 교섭하며 각자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새롭게 규정해 나가는데, 이와 같은 교섭이 일어나는 공간 ‘넥스트 도어’는 그와 같은 차연의 과정이 동일성의 폭력이 배제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윤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구효서의 이 소설들은 경계의 틈새에 위치한 존재의 미시서사를 통해 상징계적 질서 내부에 안착한 존재들이 감지하지 못했던 균열과 모순을 드러내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또 다른 동일성의 논리가 아닌 트랜스내셔널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타자의 고통을 바라보고 그에 공감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독자들의 내면에 동요를 일으키고 그와 같은 폭력이 배제된 세계로의 소망을 갖게 하는 과정이기에 의미가 있다. 또한 트랜스내셔널의 전망에서 보여지는, 동일성을 연기한 끊임없는 교섭과 차연의 정체성은 이주와 혼종이 보편적 삶의 조건이 된 현대에 필요한 새로운 윤리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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