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주변에서 자랐던 나는 피 흘리며 시위하는 대학생들과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경찰들 사이에서 성장해 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의의 ‘판단’보다는 고통의 ‘느낌’에서 오는 것에 더 크게 다가서곤 했다. 이런 나에 대해 주변사람들은 ‘넌 너무 감상적이야’ 라는 말을 줄곧 하곤 했다. 그것은 마치 느끼기만 할뿐, 그 때 그 때 바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로인해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그 상황에서도 갈등이 일어나곤 했다.
우리는 매 순간 판단하지 않고는 살아온 적이 없고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럼 과연 판단과 느낌의 분리는 맞는 것일까? 통상적으로 감정과학자 중 인지과학자들은 ‘판단’을 인지, ‘느낌’을 비인지로 구분하는데, 그러한 분류 자체를 갈등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중, 고등학교 시절 ‘일진’이니 ‘이진’이니 하면서 패거리 권력 속의 ‘갈등’을 봐야했고, 교실 안에서는 ‘우반’과 ‘열반’이 나뉘어져, 서로 다른 길을 가야만 하는 내면적 ‘갈등’이 늘 뒤섞여 있는 풍경 속에서 자랐다. 또한 직장에서는 소위 ‘라인’을 잘 타지 않으면 진급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라인’과 ‘라인’ 간의 ‘갈등’을 보면서 지내왔다. 거대 역사는 ‘갈등’의 국면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누군가 말했다.
아프리카계 흑인인 로드니 킹(Rodney Glen King)이 말한 Can we all get along?의 말처럼 ‘우리 모두 사이좋게 지낼 순 없는지’, 늘 마음 속 무의식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세계에 사는 우리는 역사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나와 ‘같지만 다른’ 타자의 존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만난 것이 ‘문화’이다. ‘역사의 국면’이나, ‘정의’라는 ‘거대 담론’만이 우리를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활 세계에서도 우리가 느끼는 것을 통해 얼마든지 ‘의미’라는 것을 찾고 삶을 ‘가치’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본 연구는 인지과학자들이 주장하는 ‘판단’과 ‘느낌’의 분리가 잘못된 것임을 밝힌다. 판단이 곧 느낌이라는 것(조중빈이 이야기 한 ‘느낌 알다’의 개념)이 이미 내 안에 있는 사랑으로서의 ‘인정’ 개념을 통해 감정 자체가 도덕과 윤리를 실현하고 갈등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문명과 문화를 거쳐 현재 대중문화 속, 그리고 생활세계라고 말하는 ‘문화’를 통해 현대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학계에서는 ‘감정’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근대 이후부터 이어온 ‘갈등’에 대한 요인을 이성 중심의 사고, 특히 ‘도구적 이성’과 ‘목적 합리성’을 주된 원인으로 파악한데에 기인한다. 이를 위해 먼저 감정의 가장 기본적 정서인 ‘인정’이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생득적인 것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본 연구에서는 기존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ter Schule)의 ‘인정’ 개념이 생득적으로 타고난 것임을 밝히는 것까지는 유용하지만 이 ‘인정’이 여전히 ‘투쟁’의 개념을 안고 있는 한계점을 밝혔다. 조중빈이 말한 ‘느낌 알다’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인정’이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투쟁이 아닌 이미 받은 사랑으로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느낌 알다’의 중요성은 인지과학자들이 말하는 그저 머물러 있는 ‘느낌’이 아닌 곧 판단이라는 자명한 사실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투쟁이라는 갈등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내 안에 받은 사랑이 없거나,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이것을 획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느낌을 아는 것은 받은 사랑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불안과 근심에 떠는 이유는 종종 이 사랑이 내 안에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받은 사랑은 나의 세계가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타인의 세계를 함께 하는 길이다. 이 사랑이라는 보편을 통해 우리는 선호를 시비로 끌어들이지 않고, 특수자로서 서로를 인정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인해 이 ‘인정’을 쉽게 망각하고 타자를 ‘물화’시키고 ‘객체’화 시켜버렸다. 늘 ‘객체’가 행하는 것들을 갈망하고, ‘나’의 존재를 망각, ‘객체’됨을 지향하며, 스스로가 ‘물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언어와 문화 속에서 ‘인정’을 통해 ‘공감’하는 것’을 갈등의 해결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언어는 타인을 초대할 수 있게 만들어주며, 타인의 세계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세계이다.
그리고 이 언어는 문화를 통해 ‘판단’이 곧 ‘느낌을 아는 것’으로 ‘갈등’을 해결해 주는 키워드가 된다. 언어 역시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본 연구는 최근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카페문화’를 통해 자극과 반응이 아닌 ‘인간의 의식 흐름’을 감정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카페문화에 주목한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급격히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카페라는 공간 자체가 감정 소통과 ...
국문 초록
대학가 주변에서 자랐던 나는 피 흘리며 시위하는 대학생들과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경찰들 사이에서 성장해 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의의 ‘판단’보다는 고통의 ‘느낌’에서 오는 것에 더 크게 다가서곤 했다. 이런 나에 대해 주변사람들은 ‘넌 너무 감상적이야’ 라는 말을 줄곧 하곤 했다. 그것은 마치 느끼기만 할뿐, 그 때 그 때 바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로인해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그 상황에서도 갈등이 일어나곤 했다.
우리는 매 순간 판단하지 않고는 살아온 적이 없고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럼 과연 판단과 느낌의 분리는 맞는 것일까? 통상적으로 감정과학자 중 인지과학자들은 ‘판단’을 인지, ‘느낌’을 비인지로 구분하는데, 그러한 분류 자체를 갈등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중, 고등학교 시절 ‘일진’이니 ‘이진’이니 하면서 패거리 권력 속의 ‘갈등’을 봐야했고, 교실 안에서는 ‘우반’과 ‘열반’이 나뉘어져, 서로 다른 길을 가야만 하는 내면적 ‘갈등’이 늘 뒤섞여 있는 풍경 속에서 자랐다. 또한 직장에서는 소위 ‘라인’을 잘 타지 않으면 진급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라인’과 ‘라인’ 간의 ‘갈등’을 보면서 지내왔다. 거대 역사는 ‘갈등’의 국면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누군가 말했다.
아프리카계 흑인인 로드니 킹(Rodney Glen King)이 말한 Can we all get along?의 말처럼 ‘우리 모두 사이좋게 지낼 순 없는지’, 늘 마음 속 무의식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세계에 사는 우리는 역사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나와 ‘같지만 다른’ 타자의 존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만난 것이 ‘문화’이다. ‘역사의 국면’이나, ‘정의’라는 ‘거대 담론’만이 우리를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활 세계에서도 우리가 느끼는 것을 통해 얼마든지 ‘의미’라는 것을 찾고 삶을 ‘가치’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본 연구는 인지과학자들이 주장하는 ‘판단’과 ‘느낌’의 분리가 잘못된 것임을 밝힌다. 판단이 곧 느낌이라는 것(조중빈이 이야기 한 ‘느낌 알다’의 개념)이 이미 내 안에 있는 사랑으로서의 ‘인정’ 개념을 통해 감정 자체가 도덕과 윤리를 실현하고 갈등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문명과 문화를 거쳐 현재 대중문화 속, 그리고 생활세계라고 말하는 ‘문화’를 통해 현대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학계에서는 ‘감정’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근대 이후부터 이어온 ‘갈등’에 대한 요인을 이성 중심의 사고, 특히 ‘도구적 이성’과 ‘목적 합리성’을 주된 원인으로 파악한데에 기인한다. 이를 위해 먼저 감정의 가장 기본적 정서인 ‘인정’이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생득적인 것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본 연구에서는 기존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ter Schule)의 ‘인정’ 개념이 생득적으로 타고난 것임을 밝히는 것까지는 유용하지만 이 ‘인정’이 여전히 ‘투쟁’의 개념을 안고 있는 한계점을 밝혔다. 조중빈이 말한 ‘느낌 알다’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인정’이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투쟁이 아닌 이미 받은 사랑으로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느낌 알다’의 중요성은 인지과학자들이 말하는 그저 머물러 있는 ‘느낌’이 아닌 곧 판단이라는 자명한 사실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투쟁이라는 갈등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내 안에 받은 사랑이 없거나,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이것을 획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느낌을 아는 것은 받은 사랑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불안과 근심에 떠는 이유는 종종 이 사랑이 내 안에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받은 사랑은 나의 세계가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타인의 세계를 함께 하는 길이다. 이 사랑이라는 보편을 통해 우리는 선호를 시비로 끌어들이지 않고, 특수자로서 서로를 인정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인해 이 ‘인정’을 쉽게 망각하고 타자를 ‘물화’시키고 ‘객체’화 시켜버렸다. 늘 ‘객체’가 행하는 것들을 갈망하고, ‘나’의 존재를 망각, ‘객체’됨을 지향하며, 스스로가 ‘물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언어와 문화 속에서 ‘인정’을 통해 ‘공감’하는 것’을 갈등의 해결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언어는 타인을 초대할 수 있게 만들어주며, 타인의 세계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세계이다.
그리고 이 언어는 문화를 통해 ‘판단’이 곧 ‘느낌을 아는 것’으로 ‘갈등’을 해결해 주는 키워드가 된다. 언어 역시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본 연구는 최근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카페문화’를 통해 자극과 반응이 아닌 ‘인간의 의식 흐름’을 감정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카페문화에 주목한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급격히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카페라는 공간 자체가 감정 소통과 내러티브의 장으로 유용하게 이용되기 때문이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목적 합리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사람에게만 ‘인정’받으려고 하는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이것이 모순인 것은 ‘인정’은 누구에게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늘 우리 곁에 망각하지 않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인정’을 없다 생각하고, 특정대상에게만 ‘인정’ 받기만을 기다릴 때 주체와 타자가 온전히 만나지 못하고 객체 속에 나로 머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인정을 통한 ‘무시’, ‘물화’, ‘배제’ 등도 함께 살펴봄으로써, 호네트(A. Honneth)가 말하는 ‘인정’의 정의를 뛰어넘어 새로운 시각과 정의 속에서 ‘인정’을 살펴보았다. 호네트에 따르면 인정은 첫째, 사랑에 관한 인정, 둘째, 권리에 대한 인정, 셋째, 사회적 연대에 관한 인정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나는 호네트의 인정이 여전히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과, 그가 미드의 이론을 연결하여 ‘주격 나’와 사회적으로 규정된 ‘목적격 나’를 따로 분리한 점을 문제로 제기한다. 인정을 투쟁으로 설명하면 안 되는 이유는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이기에 받기 위하거나,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인정’을 확인만하면 되는 것이며, 이것은 자명한 사실과도 연결된다.
인정이 곧 느낌이고 느낌을 아는 것은 곧 차이에 의한 ‘공감’이다. 이 차이에 의한 공감은 특수자로의 차이 속에서 결국 보편자인 우리가 다르지만 같은 우리임을 확인하는 차이이다.
다양한 개별정서들은 그 때 그 때 개인이 보여주는 감정을 통해 특수자임을 나타낸다. 하지만 감정의 자기 이해는 우리가 느낌을 아는 보편적 진리를 통해 우리가 하나임을 또한 알 수 있다. 그래서 개별정서들로 인해 ‘감정’이 시비를 가리고, 이 감정에 대해 열정을 갖고 그 느낌을 잘 살피게 되면 ‘선택’은 자연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임을 인정-공감-의미의 맥락에서 함께 살펴보았다. 특히 차이에 의한 ‘공감’은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더 쉽게 이해되고 의미화 되기에 본 연구에서는 내러티브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사회학적 관점의 이해를 넘어 감정으로서의 이해를 모색했다.
본 연구는 ‘판단’이 곧 ‘느낌을 아는’ 것이며, 그 자체가 ‘공감’을 통해 도덕과 정의를 실현한다고 밝혔다. 그 바탕에는 사랑이라는 ‘인정’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늘 ‘마음 쓰고 있었던 존재’임을 확인하여,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위한 역사의 수단이나, ‘없어져야 할 무엇’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넓혀가고 이해하는 것임을 밝혔다. 이런 ‘감정’의 중요성을 밝혀냄으로써 현대 사회의 갈등 해결에 대한 새로운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문 초록
대학가 주변에서 자랐던 나는 피 흘리며 시위하는 대학생들과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경찰들 사이에서 성장해 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의의 ‘판단’보다는 고통의 ‘느낌’에서 오는 것에 더 크게 다가서곤 했다. 이런 나에 대해 주변사람들은 ‘넌 너무 감상적이야’ 라는 말을 줄곧 하곤 했다. 그것은 마치 느끼기만 할뿐, 그 때 그 때 바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로인해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그 상황에서도 갈등이 일어나곤 했다.
우리는 매 순간 판단하지 않고는 살아온 적이 없고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럼 과연 판단과 느낌의 분리는 맞는 것일까? 통상적으로 감정과학자 중 인지과학자들은 ‘판단’을 인지, ‘느낌’을 비인지로 구분하는데, 그러한 분류 자체를 갈등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중, 고등학교 시절 ‘일진’이니 ‘이진’이니 하면서 패거리 권력 속의 ‘갈등’을 봐야했고, 교실 안에서는 ‘우반’과 ‘열반’이 나뉘어져, 서로 다른 길을 가야만 하는 내면적 ‘갈등’이 늘 뒤섞여 있는 풍경 속에서 자랐다. 또한 직장에서는 소위 ‘라인’을 잘 타지 않으면 진급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라인’과 ‘라인’ 간의 ‘갈등’을 보면서 지내왔다. 거대 역사는 ‘갈등’의 국면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누군가 말했다.
아프리카계 흑인인 로드니 킹(Rodney Glen King)이 말한 Can we all get along?의 말처럼 ‘우리 모두 사이좋게 지낼 순 없는지’, 늘 마음 속 무의식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세계에 사는 우리는 역사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나와 ‘같지만 다른’ 타자의 존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만난 것이 ‘문화’이다. ‘역사의 국면’이나, ‘정의’라는 ‘거대 담론’만이 우리를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활 세계에서도 우리가 느끼는 것을 통해 얼마든지 ‘의미’라는 것을 찾고 삶을 ‘가치’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본 연구는 인지과학자들이 주장하는 ‘판단’과 ‘느낌’의 분리가 잘못된 것임을 밝힌다. 판단이 곧 느낌이라는 것(조중빈이 이야기 한 ‘느낌 알다’의 개념)이 이미 내 안에 있는 사랑으로서의 ‘인정’ 개념을 통해 감정 자체가 도덕과 윤리를 실현하고 갈등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문명과 문화를 거쳐 현재 대중문화 속, 그리고 생활세계라고 말하는 ‘문화’를 통해 현대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학계에서는 ‘감정’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근대 이후부터 이어온 ‘갈등’에 대한 요인을 이성 중심의 사고, 특히 ‘도구적 이성’과 ‘목적 합리성’을 주된 원인으로 파악한데에 기인한다. 이를 위해 먼저 감정의 가장 기본적 정서인 ‘인정’이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생득적인 것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본 연구에서는 기존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ter Schule)의 ‘인정’ 개념이 생득적으로 타고난 것임을 밝히는 것까지는 유용하지만 이 ‘인정’이 여전히 ‘투쟁’의 개념을 안고 있는 한계점을 밝혔다. 조중빈이 말한 ‘느낌 알다’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인정’이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투쟁이 아닌 이미 받은 사랑으로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느낌 알다’의 중요성은 인지과학자들이 말하는 그저 머물러 있는 ‘느낌’이 아닌 곧 판단이라는 자명한 사실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투쟁이라는 갈등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내 안에 받은 사랑이 없거나,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이것을 획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느낌을 아는 것은 받은 사랑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불안과 근심에 떠는 이유는 종종 이 사랑이 내 안에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받은 사랑은 나의 세계가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타인의 세계를 함께 하는 길이다. 이 사랑이라는 보편을 통해 우리는 선호를 시비로 끌어들이지 않고, 특수자로서 서로를 인정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인해 이 ‘인정’을 쉽게 망각하고 타자를 ‘물화’시키고 ‘객체’화 시켜버렸다. 늘 ‘객체’가 행하는 것들을 갈망하고, ‘나’의 존재를 망각, ‘객체’됨을 지향하며, 스스로가 ‘물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언어와 문화 속에서 ‘인정’을 통해 ‘공감’하는 것’을 갈등의 해결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언어는 타인을 초대할 수 있게 만들어주며, 타인의 세계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세계이다.
그리고 이 언어는 문화를 통해 ‘판단’이 곧 ‘느낌을 아는 것’으로 ‘갈등’을 해결해 주는 키워드가 된다. 언어 역시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본 연구는 최근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카페문화’를 통해 자극과 반응이 아닌 ‘인간의 의식 흐름’을 감정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카페문화에 주목한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급격히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카페라는 공간 자체가 감정 소통과 내러티브의 장으로 유용하게 이용되기 때문이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목적 합리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사람에게만 ‘인정’받으려고 하는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이것이 모순인 것은 ‘인정’은 누구에게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늘 우리 곁에 망각하지 않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인정’을 없다 생각하고, 특정대상에게만 ‘인정’ 받기만을 기다릴 때 주체와 타자가 온전히 만나지 못하고 객체 속에 나로 머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인정을 통한 ‘무시’, ‘물화’, ‘배제’ 등도 함께 살펴봄으로써, 호네트(A. Honneth)가 말하는 ‘인정’의 정의를 뛰어넘어 새로운 시각과 정의 속에서 ‘인정’을 살펴보았다. 호네트에 따르면 인정은 첫째, 사랑에 관한 인정, 둘째, 권리에 대한 인정, 셋째, 사회적 연대에 관한 인정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나는 호네트의 인정이 여전히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과, 그가 미드의 이론을 연결하여 ‘주격 나’와 사회적으로 규정된 ‘목적격 나’를 따로 분리한 점을 문제로 제기한다. 인정을 투쟁으로 설명하면 안 되는 이유는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이기에 받기 위하거나,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인정’을 확인만하면 되는 것이며, 이것은 자명한 사실과도 연결된다.
인정이 곧 느낌이고 느낌을 아는 것은 곧 차이에 의한 ‘공감’이다. 이 차이에 의한 공감은 특수자로의 차이 속에서 결국 보편자인 우리가 다르지만 같은 우리임을 확인하는 차이이다.
다양한 개별정서들은 그 때 그 때 개인이 보여주는 감정을 통해 특수자임을 나타낸다. 하지만 감정의 자기 이해는 우리가 느낌을 아는 보편적 진리를 통해 우리가 하나임을 또한 알 수 있다. 그래서 개별정서들로 인해 ‘감정’이 시비를 가리고, 이 감정에 대해 열정을 갖고 그 느낌을 잘 살피게 되면 ‘선택’은 자연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임을 인정-공감-의미의 맥락에서 함께 살펴보았다. 특히 차이에 의한 ‘공감’은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더 쉽게 이해되고 의미화 되기에 본 연구에서는 내러티브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사회학적 관점의 이해를 넘어 감정으로서의 이해를 모색했다.
본 연구는 ‘판단’이 곧 ‘느낌을 아는’ 것이며, 그 자체가 ‘공감’을 통해 도덕과 정의를 실현한다고 밝혔다. 그 바탕에는 사랑이라는 ‘인정’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늘 ‘마음 쓰고 있었던 존재’임을 확인하여,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위한 역사의 수단이나, ‘없어져야 할 무엇’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넓혀가고 이해하는 것임을 밝혔다. 이런 ‘감정’의 중요성을 밝혀냄으로써 현대 사회의 갈등 해결에 대한 새로운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I think, I ,who had grown around the university town, grew up between college students ,who demonstrated bleeding, and the police running to stop them. Watching the looks of them, I would approach something from the feeling of pain rather than the ‘judgement’ of justice.
R...
Abstract
I think, I ,who had grown around the university town, grew up between college students ,who demonstrated bleeding, and the police running to stop them. Watching the looks of them, I would approach something from the feeling of pain rather than the ‘judgement’ of justice.
Rodney King, who is African American, said, “Can we get along all together?” My unconscious with the aforementioned statement always seems to have never let go of me.
When I entered middle and high school, I had to watch the conflict in the power of the inner circle of the armed forces under the pretext of ‘IL JIN’ or ‘LEE JIN’ and our students separated from ‘honor student class’ and ‘inferiority student class’, therefore, We had to take the different way and I had grown in the inner ‘conflict’.
At work, he has lived by watching conflicts between lines and lines, which are bound to fall from promotions if he fails to ride on the so-called ‘line’. It is said that history takes place in a state of conflict.
But we in the world of living are not living for history, but for the sake of ‘my existence’ and ‘me’ surrounding them. These thoughts in my mind evoke ‘culture’.
We can think not that ‘the historical phase’, or ‘the justice’ makes us worthily, but that ‘The meaning’ in the world of living makes our lives worthily.
This paper presents the solution of the conflicts in the world through ‘culture’ called ‘the current popular culture’ after passing through civilization and culture and ‘living world’.
In doing so, we needed to recover the importance of emotion first. The reason is that this paper considers the part about ‘tool reason’ and ‘purpose rationality’ to be the biggest causes of conflicts in the modern society.
However, there are parts of our society that understand emotions as a component of our cognitive development, which has also contributed to the creation of conflicts in our society. That is, we don't see them as ‘Normal’ when we don't get to a certain level.
To attain this end, I would like this paper to prove that ‘recognition’ the fundamental feeling of emotions, is not derived from the human social process, but the innate part we have since birth.
Due to the wrong awareness of the reason, however, we easily forget about ‘recognition’ and make an another person objectification. It makes the another person objectified consciousness. Looking at and hoping ‘the object’ doing, I lose me and aim at objectified self, also myself become the target of ‘objectification’.
For this purpose, I argue that we should recognize the other person in the language through culture. The language makes it possible to invite others from our world and it is a gateway for us to enter the other’s world.
And it is a keyword throughout culture that solves the conflicts not only by making judgement, but also by ‘letting us know how we feel. Since the language also depends on the environment and circumstances in which we use it. I examined the flow of human’s emotions through ‘the cafe culture’ which has been growing steadily.
In today’s complex society, we also fall into a contradiction of trying to be recognized only by those who are easily acknowledged to get what they want through objective rationality. This is a contradiction because ‘recognition’ is not something we only get from anyone, but something we should always remember to feel. Rather than becoming the active subject in making recognition, it is inevitable that the subject and the other person will not be able to meet each other and will be able to stay as me in the object.
Also, this paper presents by indagating ‘disrespect’, ‘objectification’ and ‘exclusion’ through the ‘recognition’ the emotional elements of passion can be leaded ‘the choice’ we talk with ‘recognition-’sympathy’-‘signification’.
Our idea of ‘the judgement’ is always ‘the choice’, and this is something that should be decided as quickly as possible and reasonably. Not ‘the judgement’ is based on morality and justice, but the morality and justice is come true through ‘the recognition-sympathy-signification’. We expect to indicate the importance of feelings in the modern society and provide a new model for the solutions to conflits in our society.
Abstract
I think, I ,who had grown around the university town, grew up between college students ,who demonstrated bleeding, and the police running to stop them. Watching the looks of them, I would approach something from the feeling of pain rather than the ‘judgement’ of justice.
Rodney King, who is African American, said, “Can we get along all together?” My unconscious with the aforementioned statement always seems to have never let go of me.
When I entered middle and high school, I had to watch the conflict in the power of the inner circle of the armed forces under the pretext of ‘IL JIN’ or ‘LEE JIN’ and our students separated from ‘honor student class’ and ‘inferiority student class’, therefore, We had to take the different way and I had grown in the inner ‘conflict’.
At work, he has lived by watching conflicts between lines and lines, which are bound to fall from promotions if he fails to ride on the so-called ‘line’. It is said that history takes place in a state of conflict.
But we in the world of living are not living for history, but for the sake of ‘my existence’ and ‘me’ surrounding them. These thoughts in my mind evoke ‘culture’.
We can think not that ‘the historical phase’, or ‘the justice’ makes us worthily, but that ‘The meaning’ in the world of living makes our lives worthily.
This paper presents the solution of the conflicts in the world through ‘culture’ called ‘the current popular culture’ after passing through civilization and culture and ‘living world’.
In doing so, we needed to recover the importance of emotion first. The reason is that this paper considers the part about ‘tool reason’ and ‘purpose rationality’ to be the biggest causes of conflicts in the modern society.
However, there are parts of our society that understand emotions as a component of our cognitive development, which has also contributed to the creation of conflicts in our society. That is, we don't see them as ‘Normal’ when we don't get to a certain level.
To attain this end, I would like this paper to prove that ‘recognition’ the fundamental feeling of emotions, is not derived from the human social process, but the innate part we have since birth.
Due to the wrong awareness of the reason, however, we easily forget about ‘recognition’ and make an another person objectification. It makes the another person objectified consciousness. Looking at and hoping ‘the object’ doing, I lose me and aim at objectified self, also myself become the target of ‘objectification’.
For this purpose, I argue that we should recognize the other person in the language through culture. The language makes it possible to invite others from our world and it is a gateway for us to enter the other’s world.
And it is a keyword throughout culture that solves the conflicts not only by making judgement, but also by ‘letting us know how we feel. Since the language also depends on the environment and circumstances in which we use it. I examined the flow of human’s emotions through ‘the cafe culture’ which has been growing steadily.
In today’s complex society, we also fall into a contradiction of trying to be recognized only by those who are easily acknowledged to get what they want through objective rationality. This is a contradiction because ‘recognition’ is not something we only get from anyone, but something we should always remember to feel. Rather than becoming the active subject in making recognition, it is inevitable that the subject and the other person will not be able to meet each other and will be able to stay as me in the object.
Also, this paper presents by indagating ‘disrespect’, ‘objectification’ and ‘exclusion’ through the ‘recognition’ the emotional elements of passion can be leaded ‘the choice’ we talk with ‘recognition-’sympathy’-‘signification’.
Our idea of ‘the judgement’ is always ‘the choice’, and this is something that should be decided as quickly as possible and reasonably. Not ‘the judgement’ is based on morality and justice, but the morality and justice is come true through ‘the recognition-sympathy-signification’. We expect to indicate the importance of feelings in the modern society and provide a new model for the solutions to conflits in our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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