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 생애사로 본 여성의 가족제적 역할과 삶의 변화 : 도시 거주 중산층 여성을 중심으로 The role of women in family system and change of their lives reflected in oral life history -Focused on urban middle class women-원문보기
도시 여성의 구술 생애사 연구는 대체로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자신이 처한 여건과 한계 속에서 삶을 개척한 주체적 여성을 적극적으로 포착해왔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면서 익명의 삶을 살아온 도시 여성의 생애 경험과 그 사회문화적 의미를 읽는 데는 여전히 미진한 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도시 중산층 여성들의 생애사를 통해 여성들의 생존 전략 및 극복 양상을 읽고, 나아가 변화된 가족제 속에서 형성된 여성들의 다중적 정체성과 역할 실천이 가지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구술 생애사 연구방법을 적용하였으며, 서울 K 문화원의 자원봉사자들 가운데 중년 이후의 여성 14명을 구술 생애사의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연구대상 구술자들은 한국 가족제의 변화를 자신의 생애 속에서 경험한 여성들이다. 성장기에는 가부장적 가족제를, 청장년기에는 근대가족제를 경험하였고, 노년이 된 현재는 신가족제를 경험하면서, 각 가족제가 요구하는 가치관과 역할 규범을 수용해왔다. 각 가족제는 서로 혼합되고 공존하면서 이 여성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변화하는 가족제 속에서 구술자 여성들은 딸, 며느리, 주부, 어머니의 다중적 정체성을 형성·구축하였고, 그러한 정체성에 따라 부과된 다중적 역할을 수용하고 감내하며 극복하는 삶을 살아왔다. 먼저 구술자들의 생애사를 통해서, 여성들의 삶을 대하는 성향이 다를 뿐 아니라, 성향에 따라 역할과 지위가 달라지고, 그 결과가 그들의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에 연구자는 구술자들의 삶을 대하는 성향을 순응형과 진취형으로 분류하였다. 순응형은 자기 삶에 순응하여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살아온 여성들로, 가족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진취형은 자주적이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여성들로, 가족 내 역할 비중과 지위가 높고 그에 따라 자존감과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다음으로 구술자들의 생애 전반에 걸친 경험들을 특정 시점과 사건별로 재구성함으로써, 가족제 속에서 형성된 구술자들의 다중적 정체성과 역할 실천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구술자들의 다중적 정체성은 다양한 가족제들이 공존·교차하면서 구술자들에게 요구한 다중적 역할의 실천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성장기의 구술자들은 가부장적 가족제의 차별받는 딸로서 자신의 정체와 존재를 확인하였고, 가족 내에서 인정받기 위해 늘 착한 딸이 되어야 했다. 이후의 삶에서도 구술자들의 선택 기준은 ‘착한 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청장년기의 구술자들은 가부장적 가족제와 근대가족제가 공존한 한국적 근대가족의 전업주부로 살았다. 구술자들은 부덕의 수행이라는 전통적 성 역할과 남편·자녀에게 헌신하는 근대가족의 성 역할을 이중으로 감당해야 했다. 특히 자녀 중심 근대가족제에서 정교하고 전문적인 교육주부 역할이 강조되었다. 또한, 구술자들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을 전담한 전업주부로서 가족의 경제적 안정과 자녀의 교육투자를 위해 재산형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구술자들의 치산 역할은 자녀교육의 성과에 가려져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형성된 여성 노동자 정체성은 평등한 부부관계를 이루는 데 도움을 주었다. 노년기를 전후하여 구술자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가정 밖으로 역할 범위를 확대하면서 자아 찾기를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봉사활동도 결국 ‘돌봄’ 노동이며, 희생과 헌신이라는 전통적 성 역할의 연장이다. 즉, 구술자들의 역할이 다양해지고 그 범위 또한 확대되고 있으나 여전히 전통적 성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구술자들의 다중적 역할 실천 양상을 볼 때 그들의 역할이 갖는 사회문화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첫째, 사회적 변화와 함께 여성교육이 신장된 시기에 구술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학업성취를 이루었고, 그와 함께 적어도 가족 내에서는 일정 부분 존중받는 지위를 획득하였다. 이 사례에 속한 여성들은 획득한 지위에서 가족을 위한 봉사를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여성들의 가족 내 지위와 역할의 변화는 남아선호의식의 약화를 가져왔다. 둘째, 구술자들이 경험한 혼인문화는 경제적 자원의 주체에 따라 다른 가족제 규범이 적용되었다. 혼인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은 구술자들은 가부장적 가족제의 규범을 따랐고, 부부관계에서도 순종이 강조되었다. 반면에 경제적 능력이 있었던 구술자들은 근대가족제의 규범이 더욱 비중 있게 나타났으며, 부부관계에서도 평등성을 지향하였다. 그러나 구술자의 자녀세대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과 상관없이 신가족제의 가치를 따르고 있다. 신세대 자녀들은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고 있으며, 구술자들도 자녀세대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수직적 가족관계에서 수평적 가족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셋째, 가부장적 가족제에서 가계계승과 재산권을 갖고 있던 장자들은 균등상속제가 되면서 권리는 없고 의무만 남게 되었다. 구술자들 가운데는 그런 변화 속에서도 맏며느리의 의무를 수행하여 그 지위를 유지하는 사례들이 있지만, 의무를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형제자매의 주변인이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여기다 노부모 수발을 위해 출가한 딸들이 나서게 되면서 맏이의 위치가 더욱 위축된 사례들도 나타난다. 넷째, ...
도시 여성의 구술 생애사 연구는 대체로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자신이 처한 여건과 한계 속에서 삶을 개척한 주체적 여성을 적극적으로 포착해왔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면서 익명의 삶을 살아온 도시 여성의 생애 경험과 그 사회문화적 의미를 읽는 데는 여전히 미진한 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도시 중산층 여성들의 생애사를 통해 여성들의 생존 전략 및 극복 양상을 읽고, 나아가 변화된 가족제 속에서 형성된 여성들의 다중적 정체성과 역할 실천이 가지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구술 생애사 연구방법을 적용하였으며, 서울 K 문화원의 자원봉사자들 가운데 중년 이후의 여성 14명을 구술 생애사의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연구대상 구술자들은 한국 가족제의 변화를 자신의 생애 속에서 경험한 여성들이다. 성장기에는 가부장적 가족제를, 청장년기에는 근대가족제를 경험하였고, 노년이 된 현재는 신가족제를 경험하면서, 각 가족제가 요구하는 가치관과 역할 규범을 수용해왔다. 각 가족제는 서로 혼합되고 공존하면서 이 여성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변화하는 가족제 속에서 구술자 여성들은 딸, 며느리, 주부, 어머니의 다중적 정체성을 형성·구축하였고, 그러한 정체성에 따라 부과된 다중적 역할을 수용하고 감내하며 극복하는 삶을 살아왔다. 먼저 구술자들의 생애사를 통해서, 여성들의 삶을 대하는 성향이 다를 뿐 아니라, 성향에 따라 역할과 지위가 달라지고, 그 결과가 그들의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에 연구자는 구술자들의 삶을 대하는 성향을 순응형과 진취형으로 분류하였다. 순응형은 자기 삶에 순응하여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살아온 여성들로, 가족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진취형은 자주적이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여성들로, 가족 내 역할 비중과 지위가 높고 그에 따라 자존감과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다음으로 구술자들의 생애 전반에 걸친 경험들을 특정 시점과 사건별로 재구성함으로써, 가족제 속에서 형성된 구술자들의 다중적 정체성과 역할 실천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구술자들의 다중적 정체성은 다양한 가족제들이 공존·교차하면서 구술자들에게 요구한 다중적 역할의 실천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성장기의 구술자들은 가부장적 가족제의 차별받는 딸로서 자신의 정체와 존재를 확인하였고, 가족 내에서 인정받기 위해 늘 착한 딸이 되어야 했다. 이후의 삶에서도 구술자들의 선택 기준은 ‘착한 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청장년기의 구술자들은 가부장적 가족제와 근대가족제가 공존한 한국적 근대가족의 전업주부로 살았다. 구술자들은 부덕의 수행이라는 전통적 성 역할과 남편·자녀에게 헌신하는 근대가족의 성 역할을 이중으로 감당해야 했다. 특히 자녀 중심 근대가족제에서 정교하고 전문적인 교육주부 역할이 강조되었다. 또한, 구술자들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을 전담한 전업주부로서 가족의 경제적 안정과 자녀의 교육투자를 위해 재산형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구술자들의 치산 역할은 자녀교육의 성과에 가려져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형성된 여성 노동자 정체성은 평등한 부부관계를 이루는 데 도움을 주었다. 노년기를 전후하여 구술자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가정 밖으로 역할 범위를 확대하면서 자아 찾기를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봉사활동도 결국 ‘돌봄’ 노동이며, 희생과 헌신이라는 전통적 성 역할의 연장이다. 즉, 구술자들의 역할이 다양해지고 그 범위 또한 확대되고 있으나 여전히 전통적 성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구술자들의 다중적 역할 실천 양상을 볼 때 그들의 역할이 갖는 사회문화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첫째, 사회적 변화와 함께 여성교육이 신장된 시기에 구술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학업성취를 이루었고, 그와 함께 적어도 가족 내에서는 일정 부분 존중받는 지위를 획득하였다. 이 사례에 속한 여성들은 획득한 지위에서 가족을 위한 봉사를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여성들의 가족 내 지위와 역할의 변화는 남아선호의식의 약화를 가져왔다. 둘째, 구술자들이 경험한 혼인문화는 경제적 자원의 주체에 따라 다른 가족제 규범이 적용되었다. 혼인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은 구술자들은 가부장적 가족제의 규범을 따랐고, 부부관계에서도 순종이 강조되었다. 반면에 경제적 능력이 있었던 구술자들은 근대가족제의 규범이 더욱 비중 있게 나타났으며, 부부관계에서도 평등성을 지향하였다. 그러나 구술자의 자녀세대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과 상관없이 신가족제의 가치를 따르고 있다. 신세대 자녀들은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고 있으며, 구술자들도 자녀세대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수직적 가족관계에서 수평적 가족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셋째, 가부장적 가족제에서 가계계승과 재산권을 갖고 있던 장자들은 균등상속제가 되면서 권리는 없고 의무만 남게 되었다. 구술자들 가운데는 그런 변화 속에서도 맏며느리의 의무를 수행하여 그 지위를 유지하는 사례들이 있지만, 의무를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형제자매의 주변인이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여기다 노부모 수발을 위해 출가한 딸들이 나서게 되면서 맏이의 위치가 더욱 위축된 사례들도 나타난다. 넷째, 가족법 개정으로 균등상속이 가능해졌음에도, 구술자들은 친정의 재산상속에서 균등상속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어머니와 남자 형제의 종용으로 상속을 포기하거나, 형제간의 우애를 위해 스스로 상속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구술자 중 상속권을 주장한 경우, 남자 형제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도시 중산층 여성들은 늘어난 역할에 비해, 권리를 찾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섯째, 구술자 여성들은 의례문화 변화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출생의례에 있어 구술자들은 성별보다는 출생순위를 중시하여 실행하고 있다. 이는 구술자들이 남아선호의식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구술자들에게 혼인한 딸은 출가외인이 아니라 내 품 안의 자식이며, 그 딸들의 사회활동을 위해 헌신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구술자세대의 역할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양성평등 실현에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신세대 가족의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치의 실현은 구술자세대의 헌신을 바탕으로 얻어진 것이다. 또한 구술자들은 상제례문화의 변화도 주도한다. 구술자들은 자신의 장례를 화장과 산골(散骨)로 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 아니라, 조상의 묘소까지도 실용과 편리를 위한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준비의 부담 때문에 집안 내에 갈등의 소지가 되는 기제사의 축소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모두 자녀세대를 위한 모성적 배려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세대에 대한 구술자세대의 헌신과 배려가 돋보인다. 본 연구는 근현대적 변화의 격동기를 살아온 여성들의 삶과 역할에 관한 연구이다. 연구대상이 된 구술자 여성들은 사회와 가족제의 변화 속에서 딸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어머니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왔다. 이 연구는 그러한 변화를 따르기도 하고, 변화와 갈등하기도 하며, 때로는 변화를 선도하기도 하면서 한국 가족제와 사회문화의 한 축을 지탱해 온 도시 중산층 여성들에 관한 보고이자 의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연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공감을 나눈 결과 이루어진 질적 연구인 점에서 경험주의적 민속학의 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이 연구를 위해 채록된 구술 생애사 자료 및 분석이 여성사와 가족문화 연구에서도 유의미한 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 구술자 사례들이 도시 중산층 여성의 삶과 역할을 대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다른 도시지역의 여성들 또는 도시 내의 다양한 여성집단에 관한 연구가 계속해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도시 여성의 구술 생애사 연구는 대체로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자신이 처한 여건과 한계 속에서 삶을 개척한 주체적 여성을 적극적으로 포착해왔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면서 익명의 삶을 살아온 도시 여성의 생애 경험과 그 사회문화적 의미를 읽는 데는 여전히 미진한 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도시 중산층 여성들의 생애사를 통해 여성들의 생존 전략 및 극복 양상을 읽고, 나아가 변화된 가족제 속에서 형성된 여성들의 다중적 정체성과 역할 실천이 가지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구술 생애사 연구방법을 적용하였으며, 서울 K 문화원의 자원봉사자들 가운데 중년 이후의 여성 14명을 구술 생애사의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연구대상 구술자들은 한국 가족제의 변화를 자신의 생애 속에서 경험한 여성들이다. 성장기에는 가부장적 가족제를, 청장년기에는 근대가족제를 경험하였고, 노년이 된 현재는 신가족제를 경험하면서, 각 가족제가 요구하는 가치관과 역할 규범을 수용해왔다. 각 가족제는 서로 혼합되고 공존하면서 이 여성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변화하는 가족제 속에서 구술자 여성들은 딸, 며느리, 주부, 어머니의 다중적 정체성을 형성·구축하였고, 그러한 정체성에 따라 부과된 다중적 역할을 수용하고 감내하며 극복하는 삶을 살아왔다. 먼저 구술자들의 생애사를 통해서, 여성들의 삶을 대하는 성향이 다를 뿐 아니라, 성향에 따라 역할과 지위가 달라지고, 그 결과가 그들의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에 연구자는 구술자들의 삶을 대하는 성향을 순응형과 진취형으로 분류하였다. 순응형은 자기 삶에 순응하여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살아온 여성들로, 가족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진취형은 자주적이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여성들로, 가족 내 역할 비중과 지위가 높고 그에 따라 자존감과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다음으로 구술자들의 생애 전반에 걸친 경험들을 특정 시점과 사건별로 재구성함으로써, 가족제 속에서 형성된 구술자들의 다중적 정체성과 역할 실천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구술자들의 다중적 정체성은 다양한 가족제들이 공존·교차하면서 구술자들에게 요구한 다중적 역할의 실천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성장기의 구술자들은 가부장적 가족제의 차별받는 딸로서 자신의 정체와 존재를 확인하였고, 가족 내에서 인정받기 위해 늘 착한 딸이 되어야 했다. 이후의 삶에서도 구술자들의 선택 기준은 ‘착한 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청장년기의 구술자들은 가부장적 가족제와 근대가족제가 공존한 한국적 근대가족의 전업주부로 살았다. 구술자들은 부덕의 수행이라는 전통적 성 역할과 남편·자녀에게 헌신하는 근대가족의 성 역할을 이중으로 감당해야 했다. 특히 자녀 중심 근대가족제에서 정교하고 전문적인 교육주부 역할이 강조되었다. 또한, 구술자들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을 전담한 전업주부로서 가족의 경제적 안정과 자녀의 교육투자를 위해 재산형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구술자들의 치산 역할은 자녀교육의 성과에 가려져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형성된 여성 노동자 정체성은 평등한 부부관계를 이루는 데 도움을 주었다. 노년기를 전후하여 구술자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가정 밖으로 역할 범위를 확대하면서 자아 찾기를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봉사활동도 결국 ‘돌봄’ 노동이며, 희생과 헌신이라는 전통적 성 역할의 연장이다. 즉, 구술자들의 역할이 다양해지고 그 범위 또한 확대되고 있으나 여전히 전통적 성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구술자들의 다중적 역할 실천 양상을 볼 때 그들의 역할이 갖는 사회문화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첫째, 사회적 변화와 함께 여성교육이 신장된 시기에 구술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학업성취를 이루었고, 그와 함께 적어도 가족 내에서는 일정 부분 존중받는 지위를 획득하였다. 이 사례에 속한 여성들은 획득한 지위에서 가족을 위한 봉사를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여성들의 가족 내 지위와 역할의 변화는 남아선호의식의 약화를 가져왔다. 둘째, 구술자들이 경험한 혼인문화는 경제적 자원의 주체에 따라 다른 가족제 규범이 적용되었다. 혼인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은 구술자들은 가부장적 가족제의 규범을 따랐고, 부부관계에서도 순종이 강조되었다. 반면에 경제적 능력이 있었던 구술자들은 근대가족제의 규범이 더욱 비중 있게 나타났으며, 부부관계에서도 평등성을 지향하였다. 그러나 구술자의 자녀세대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과 상관없이 신가족제의 가치를 따르고 있다. 신세대 자녀들은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고 있으며, 구술자들도 자녀세대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수직적 가족관계에서 수평적 가족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셋째, 가부장적 가족제에서 가계계승과 재산권을 갖고 있던 장자들은 균등상속제가 되면서 권리는 없고 의무만 남게 되었다. 구술자들 가운데는 그런 변화 속에서도 맏며느리의 의무를 수행하여 그 지위를 유지하는 사례들이 있지만, 의무를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형제자매의 주변인이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여기다 노부모 수발을 위해 출가한 딸들이 나서게 되면서 맏이의 위치가 더욱 위축된 사례들도 나타난다. 넷째, 가족법 개정으로 균등상속이 가능해졌음에도, 구술자들은 친정의 재산상속에서 균등상속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어머니와 남자 형제의 종용으로 상속을 포기하거나, 형제간의 우애를 위해 스스로 상속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구술자 중 상속권을 주장한 경우, 남자 형제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도시 중산층 여성들은 늘어난 역할에 비해, 권리를 찾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섯째, 구술자 여성들은 의례문화 변화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출생의례에 있어 구술자들은 성별보다는 출생순위를 중시하여 실행하고 있다. 이는 구술자들이 남아선호의식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구술자들에게 혼인한 딸은 출가외인이 아니라 내 품 안의 자식이며, 그 딸들의 사회활동을 위해 헌신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구술자세대의 역할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양성평등 실현에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신세대 가족의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치의 실현은 구술자세대의 헌신을 바탕으로 얻어진 것이다. 또한 구술자들은 상제례문화의 변화도 주도한다. 구술자들은 자신의 장례를 화장과 산골(散骨)로 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 아니라, 조상의 묘소까지도 실용과 편리를 위한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준비의 부담 때문에 집안 내에 갈등의 소지가 되는 기제사의 축소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모두 자녀세대를 위한 모성적 배려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세대에 대한 구술자세대의 헌신과 배려가 돋보인다. 본 연구는 근현대적 변화의 격동기를 살아온 여성들의 삶과 역할에 관한 연구이다. 연구대상이 된 구술자 여성들은 사회와 가족제의 변화 속에서 딸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어머니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왔다. 이 연구는 그러한 변화를 따르기도 하고, 변화와 갈등하기도 하며, 때로는 변화를 선도하기도 하면서 한국 가족제와 사회문화의 한 축을 지탱해 온 도시 중산층 여성들에 관한 보고이자 의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연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공감을 나눈 결과 이루어진 질적 연구인 점에서 경험주의적 민속학의 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이 연구를 위해 채록된 구술 생애사 자료 및 분석이 여성사와 가족문화 연구에서도 유의미한 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 구술자 사례들이 도시 중산층 여성의 삶과 역할을 대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다른 도시지역의 여성들 또는 도시 내의 다양한 여성집단에 관한 연구가 계속해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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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정보
저자
김정화
학위수여기관
안동대학교 일반대학원
학위구분
국내박사
학과
민속학과 민속학 전공
지도교수
천혜숙
발행연도
2019
총페이지
383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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