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지훈의 시 세계를 직조하는 주요한 미적 정서의 정체를 ‘한(恨)’이라는 정서를 통해 해명하고 해당 정서의 근본 원인과 그 표출 양상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훈 시에서 나타나는 한의 정서가 완전하게 규명되기 위해서는 한국 고유의 정서로서의 한이 갖는 의미와 그 구조의 파악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 고유의 한은 일반적인 동양의 한에 내포된 원망과 한탄, 설움이라는 부정적 정서 양태로부터 정과 기원이라는 긍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정서 양태로의 지향 과정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일원적인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지훈 시의 한은 한의 일반적인 구조 체계만으로는 온전히 해명될 수 없는 변별적 지점을 형성한다. 즉 지훈의 작품에서 한은 부정적인 의미 내포와 더불어 긍정적인 의미 내포가 동시에 발생된다는 점에서 복합적 층위를 가지며 주체의 의지가 갖는 능동성으로 인해 무심(無心)이라는 경지로의 ...
본 연구는 조지훈의 시 세계를 직조하는 주요한 미적 정서의 정체를 ‘한(恨)’이라는 정서를 통해 해명하고 해당 정서의 근본 원인과 그 표출 양상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훈 시에서 나타나는 한의 정서가 완전하게 규명되기 위해서는 한국 고유의 정서로서의 한이 갖는 의미와 그 구조의 파악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 고유의 한은 일반적인 동양의 한에 내포된 원망과 한탄, 설움이라는 부정적 정서 양태로부터 정과 기원이라는 긍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정서 양태로의 지향 과정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일원적인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지훈 시의 한은 한의 일반적인 구조 체계만으로는 온전히 해명될 수 없는 변별적 지점을 형성한다. 즉 지훈의 작품에서 한은 부정적인 의미 내포와 더불어 긍정적인 의미 내포가 동시에 발생된다는 점에서 복합적 층위를 가지며 주체의 의지가 갖는 능동성으로 인해 무심(無心)이라는 경지로의 질적 변화를 달성하는 등의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기존의 한의 체계에 포섭되기 어려운 지훈 시만의 독특한 현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또한 지훈의 시심을 추동하는 정서인 한이 또 다른 동양 미학의 요소인 무심을 산출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 세계는 한국 미학의 체계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하나의 사례로 적용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지훈 시에서 나타나는 미적 정서인 한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은 지훈의 시 세계를 작동시키는 하나의 기제로서의 정서뿐만 아니라 한국적 한의 의미망을 밝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훈 시에 나타나는 한의 의미와 의의를 구명하기 위해 본 논문은 우선 그의 시 세계를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양분한 뒤 각 시기에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한의 의미 내포를 추출하였고, 해당 정서를 통해 시적 주체가 어떠한 관점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는지를 분석하였다. 한국전쟁이 시 세계를 양분하는 기준으로 채택된 것은 해당 사건을 분기로 지훈의 현실 대응 방식이 확연히 변화됨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2편에서는 전기 시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한의 의미 내포를 설움과 정으로 파악하였다. 이 시기에 시적 주체의 한은 크게 유랑과 전통 회고, 이별 수용의 상황을 통해 드러나며 대개는 설움의 부정적 내포와 정의 긍정적 내포가 뒤섞여 표출되나, 일부의 경우 두 의미 내포가 완벽히 혼합되기보다는 분리의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2편의 1장 1절에서 시적 화자는 주로 ‘나그네’ 이미지로 형상화되면서 지상적 존재가 갖는 생멸의 필연적 고뇌를 안은 채 자연 속 풍경을 배회한다. 그의 한은 실향의식으로부터 촉발되는데, 존재의 근원적 장소인 고향으로부터 정신적인 소외를 겪은 시적 화자가 삶의 구심점을 잃은 채 정처 없이 방랑의 길을 걷는 것이다. 자연 풍경을 거닐며 마주치는 생명 개체들의 생멸을 대면한 ‘나그네’는 그들과의 연대 의식과 유대감이라는 정을 형성하며 동시에 소멸에 대한 설움을 절감한다. 1장 2절에서 나타나는 시적 화자는 역사적 장소나 예술작품을 매개로 과거를 회상한다. 이때 대상을 대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는 그 지배적인 한의 정서가 무엇인가에 따라 양분된다. 우선 폐허가 된 고적지를 마주하는 경우 시적 화자는 시간의 무상성을 느끼며 흩어져버린 영고의 세월을 향해 설움을 표출한다. 즉 해당 대목에서는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 지난 영화의 시절에 대한 설움의 한이 문면을 지배한다. 반면 민족의 얼과 혼이 깃든 예술작품을 대면하는 경우 화자는 조상의 자취를 “향기”로운 것으로 인식하는데, 여기서 한은 설움보다는 정의 성격을 띤다. 역사와 전통을 회고하는 시적 화자는 흘러가버린 과거의 대상을 그리워하고 기리는 상고의 자세를 통해 내면의 한을 생성·표출한다. 1장 3절에서는 애모하는 ‘임’과의 이별을 감내하는 여성적 주체로부터 현현되는 한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해당 절의 시적 주체는 임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음에도 그와 이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데, 이때 주체는 전통적인 한국 여인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해당 절의 고전적 여인상을 한 시적 주체로부터 설움과 정으로서의 한의 의미 내포가 가장 완벽하게 융화된다. 즉 시적 주체가 처한 모순적인 상황과 그를 수용하는 태도로부터 한의 정서가 촉발되는데, 여기서 임에 대한 사랑이라는 정의 의미와 이별의 상황에 처한 설움의 의미가 동시에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시적 화자의 ‘임’은 유교적 덕성을 갖춘 인물로, 지훈의 사상적 지향점이 되었던 도(道)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편의 2장에서는 한의 변환으로서의 무심의 양상을 살폈다. 무심의 발현은 전기 시 세계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 이루어지며, 이후 지훈의 후기 시편에서 나타나는 한의 승화 및 정화 작용에 개입하여 삭임의 궁극적 단계로 나아가는 매개로 작용한다. 지훈이 회고했듯이 이 시기에 내면으로의 침잠을 통해 득의한 선(禪)의 관점은 그의 시 세계 후반에까지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우주의 순리가 펼쳐지는 자연의 공간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수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시인은 관조의 시선으로 자연을 감수하고 그와의 합일을 추구하였다. 이때 주체는 생명 개체에 부여된 우주 이법의 원리를 깨닫고 자연의 일부로서 호흡하고자 한다. 이러한 동양적 무심은 주체의 한을 축적하는 과정 중에 도출된 변환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데, 그것이 현실과 이상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주체적 의지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훈의 후반기 시 세계에서 발견되는 순명(順命)의 태도는 이와 같은 무심의 단계에서 체득된 시인의 주체적 현상 인식과 관련된다. 2편 2장 1절에서는 자연의 이상적 정경으로 동화되고자 하는 주체를 선(禪)적 주체로 명명하고 그에 내포된 의미의 특성을 살폈다. 해당 절에서 나타나는 시적 주체와 자연의 합일은 자연(물)으로부터 주체가 지향하는 덕성을 발견하고 그에 자신의 형상을 투영함으로써 달성된다. 이때 대상과 대응되는 주체의 물리적 형상은 무화되고 자연에 깃든 그 정신적 구현체만이 육화되어 시의 면면에 부각된다. 2장 2절에서는 사물에 대한 시적 화자의 정관적 태도와 자연을 채우는 생명의 움직임을 조용히 관조하는 시선을 통해 포착되는 우주 이법의 양상에 대해 분석하였다. 무기교의 서술방식을 통해 자연 현상을 관찰하였던 시적 주체가 달성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무심의 미학이 구현하는 의식의 최대 상승지점이다. 3편에서는 6.25 전쟁을 서막으로 하는 후기 시 세계의 한이 갖는 의미 지평을 탐색하였다. 해당 편의 1장에서 다루어지는 한의 의미 내포는 가장 부정적인 원망과 한탄이 가장 미래지향적인 기원과 결합되어 있는데, 이때 주체의 생명 의지로 인해 후자의 긍정성이 전자의 부정성을 초극하며 그 어느 시기보다도 역동적인 방식으로 발전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선 시적 화자는 자아가 견뎌야 하는 모순을 현실에 대한 주체적 인식으로 극복하고자 하였다. 무엇보다도 생명을 중시했던 시인에게 있어 그것에 함축된 의미와 가치가 일말의 고려도 없이 말살되는 부조리한 현실 상황은 시적 화자의 내부에 원초적이면서도 극한의 부정적 성격을 띤 한을 발원케 하였다. 3편 1장의 1절에서 주목하는 원(怨)과 탄(嘆)의 파괴성은 시적 화자의 내부에서 은밀하게 정제되지 못하고 즉각적으로 분출되어 시의 표면에 임리해 있다. 해당 시기에 지훈의 시편에서 도드라지는 격정적 감정의 직접성과 서술의 산문성은 생명의 권리인 자유가 무너지는 시대의 폭압에 대항하는 시인의 현실 인식 및 대응 방식으로부터 기인한다. 이와 같이 후반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시편들에는 개인적이며 내면적인 인식 체계를 벗어나 외적 세계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려는 시인의 주체적 의지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구현되어 있다. 3편 1장의 2절에서는 사회적 자아의 부정적인 한이 극한에 다다랐을 때 빚어지는 원(願)의 한이 후기 시편의 문맥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되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원(願)의 한에 내장된 미래지향적 속성은 후기 시편의 사회적 자아가 발휘하는 투철한 투쟁 정신으로부터 기원한다. 시적 화자가 모순적 시대 상황을 인내하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담지한 윤리적 가치가 도래할 새 날들을 정화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시인이 염원하는 현실의 ‘내일’은 과거로의 단순한 퇴행적 복원이 아닌 희망적 가치를 구현하는 새 시대의 역사적 재탄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의 후기 사유를 이끄는 한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의 창조적인 생산력을 가늠할 수 있다. 3편의 2장에서는 방황의 여정을 마친 지훈의 한이 새로운 가치 체계로 확장되는 승화 및 정화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말년에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공간으로서의 생활 자연 속에서 그간 시인의 내면에 집적되었던 여러 결의 한의 의미들은 서로 융화되어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 그것이 지녔던 긍정적 속성과 부정적 속성으로부터 새로운 삶의 의미와 윤리적 가치가 도출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삭임의 과정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주체적 의식의 성숙과 그것이 발견한 윤리적 가치가 갖는 진보성에 기인한다. 3편 2장 1절에서 시적 화자는 황폐한 역사를 새롭게 복구하고자 하는 지사적 태도로써 세계를 인식한다. 세상을 조망하는 그의 자세는 삶에 대한 통찰력이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지적이다. 윤리성이 내장된 지적 사유를 통해 한의 궁극적 목적지를 노정한 시인은 생명 개체의 운명에 본래적으로 내재된 근원적 모순의 성질과 그 의미를 완전히 자각하고 이를 형상화하여 시에 구현한다. 그것은 본래 생의 진리에 내포된 역설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2장 2절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내면에 한을 생성시킨 모든 격정의 순간을 타자화한다. 그 심정의 결들이 자아내었던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지난 시간을 회고하면서 세월의 궤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때 화자의 주변에서 발견되는 자연의 풍경 및 대상들에는 지난 세월의 시간이 집약되어 있으며 그는 그것을 삶의 “보람”으로 감수하고자 한다. 시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생명 의식, 곧 생명 개체에 대한 사랑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생명뿐만 아니라 시인 자신이 지나온 시간이 갖는 의미에 대한 긍정적 인식으로부터 말미암는다. 해당 시편들에서 뚜렷하게 부각되는 윤리적 가치의 맥락은 그의 한이 통과하는 삭임의 과정을 통해 형상화된다. 이로써 시적 화자는 청춘의 풍랑을 거쳐 오며 받았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운명의 모순과 역설을 견뎌내는 심오한 세계관을 정립할 수 있게 된다. 본고는 지훈의 작품 세계 전반에 내장된 비애가 한국적 한의 의미 내포가 갖는 다층적 면면을 구현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이에 지훈 시를 직조하는 미적 정서로서의 한을 분석하였다. 그 정서의 미감은 외부 세계에 대한 시적 주체의 시각과 그것으로부터 초점화되는 자연 이미지, 언어의 세공성과 무기교의 기교 등이 갖는 형식적 차원과 더불어 자아가 담지하고자 하는 윤리적 가치, 생명 의식에 내재된 운명에의 수긍과 사랑이라는 정신적 차원으로부터 형상화된다. 시인의 한은 일반적인 한의 발전 경로를 답습하지 않고 무심이라는 변환의 지점에 도달함으로써 새로운 체계를 구축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훈의 시편에 내재된 한의 독자적 면모가 드러난다. 지훈의 시편을 통해 한국적 근원 정서인 한은 구체적 형상을 획득하였고 그 정서의 변용 가능성과 더불어 창조적이며 희망적인 의미군이 더욱 적극적으로 탐색될 수 있었다. 지훈의 시심을 추동하는 기제로서의 한을 단순한 동양적 정서의 의미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그의 시편에 담긴 한국 특유의 한의 정조가 담아내는 미적 감흥의 정체가 지나치게 범박하고 모호하게 파악될 우려가 있다. 시인의 작품은 동양의 범주 내에서도 특히 한국만의 한이 갖는 미적 특질의 다층적 면면을 고루 담아내고 있어, 한국 특유의 미적 정서를 범례적인 동시에 독창적으로 구현한다는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본 연구는 조지훈의 시 세계를 직조하는 주요한 미적 정서의 정체를 ‘한(恨)’이라는 정서를 통해 해명하고 해당 정서의 근본 원인과 그 표출 양상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훈 시에서 나타나는 한의 정서가 완전하게 규명되기 위해서는 한국 고유의 정서로서의 한이 갖는 의미와 그 구조의 파악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 고유의 한은 일반적인 동양의 한에 내포된 원망과 한탄, 설움이라는 부정적 정서 양태로부터 정과 기원이라는 긍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정서 양태로의 지향 과정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일원적인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지훈 시의 한은 한의 일반적인 구조 체계만으로는 온전히 해명될 수 없는 변별적 지점을 형성한다. 즉 지훈의 작품에서 한은 부정적인 의미 내포와 더불어 긍정적인 의미 내포가 동시에 발생된다는 점에서 복합적 층위를 가지며 주체의 의지가 갖는 능동성으로 인해 무심(無心)이라는 경지로의 질적 변화를 달성하는 등의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기존의 한의 체계에 포섭되기 어려운 지훈 시만의 독특한 현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또한 지훈의 시심을 추동하는 정서인 한이 또 다른 동양 미학의 요소인 무심을 산출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 세계는 한국 미학의 체계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하나의 사례로 적용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지훈 시에서 나타나는 미적 정서인 한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은 지훈의 시 세계를 작동시키는 하나의 기제로서의 정서뿐만 아니라 한국적 한의 의미망을 밝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훈 시에 나타나는 한의 의미와 의의를 구명하기 위해 본 논문은 우선 그의 시 세계를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양분한 뒤 각 시기에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한의 의미 내포를 추출하였고, 해당 정서를 통해 시적 주체가 어떠한 관점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는지를 분석하였다. 한국전쟁이 시 세계를 양분하는 기준으로 채택된 것은 해당 사건을 분기로 지훈의 현실 대응 방식이 확연히 변화됨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2편에서는 전기 시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한의 의미 내포를 설움과 정으로 파악하였다. 이 시기에 시적 주체의 한은 크게 유랑과 전통 회고, 이별 수용의 상황을 통해 드러나며 대개는 설움의 부정적 내포와 정의 긍정적 내포가 뒤섞여 표출되나, 일부의 경우 두 의미 내포가 완벽히 혼합되기보다는 분리의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2편의 1장 1절에서 시적 화자는 주로 ‘나그네’ 이미지로 형상화되면서 지상적 존재가 갖는 생멸의 필연적 고뇌를 안은 채 자연 속 풍경을 배회한다. 그의 한은 실향의식으로부터 촉발되는데, 존재의 근원적 장소인 고향으로부터 정신적인 소외를 겪은 시적 화자가 삶의 구심점을 잃은 채 정처 없이 방랑의 길을 걷는 것이다. 자연 풍경을 거닐며 마주치는 생명 개체들의 생멸을 대면한 ‘나그네’는 그들과의 연대 의식과 유대감이라는 정을 형성하며 동시에 소멸에 대한 설움을 절감한다. 1장 2절에서 나타나는 시적 화자는 역사적 장소나 예술작품을 매개로 과거를 회상한다. 이때 대상을 대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는 그 지배적인 한의 정서가 무엇인가에 따라 양분된다. 우선 폐허가 된 고적지를 마주하는 경우 시적 화자는 시간의 무상성을 느끼며 흩어져버린 영고의 세월을 향해 설움을 표출한다. 즉 해당 대목에서는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 지난 영화의 시절에 대한 설움의 한이 문면을 지배한다. 반면 민족의 얼과 혼이 깃든 예술작품을 대면하는 경우 화자는 조상의 자취를 “향기”로운 것으로 인식하는데, 여기서 한은 설움보다는 정의 성격을 띤다. 역사와 전통을 회고하는 시적 화자는 흘러가버린 과거의 대상을 그리워하고 기리는 상고의 자세를 통해 내면의 한을 생성·표출한다. 1장 3절에서는 애모하는 ‘임’과의 이별을 감내하는 여성적 주체로부터 현현되는 한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해당 절의 시적 주체는 임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음에도 그와 이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데, 이때 주체는 전통적인 한국 여인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해당 절의 고전적 여인상을 한 시적 주체로부터 설움과 정으로서의 한의 의미 내포가 가장 완벽하게 융화된다. 즉 시적 주체가 처한 모순적인 상황과 그를 수용하는 태도로부터 한의 정서가 촉발되는데, 여기서 임에 대한 사랑이라는 정의 의미와 이별의 상황에 처한 설움의 의미가 동시에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시적 화자의 ‘임’은 유교적 덕성을 갖춘 인물로, 지훈의 사상적 지향점이 되었던 도(道)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편의 2장에서는 한의 변환으로서의 무심의 양상을 살폈다. 무심의 발현은 전기 시 세계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 이루어지며, 이후 지훈의 후기 시편에서 나타나는 한의 승화 및 정화 작용에 개입하여 삭임의 궁극적 단계로 나아가는 매개로 작용한다. 지훈이 회고했듯이 이 시기에 내면으로의 침잠을 통해 득의한 선(禪)의 관점은 그의 시 세계 후반에까지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우주의 순리가 펼쳐지는 자연의 공간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수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시인은 관조의 시선으로 자연을 감수하고 그와의 합일을 추구하였다. 이때 주체는 생명 개체에 부여된 우주 이법의 원리를 깨닫고 자연의 일부로서 호흡하고자 한다. 이러한 동양적 무심은 주체의 한을 축적하는 과정 중에 도출된 변환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데, 그것이 현실과 이상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주체적 의지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훈의 후반기 시 세계에서 발견되는 순명(順命)의 태도는 이와 같은 무심의 단계에서 체득된 시인의 주체적 현상 인식과 관련된다. 2편 2장 1절에서는 자연의 이상적 정경으로 동화되고자 하는 주체를 선(禪)적 주체로 명명하고 그에 내포된 의미의 특성을 살폈다. 해당 절에서 나타나는 시적 주체와 자연의 합일은 자연(물)으로부터 주체가 지향하는 덕성을 발견하고 그에 자신의 형상을 투영함으로써 달성된다. 이때 대상과 대응되는 주체의 물리적 형상은 무화되고 자연에 깃든 그 정신적 구현체만이 육화되어 시의 면면에 부각된다. 2장 2절에서는 사물에 대한 시적 화자의 정관적 태도와 자연을 채우는 생명의 움직임을 조용히 관조하는 시선을 통해 포착되는 우주 이법의 양상에 대해 분석하였다. 무기교의 서술방식을 통해 자연 현상을 관찰하였던 시적 주체가 달성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무심의 미학이 구현하는 의식의 최대 상승지점이다. 3편에서는 6.25 전쟁을 서막으로 하는 후기 시 세계의 한이 갖는 의미 지평을 탐색하였다. 해당 편의 1장에서 다루어지는 한의 의미 내포는 가장 부정적인 원망과 한탄이 가장 미래지향적인 기원과 결합되어 있는데, 이때 주체의 생명 의지로 인해 후자의 긍정성이 전자의 부정성을 초극하며 그 어느 시기보다도 역동적인 방식으로 발전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선 시적 화자는 자아가 견뎌야 하는 모순을 현실에 대한 주체적 인식으로 극복하고자 하였다. 무엇보다도 생명을 중시했던 시인에게 있어 그것에 함축된 의미와 가치가 일말의 고려도 없이 말살되는 부조리한 현실 상황은 시적 화자의 내부에 원초적이면서도 극한의 부정적 성격을 띤 한을 발원케 하였다. 3편 1장의 1절에서 주목하는 원(怨)과 탄(嘆)의 파괴성은 시적 화자의 내부에서 은밀하게 정제되지 못하고 즉각적으로 분출되어 시의 표면에 임리해 있다. 해당 시기에 지훈의 시편에서 도드라지는 격정적 감정의 직접성과 서술의 산문성은 생명의 권리인 자유가 무너지는 시대의 폭압에 대항하는 시인의 현실 인식 및 대응 방식으로부터 기인한다. 이와 같이 후반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시편들에는 개인적이며 내면적인 인식 체계를 벗어나 외적 세계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려는 시인의 주체적 의지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구현되어 있다. 3편 1장의 2절에서는 사회적 자아의 부정적인 한이 극한에 다다랐을 때 빚어지는 원(願)의 한이 후기 시편의 문맥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되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원(願)의 한에 내장된 미래지향적 속성은 후기 시편의 사회적 자아가 발휘하는 투철한 투쟁 정신으로부터 기원한다. 시적 화자가 모순적 시대 상황을 인내하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담지한 윤리적 가치가 도래할 새 날들을 정화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시인이 염원하는 현실의 ‘내일’은 과거로의 단순한 퇴행적 복원이 아닌 희망적 가치를 구현하는 새 시대의 역사적 재탄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의 후기 사유를 이끄는 한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의 창조적인 생산력을 가늠할 수 있다. 3편의 2장에서는 방황의 여정을 마친 지훈의 한이 새로운 가치 체계로 확장되는 승화 및 정화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말년에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공간으로서의 생활 자연 속에서 그간 시인의 내면에 집적되었던 여러 결의 한의 의미들은 서로 융화되어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 그것이 지녔던 긍정적 속성과 부정적 속성으로부터 새로운 삶의 의미와 윤리적 가치가 도출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삭임의 과정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주체적 의식의 성숙과 그것이 발견한 윤리적 가치가 갖는 진보성에 기인한다. 3편 2장 1절에서 시적 화자는 황폐한 역사를 새롭게 복구하고자 하는 지사적 태도로써 세계를 인식한다. 세상을 조망하는 그의 자세는 삶에 대한 통찰력이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지적이다. 윤리성이 내장된 지적 사유를 통해 한의 궁극적 목적지를 노정한 시인은 생명 개체의 운명에 본래적으로 내재된 근원적 모순의 성질과 그 의미를 완전히 자각하고 이를 형상화하여 시에 구현한다. 그것은 본래 생의 진리에 내포된 역설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2장 2절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내면에 한을 생성시킨 모든 격정의 순간을 타자화한다. 그 심정의 결들이 자아내었던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지난 시간을 회고하면서 세월의 궤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때 화자의 주변에서 발견되는 자연의 풍경 및 대상들에는 지난 세월의 시간이 집약되어 있으며 그는 그것을 삶의 “보람”으로 감수하고자 한다. 시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생명 의식, 곧 생명 개체에 대한 사랑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생명뿐만 아니라 시인 자신이 지나온 시간이 갖는 의미에 대한 긍정적 인식으로부터 말미암는다. 해당 시편들에서 뚜렷하게 부각되는 윤리적 가치의 맥락은 그의 한이 통과하는 삭임의 과정을 통해 형상화된다. 이로써 시적 화자는 청춘의 풍랑을 거쳐 오며 받았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운명의 모순과 역설을 견뎌내는 심오한 세계관을 정립할 수 있게 된다. 본고는 지훈의 작품 세계 전반에 내장된 비애가 한국적 한의 의미 내포가 갖는 다층적 면면을 구현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이에 지훈 시를 직조하는 미적 정서로서의 한을 분석하였다. 그 정서의 미감은 외부 세계에 대한 시적 주체의 시각과 그것으로부터 초점화되는 자연 이미지, 언어의 세공성과 무기교의 기교 등이 갖는 형식적 차원과 더불어 자아가 담지하고자 하는 윤리적 가치, 생명 의식에 내재된 운명에의 수긍과 사랑이라는 정신적 차원으로부터 형상화된다. 시인의 한은 일반적인 한의 발전 경로를 답습하지 않고 무심이라는 변환의 지점에 도달함으로써 새로운 체계를 구축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훈의 시편에 내재된 한의 독자적 면모가 드러난다. 지훈의 시편을 통해 한국적 근원 정서인 한은 구체적 형상을 획득하였고 그 정서의 변용 가능성과 더불어 창조적이며 희망적인 의미군이 더욱 적극적으로 탐색될 수 있었다. 지훈의 시심을 추동하는 기제로서의 한을 단순한 동양적 정서의 의미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그의 시편에 담긴 한국 특유의 한의 정조가 담아내는 미적 감흥의 정체가 지나치게 범박하고 모호하게 파악될 우려가 있다. 시인의 작품은 동양의 범주 내에서도 특히 한국만의 한이 갖는 미적 특질의 다층적 면면을 고루 담아내고 있어, 한국 특유의 미적 정서를 범례적인 동시에 독창적으로 구현한다는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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