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불교에서 원효에 대한 연구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성불론에 대해서는 아직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효의 대중불교가 소외계층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성불론 역시 불교에서 성불의 소외계층인 이승과 여인, 일천제에 주목해야 이유이다. 하지만 당시 신라 특히 불교교단에서 원효가 자신의 불교사상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정도의 위치가 아니었다. 원효가 본주(本州)에서 명망으로 추천을 받았지만 여러 대덕들이 원효의 사람됨을 미워하여 선덕여왕에게 아뢰어 백고좌회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원효는 진골왕으로 새롭게 등장한 태종무열왕을 주시하였고 무열왕 역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기존의 불교교단 보다는 대중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원효에 주목하였다. 출발점이 바로 원효의 몰가부가(沒柯斧歌) 였다. 몰가부가는 원효가 파계(破戒)를 위해 부른 노래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보다는 진골왕(眞骨王) 즉위의 명분으로 남모르게 고민하고 있는 무열왕의 상황을 정확히 지적하였다고 보았다. 몰가부가의 내용인 ‘천주(天柱)’가 그것이다. 무열왕과 원효의 만남 원효는 거침없이 대중교화를 위해 행동하였으며 대중들이 불렀다는 ‘나무불(南無佛)’의 중심 사상을 『법화경』과 연결해 보았다. 원효의 대중불교사상이 『법화경』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불교에서 성불의 소외계층 가운데 하나인 이승(二乘)과 연결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법화경』 중심의 이승성불론을 통해 신라에서 대중불교가 넓혀지는 과정도 아울러 파악하였다. 불교대중화의 과정에서 원효가 강조한 것은 대중이 대중을 교화하는 것이었다. 원효는 승려가 아닌 대중이 다른 대중에게 불법을 넓히는 담당자이며 선지식일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원효도 주석한 적이 있는 ...
신라의 불교에서 원효에 대한 연구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성불론에 대해서는 아직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효의 대중불교가 소외계층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성불론 역시 불교에서 성불의 소외계층인 이승과 여인, 일천제에 주목해야 이유이다. 하지만 당시 신라 특히 불교교단에서 원효가 자신의 불교사상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정도의 위치가 아니었다. 원효가 본주(本州)에서 명망으로 추천을 받았지만 여러 대덕들이 원효의 사람됨을 미워하여 선덕여왕에게 아뢰어 백고좌회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원효는 진골왕으로 새롭게 등장한 태종무열왕을 주시하였고 무열왕 역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기존의 불교교단 보다는 대중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원효에 주목하였다. 출발점이 바로 원효의 몰가부가(沒柯斧歌) 였다. 몰가부가는 원효가 파계(破戒)를 위해 부른 노래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보다는 진골왕(眞骨王) 즉위의 명분으로 남모르게 고민하고 있는 무열왕의 상황을 정확히 지적하였다고 보았다. 몰가부가의 내용인 ‘천주(天柱)’가 그것이다. 무열왕과 원효의 만남 원효는 거침없이 대중교화를 위해 행동하였으며 대중들이 불렀다는 ‘나무불(南無佛)’의 중심 사상을 『법화경』과 연결해 보았다. 원효의 대중불교사상이 『법화경』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불교에서 성불의 소외계층 가운데 하나인 이승(二乘)과 연결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법화경』 중심의 이승성불론을 통해 신라에서 대중불교가 넓혀지는 과정도 아울러 파악하였다. 불교대중화의 과정에서 원효가 강조한 것은 대중이 대중을 교화하는 것이었다. 원효는 승려가 아닌 대중이 다른 대중에게 불법을 넓히는 담당자이며 선지식일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원효도 주석한 적이 있는 분황사(芬皇寺)의 노비 출신인 광덕의 처(妻)가 남성의 느슨한 마음을 꾸짖고 선지식으로 안내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어서 대중이 불법 유통의 담당자라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보았다. 불교대중화 과정에 이어 그 범위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는데 여인성불론이 바로 그것이다. 여인성불론에서 최고의 장애는 여인의 오장설(五障說)과 변성남자(變成男子) 성불론이다. 여인은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오장설이고, 남자로 변하여 성불한다는 것이 변성남자에 해당한다. 이러한 오장설과 변성남자의 문제를 원효가 어떻게 극복하여 여인이 성불하기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원효 당시 불교교단이 여인성불의 대상을 왕신(王身)의 여인과 뛰어난 몸(勝身)에 한정하였다면 원효는 신분이 낮은 천신(賤身)의 여인도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원효의 여인성불론을 통해 이후 신라사회는 모든 여인이 성불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있었을 것이고 이후 낮은 신분의 여인들이 불교설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원효의 여인성불론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인성불에 이어 일천제(一闡提) 성불론도 살펴보았다. 흔히 악인(惡人)으로 알펴진 일천제는 iccantika 즉 탐욕스러운 사람 또는 이익을 탐하고 세간에 집착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욕구하는 사람 또는 정법(正法)을 믿지 않고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없거나 성불의 소질이 없는 사람 등을 가리킨다고 한다. 대부분 출가자에 한해 일천제를 이해하고 있으나 원측(圓測)에 의하면 출가·재가를 통틀어 비유한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여 일천제의 의미를 파악하였다. 그리고 일천제는 원수같이 미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괴로움 즉 팔고(八苦)와 연결해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통해 원효 당시 원한 깊은 백제와 대면해야 하는 신라의 상황과 연결하여 살펴보았다. 신라에 대한 저항을 마지막까지 펼쳤던 지역에서 원효의 기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백제에 대한 위무와 포섭의 노력이겠지만 불교적인 노력에 집중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신라의 불교에서 원효에 대한 연구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성불론에 대해서는 아직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효의 대중불교가 소외계층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성불론 역시 불교에서 성불의 소외계층인 이승과 여인, 일천제에 주목해야 이유이다. 하지만 당시 신라 특히 불교교단에서 원효가 자신의 불교사상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정도의 위치가 아니었다. 원효가 본주(本州)에서 명망으로 추천을 받았지만 여러 대덕들이 원효의 사람됨을 미워하여 선덕여왕에게 아뢰어 백고좌회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원효는 진골왕으로 새롭게 등장한 태종무열왕을 주시하였고 무열왕 역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기존의 불교교단 보다는 대중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원효에 주목하였다. 출발점이 바로 원효의 몰가부가(沒柯斧歌) 였다. 몰가부가는 원효가 파계(破戒)를 위해 부른 노래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보다는 진골왕(眞骨王) 즉위의 명분으로 남모르게 고민하고 있는 무열왕의 상황을 정확히 지적하였다고 보았다. 몰가부가의 내용인 ‘천주(天柱)’가 그것이다. 무열왕과 원효의 만남 원효는 거침없이 대중교화를 위해 행동하였으며 대중들이 불렀다는 ‘나무불(南無佛)’의 중심 사상을 『법화경』과 연결해 보았다. 원효의 대중불교사상이 『법화경』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불교에서 성불의 소외계층 가운데 하나인 이승(二乘)과 연결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법화경』 중심의 이승성불론을 통해 신라에서 대중불교가 넓혀지는 과정도 아울러 파악하였다. 불교대중화의 과정에서 원효가 강조한 것은 대중이 대중을 교화하는 것이었다. 원효는 승려가 아닌 대중이 다른 대중에게 불법을 넓히는 담당자이며 선지식일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원효도 주석한 적이 있는 분황사(芬皇寺)의 노비 출신인 광덕의 처(妻)가 남성의 느슨한 마음을 꾸짖고 선지식으로 안내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어서 대중이 불법 유통의 담당자라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보았다. 불교대중화 과정에 이어 그 범위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는데 여인성불론이 바로 그것이다. 여인성불론에서 최고의 장애는 여인의 오장설(五障說)과 변성남자(變成男子) 성불론이다. 여인은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오장설이고, 남자로 변하여 성불한다는 것이 변성남자에 해당한다. 이러한 오장설과 변성남자의 문제를 원효가 어떻게 극복하여 여인이 성불하기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원효 당시 불교교단이 여인성불의 대상을 왕신(王身)의 여인과 뛰어난 몸(勝身)에 한정하였다면 원효는 신분이 낮은 천신(賤身)의 여인도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원효의 여인성불론을 통해 이후 신라사회는 모든 여인이 성불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있었을 것이고 이후 낮은 신분의 여인들이 불교설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원효의 여인성불론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인성불에 이어 일천제(一闡提) 성불론도 살펴보았다. 흔히 악인(惡人)으로 알펴진 일천제는 iccantika 즉 탐욕스러운 사람 또는 이익을 탐하고 세간에 집착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욕구하는 사람 또는 정법(正法)을 믿지 않고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없거나 성불의 소질이 없는 사람 등을 가리킨다고 한다. 대부분 출가자에 한해 일천제를 이해하고 있으나 원측(圓測)에 의하면 출가·재가를 통틀어 비유한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여 일천제의 의미를 파악하였다. 그리고 일천제는 원수같이 미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괴로움 즉 팔고(八苦)와 연결해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통해 원효 당시 원한 깊은 백제와 대면해야 하는 신라의 상황과 연결하여 살펴보았다. 신라에 대한 저항을 마지막까지 펼쳤던 지역에서 원효의 기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백제에 대한 위무와 포섭의 노력이겠지만 불교적인 노력에 집중하였다고 판단하였다.
Many studies have already been done on Wonhyo (元曉 617–686) and his influence on Silla Buddhism. However, no meaningful discussion has yet taken place about his treatise on attaining Buddhahood. If Wonhyo's popular Buddhism was intended for the benefit of the disadvantaged and alienated, then his the...
Many studies have already been done on Wonhyo (元曉 617–686) and his influence on Silla Buddhism. However, no meaningful discussion has yet taken place about his treatise on attaining Buddhahood. If Wonhyo's popular Buddhism was intended for the benefit of the disadvantaged and alienated, then his theory of attaining Buddhahood should be focused on them, in addition to: “hearers” (聲聞 those who attainment enlightenment upon hearing the dharma), “self-realizers” (辟支佛 those who attain enlightenment on their own without a teacher), women, and icchantikas (一闡提 those who are incapable of enlightenment). However, at some point in his life, Wonhyo left the Buddhist order and was not in a position to actively assert his Buddhist ideas. Although Wonhyo is now revered as an eminent monk, at that time he failed to attend Queen Seondeok's "assembly of one hundred eminent monks (百高座會)" because the traditional Buddhist order hated his popularity. As a result, Wonhyo later supported King Taejong Muyeol (太宗武烈王 654~661), a king from minor royal nobility. King Taejong Muyeol also supported Wonhyo, who was gaining public support, instead of the traditional Buddhist order. Evidence of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King and Wonhyo is reflected in the following verse:
Who will lend me an axe without a handle? (沒柯斧歌)
Who will lend me an axe without a handle? I will cut the pillars that support the sky.
*** In this verse, “an axe without a handle” refer to “a widowed princess”
When the king heard this verse, he replied to Wonhyo: You seem to want to get married and have a son. If there is a great sage in this country, the benefits will be enormous.
At that time, there was a widowed princess in Yoseok Palace, and King Taejong Muyeol arranged the marriage between Yoseok princess and Wonhyo. Later she gave birth to a son, named Seolchong (薛聰, 655~?). He was one of the 10 sages of the Silla Dynasty.
In this paper I also examined the fact that Wonhyo's idea of “Buddhism for the people” (sometimes called “popular Buddhism”) was tied to the Lotus Sutra by his linking the sutra to “hearers” and “self-realizers,” and I confirmed that this helped expand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In the process of popularizing Buddhism, Wonhyo emphasized that the public should be edified by the public. Wonhyo said that common people, not only monks, can also spread Buddhism’s truth to others and can be spiritual guides who lead others to attain enlightenment or to the right path. Indeed, Gwangdeok’s wife, a former slave of Bunhwang-sa Temple, acted as a spiritual guide when she scolded a man's lackadaisical attitude and guided him to the right path. This truly suggests that common people can also propagate Buddhist truth.
In addition to reasons for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I also reviewed Wonhyo’s treatise on women attaining Buddhahood. Since being born a woman was considered one of Buddhism’s traditional “five obstacles to enlightenment” (五障), some texts teach that women must be reborn as a man before they can attain Buddhahood. Thus, every buddha is supposed to vow to transform all women into men. I reviewed the process of how Wonhyo overcame the “five obstacles” to transform a woman into a man, thereby enabling them to attain Buddhahood. The Buddhist order at that time taught that only women of royalty with outstanding beauty could attain Buddhahood. However, Wonhyo insisted that even women of the lowest class could also attain Buddhahood. After Wonhyo’s time, even women from the lowest class began to appear as heroines in Buddhist tales and fables. After Wonhyo’s treatise on the Buddhahood of women, I reviewed what he wrote about the Buddhahood of icchantikas, those who are incapable of Buddhahood. They are, by definition, bereft of Buddha-nature, or are non-believers who are unfit to attain Buddhahood. Traditionally, an icchantika was understood to be a monk who was not capable of attaining enlightenment.
However, in the writings of Ven. Woncheuk (圓測 613–696), he applied the term to both monks and lay Buddhists. Woncheuk approached the meaning of icchantika in a different way. In addition, Wonhyo thought the term icchantika should be interpreted in connection with the “eight kinds of suffering” (八苦), one kind being the suffering of encountering a bitter, hateful person or an enemy. This makes it possible for us to interpret icchantika in the context of Silla's inevitable war against Baekje. Although Wonhyo’s writings reveal that Baekje’s last battle was against Silla, they might be interpreted as a means to weaken or soften Baekje's final resistance. Apparently Wonhyo was still intent on spreading Buddhist teachings in order to achieve unification of Korea’s three kingdoms.
Many studies have already been done on Wonhyo (元曉 617–686) and his influence on Silla Buddhism. However, no meaningful discussion has yet taken place about his treatise on attaining Buddhahood. If Wonhyo's popular Buddhism was intended for the benefit of the disadvantaged and alienated, then his theory of attaining Buddhahood should be focused on them, in addition to: “hearers” (聲聞 those who attainment enlightenment upon hearing the dharma), “self-realizers” (辟支佛 those who attain enlightenment on their own without a teacher), women, and icchantikas (一闡提 those who are incapable of enlightenment). However, at some point in his life, Wonhyo left the Buddhist order and was not in a position to actively assert his Buddhist ideas. Although Wonhyo is now revered as an eminent monk, at that time he failed to attend Queen Seondeok's "assembly of one hundred eminent monks (百高座會)" because the traditional Buddhist order hated his popularity. As a result, Wonhyo later supported King Taejong Muyeol (太宗武烈王 654~661), a king from minor royal nobility. King Taejong Muyeol also supported Wonhyo, who was gaining public support, instead of the traditional Buddhist order. Evidence of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King and Wonhyo is reflected in the following verse:
Who will lend me an axe without a handle? (沒柯斧歌)
Who will lend me an axe without a handle? I will cut the pillars that support the sky.
*** In this verse, “an axe without a handle” refer to “a widowed princess”
When the king heard this verse, he replied to Wonhyo: You seem to want to get married and have a son. If there is a great sage in this country, the benefits will be enormous.
At that time, there was a widowed princess in Yoseok Palace, and King Taejong Muyeol arranged the marriage between Yoseok princess and Wonhyo. Later she gave birth to a son, named Seolchong (薛聰, 655~?). He was one of the 10 sages of the Silla Dynasty.
In this paper I also examined the fact that Wonhyo's idea of “Buddhism for the people” (sometimes called “popular Buddhism”) was tied to the Lotus Sutra by his linking the sutra to “hearers” and “self-realizers,” and I confirmed that this helped expand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In the process of popularizing Buddhism, Wonhyo emphasized that the public should be edified by the public. Wonhyo said that common people, not only monks, can also spread Buddhism’s truth to others and can be spiritual guides who lead others to attain enlightenment or to the right path. Indeed, Gwangdeok’s wife, a former slave of Bunhwang-sa Temple, acted as a spiritual guide when she scolded a man's lackadaisical attitude and guided him to the right path. This truly suggests that common people can also propagate Buddhist truth.
In addition to reasons for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I also reviewed Wonhyo’s treatise on women attaining Buddhahood. Since being born a woman was considered one of Buddhism’s traditional “five obstacles to enlightenment” (五障), some texts teach that women must be reborn as a man before they can attain Buddhahood. Thus, every buddha is supposed to vow to transform all women into men. I reviewed the process of how Wonhyo overcame the “five obstacles” to transform a woman into a man, thereby enabling them to attain Buddhahood. The Buddhist order at that time taught that only women of royalty with outstanding beauty could attain Buddhahood. However, Wonhyo insisted that even women of the lowest class could also attain Buddhahood. After Wonhyo’s time, even women from the lowest class began to appear as heroines in Buddhist tales and fables. After Wonhyo’s treatise on the Buddhahood of women, I reviewed what he wrote about the Buddhahood of icchantikas, those who are incapable of Buddhahood. They are, by definition, bereft of Buddha-nature, or are non-believers who are unfit to attain Buddhahood. Traditionally, an icchantika was understood to be a monk who was not capable of attaining enlightenment.
However, in the writings of Ven. Woncheuk (圓測 613–696), he applied the term to both monks and lay Buddhists. Woncheuk approached the meaning of icchantika in a different way. In addition, Wonhyo thought the term icchantika should be interpreted in connection with the “eight kinds of suffering” (八苦), one kind being the suffering of encountering a bitter, hateful person or an enemy. This makes it possible for us to interpret icchantika in the context of Silla's inevitable war against Baekje. Although Wonhyo’s writings reveal that Baekje’s last battle was against Silla, they might be interpreted as a means to weaken or soften Baekje's final resistance. Apparently Wonhyo was still intent on spreading Buddhist teachings in order to achieve unification of Korea’s three kingd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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