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채만식 소설에 나타난 실패자 표상에 주목하여 채만식이 보여주는 실패의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실패자들이 주로 안고 있는 불안이라는 정동이 채만식의 사상에 견주어 봤을 때 긍정적인 작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로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등단을 시작점으로 치면, 채만식은 23세에 문학을 시작하여 타계하는 49세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그의 집필 활동을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채만식 문학 활동 사이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틈이 존재한다. 틈을 소유한다는 것은 주체에게 불안을 준다. 채만식에게 있어서 이 불안은 머뭇거리게 하는 망설임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였다. 인식론적 입장에서 ‘틈’은 사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적 입장에서는 이 부분을 탐구해 볼 수 있고 이 논문의 방향성은 여기에 있다. 채만식의 창작 시기는 1923년(「과도기」)부터 1950년(『소년은 자란다』)으로 조선의 근대기와 맞물려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는 한국문학의 근대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이 근대를 이해하는 방식을 따라가 보면서 작가 채만식이 이해했던 근대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적 근대는 타자의 근대라고 명명할 만큼 자생적이지 않았다. 제국주의에 의해서 이식된 근대는, 그 당시를 살아가는 주체들에게 낯설고 기괴한 경험이었다. 채만식 소설에서는 이러한 주체들의 불안과 낯설음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채만식의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는 주인공들의 실패 경험은 의미가 있다.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실패자들이다. 근대정신 혹은 근대세계와 맞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인물은 없다.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승리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지 못한다. 그의 소설에는 오로지 세계와의 대결에 실패하여 타자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도 어느 곳에 속하기를 원하지 않는 인물만 있다. 그럼에도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즐거움도 불쾌함도 경험하지 않는 감정의 부재 상태에 있다. 주체는 어떤 의미에서 주체화의 실패 자체, 상징적 명령에 대한 실패한 응답, 윤리적 요청에 대한 완전한 동일시의 실패 자체이다. 이것이 주체가 어쩔 수 없이 분열되는 이유이다. 자신의 임무와 그것에 충실하게 남아 있는 것의 실패 사이의 분열은 주체의 히스테리로 드러나게 된다. 히스테리는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호명의 실패이고, 이 실패는 오히려 주체가 자신의 주체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작인으로 소설에서 작용한다.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 본 논문에서는 첫 번째, 등단부터 동아일보 퇴사 전까지를 1기로 명명하고자 한다. 이후 1928년부터 1929년까지의 첫 공백기가 있다. 공백기를 깨고 「산동이」로 돌아오는 1930년부터 1934년까지를 2기로 명명한다. 이 두 시기를 묶어서 본 논문의 2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2장에서는 「과도기」(1924)의 봉우, 형식, 정수가 동경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실패담을 다룬다. 그들은 조선인이지만 부유한 조선인으로 동경에서 안락한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식민지에 반(反)하는 ‘본국’이라는 공간에서 그들은 식민지인으로서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 또한 「레디메이드 인생」의 ‘P’는 엘리트가 아닌 인텔리가 식민지 조선에서 어떻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고 있다. 채만식은 두 소설에서 소외를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선회한다. 이러한 작법이 소설의 내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후 1935년부터 1936년까지 두 번째 공백기가 있다. 채만식은 1936년에 「보리방아」로 돌아온다. 이후 『금의 정열』(1939) 발표까지의 3기를 본 논문의 3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3장에서는 전쟁이라는 역사적 영역에서 채만식이 읽어내는 실패한 자본의 흐름을 보고자 한다. 이는 『탁류』(1937)의 정주사 일가와 『태평천하』(1938)의 윤직원 일가를 통해서 각각 비극과 희극으로 드러난다. 또한 식민지에서 성공한 자본가로 보이지만, 사실은 왜곡된 자본의 형태에 복속한 주체에 불과한 『금의 정열』(1939)의 주상문을 통해서 성공한 자본가와 왜곡된 자본 운용의 괴리를 연구하고자 한다. 이후 1939년 말부터 1940년 중반까지 세 번째 공백기가 있다. 이 시기 작가는 개성구금사건을 치르고 돌아온다. 1940년 『냉동어』를 발표하며 복귀하지만, 일제의 과도한 감시와 압박으로 ...
이 논문은 채만식 소설에 나타난 실패자 표상에 주목하여 채만식이 보여주는 실패의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실패자들이 주로 안고 있는 불안이라는 정동이 채만식의 사상에 견주어 봤을 때 긍정적인 작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로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등단을 시작점으로 치면, 채만식은 23세에 문학을 시작하여 타계하는 49세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그의 집필 활동을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채만식 문학 활동 사이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틈이 존재한다. 틈을 소유한다는 것은 주체에게 불안을 준다. 채만식에게 있어서 이 불안은 머뭇거리게 하는 망설임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였다. 인식론적 입장에서 ‘틈’은 사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적 입장에서는 이 부분을 탐구해 볼 수 있고 이 논문의 방향성은 여기에 있다. 채만식의 창작 시기는 1923년(「과도기」)부터 1950년(『소년은 자란다』)으로 조선의 근대기와 맞물려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는 한국문학의 근대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이 근대를 이해하는 방식을 따라가 보면서 작가 채만식이 이해했던 근대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적 근대는 타자의 근대라고 명명할 만큼 자생적이지 않았다. 제국주의에 의해서 이식된 근대는, 그 당시를 살아가는 주체들에게 낯설고 기괴한 경험이었다. 채만식 소설에서는 이러한 주체들의 불안과 낯설음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채만식의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는 주인공들의 실패 경험은 의미가 있다.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실패자들이다. 근대정신 혹은 근대세계와 맞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인물은 없다.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승리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지 못한다. 그의 소설에는 오로지 세계와의 대결에 실패하여 타자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도 어느 곳에 속하기를 원하지 않는 인물만 있다. 그럼에도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즐거움도 불쾌함도 경험하지 않는 감정의 부재 상태에 있다. 주체는 어떤 의미에서 주체화의 실패 자체, 상징적 명령에 대한 실패한 응답, 윤리적 요청에 대한 완전한 동일시의 실패 자체이다. 이것이 주체가 어쩔 수 없이 분열되는 이유이다. 자신의 임무와 그것에 충실하게 남아 있는 것의 실패 사이의 분열은 주체의 히스테리로 드러나게 된다. 히스테리는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호명의 실패이고, 이 실패는 오히려 주체가 자신의 주체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작인으로 소설에서 작용한다.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 본 논문에서는 첫 번째, 등단부터 동아일보 퇴사 전까지를 1기로 명명하고자 한다. 이후 1928년부터 1929년까지의 첫 공백기가 있다. 공백기를 깨고 「산동이」로 돌아오는 1930년부터 1934년까지를 2기로 명명한다. 이 두 시기를 묶어서 본 논문의 2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2장에서는 「과도기」(1924)의 봉우, 형식, 정수가 동경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실패담을 다룬다. 그들은 조선인이지만 부유한 조선인으로 동경에서 안락한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식민지에 반(反)하는 ‘본국’이라는 공간에서 그들은 식민지인으로서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 또한 「레디메이드 인생」의 ‘P’는 엘리트가 아닌 인텔리가 식민지 조선에서 어떻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고 있다. 채만식은 두 소설에서 소외를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선회한다. 이러한 작법이 소설의 내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후 1935년부터 1936년까지 두 번째 공백기가 있다. 채만식은 1936년에 「보리방아」로 돌아온다. 이후 『금의 정열』(1939) 발표까지의 3기를 본 논문의 3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3장에서는 전쟁이라는 역사적 영역에서 채만식이 읽어내는 실패한 자본의 흐름을 보고자 한다. 이는 『탁류』(1937)의 정주사 일가와 『태평천하』(1938)의 윤직원 일가를 통해서 각각 비극과 희극으로 드러난다. 또한 식민지에서 성공한 자본가로 보이지만, 사실은 왜곡된 자본의 형태에 복속한 주체에 불과한 『금의 정열』(1939)의 주상문을 통해서 성공한 자본가와 왜곡된 자본 운용의 괴리를 연구하고자 한다. 이후 1939년 말부터 1940년 중반까지 세 번째 공백기가 있다. 이 시기 작가는 개성구금사건을 치르고 돌아온다. 1940년 『냉동어』를 발표하며 복귀하지만, 일제의 과도한 감시와 압박으로 허무주의 경향을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본 논문의 4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4장에서는 중일 전쟁 이후 식민 지배가 절정에 달하며 작가의 자의식에 쇠퇴를 가져왔음을 『냉동어』(1940)와 사소설 경향의 소설을 통해서 살펴보려 한다. 작가는 친일 문학과 사소설적 경향 사이를 횡단하며 작가적 생명을 연장해 나가지만, 그에 반비례해서 작가정신은 쇠퇴하고 있었다. 그는 이 시기를 견뎌내며 글을 썼고, 이러한 상황이 해방 직전의 소설들에 담겨 있다고 본 논문은 보고 있다. 작가는 친일 문학기부터 1945년 해방 직전까지 작가의식은 없는 친일 문학기를 보내게 된다. 본 논문은 이 시기를 네 번째 공백기라고 본다. 이 영점의 시간을 견뎌내고 작가는 해방을 기점으로 5기의 문학을 꽃피우며 풍자문학의 귀환을 알린다. 5기의 연구를 본 논문의 5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5장에서는 「맹순사」(1946), 「미스터 방」(1946), 「논 이야기」(1946) 등에서 풍자문학의 귀환이 보이는가 하면, 「도야지」(1948), 「낙조」(1948)를 통해서 해방 이후 한국 정치의 민낯을 전면에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는 『소년은 자란다』(1949)에서 역사에 실패한 한 개인이 미래를 어떻게 전망해 내야 하는가를 제시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끝으로 영면하지만, 그가 제시한 청사진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는 의미에서 『소년은 자란다』의 오영호의 주체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요한다. 이와 같은 전개도로 본 논문은 채만식 문학의 연대기와 더불어 조선의 근대에 대해서도 밝히고자 한다. 이로써 작가 채만식의 논의가 더욱 풍부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 논문은 채만식 소설에 나타난 실패자 표상에 주목하여 채만식이 보여주는 실패의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실패자들이 주로 안고 있는 불안이라는 정동이 채만식의 사상에 견주어 봤을 때 긍정적인 작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로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등단을 시작점으로 치면, 채만식은 23세에 문학을 시작하여 타계하는 49세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그의 집필 활동을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채만식 문학 활동 사이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틈이 존재한다. 틈을 소유한다는 것은 주체에게 불안을 준다. 채만식에게 있어서 이 불안은 머뭇거리게 하는 망설임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였다. 인식론적 입장에서 ‘틈’은 사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적 입장에서는 이 부분을 탐구해 볼 수 있고 이 논문의 방향성은 여기에 있다. 채만식의 창작 시기는 1923년(「과도기」)부터 1950년(『소년은 자란다』)으로 조선의 근대기와 맞물려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는 한국문학의 근대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이 근대를 이해하는 방식을 따라가 보면서 작가 채만식이 이해했던 근대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적 근대는 타자의 근대라고 명명할 만큼 자생적이지 않았다. 제국주의에 의해서 이식된 근대는, 그 당시를 살아가는 주체들에게 낯설고 기괴한 경험이었다. 채만식 소설에서는 이러한 주체들의 불안과 낯설음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채만식의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는 주인공들의 실패 경험은 의미가 있다.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실패자들이다. 근대정신 혹은 근대세계와 맞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인물은 없다.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승리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지 못한다. 그의 소설에는 오로지 세계와의 대결에 실패하여 타자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도 어느 곳에 속하기를 원하지 않는 인물만 있다. 그럼에도 채만식 소설의 주인공들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즐거움도 불쾌함도 경험하지 않는 감정의 부재 상태에 있다. 주체는 어떤 의미에서 주체화의 실패 자체, 상징적 명령에 대한 실패한 응답, 윤리적 요청에 대한 완전한 동일시의 실패 자체이다. 이것이 주체가 어쩔 수 없이 분열되는 이유이다. 자신의 임무와 그것에 충실하게 남아 있는 것의 실패 사이의 분열은 주체의 히스테리로 드러나게 된다. 히스테리는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호명의 실패이고, 이 실패는 오히려 주체가 자신의 주체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작인으로 소설에서 작용한다.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 본 논문에서는 첫 번째, 등단부터 동아일보 퇴사 전까지를 1기로 명명하고자 한다. 이후 1928년부터 1929년까지의 첫 공백기가 있다. 공백기를 깨고 「산동이」로 돌아오는 1930년부터 1934년까지를 2기로 명명한다. 이 두 시기를 묶어서 본 논문의 2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2장에서는 「과도기」(1924)의 봉우, 형식, 정수가 동경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실패담을 다룬다. 그들은 조선인이지만 부유한 조선인으로 동경에서 안락한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식민지에 반(反)하는 ‘본국’이라는 공간에서 그들은 식민지인으로서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 또한 「레디메이드 인생」의 ‘P’는 엘리트가 아닌 인텔리가 식민지 조선에서 어떻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고 있다. 채만식은 두 소설에서 소외를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선회한다. 이러한 작법이 소설의 내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후 1935년부터 1936년까지 두 번째 공백기가 있다. 채만식은 1936년에 「보리방아」로 돌아온다. 이후 『금의 정열』(1939) 발표까지의 3기를 본 논문의 3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3장에서는 전쟁이라는 역사적 영역에서 채만식이 읽어내는 실패한 자본의 흐름을 보고자 한다. 이는 『탁류』(1937)의 정주사 일가와 『태평천하』(1938)의 윤직원 일가를 통해서 각각 비극과 희극으로 드러난다. 또한 식민지에서 성공한 자본가로 보이지만, 사실은 왜곡된 자본의 형태에 복속한 주체에 불과한 『금의 정열』(1939)의 주상문을 통해서 성공한 자본가와 왜곡된 자본 운용의 괴리를 연구하고자 한다. 이후 1939년 말부터 1940년 중반까지 세 번째 공백기가 있다. 이 시기 작가는 개성구금사건을 치르고 돌아온다. 1940년 『냉동어』를 발표하며 복귀하지만, 일제의 과도한 감시와 압박으로 허무주의 경향을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본 논문의 4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4장에서는 중일 전쟁 이후 식민 지배가 절정에 달하며 작가의 자의식에 쇠퇴를 가져왔음을 『냉동어』(1940)와 사소설 경향의 소설을 통해서 살펴보려 한다. 작가는 친일 문학과 사소설적 경향 사이를 횡단하며 작가적 생명을 연장해 나가지만, 그에 반비례해서 작가정신은 쇠퇴하고 있었다. 그는 이 시기를 견뎌내며 글을 썼고, 이러한 상황이 해방 직전의 소설들에 담겨 있다고 본 논문은 보고 있다. 작가는 친일 문학기부터 1945년 해방 직전까지 작가의식은 없는 친일 문학기를 보내게 된다. 본 논문은 이 시기를 네 번째 공백기라고 본다. 이 영점의 시간을 견뎌내고 작가는 해방을 기점으로 5기의 문학을 꽃피우며 풍자문학의 귀환을 알린다. 5기의 연구를 본 논문의 5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5장에서는 「맹순사」(1946), 「미스터 방」(1946), 「논 이야기」(1946) 등에서 풍자문학의 귀환이 보이는가 하면, 「도야지」(1948), 「낙조」(1948)를 통해서 해방 이후 한국 정치의 민낯을 전면에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는 『소년은 자란다』(1949)에서 역사에 실패한 한 개인이 미래를 어떻게 전망해 내야 하는가를 제시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끝으로 영면하지만, 그가 제시한 청사진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는 의미에서 『소년은 자란다』의 오영호의 주체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요한다. 이와 같은 전개도로 본 논문은 채만식 문학의 연대기와 더불어 조선의 근대에 대해서도 밝히고자 한다. 이로써 작가 채만식의 논의가 더욱 풍부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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