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사자에 대한 관념이 불교미술, 특히 석탑에 투영되어 사자상이 어떻게 莊嚴 되었는가 하는 면을 미술사적 관점에서 다룬 것으로, 사자상의 특징과 시대에 따른 양식 변화 등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하였다. 사자는 고대로부터 神의 불가사의한 힘, 그리고 왕의 권위를 상징하게 되어 왕실과 능묘의 호위 사자로 수호자 역할로 표현되었다. 불교에서도 경전에 사자가 佛法을 守護하는 수호자로 등장하여 「佛說寶雨經」과 『華嚴經』 「如來各號品」에 사자좌의 장엄을, 『華嚴經』에 비로자나불 대좌가 獅子座임을 말하고 있다. 불교미술에서 사자상은 인도 아소카왕 記念石柱의 柱頭, 그리고 석가모니의 舍利를 봉안한 산치 탑에 부조로 장식된다. 간다라, 마투라 불상 대좌 양 끝에도 사자상이 배치되었다. 중국에서는 <金銅 禪定印 如來坐像> 불상 대좌에 최초로 등장하였고, 돈황 막고굴 275굴 <미륵보살交脚像>에도 장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석탑, 불상 대좌, 승탑, ...
본 논문은 사자에 대한 관념이 불교미술, 특히 석탑에 투영되어 사자상이 어떻게 莊嚴 되었는가 하는 면을 미술사적 관점에서 다룬 것으로, 사자상의 특징과 시대에 따른 양식 변화 등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하였다. 사자는 고대로부터 神의 불가사의한 힘, 그리고 왕의 권위를 상징하게 되어 왕실과 능묘의 호위 사자로 수호자 역할로 표현되었다. 불교에서도 경전에 사자가 佛法을 守護하는 수호자로 등장하여 「佛說寶雨經」과 『華嚴經』 「如來各號品」에 사자좌의 장엄을, 『華嚴經』에 비로자나불 대좌가 獅子座임을 말하고 있다. 불교미술에서 사자상은 인도 아소카왕 記念石柱의 柱頭, 그리고 석가모니의 舍利를 봉안한 산치 탑에 부조로 장식된다. 간다라, 마투라 불상 대좌 양 끝에도 사자상이 배치되었다. 중국에서는 <金銅 禪定印 如來坐像> 불상 대좌에 최초로 등장하였고, 돈황 막고굴 275굴 <미륵보살交脚像>에도 장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석탑, 불상 대좌, 승탑, 석등, 사리장엄구의 장식, 향로뚜껑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가장 이른 시기의 사자상인 5세기 뚝섬 출토 <金銅如來坐像>은 대좌에 사자가 표현된 ‘獅子座 형식’을 취하는 최초의 불상이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뚜껑에 표현된 사자는 네 발로 걸어가면서 얼굴을 뒤로 돌려 꼬리를 향하고 있고, 새끼 사자가 어미의 배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 신라에서는 남산 塔谷 마애조상군 하단에 사자상이 표현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경주 芬皇寺 삼층석탑 기단부 네 모서리에,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경주 불국사 다보탑 등에 사자상이 장엄되었다.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은 2층 기단부 상층기단의 隅柱를 대신하여 네 마리의 사자상을 배치하고 있다. 사자상은 앞다리를 꼿꼿이 세운 자세로 다리를 구부려 바닥에 대고 있어 상체가 넓고 하체가 좁은 역삼각형의 구도를 보이는데, 靜的인 모습이면서 사자의 힘찬 기운이 잘 드러나 보인다. 고려시대 대표적 작품은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자석탑이다. 상층기단에 사자 네 마리를 배치하여 중앙의 비로자나불좌상을 수호하고 있다. 사자상은 마치 탑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목을 움츠리고 있는 것처럼 전체적으로 짓눌린 듯한 느낌을 준다. 사자상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눈, 코, 입이 과장되게 표현되었고, 갈기는 소용돌이처럼 비교적 뚜렷하게 표출되어 있다. 앞가슴은 밋밋하게 표현되었지만, 가슴골이 좌우로 만들어져 있고 어깨는 넓게 강조되어 있다. 불상 대좌에 장엄된 사자상의 예는 경북대학교박물관 석조비로자불좌상이다. 기단부 하대석에는 8면의 眼象 속에 8구의 사자상이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었다. 사자상들은 전체적으로 다리를 굽혀 웅크리고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신체보다 다리를 작게 표현하는 공통점이 보인다. 다만 머리와 꼬리 등에 있어서만 부분적으로 표현을 달리하고 있다. 특히 서남쪽의 사자상은 어미 사자와 새끼 사자가 같이 표현되어 있어 불상의 대좌도 승탑의 도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연기 연화사의 통일신라 불비상에도 사자상이 장엄되었다. 사자상은 불비상 본존불 대좌 아래 양 끝에 배치되었는데, 앞다리를 세워 앉은 자세로 머리 부분이 손상되어 알아보기 힘들다. 승탑에 장엄된 사자상은 구례 연곡사 동부도에 보인다. 부도의 팔각대좌 하대석 상단 8면에 사자 8구가 돋을새김 되었다. 사자상들은 전체적으로 풍성한 머리 갈기가 돋보이며, 뒷발로 얼굴을 긁거나 꼬리나 뒷발을 물고 있고, 사람 손처럼 생긴 앞발을 들어 얼굴을 받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등 역동적인 자세로 표현하고 있다. 통일신라 말기로 접어들면서 사실적 표현이 다소 감소되고, 고려시대에는 裝飾性이 강조되어 점차 圖式化된 표현이 나타나 해학적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탑 자체는 커지고 사자상의 모습은 점점 약화 되어 석탑에 있어서 사자상의 장엄 의미가 퇴색되어 감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은 사자에 대한 관념이 불교미술, 특히 석탑에 투영되어 사자상이 어떻게 莊嚴 되었는가 하는 면을 미술사적 관점에서 다룬 것으로, 사자상의 특징과 시대에 따른 양식 변화 등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하였다. 사자는 고대로부터 神의 불가사의한 힘, 그리고 왕의 권위를 상징하게 되어 왕실과 능묘의 호위 사자로 수호자 역할로 표현되었다. 불교에서도 경전에 사자가 佛法을 守護하는 수호자로 등장하여 「佛說寶雨經」과 『華嚴經』 「如來各號品」에 사자좌의 장엄을, 『華嚴經』에 비로자나불 대좌가 獅子座임을 말하고 있다. 불교미술에서 사자상은 인도 아소카왕 記念石柱의 柱頭, 그리고 석가모니의 舍利를 봉안한 산치 탑에 부조로 장식된다. 간다라, 마투라 불상 대좌 양 끝에도 사자상이 배치되었다. 중국에서는 <金銅 禪定印 如來坐像> 불상 대좌에 최초로 등장하였고, 돈황 막고굴 275굴 <미륵보살交脚像>에도 장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석탑, 불상 대좌, 승탑, 석등, 사리장엄구의 장식, 향로뚜껑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가장 이른 시기의 사자상인 5세기 뚝섬 출토 <金銅如來坐像>은 대좌에 사자가 표현된 ‘獅子座 형식’을 취하는 최초의 불상이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뚜껑에 표현된 사자는 네 발로 걸어가면서 얼굴을 뒤로 돌려 꼬리를 향하고 있고, 새끼 사자가 어미의 배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 신라에서는 남산 塔谷 마애조상군 하단에 사자상이 표현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경주 芬皇寺 삼층석탑 기단부 네 모서리에,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경주 불국사 다보탑 등에 사자상이 장엄되었다.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은 2층 기단부 상층기단의 隅柱를 대신하여 네 마리의 사자상을 배치하고 있다. 사자상은 앞다리를 꼿꼿이 세운 자세로 다리를 구부려 바닥에 대고 있어 상체가 넓고 하체가 좁은 역삼각형의 구도를 보이는데, 靜的인 모습이면서 사자의 힘찬 기운이 잘 드러나 보인다. 고려시대 대표적 작품은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자석탑이다. 상층기단에 사자 네 마리를 배치하여 중앙의 비로자나불좌상을 수호하고 있다. 사자상은 마치 탑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목을 움츠리고 있는 것처럼 전체적으로 짓눌린 듯한 느낌을 준다. 사자상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눈, 코, 입이 과장되게 표현되었고, 갈기는 소용돌이처럼 비교적 뚜렷하게 표출되어 있다. 앞가슴은 밋밋하게 표현되었지만, 가슴골이 좌우로 만들어져 있고 어깨는 넓게 강조되어 있다. 불상 대좌에 장엄된 사자상의 예는 경북대학교박물관 석조비로자불좌상이다. 기단부 하대석에는 8면의 眼象 속에 8구의 사자상이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었다. 사자상들은 전체적으로 다리를 굽혀 웅크리고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신체보다 다리를 작게 표현하는 공통점이 보인다. 다만 머리와 꼬리 등에 있어서만 부분적으로 표현을 달리하고 있다. 특히 서남쪽의 사자상은 어미 사자와 새끼 사자가 같이 표현되어 있어 불상의 대좌도 승탑의 도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연기 연화사의 통일신라 불비상에도 사자상이 장엄되었다. 사자상은 불비상 본존불 대좌 아래 양 끝에 배치되었는데, 앞다리를 세워 앉은 자세로 머리 부분이 손상되어 알아보기 힘들다. 승탑에 장엄된 사자상은 구례 연곡사 동부도에 보인다. 부도의 팔각대좌 하대석 상단 8면에 사자 8구가 돋을새김 되었다. 사자상들은 전체적으로 풍성한 머리 갈기가 돋보이며, 뒷발로 얼굴을 긁거나 꼬리나 뒷발을 물고 있고, 사람 손처럼 생긴 앞발을 들어 얼굴을 받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등 역동적인 자세로 표현하고 있다. 통일신라 말기로 접어들면서 사실적 표현이 다소 감소되고, 고려시대에는 裝飾性이 강조되어 점차 圖式化된 표현이 나타나 해학적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탑 자체는 커지고 사자상의 모습은 점점 약화 되어 석탑에 있어서 사자상의 장엄 의미가 퇴색되어 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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