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는 전란으로 인해 소실된 사찰을 재건하기 위한 불사가 활발하게 행해졌다. 영남지역의 사찰 역시 대부분 이러한 배경 아래 중건되었으며, 사찰 불전의 건축 부재와 벽면에 불교 관련 도상과 각종 문양을 단청으로 장엄하였다. 그중 대량에는 머리초와 운룡문, 동식물문 등의 다양한 단청문양이 나타난다.
본 논문은 대량단청이 등장하는 영남지역의 주불전 41개소를 대상으로 대량단청의 시기별 특징과 당시 장인집단의 동향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먼저 대량단청은 머리초와 계풍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머리초의 경우, 주문양과 보조문...
조선후기는 전란으로 인해 소실된 사찰을 재건하기 위한 불사가 활발하게 행해졌다. 영남지역의 사찰 역시 대부분 이러한 배경 아래 중건되었으며, 사찰 불전의 건축 부재와 벽면에 불교 관련 도상과 각종 문양을 단청으로 장엄하였다. 그중 대량에는 머리초와 운룡문, 동식물문 등의 다양한 단청문양이 나타난다.
본 논문은 대량단청이 등장하는 영남지역의 주불전 41개소를 대상으로 대량단청의 시기별 특징과 당시 장인집단의 동향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먼저 대량단청은 머리초와 계풍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머리초의 경우, 주문양과 보조문양으로 분류하였다. 주문양은 양식에 따라 도안식 문양과 회화식 문양으로 나눌 수 있으며, 도안식 문양은 세부적으로 병형, 장구형, 호형이 있다. 보조문양으로는 휘가 해당된다. 휘는 띠고리문과 휘문이 나타나는데, 이 중 휘문은 다시 바자휘, 인휘, 늘휘로 구분된다. 그리고 계풍은 별지화와 금문으로 분류하였다. 이 중 별지화는 운룡문과 천인·동자문, 금문은 세금문과 얼금문이 있다. 얼금문의 경우, 칠보운문과 초엽화문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초엽화문은 다시 연화문과 석류화문으로 나뉜다.
대량단청의 시기별 특징은 1기(17세기~18세기 전기), 2기(18세기 후기~19세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1기(17세기~18세기 전기)의 대량단청에는 주로 병형 머리초와 띠고리문, 운룡문이 그려진다. 이러한 형식은 조선전기에 조성된 불전 사례에서 이미 등장하였으며, 17세기에 단청을 조성할 당시 조선전기의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머리초의 주문양으로 모란문이 사용되는 경우도 다수 확인되는데, 이 역시 1기에 보이는 뚜렷한 특징이다.
2기(18세기 후기~19세기)에는 18세기 후기에 등장한 장구형 머리초와 운룡문 또는 금문이 조합된 대량단청이 유행한다. 그리고 휘문 색대의 개수가 이전보다 늘어난다. 이때 장구형 머리초가 등장하고, 휘의 색대가 발달하면서 계풍의 범위가 축소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따라 용 도상의 자세가 앞 시기인 17세기~18세기 전기보다 더 복잡한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또한, 19세기에 이르면 금문을 표현한 사례가 대거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때 금문은 길상과 다복을 상징하는 칠보운문과 초엽화문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민간에서도 성행했던 문양이다.
이처럼 대량단청의 1기와 2기의 변화는 당시 영남지역에서 활동했던 화사집단의 동향과 관련이 있다. 이에 따라 단확기가 있는 불전을 중심으로 당시 활동했던 화파의 일원들이 단청 불사에 참여했던 사실을 확인하였다. 결국 대량단청의 변화는 시기별로 활약했던 화파, 혹은 특정 화파의 내부 세대 교체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양산 통도사를 주축으로 인근에 소재하는 사찰 주불전의 대량에 회화식 모란문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회화식 모란문이 보이는 사찰 주불전의 불사에 화사집단 간의 연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17~18세기 전기에는 양산 통도사를 중심으로 직접적·간접적인 화사집단의 교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는 전란으로 인해 소실된 사찰을 재건하기 위한 불사가 활발하게 행해졌다. 영남지역의 사찰 역시 대부분 이러한 배경 아래 중건되었으며, 사찰 불전의 건축 부재와 벽면에 불교 관련 도상과 각종 문양을 단청으로 장엄하였다. 그중 대량에는 머리초와 운룡문, 동식물문 등의 다양한 단청문양이 나타난다.
본 논문은 대량단청이 등장하는 영남지역의 주불전 41개소를 대상으로 대량단청의 시기별 특징과 당시 장인집단의 동향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먼저 대량단청은 머리초와 계풍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머리초의 경우, 주문양과 보조문양으로 분류하였다. 주문양은 양식에 따라 도안식 문양과 회화식 문양으로 나눌 수 있으며, 도안식 문양은 세부적으로 병형, 장구형, 호형이 있다. 보조문양으로는 휘가 해당된다. 휘는 띠고리문과 휘문이 나타나는데, 이 중 휘문은 다시 바자휘, 인휘, 늘휘로 구분된다. 그리고 계풍은 별지화와 금문으로 분류하였다. 이 중 별지화는 운룡문과 천인·동자문, 금문은 세금문과 얼금문이 있다. 얼금문의 경우, 칠보운문과 초엽화문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초엽화문은 다시 연화문과 석류화문으로 나뉜다.
대량단청의 시기별 특징은 1기(17세기~18세기 전기), 2기(18세기 후기~19세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1기(17세기~18세기 전기)의 대량단청에는 주로 병형 머리초와 띠고리문, 운룡문이 그려진다. 이러한 형식은 조선전기에 조성된 불전 사례에서 이미 등장하였으며, 17세기에 단청을 조성할 당시 조선전기의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머리초의 주문양으로 모란문이 사용되는 경우도 다수 확인되는데, 이 역시 1기에 보이는 뚜렷한 특징이다.
2기(18세기 후기~19세기)에는 18세기 후기에 등장한 장구형 머리초와 운룡문 또는 금문이 조합된 대량단청이 유행한다. 그리고 휘문 색대의 개수가 이전보다 늘어난다. 이때 장구형 머리초가 등장하고, 휘의 색대가 발달하면서 계풍의 범위가 축소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따라 용 도상의 자세가 앞 시기인 17세기~18세기 전기보다 더 복잡한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또한, 19세기에 이르면 금문을 표현한 사례가 대거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때 금문은 길상과 다복을 상징하는 칠보운문과 초엽화문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민간에서도 성행했던 문양이다.
이처럼 대량단청의 1기와 2기의 변화는 당시 영남지역에서 활동했던 화사집단의 동향과 관련이 있다. 이에 따라 단확기가 있는 불전을 중심으로 당시 활동했던 화파의 일원들이 단청 불사에 참여했던 사실을 확인하였다. 결국 대량단청의 변화는 시기별로 활약했던 화파, 혹은 특정 화파의 내부 세대 교체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양산 통도사를 주축으로 인근에 소재하는 사찰 주불전의 대량에 회화식 모란문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회화식 모란문이 보이는 사찰 주불전의 불사에 화사집단 간의 연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17~18세기 전기에는 양산 통도사를 중심으로 직접적·간접적인 화사집단의 교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제어
#조선후기 영남지역 단청 머리초 계풍 불전장엄 화사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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