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관점에서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正祖)의 삶에 나타난 생활양식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먼저 정조에 관한 문헌인 조선왕조실록, 한중록, 홍재전서 등과 같은 공식 기록과 정조의 삶을 해석한 2차 저작물을 통하여 정조의 삶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관점에서 정조의 생활양식을 분석하기 위하여, 그의 가족 구도 분석, 초기 기억 분석, 꿈 분석, 인생 과제 분석, 생활양식 유형 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조의 가족 구도를 분석한 결과, 그는 사도세자(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으나, 첫째인 의소세자(懿昭世子)가 정조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의 심리적 출생순위의 위치는 첫째이다. 그는 맏이의 특성인 책임감, 지도력, 특별한 권력을 획득함으로써 제왕학과 영조(英祖)의 특별 교육으로 인해 강화된다. 또한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으로 인해, 정조는 ‘사랑 없는 양육’의 가족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이처럼 아버지와 영조가 만든 ‘사랑 없는 양육’의 가족 분위기였지만, 정조가 할아버지인 영조의 지지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보살핌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와 할아버지인 영조에 대한 효심을 잃지 않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는 환경 그 자체가 아닌 환경에 대한 ‘견해’가 개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을 시사한다. 둘째, 정조의 초기 기억을 분석한 결과, 임오화변(壬午禍變)에서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이 정조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임오화변 당시 영조, 영빈 이씨, 혜경궁 홍씨는 정조의 안위를 지키려고 하였기에 아버지의 죽음과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의 굴레 속에서 사도세자 추숭이라는 삶의 목표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정조는 왕권 강화 정책을 펼치고 재위 기간 내내 추숭의 절차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정조의 꿈을 분석한 결과, 정조는 꿈을 이용하여 대신들을 설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조는 세자빈을 간택할 때 사도세자가 꿈에 나와서 명하였다고 대신들을 설득하였는데, 이는 상식에 반하는 그의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우처럼, 그는 자신의 목표가 있었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꿈을 지름길로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넷째, 정조의 인생 과제(우정, 사랑, 직업, 자기 지향, 영성)를 분석을 통해, 그가 삶의 과제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펴 보았다. 정조는 채제공과 깊은 교합으로 개혁정책과 사도세자 추숭을 함께 실행하였으며, 세손 시절 자신을 지켜주었던 동덕회(同德會)...
본 연구의 목적은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관점에서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正祖)의 삶에 나타난 생활양식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먼저 정조에 관한 문헌인 조선왕조실록, 한중록, 홍재전서 등과 같은 공식 기록과 정조의 삶을 해석한 2차 저작물을 통하여 정조의 삶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관점에서 정조의 생활양식을 분석하기 위하여, 그의 가족 구도 분석, 초기 기억 분석, 꿈 분석, 인생 과제 분석, 생활양식 유형 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조의 가족 구도를 분석한 결과, 그는 사도세자(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으나, 첫째인 의소세자(懿昭世子)가 정조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의 심리적 출생순위의 위치는 첫째이다. 그는 맏이의 특성인 책임감, 지도력, 특별한 권력을 획득함으로써 제왕학과 영조(英祖)의 특별 교육으로 인해 강화된다. 또한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으로 인해, 정조는 ‘사랑 없는 양육’의 가족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이처럼 아버지와 영조가 만든 ‘사랑 없는 양육’의 가족 분위기였지만, 정조가 할아버지인 영조의 지지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보살핌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와 할아버지인 영조에 대한 효심을 잃지 않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는 환경 그 자체가 아닌 환경에 대한 ‘견해’가 개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을 시사한다. 둘째, 정조의 초기 기억을 분석한 결과, 임오화변(壬午禍變)에서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이 정조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임오화변 당시 영조, 영빈 이씨, 혜경궁 홍씨는 정조의 안위를 지키려고 하였기에 아버지의 죽음과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의 굴레 속에서 사도세자 추숭이라는 삶의 목표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정조는 왕권 강화 정책을 펼치고 재위 기간 내내 추숭의 절차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정조의 꿈을 분석한 결과, 정조는 꿈을 이용하여 대신들을 설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조는 세자빈을 간택할 때 사도세자가 꿈에 나와서 명하였다고 대신들을 설득하였는데, 이는 상식에 반하는 그의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우처럼, 그는 자신의 목표가 있었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꿈을 지름길로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넷째, 정조의 인생 과제(우정, 사랑, 직업, 자기 지향, 영성)를 분석을 통해, 그가 삶의 과제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펴 보았다. 정조는 채제공과 깊은 교합으로 개혁정책과 사도세자 추숭을 함께 실행하였으며, 세손 시절 자신을 지켜주었던 동덕회(同德會)와도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고 이들과 함께 협력하여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또한 정조가 유일하게 승은을 입힌 의빈성씨(宜嬪成氏)를 통하여 문효세자(文孝世子)를 얻었지만, 홍역으로 세자를 잃고 곧이어 첫사랑인 의빈성씨도 세상을 떠난다. 이러한 불행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백성을 위하여 홍역의 예방과 치료에 힘썼으며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사회적 관심으로 확장해 나간 것을 알 수 있다. 왕이라는 직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정조는 애민(愛民) 사상을 바탕으로 개혁정책을 펼쳐 나갔으며, 이는 민생 안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마음공부인 ‘심학(心學)’을 통하여 나와 잘 지내는 방법을 익히고, 긍정적인 마음, 마음을 바로잡는 것, 자기반성, 성과를 미화하는 것에 대한 경계,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고 살피는 것, 독서와 호흡법을 통하여 자신을 보살폈다. 영성은 초월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에 잘 나타나 있는데, 성군이 되는 것이 정조의 삶의 목표였음이 잘 나타나 있다. 정조는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소외된 백성들을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그는 특히 아동, 노인, 서얼, 죄수 등을 위한 정책을 활발하게 펼침으로써, 백성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다섯째, 정조의 생활양식 유형을 분석한 결과, 그는 사회적 관심과 활동성이 높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조는 공심(公心)을 바탕으로 규장각 재구성, 장용영 설치, 수원 화성 축조 등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이는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금난전권의 폐지는 백성들에게 자유로운 상권을 보장해 주었다. 또한 소외된 계층을 보살피기 위하여 《자휼천칙(字恤典則)》을 반포하였다. Kefir의 우선순위 추구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정조는 ‘우월’을 추구하지만, 삶의 ‘무의미함’을 회피하는 유형이다. 이는 정조가 건강을 돌보지 않고 매일 1∼2시간씩 자며 정사를 돌보았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정조는 즉위 말년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지쳐감으로 인해 자신의 추구하는 바가 의미 없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외척을 멀리하는 즉위 초의 신념을 버리고 김조순의 자녀를 세자빈으로 간택하였으며 탕평책과 반대되는 편파적인 인사 등용을 종용하였다. 이처럼 정조는 말년에 자신을 격려해 주었던 채제공의 죽음, 건강 악화, 주변 근신들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낙담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용기를 잃은 모습을 보여준다. 본 연구의 결과들이 교육과 상담 분야에 주는 몇 가지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조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경험을 겪고도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였다. 이를 통하여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견해를 갖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조는 삶을 수동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창조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사실은 어린아이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희망을 가지게 한다. 둘째, 정조의 초기기억 분석을 통하여 임오화변으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죄책감은 그에게는 열등감을 갖게 했는데,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이를 극복하고자 높은 수준의 ‘사회적 관심’으로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통하여 사도세자를 추숭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이를 통해 교사는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열등감을 이해하고 ‘사회적 관심’을 가지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셋째, 정조의 인생과제를 분석하는 과정을 통하여 정조의 곁에는 그를 낙담하지 않도록 지지해주었던 채제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채제공은 정조에게 커다란 격려를 통해, 정조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용기를 갖게 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를 통하여 격려의 중요성을 아는 교사는 교육현장에서 낙담한 아이에게 용기와 격려를 줄 수 있도록 지원책을 찾을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관점에서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正祖)의 삶에 나타난 생활양식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먼저 정조에 관한 문헌인 조선왕조실록, 한중록, 홍재전서 등과 같은 공식 기록과 정조의 삶을 해석한 2차 저작물을 통하여 정조의 삶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관점에서 정조의 생활양식을 분석하기 위하여, 그의 가족 구도 분석, 초기 기억 분석, 꿈 분석, 인생 과제 분석, 생활양식 유형 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조의 가족 구도를 분석한 결과, 그는 사도세자(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으나, 첫째인 의소세자(懿昭世子)가 정조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의 심리적 출생순위의 위치는 첫째이다. 그는 맏이의 특성인 책임감, 지도력, 특별한 권력을 획득함으로써 제왕학과 영조(英祖)의 특별 교육으로 인해 강화된다. 또한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으로 인해, 정조는 ‘사랑 없는 양육’의 가족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이처럼 아버지와 영조가 만든 ‘사랑 없는 양육’의 가족 분위기였지만, 정조가 할아버지인 영조의 지지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보살핌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와 할아버지인 영조에 대한 효심을 잃지 않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는 환경 그 자체가 아닌 환경에 대한 ‘견해’가 개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을 시사한다. 둘째, 정조의 초기 기억을 분석한 결과, 임오화변(壬午禍變)에서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이 정조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임오화변 당시 영조, 영빈 이씨, 혜경궁 홍씨는 정조의 안위를 지키려고 하였기에 아버지의 죽음과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의 굴레 속에서 사도세자 추숭이라는 삶의 목표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정조는 왕권 강화 정책을 펼치고 재위 기간 내내 추숭의 절차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정조의 꿈을 분석한 결과, 정조는 꿈을 이용하여 대신들을 설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조는 세자빈을 간택할 때 사도세자가 꿈에 나와서 명하였다고 대신들을 설득하였는데, 이는 상식에 반하는 그의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우처럼, 그는 자신의 목표가 있었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꿈을 지름길로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넷째, 정조의 인생 과제(우정, 사랑, 직업, 자기 지향, 영성)를 분석을 통해, 그가 삶의 과제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펴 보았다. 정조는 채제공과 깊은 교합으로 개혁정책과 사도세자 추숭을 함께 실행하였으며, 세손 시절 자신을 지켜주었던 동덕회(同德會)와도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고 이들과 함께 협력하여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또한 정조가 유일하게 승은을 입힌 의빈성씨(宜嬪成氏)를 통하여 문효세자(文孝世子)를 얻었지만, 홍역으로 세자를 잃고 곧이어 첫사랑인 의빈성씨도 세상을 떠난다. 이러한 불행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백성을 위하여 홍역의 예방과 치료에 힘썼으며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사회적 관심으로 확장해 나간 것을 알 수 있다. 왕이라는 직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정조는 애민(愛民) 사상을 바탕으로 개혁정책을 펼쳐 나갔으며, 이는 민생 안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마음공부인 ‘심학(心學)’을 통하여 나와 잘 지내는 방법을 익히고, 긍정적인 마음, 마음을 바로잡는 것, 자기반성, 성과를 미화하는 것에 대한 경계,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고 살피는 것, 독서와 호흡법을 통하여 자신을 보살폈다. 영성은 초월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에 잘 나타나 있는데, 성군이 되는 것이 정조의 삶의 목표였음이 잘 나타나 있다. 정조는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소외된 백성들을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그는 특히 아동, 노인, 서얼, 죄수 등을 위한 정책을 활발하게 펼침으로써, 백성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다섯째, 정조의 생활양식 유형을 분석한 결과, 그는 사회적 관심과 활동성이 높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조는 공심(公心)을 바탕으로 규장각 재구성, 장용영 설치, 수원 화성 축조 등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이는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금난전권의 폐지는 백성들에게 자유로운 상권을 보장해 주었다. 또한 소외된 계층을 보살피기 위하여 《자휼천칙(字恤典則)》을 반포하였다. Kefir의 우선순위 추구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정조는 ‘우월’을 추구하지만, 삶의 ‘무의미함’을 회피하는 유형이다. 이는 정조가 건강을 돌보지 않고 매일 1∼2시간씩 자며 정사를 돌보았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정조는 즉위 말년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지쳐감으로 인해 자신의 추구하는 바가 의미 없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외척을 멀리하는 즉위 초의 신념을 버리고 김조순의 자녀를 세자빈으로 간택하였으며 탕평책과 반대되는 편파적인 인사 등용을 종용하였다. 이처럼 정조는 말년에 자신을 격려해 주었던 채제공의 죽음, 건강 악화, 주변 근신들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낙담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용기를 잃은 모습을 보여준다. 본 연구의 결과들이 교육과 상담 분야에 주는 몇 가지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조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경험을 겪고도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였다. 이를 통하여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견해를 갖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조는 삶을 수동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창조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사실은 어린아이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희망을 가지게 한다. 둘째, 정조의 초기기억 분석을 통하여 임오화변으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죄책감은 그에게는 열등감을 갖게 했는데,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이를 극복하고자 높은 수준의 ‘사회적 관심’으로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통하여 사도세자를 추숭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이를 통해 교사는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열등감을 이해하고 ‘사회적 관심’을 가지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셋째, 정조의 인생과제를 분석하는 과정을 통하여 정조의 곁에는 그를 낙담하지 않도록 지지해주었던 채제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채제공은 정조에게 커다란 격려를 통해, 정조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용기를 갖게 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를 통하여 격려의 중요성을 아는 교사는 교육현장에서 낙담한 아이에게 용기와 격려를 줄 수 있도록 지원책을 찾을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analyze the life style of Jeongjo, the 22nd king of Joseon, from the perspective of Adler's individual psychology. To accomplish the purpose, this study examined the life of King Jeongjo through official records such as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Hanjungrok, a...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analyze the life style of Jeongjo, the 22nd king of Joseon, from the perspective of Adler's individual psychology. To accomplish the purpose, this study examined the life of King Jeongjo through official records such as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Hanjungrok, and HongJaeJeonSeo, which are documents on King Jeongjo, and secondary works that interpret the life of King Jeongjo. In order to analyze Jeongjo's life style from the perspective of Adler's individual psychology, his family constellation, early recollections, dream, life tasks, and life style type analyses were conducted. The main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through the analysis of the family constellation, it was found that King Jeongjo’s position of the psychological birth order is the first, though he was born the second to Crown Prince Sado and Hyegyeonggung Hong, since the first child, Uiso passed away before King Jeongjo was born. The characteristics of the eldest child, responsibility, leadership, and the acquisition of special power, are strengthened by the special education of the emperor and King Youngjo. In addition, due to the conflict between King Youngjo and Crown Prince Sado, King Jeongjo grew up in a family atmosphere of ‘loveless parenting.’ In this way, it was a family atmosphere of ‘loveless parenting’ created by his father and Youngjo, but with the support of his grandfather, Youngjo, and the care of his mother, Hyegyeonggung Hong, he was able to grow properly without losing his filial piety toward his father, Crown Prince Sado and his grandfather, Youngjo. This suggests that the ‘view’ of the environment, not the environment itself, has a decisive effect on an individual's life. Second, through the analysis of King Jeongjo's early recollections, it was found that the tragic death of his father, Crown Prince Sado, had a great influence on King Jeongjo's life in Imohwabyeon(壬午禍變). King Jeongjo with filial piety toward his father had the goal of life as Crown Prince Sado who wants to be crowned king, due to his father's death and guilt, since at the time of the Imohwabyeon, Youngjo, Youngbin Lee, and Hyegyeonggung Hong tried to protect Jeongjo's safety. Jeongjo’s effort about Crown Prince Sado to accomplish the desire to elevate him to king influenced King Jeongjo's policy to strengthen royal authority and to drive the force behind life throughout his reign to overcome his inferiority. Third, through the analysis of Jeongjo's dream, it was found that Jeongjo persuaded his ministers using his dream. When King Jeongjo chose the crown prince, he persuaded his ministers that Crown Prince Sado came out in his dream and ordered it, which shows his life style contrary to common sense. As in this case, he had his own goals, and it seems that he used dreams as a shortcut to express his opinion to achieve these goals. Fourth, through the analysis of Jeongjo's life tasks (friendship, love, occupation, self-direction, spirituality), it was examined how he dealt with his life tasks. King Jeongjo implemented the reform policy and he tried to Prince Sado to be elevated to king together with Chae Jae-Gong, and also he implemented policies for the people through cooperation with them, sharing a special friendship with Dongduk-hoe, who protected him during the youth before becoming king. In addition, King Jeongjo obtained Prince Munhyo with Uibin Seong, but he lost his crown prince due to measles, and soon after, his first love, Uibin Seong passed away. Despite these misfortunes, he worked hard to prevent and treat measles for the people and expanded true love to social interest for humankind. In carrying out his job as a king, King Jeongjo implemented a reform policy based on the spirit of love of people which greatly helped stabilize the people's livelihoods. In addition, he learned how to get along with himself through the study about mind, and took care of himself through positive minds, mind-setting, self-reflection, watch out for glorifying performance, respecting and looking after himself, reading and breathing. Spirituality is well presented in the ‘Mancheonmyungwoljuinong(萬川明月主人翁),’ which contains a transcendent meaning, and through this, it is shown that the goal of King Jeongjo's life is to become a the great king. In order to accomplish this goal, King Jeongjo actively implemented policies for the marginalized class, such as children, the elderly, concubine's children, and prisoners, and tried to guarantee the human rights of the people. Fifth, through the analysis of Jeongjo's life style type, it was found that he belonged to a ‘socially useful type’ with both social interest and activity of high level. King Jeongjo implemented various policies, including the reconstruction of Kyujanggak, the installation of Jangyong-yeong, and the construction of Hwaseong Fortress in Suwon, which helped stabilize the people's livelihoods, based public mind. In particular, the abolition of the ‘banning other shops from opening(禁亂廛權)’ guaranteed the people a free commercial district. In addition, the ‘Jayulcheonchig(字恤典則)’ were promulgated to care for the marginalized class. In Kefir's pursuit of priorities, it is shown that he pursues ‘superiority’ but avoids the ‘meaningless’ of life. That was explained from the fact that King Jeongjo slept for one to two hours every day for work, not taking care of his health. In addition, in the late years of the throne, he abandoned his initial belief in keeping away from his maternal relatives because he was afraid that his pursuit would be meaningless due to physical and mental exhaustion, and chose Kim Jo-soon's child as his wife of crown prince. In this way, King Jeongjo showed that he was discouraged, losing his courage to solve life problems due to the death of Chae Jae-Gong, deterioration of health, and disappointment with a trusted people in his later years. Several implications of these results for education and counseling are as follows. First, Jeongjo set a goal of life and pioneered his life on his own even after experiencing the death of his father as a child. This implies that what is important in life is not the experience itself, but the views about it. Jeongjo had creative power to achieve his purpose, not to passively treat life. Therefore, it seems that the painful experiences of childhood do not dominate our lives, and so this gives young children hope for life. Second, through the analysis of King Jeongjo's early recollections, it was found that the Imohwabyeon caused guilt about his father. This guilt caused him to feel inferiority, and he made a move to make Crown Prince Sado king through filial piety toward his father with a high level of ‘social interest’ to overcome it throughout his life. This suggests that teachers need to understand children's inferiority in the educational field and help them develop ‘social interest.’ Third, through the analysis of King Jeongjo's life tasks, it was found that there was Chae Jae-Gong beside him that support him not to be discouraged. Chae Jae-Gong gave great encouragement to King Jeongjo, which helped him to have the courage to solve life problems. This suggests that teachers who know the importance of encouragement need to provide support to give courage and encouragement to discouraged children in the educational field.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analyze the life style of Jeongjo, the 22nd king of Joseon, from the perspective of Adler's individual psychology. To accomplish the purpose, this study examined the life of King Jeongjo through official records such as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Hanjungrok, and HongJaeJeonSeo, which are documents on King Jeongjo, and secondary works that interpret the life of King Jeongjo. In order to analyze Jeongjo's life style from the perspective of Adler's individual psychology, his family constellation, early recollections, dream, life tasks, and life style type analyses were conducted. The main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through the analysis of the family constellation, it was found that King Jeongjo’s position of the psychological birth order is the first, though he was born the second to Crown Prince Sado and Hyegyeonggung Hong, since the first child, Uiso passed away before King Jeongjo was born. The characteristics of the eldest child, responsibility, leadership, and the acquisition of special power, are strengthened by the special education of the emperor and King Youngjo. In addition, due to the conflict between King Youngjo and Crown Prince Sado, King Jeongjo grew up in a family atmosphere of ‘loveless parenting.’ In this way, it was a family atmosphere of ‘loveless parenting’ created by his father and Youngjo, but with the support of his grandfather, Youngjo, and the care of his mother, Hyegyeonggung Hong, he was able to grow properly without losing his filial piety toward his father, Crown Prince Sado and his grandfather, Youngjo. This suggests that the ‘view’ of the environment, not the environment itself, has a decisive effect on an individual's life. Second, through the analysis of King Jeongjo's early recollections, it was found that the tragic death of his father, Crown Prince Sado, had a great influence on King Jeongjo's life in Imohwabyeon(壬午禍變). King Jeongjo with filial piety toward his father had the goal of life as Crown Prince Sado who wants to be crowned king, due to his father's death and guilt, since at the time of the Imohwabyeon, Youngjo, Youngbin Lee, and Hyegyeonggung Hong tried to protect Jeongjo's safety. Jeongjo’s effort about Crown Prince Sado to accomplish the desire to elevate him to king influenced King Jeongjo's policy to strengthen royal authority and to drive the force behind life throughout his reign to overcome his inferiority. Third, through the analysis of Jeongjo's dream, it was found that Jeongjo persuaded his ministers using his dream. When King Jeongjo chose the crown prince, he persuaded his ministers that Crown Prince Sado came out in his dream and ordered it, which shows his life style contrary to common sense. As in this case, he had his own goals, and it seems that he used dreams as a shortcut to express his opinion to achieve these goals. Fourth, through the analysis of Jeongjo's life tasks (friendship, love, occupation, self-direction, spirituality), it was examined how he dealt with his life tasks. King Jeongjo implemented the reform policy and he tried to Prince Sado to be elevated to king together with Chae Jae-Gong, and also he implemented policies for the people through cooperation with them, sharing a special friendship with Dongduk-hoe, who protected him during the youth before becoming king. In addition, King Jeongjo obtained Prince Munhyo with Uibin Seong, but he lost his crown prince due to measles, and soon after, his first love, Uibin Seong passed away. Despite these misfortunes, he worked hard to prevent and treat measles for the people and expanded true love to social interest for humankind. In carrying out his job as a king, King Jeongjo implemented a reform policy based on the spirit of love of people which greatly helped stabilize the people's livelihoods. In addition, he learned how to get along with himself through the study about mind, and took care of himself through positive minds, mind-setting, self-reflection, watch out for glorifying performance, respecting and looking after himself, reading and breathing. Spirituality is well presented in the ‘Mancheonmyungwoljuinong(萬川明月主人翁),’ which contains a transcendent meaning, and through this, it is shown that the goal of King Jeongjo's life is to become a the great king. In order to accomplish this goal, King Jeongjo actively implemented policies for the marginalized class, such as children, the elderly, concubine's children, and prisoners, and tried to guarantee the human rights of the people. Fifth, through the analysis of Jeongjo's life style type, it was found that he belonged to a ‘socially useful type’ with both social interest and activity of high level. King Jeongjo implemented various policies, including the reconstruction of Kyujanggak, the installation of Jangyong-yeong, and the construction of Hwaseong Fortress in Suwon, which helped stabilize the people's livelihoods, based public mind. In particular, the abolition of the ‘banning other shops from opening(禁亂廛權)’ guaranteed the people a free commercial district. In addition, the ‘Jayulcheonchig(字恤典則)’ were promulgated to care for the marginalized class. In Kefir's pursuit of priorities, it is shown that he pursues ‘superiority’ but avoids the ‘meaningless’ of life. That was explained from the fact that King Jeongjo slept for one to two hours every day for work, not taking care of his health. In addition, in the late years of the throne, he abandoned his initial belief in keeping away from his maternal relatives because he was afraid that his pursuit would be meaningless due to physical and mental exhaustion, and chose Kim Jo-soon's child as his wife of crown prince. In this way, King Jeongjo showed that he was discouraged, losing his courage to solve life problems due to the death of Chae Jae-Gong, deterioration of health, and disappointment with a trusted people in his later years. Several implications of these results for education and counseling are as follows. First, Jeongjo set a goal of life and pioneered his life on his own even after experiencing the death of his father as a child. This implies that what is important in life is not the experience itself, but the views about it. Jeongjo had creative power to achieve his purpose, not to passively treat life. Therefore, it seems that the painful experiences of childhood do not dominate our lives, and so this gives young children hope for life. Second, through the analysis of King Jeongjo's early recollections, it was found that the Imohwabyeon caused guilt about his father. This guilt caused him to feel inferiority, and he made a move to make Crown Prince Sado king through filial piety toward his father with a high level of ‘social interest’ to overcome it throughout his life. This suggests that teachers need to understand children's inferiority in the educational field and help them develop ‘social interest.’ Third, through the analysis of King Jeongjo's life tasks, it was found that there was Chae Jae-Gong beside him that support him not to be discouraged. Chae Jae-Gong gave great encouragement to King Jeongjo, which helped him to have the courage to solve life problems. This suggests that teachers who know the importance of encouragement need to provide support to give courage and encouragement to discouraged children in the educational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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