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한국 성소수자 운동에서 동성결혼의 의제화 과정을 국내외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성소수자 운동을 세 가지 시기로 구분하여 운동의 정체성과 전략적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동성결혼이 논의의 장에 들어오게 된 맥락과 의제화 된 배경, 이 과정에서 발생한 논쟁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성소수자 운동 단체들이 생산한 자료에 대한 문헌분석과 활동가들에 대한 심층면접을 활용했다. 본 논문의 주요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은 퀴어의 전지구화 맥락에서 미디어 상품의 수용과 병리적 동성애라는 국내적 담론의 간극이 촉발한 다중적 시간성을 토대로 태동했다. ‘동성애자’는 글로벌 차원의 호모섹슈얼과 로컬 차원의 비규범적 성적 주체를 포괄하는 혼종적 정체성이었다. 담론적 물적 토대가 모두 척박한 환경에서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장애, 비혼 여성, 성소수자 등이 연합한 가족구성권운동과 절합적 관계를 맺어왔다. 호주제 폐지 국면에서 시작된 가족구성권 운동의 맥락에서 생활동반자법은 결혼에 대한 거리두기와 가족제도의 대안을 모두 가능케 하는 방법으로 주목받았다. 동성애자 가족구성권이 성소수자 운동 차원에서도 논의되기는 했으나 가족구성권 틀 내에서 하위범주로서 모호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동성결혼은 동성애자의 평등을 위해 필요하면서도 결혼제도 비판을 위해 거리 두어야 하는 모순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 둘째, 보수 정권의 출범 후 보수개신교세력이 조직화되며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혐오 세력’이라는 뚜렷한 적대적 그룹과 맞서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이는 성소수자 운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확립기에 와서 혐오세력에 대항하는 ‘우리’ 성소수자 정체성과 차별금지법을 중심으로 한 반차별 인권운동으로서 성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한편 서구를 중심으로 동성결혼이 제도화되며 한국에서도 동성결혼에 대한 성소수자 내부의 요구가 부상했다. 운동 차원에서도 ...
본 연구는 한국 성소수자 운동에서 동성결혼의 의제화 과정을 국내외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성소수자 운동을 세 가지 시기로 구분하여 운동의 정체성과 전략적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동성결혼이 논의의 장에 들어오게 된 맥락과 의제화 된 배경, 이 과정에서 발생한 논쟁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성소수자 운동 단체들이 생산한 자료에 대한 문헌분석과 활동가들에 대한 심층면접을 활용했다. 본 논문의 주요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은 퀴어의 전지구화 맥락에서 미디어 상품의 수용과 병리적 동성애라는 국내적 담론의 간극이 촉발한 다중적 시간성을 토대로 태동했다. ‘동성애자’는 글로벌 차원의 호모섹슈얼과 로컬 차원의 비규범적 성적 주체를 포괄하는 혼종적 정체성이었다. 담론적 물적 토대가 모두 척박한 환경에서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장애, 비혼 여성, 성소수자 등이 연합한 가족구성권운동과 절합적 관계를 맺어왔다. 호주제 폐지 국면에서 시작된 가족구성권 운동의 맥락에서 생활동반자법은 결혼에 대한 거리두기와 가족제도의 대안을 모두 가능케 하는 방법으로 주목받았다. 동성애자 가족구성권이 성소수자 운동 차원에서도 논의되기는 했으나 가족구성권 틀 내에서 하위범주로서 모호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동성결혼은 동성애자의 평등을 위해 필요하면서도 결혼제도 비판을 위해 거리 두어야 하는 모순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 둘째, 보수 정권의 출범 후 보수개신교세력이 조직화되며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혐오 세력’이라는 뚜렷한 적대적 그룹과 맞서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이는 성소수자 운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확립기에 와서 혐오세력에 대항하는 ‘우리’ 성소수자 정체성과 차별금지법을 중심으로 한 반차별 인권운동으로서 성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한편 서구를 중심으로 동성결혼이 제도화되며 한국에서도 동성결혼에 대한 성소수자 내부의 요구가 부상했다. 운동 차원에서도 파트너십 및 동성결혼 제도화를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생활동반자법이 더 나은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과 대립을 이루었다. ‘동성결합’은 파트너십인가 동성혼인가, 혹은 생활동반자법인가 하는 논쟁을 효과적으로 봉합하는 기능을 했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당연한 결혼식>을 기점으로 발족한 <가구넷>은 동성결혼 제도화를 목표로 하면서도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프레임을 가져가는 방식을 통해 절충을 이루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나중에’ 정부의 출범 후 성소수자 운동은 보수개신교세력의 노골적 혐오 및 차별과 대적할 뿐만 아니라 ‘차별은 안 되지만 동성혼은 시기상조’라는 언설을 통해 성소수자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중도 보수 세력과도 대결해야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시로 한 반차별 프레임은 더 이상 성소수자 운동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핵심 정체성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졌다. 혼인평등을 통한 의제투쟁은 성소수자 운동이 마주한 난관에 대한 돌파구였다. 차별과 혐오 대응에 치중했던 성소수자 운동은 장기적 계획을 수립한 운동 전략을 펼치게 되었다. 동성결혼과 생활동반자법 사이의 긴장은 전환기에 와서 뚜렷해졌다.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퀴어 관련 연구 및 번역이 활발해진 것은 가족구성권 운동이 ‘퀴어’ 운동이라는 의미를 획득하는 배경이 되었다. 반면 동성결혼은 충분히 논쟁이 되기도 전에 견제해야 할 것,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은 것, 퀴어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결과적으로 동성결혼에 관한 논의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이동하게 되고, 결혼을 욕망하는 퀴어들의 삶과 경험은 퀴어 정치의 틀에서 삭제되었다. 결론적으로 한국 성소수자 운동에서 동성결혼에 관한 논쟁은 지연되어 왔다. 이는 한국 성소수자 운동에 배태된 다중적 시간성과 한국에서 퀴어 정치의 불/가능성에 기인한다. 본 논문은 성소수자 운동 차원에서 동성결혼에 관한 생산적인 논의를 촉진하며, 한국에서 퀴어의 불/가능성에서 출발하는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본 연구는 한국 성소수자 운동에서 동성결혼의 의제화 과정을 국내외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성소수자 운동을 세 가지 시기로 구분하여 운동의 정체성과 전략적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동성결혼이 논의의 장에 들어오게 된 맥락과 의제화 된 배경, 이 과정에서 발생한 논쟁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성소수자 운동 단체들이 생산한 자료에 대한 문헌분석과 활동가들에 대한 심층면접을 활용했다. 본 논문의 주요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은 퀴어의 전지구화 맥락에서 미디어 상품의 수용과 병리적 동성애라는 국내적 담론의 간극이 촉발한 다중적 시간성을 토대로 태동했다. ‘동성애자’는 글로벌 차원의 호모섹슈얼과 로컬 차원의 비규범적 성적 주체를 포괄하는 혼종적 정체성이었다. 담론적 물적 토대가 모두 척박한 환경에서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장애, 비혼 여성, 성소수자 등이 연합한 가족구성권운동과 절합적 관계를 맺어왔다. 호주제 폐지 국면에서 시작된 가족구성권 운동의 맥락에서 생활동반자법은 결혼에 대한 거리두기와 가족제도의 대안을 모두 가능케 하는 방법으로 주목받았다. 동성애자 가족구성권이 성소수자 운동 차원에서도 논의되기는 했으나 가족구성권 틀 내에서 하위범주로서 모호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동성결혼은 동성애자의 평등을 위해 필요하면서도 결혼제도 비판을 위해 거리 두어야 하는 모순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 둘째, 보수 정권의 출범 후 보수개신교세력이 조직화되며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혐오 세력’이라는 뚜렷한 적대적 그룹과 맞서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이는 성소수자 운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확립기에 와서 혐오세력에 대항하는 ‘우리’ 성소수자 정체성과 차별금지법을 중심으로 한 반차별 인권운동으로서 성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한편 서구를 중심으로 동성결혼이 제도화되며 한국에서도 동성결혼에 대한 성소수자 내부의 요구가 부상했다. 운동 차원에서도 파트너십 및 동성결혼 제도화를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생활동반자법이 더 나은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과 대립을 이루었다. ‘동성결합’은 파트너십인가 동성혼인가, 혹은 생활동반자법인가 하는 논쟁을 효과적으로 봉합하는 기능을 했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당연한 결혼식>을 기점으로 발족한 <가구넷>은 동성결혼 제도화를 목표로 하면서도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프레임을 가져가는 방식을 통해 절충을 이루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나중에’ 정부의 출범 후 성소수자 운동은 보수개신교세력의 노골적 혐오 및 차별과 대적할 뿐만 아니라 ‘차별은 안 되지만 동성혼은 시기상조’라는 언설을 통해 성소수자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중도 보수 세력과도 대결해야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시로 한 반차별 프레임은 더 이상 성소수자 운동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핵심 정체성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졌다. 혼인평등을 통한 의제투쟁은 성소수자 운동이 마주한 난관에 대한 돌파구였다. 차별과 혐오 대응에 치중했던 성소수자 운동은 장기적 계획을 수립한 운동 전략을 펼치게 되었다. 동성결혼과 생활동반자법 사이의 긴장은 전환기에 와서 뚜렷해졌다.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퀴어 관련 연구 및 번역이 활발해진 것은 가족구성권 운동이 ‘퀴어’ 운동이라는 의미를 획득하는 배경이 되었다. 반면 동성결혼은 충분히 논쟁이 되기도 전에 견제해야 할 것,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은 것, 퀴어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결과적으로 동성결혼에 관한 논의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이동하게 되고, 결혼을 욕망하는 퀴어들의 삶과 경험은 퀴어 정치의 틀에서 삭제되었다. 결론적으로 한국 성소수자 운동에서 동성결혼에 관한 논쟁은 지연되어 왔다. 이는 한국 성소수자 운동에 배태된 다중적 시간성과 한국에서 퀴어 정치의 불/가능성에 기인한다. 본 논문은 성소수자 운동 차원에서 동성결혼에 관한 생산적인 논의를 촉진하며, 한국에서 퀴어의 불/가능성에서 출발하는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This study aims to analyze how same-sex marriage has been placed on the agenda of Korean LGBT movements. Specifically, by dividing the movement into three periods and examining the identity and strategy , this paper analyzes the context, agenda, and controversy that occurred in the movemen. To do th...
This study aims to analyze how same-sex marriage has been placed on the agenda of Korean LGBT movements. Specifically, by dividing the movement into three periods and examining the identity and strategy , this paper analyzes the context, agenda, and controversy that occurred in the movemen. To do this, literature analysis of data produced by LGBT activist groups and in-depth interviews with activists were used. The main analysis results of this paper are as follows. First, Korea's LGBT movement was born based on multiple temporality triggered by the gap beetween local discourse and Queer's globalization. “Gay” was a hybrid identity that encompasses homosexual at the global level and non-normative sexual subjects at the local level. In the harsh conditions, the Korean LGBT movements have had articulated with the familiy rights movement, which combines disabilities, women, and LGBT. In the context of the movement, the Act on Registered Life Partnerships was noted as a way to enable both distancing to marriage and alternatives to the family system. Although family rights was also discussed in the LGBT movements, gay had an ambiguous status as a subcategory within the framework of the family rights. Same-sex marriage was in a paradoxical situation: it was necessary for gay equality, but it also needed to be distanced in order to criticize the institution of marriage. Second, with the rise of the conservative government, the LGBT movement in South Korea faced a distinctly antagonistic group of “haters” as conservative Protestant forces organized. Paradoxically, this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movement's identity. During this period, the movement acquired a character as an anti-discrimination movement centered on anti-discrimination laws. Meanwhile, as same-sex marriage became institutionalized in the West, demands for same-sex marriage increased within the LGBT community in Korea. At the movement level, some argued that partnerships and the same-sex marriage should be on the agenda, other argued that the Act on Registered Life Partnerships was a better strategy. “Same-sex unions” has effectively sealed the debate over partnerships, marriage, or domestic partnership laws. Gagoo-Net, which was launched after the “natural wedding” of Kim Jo Kwang-soo and Kim Seung-hwan, sought to achieve a compromise by aiming to institutionalize same-sex marriage but also framing it in terms of LGBT family rights. Finally, after the “later” government took office, the LGBTQ movement had to confront not only outright hatred and discrimination from conservative Protestants, but also from centrist conservatives who justified discrimination against LGBTQ people by saying, ‘No discrimination, but same-sex marriage is premature’. The anti-discrimination frame, which centered on anti-discrimination laws, could no longer function as a core identity to explain what the LGBTQ movement was about. The agenda fight for marriage equality was a breakthrough for the movement. Instead of focusing on defending against discrimination and hate, the movement was able to develop a campaign strategy with a long-term plan. The tension between same-sex marriage and the Act on Registered Life Partnerships became apparent during this period. The Increase of queer studies and translations since the popularization of feminism has helped the family rights movement to gain a sense of being a “queer” movement. Same-sex marriage, on the other hand, was seen as something to be contested, not progressive enough, and not queer enough. As a result, the debate of same-sex marriage was moved to the realm of the impossible, and the lives and experiences of queer people who desire marriage were erased from the framework of queer politics. In conclusion, the debate on same-sex marriage has been delayed in the Korean LGBTQ movement. This is due to the multiple temporality embedded in the Korean LGBTQ movement and the im/possibility of queer politics in Korea. This paper promotes a productive debate on same-sex marriage within the LGBTQ movement and emphasizes the need for studies that starts from the im/possibility of queer politics in Korea.
This study aims to analyze how same-sex marriage has been placed on the agenda of Korean LGBT movements. Specifically, by dividing the movement into three periods and examining the identity and strategy , this paper analyzes the context, agenda, and controversy that occurred in the movemen. To do this, literature analysis of data produced by LGBT activist groups and in-depth interviews with activists were used. The main analysis results of this paper are as follows. First, Korea's LGBT movement was born based on multiple temporality triggered by the gap beetween local discourse and Queer's globalization. “Gay” was a hybrid identity that encompasses homosexual at the global level and non-normative sexual subjects at the local level. In the harsh conditions, the Korean LGBT movements have had articulated with the familiy rights movement, which combines disabilities, women, and LGBT. In the context of the movement, the Act on Registered Life Partnerships was noted as a way to enable both distancing to marriage and alternatives to the family system. Although family rights was also discussed in the LGBT movements, gay had an ambiguous status as a subcategory within the framework of the family rights. Same-sex marriage was in a paradoxical situation: it was necessary for gay equality, but it also needed to be distanced in order to criticize the institution of marriage. Second, with the rise of the conservative government, the LGBT movement in South Korea faced a distinctly antagonistic group of “haters” as conservative Protestant forces organized. Paradoxically, this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movement's identity. During this period, the movement acquired a character as an anti-discrimination movement centered on anti-discrimination laws. Meanwhile, as same-sex marriage became institutionalized in the West, demands for same-sex marriage increased within the LGBT community in Korea. At the movement level, some argued that partnerships and the same-sex marriage should be on the agenda, other argued that the Act on Registered Life Partnerships was a better strategy. “Same-sex unions” has effectively sealed the debate over partnerships, marriage, or domestic partnership laws. Gagoo-Net, which was launched after the “natural wedding” of Kim Jo Kwang-soo and Kim Seung-hwan, sought to achieve a compromise by aiming to institutionalize same-sex marriage but also framing it in terms of LGBT family rights. Finally, after the “later” government took office, the LGBTQ movement had to confront not only outright hatred and discrimination from conservative Protestants, but also from centrist conservatives who justified discrimination against LGBTQ people by saying, ‘No discrimination, but same-sex marriage is premature’. The anti-discrimination frame, which centered on anti-discrimination laws, could no longer function as a core identity to explain what the LGBTQ movement was about. The agenda fight for marriage equality was a breakthrough for the movement. Instead of focusing on defending against discrimination and hate, the movement was able to develop a campaign strategy with a long-term plan. The tension between same-sex marriage and the Act on Registered Life Partnerships became apparent during this period. The Increase of queer studies and translations since the popularization of feminism has helped the family rights movement to gain a sense of being a “queer” movement. Same-sex marriage, on the other hand, was seen as something to be contested, not progressive enough, and not queer enough. As a result, the debate of same-sex marriage was moved to the realm of the impossible, and the lives and experiences of queer people who desire marriage were erased from the framework of queer politics. In conclusion, the debate on same-sex marriage has been delayed in the Korean LGBTQ movement. This is due to the multiple temporality embedded in the Korean LGBTQ movement and the im/possibility of queer politics in Korea. This paper promotes a productive debate on same-sex marriage within the LGBTQ movement and emphasizes the need for studies that starts from the im/possibility of queer politics in Korea.
Keyword
#혼인평등 동성결혼 성소수자 운동 다중적 시간성 불/가능성 퀴어 퀴어 이론 사회운동 정체성 전략 Marriage Equality Same-sex marriage LGBT Movement Multiple temporality Im/possibility Queer Queer Theory Social Movement Identity Strategy
학위논문 정보
저자
조소연
학위수여기관
중앙대학교 대학원
학위구분
국내석사
학과
사회학과 사회학전공
지도교수
이나영
발행연도
2023
총페이지
v, 155 p.
키워드
혼인평등 동성결혼 성소수자 운동 다중적 시간성 불/가능성 퀴어 퀴어 이론 사회운동 정체성 전략 Marriage Equality Same-sex marriage LGBT Movement Multiple temporality Im/possibility Queer Queer Theory Social Movement Identity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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