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 목적 한국의학사(韓國醫學史)의 한 분야인 식품사(食品史) 및 약물사(藥物史)는 미개척분야라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연구 업적이 부족하다. 특히 식물명칭에 대한 정리는 기초학문이지만 방치되어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본고는 식품문화사(食品文化史)를 정리하는 과정중의 일환으로 고추의 어원(語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식품사(食品史) 연구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체질식이요법을 강조하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식품 분류에 대한 학술적 근거를 제시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1493년 콜럼버스에 의해 알려진 고추는 우리 나라에 들어와 천초(川椒)대신 사용됨으로서 현재 중요한 양념이 되었다. 이에 고추의 도입과정과 호칭변화를 살펴봄으로서 현재 사전류에서 잘못 서술되고 있는 것을 시정하고, 고추가 도입된 이래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응용하였는 지에 대하여 문헌고찰을 통하여 의학사적(醫學史的) 입장으로 정리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2. 연구 방법 "산림경제(山林經濟)"(1715),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1827)같은 농서(農書), "물명고(物名考)"(1830),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1850) 같은 유서(類書), "훈몽자회(訓蒙字會)"(1527), "신증유합(新增類合)"(1574)같은 사전류, "지봉유설(芝峰類說)"(1614), "성호사설(星湖僿說)"(1763)같은 문집류, "흠정수시통고(欽定授時通考)"(1737), "본초강목습유(本草綱目拾遺)"(1765)같은 중국본초서(中國本草書) 등과 국내의서 등 을 통하여 고추에 대한 문헌정리를 시도하였다. 3. 연구 결과 고추가 도입된 이래 남만초(南蠻椒), 남초(南椒), 번초(番椒), 왜초(倭椒), 왜고초(倭苦椒), 왜개자(倭芥子), 고초(苦椒), 랄가(辣茄), 고쵸, 등으로 표기되어 왔다. 하지만 고추가 도입되기 전에 출간된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1489)에 '초(椒) 고쵸, 죠피'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천초(川椒)(초피나무)를 의미하는 '고쵸'로 보아야 한다. 후에 고추가 도입됨에 따라 의미가 변하여 고추를 의미하게 되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존하는 문헌 중 고추에 대한 최고기록인 "지봉유설(芝峰類說)"(1614)에 근거하여 고추(남만초(南蠻椒))는 임진왜란때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을 통하여 고추가 도입되었고 이의 개량종을 오히려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전해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현재 대부분의 사전류에서 "훈몽자회(訓蒙字會)"(1527)의 '고쵸 쵸(초(椒))'를 고추에 대한 최초의 어원으로 보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훈몽자회(訓蒙字會)"의 '고쵸(초(椒))'는 고추가 아닌 매운 열매의 총칭으로 호초(胡椒), 천초(川椒), 진초(秦椒)를 의미한다. 이는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1489)의 천초(川椒)를 의미하는 '초(椒) 고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현재 대부분의 사전류에서 고추의 한문표기가 고초(苦草)로 되어 있으나 고초(苦椒)로 정정되어져야 한다. 초(草)(상성(上聲))와 초(椒)(평성(平聲))는 발음은 같지만 성조(聲調)가 다르며, 또한 "본사(本史)"(1787)에 고초(苦椒)와 고초(苦草)는 서로 다른 식물로 기록되어 있다. 넷째, 고초(苦椒)는 '고쵸'라는 우리말에 맞추어 만든 국자(國字)로 고추가 천초(川椒)와 비슷하지만 맵고 쓰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다섯째, 맵고 뜨거운 성질이 있는 고추는 냉증(冷症)을 유발시킬 수 있는 냉성(冷性)야채를 중화(中和)시키는 작용을 한다. 여
1. 연구 목적 한국의학사(韓國醫學史)의 한 분야인 식품사(食品史) 및 약물사(藥物史)는 미개척분야라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연구 업적이 부족하다. 특히 식물명칭에 대한 정리는 기초학문이지만 방치되어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본고는 식품문화사(食品文化史)를 정리하는 과정중의 일환으로 고추의 어원(語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식품사(食品史) 연구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체질식이요법을 강조하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식품 분류에 대한 학술적 근거를 제시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1493년 콜럼버스에 의해 알려진 고추는 우리 나라에 들어와 천초(川椒)대신 사용됨으로서 현재 중요한 양념이 되었다. 이에 고추의 도입과정과 호칭변화를 살펴봄으로서 현재 사전류에서 잘못 서술되고 있는 것을 시정하고, 고추가 도입된 이래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응용하였는 지에 대하여 문헌고찰을 통하여 의학사적(醫學史的) 입장으로 정리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2. 연구 방법 "산림경제(山林經濟)"(1715),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1827)같은 농서(農書), "물명고(物名考)"(1830),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1850) 같은 유서(類書), "훈몽자회(訓蒙字會)"(1527), "신증유합(新增類合)"(1574)같은 사전류, "지봉유설(芝峰類說)"(1614), "성호사설(星湖僿說)"(1763)같은 문집류, "흠정수시통고(欽定授時通考)"(1737), "본초강목습유(本草綱目拾遺)"(1765)같은 중국본초서(中國本草書) 등과 국내의서 등 을 통하여 고추에 대한 문헌정리를 시도하였다. 3. 연구 결과 고추가 도입된 이래 남만초(南蠻椒), 남초(南椒), 번초(番椒), 왜초(倭椒), 왜고초(倭苦椒), 왜개자(倭芥子), 고초(苦椒), 랄가(辣茄), 고쵸, 등으로 표기되어 왔다. 하지만 고추가 도입되기 전에 출간된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1489)에 '초(椒) 고쵸, 죠피'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천초(川椒)(초피나무)를 의미하는 '고쵸'로 보아야 한다. 후에 고추가 도입됨에 따라 의미가 변하여 고추를 의미하게 되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존하는 문헌 중 고추에 대한 최고기록인 "지봉유설(芝峰類說)"(1614)에 근거하여 고추(남만초(南蠻椒))는 임진왜란때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을 통하여 고추가 도입되었고 이의 개량종을 오히려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전해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현재 대부분의 사전류에서 "훈몽자회(訓蒙字會)"(1527)의 '고쵸 쵸(초(椒))'를 고추에 대한 최초의 어원으로 보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훈몽자회(訓蒙字會)"의 '고쵸(초(椒))'는 고추가 아닌 매운 열매의 총칭으로 호초(胡椒), 천초(川椒), 진초(秦椒)를 의미한다. 이는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1489)의 천초(川椒)를 의미하는 '초(椒) 고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현재 대부분의 사전류에서 고추의 한문표기가 고초(苦草)로 되어 있으나 고초(苦椒)로 정정되어져야 한다. 초(草)(상성(上聲))와 초(椒)(평성(平聲))는 발음은 같지만 성조(聲調)가 다르며, 또한 "본사(本史)"(1787)에 고초(苦椒)와 고초(苦草)는 서로 다른 식물로 기록되어 있다. 넷째, 고초(苦椒)는 '고쵸'라는 우리말에 맞추어 만든 국자(國字)로 고추가 천초(川椒)와 비슷하지만 맵고 쓰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다섯째, 맵고 뜨거운 성질이 있는 고추는 냉증(冷症)을 유발시킬 수 있는 냉성(冷性)야채를 중화(中和)시키는 작용을 한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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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이는 고증이 철저해야할 사전류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으로 기존의 논문과 맥을 같이 한다.2) 또한 체질식이요법을 중요시하는 四象醫學에서 각 학자들간에 식품에 대한 견해가 달라 오히려 체질별 식품분류에 혼란이 있는 현실에 부족하나마 학술적 이론근거를 제시함으로서 도움이 되고자 한다.
고추가 우리 나라에 임진왜란 이전에 도입된 이래 고추의 효능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였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중국에서의 문헌을 보면 『本草綱目』에는 고추에 대한 기록이 없고, 이후에 나온 趙學敏(1719~1805)의 『本草綱目拾遺』에 ‘고추(辣茄)의 성품은 辛苦大熱하다.
따라서 본고는 고추의 語源을 밝히는 과정을 통하여 川椒와 고추와의 연관성을 살펴보고, 고추에 대한 잘못된 오류를 바로 잡을까한다. 이는 고증이 철저해야할 사전류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으로 기존의 논문과 맥을 같이 한다.
’5)라 하여 고추가 임진왜란이후에 도입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근거에 의하여 현재 고추는 임진왜란 전후에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에 대하여 反論을 제기하고자 한다.
제안 방법
이상과 같은 이유로 고추를 苦椒가 아닌 苦草로 표기한 것은 잘못 된 것으로 조선말 文字의 語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서 생긴 오류라 할 수 있다. 또한 1911년 朝鮮總督府 調査局에서 편찬을 시작하여 1920년에 출간된 『朝鮮語辭典』에서 고추의 어원을 苦草로 잘못 소개하였다.53) 이러한 잘못된 오류가 해방이후에도 시정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현재 대부분의 사전류에서 고추의 어원을 苦椒가 아닌 苦草로 표기하고 있으니54) 용어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속히 바로 잡아져야된다.
대상 데이터
42) 국문학자들이 叡山本을 초간본으로 보는 근거로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첫째, 崔世珍(?~1542)의 『四聲通解』(1517) 초간본이 乙亥字本이며 임진왜란 이전에는 甲寅字와 乙亥字의 활자본을 사용하였다.둘째, 다른 異本과는 달리 古語가 많고 내용이 정확하며 註가 많다.
성능/효과
넷째, 『月餘農歌』(1861)같은 곳에서는 ‘辣茄는 고추인데 番椒 또는 海瘋藤이라 한다. 고추를 苦草로 한 것은 잘못된 것으로 意味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임진왜란을 틈타 우리 나라에서 『訓蒙字會』를 가져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넷째, 叡山本에 5군데 꿰었던 자국과 붉은 우리 나라 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에서 가져간 것을 일본에서 다시 제본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섯째, 다른 異本들이 每面 4行 4字로 배열한 것에 비하여 叡山本은 每面 10行으로 『四聲通解』와 형식이 같다.
넷째, 苦椒는 ‘고쵸’라는 우리말에 맞추어 만든 國字로 고추가 川椒와 비슷하지만 맵고 쓰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다섯째, 맵고 뜨거운 성질이 있는 고추는 冷症을 유발시킬 수 있는 冷性야채를 中和시키는 작용을 한다.
둘째, 椒와 草는 현재의 발음은 같지만 聲調가 다르다. 椒가 平聲임에 반하여 草는 上聲이기 때문에51) 조선시대의 발음은 서로 다르다.
셋째, 남쪽 오랑캐 땅에서 도입된 고추가 川椒와 같이 맵기 때문에 南蠻椒, 南椒, 番椒, 倭椒, 苦椒 등으로 作名되었다. 따라서 고추도 川椒류의 일종으로 인식하였던 우리 나라에서 椒 대신 草를 사용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救急簡易方』(1489)의 川椒를 의미하는 ‘椒 고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현재 대부분의 사전류에서 고추의 한문표기가 苦草로 되어 있으나 苦椒로 정정되어져야 한다. 草(上聲)와 椒(平聲)는 발음은 같지만 聲調가 다르며, 또한 『本史』(1787)에 苦椒와 苦草는 서로 다른 식물로 기록되어 있다.
여섯째, 고추는 소음인 식품의 경향성을 띈 葷菜類에 속한다.
첫째, 苦椒와 苦草는 서로 다른 식물이다. 자라풀과에 속하는 苦草(Vallisneria spiralisL)48)는 연못이나 흐름이 빠르지 않는 강가에서 자라는 多年草로서 『本草綱目』에 白帶下 또는 茶를 많이 먹어 생긴 面黃無力者에게 쓴다고 기술되어 있다.
첫째, 현존하는 문헌 중 고추에 대한 최고기록인 『芝峰類說(1614)에 근거하여 고추(南蠻椒)는 임진왜란때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을 통하여 고추가 도입되었고 이의 개량종을 오히려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전해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후속연구
따라서 현존하는 叡山本이 中宗 22년(1527)에 나온 초간본이 아니라 中宗이후 임진왜란 이전에 나온 중간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사료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국문학계의 주장에 따라 叡山本을 초간본으로 보아야 할 것인데, 이에 대하여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南美가 원산지인 옥수수(玉蜀黍)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옥수수의 원시종이 율무(薏苡)와 비슷하였기 때문에 율무의 別種으로 인식하여 『訓蒙字會』에 율무의 異名으로 기록된 경우와40)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첫째, 포르투갈 사람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시기가 아무리 빨라도 1542년을 앞서지 않으며,41) 둘째, 1578년에 완성된 李時珍(1518~1593)의 『本草綱目』에 고추의 기록이 없으며, 셋째, 관상용으로 사용되던 辛味種 고추가 1493년 유럽에 전해졌지만 식용으로 사용되는 甘味種 고추는 1550년경 미대륙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것으로 미루어 『訓蒙字會』에서 언급한 ‘고쵸’를 고추로 보기에는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지 않는 한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쓰고 매운 川椒를 의미하는 ‘고쵸’가 고추가 도입됨에 따라 고추를 지칭하는 단어로 의미가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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