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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제강점기 동래읍성 경관변화 연구
A Study on the Historical Landscape of Dongrae Ciy-wall in Busan 원문보기

대한지리학회지 =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v.37 no.4, 2002년, pp.317 - 336  

김기혁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  김성희 (부산 충렬고등학교)

초록

본 연구는 동래 읍성의 입지, 성곽 형태 및 도로망. 관아 및 가옥분포 토지이용 등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경관 복원을 시도한 후.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변화를 파악하여 이를 사회ㆍ문화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가야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던 현재의 장소에 고려말 읍성이 이전 입지한 것은 해안방어 요충지와의 접근성을 최대로 하기 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읍성이 위치한 장소는 동래부의 중심 공간으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은 입지 특성은 4대문 위치 및 성안의 도로망 분포 등에 영향을 주었다. 관아시설의 배치는 중앙 권력의 상징. 읍성 군사 방어 기능과 관련되어 배치되었다. 객사 입지는 중심공간에 지형을 이용하여 권력 질서의 위계를 반영하였으며. 좌측에 동헌. 우측에 향청 및 군사 기능이 배치되었다. 읍성내 취락은 남문을 중심으로 분포하였고. 산록부는 농경지로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중 1920년대 시행된 시구개정사업으로 성벽이 철거되었고, 성안에 격자상의 도로망이 신설되었다. 평지에 있던 성벽 자리는 도로용지나 주택지로 이용되었다. 객사와 동헌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성안의 공간구조가 변화되었고. 관아건물은 공공기관으로 사용되거나, 민간인에게 불하되어 다른 용도로 이용되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읍성이 위치하였던 장소의 상징적 의미는 쇠퇴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읍성은 부산시민에게 역사적인 중심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일부 경관을 중심으로 복원작업이 시도되고 있다. 연구 결과는 읍성이 단순히 건축물이 아닌 당시대의 사회문화가 투영된 경관이며, 각지방에 소재한 읍성은 새로운 시각으로서 재조명되어야 할 것임을 보여준다.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Dongrae-bu, the administrative central area in Busan in Chosun-dynasty(1392-1910), performed the large parts of diplomatic and trading functions with Japan because of its geographical conditions. Because of his location, landscape of Dongrae city-wall is the mirror of political and military meaning ...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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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 토지 이용 등의 경관 변화 내용을 통해 장소의 성격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현대 도시 경관에 어떠한 형태로 남아 있는지를 파악함으로서, 부산 문화의 역사 지리적인 정체성 확립에 기초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 본 논문에서 조선시대 읍성 경관의 복원은 입지, 규모와 형태, 성문 및 도로망 배礼 주요 관아건물과 취락 분포. 토지이용 등을 통하여 시도하였다.
  • 본 연구는 부산시에 소재한 동래 읍성의 성벽 및 문루, 관아 시설, 취락 및 토지이용을 중심으로 조선-일제 강점기 중 나타난 경관 변화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자료는 고지도 및 지리지, 일제시대 발행된 지적원도(1915) 및 지적도(1930) 등을 통해 수집되었으며, 현지답사를 통해 보완되었다.
  • 참조). 연구에서는 읍성 입지, 성벽 형태 및 도로망, 관아 및 가옥분포, 토지이용 등을 중심으로 조선 시대 경관의 복원을 시도한 후, 읍성의 장소성이 경관에 반영된 내용과, 이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도시로서의 공간 재편과정에서 성벽 철거 및 신작로의 개설.
  • 또한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도시로서의 공간 재편과정에서 성벽 철거 및 신작로의 개설. 토지 이용 등의 경관 변화 내용을 통해 장소의 성격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현대 도시 경관에 어떠한 형태로 남아 있는지를 파악함으로서, 부산 문화의 역사 지리적인 정체성 확립에 기초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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