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역사서에는 일식에 대한 기록들이 다른 천문현상들에 비해 많이 나타난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일식은 왕조의 운명과 연관되어있다는 정치적인 사상 때문이다. 조선시대까지도 태양은 임금을 상징하였고, 일식이 일어나면 일식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임금이 제사하는 구식례(求食禮)을 지내곤 했다. 따라서 당시의 임금은 일식에 대한 정확한 예보를 얻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초기의 일식 예측은 잘 맞지가 않았다. 이에 세종은 당시 수도인 한양의 위치에 맞는 역법서(曆法書)인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편찬하였고, 이로 인해 비로소 조선의 자주적인 역법(曆法)이 확립되었다. 칠정산외편은 아라비아의 역법인 회회력(回回曆)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역법으로 조선 초기의 일식 계산에서는 당시의 여러 역법 계산 결과보다 더 정확하였고, 현대적인 계산 방법과 비교하여 보아도 오차의 범위내에 잘 들어맞음을 알 수 있었다.
동아시아의 역사서에는 일식에 대한 기록들이 다른 천문현상들에 비해 많이 나타난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일식은 왕조의 운명과 연관되어있다는 정치적인 사상 때문이다. 조선시대까지도 태양은 임금을 상징하였고, 일식이 일어나면 일식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임금이 제사하는 구식례(求食禮)을 지내곤 했다. 따라서 당시의 임금은 일식에 대한 정확한 예보를 얻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초기의 일식 예측은 잘 맞지가 않았다. 이에 세종은 당시 수도인 한양의 위치에 맞는 역법서(曆法書)인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편찬하였고, 이로 인해 비로소 조선의 자주적인 역법(曆法)이 확립되었다. 칠정산외편은 아라비아의 역법인 회회력(回回曆)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역법으로 조선 초기의 일식 계산에서는 당시의 여러 역법 계산 결과보다 더 정확하였고, 현대적인 계산 방법과 비교하여 보아도 오차의 범위내에 잘 들어맞음을 알 수 있었다.
The history books of East Asia about astronomical phenomena have the more records of the solar eclipse frequently than any other ones. It is because traditionally, the solar eclipse moaned the fate of dynasty and the king's rule. The Sun, the biggest thing in the heaven symbolized the king, and the ...
The history books of East Asia about astronomical phenomena have the more records of the solar eclipse frequently than any other ones. It is because traditionally, the solar eclipse moaned the fate of dynasty and the king's rule. The Sun, the biggest thing in the heaven symbolized the king, and the solar eclipse foresaw that the king had the problem in private including the body, and the country might suffer from difficulties in a great scale. So the king and all of the ministers used to gather to hold a ceremony named Gusikrye(구식례) which solar eclipse may pass safely. Consequently, kings always had concernments on collecting informations of solar eclipse. Inspite of importance of solar eclipse predictions, but at the beginning of the Choseon, the predictions of the solar eclipse didn't fit. King Sejong compiled the Chiljeongsan-naepion (칠정산내편) and the Chiljeongsan-oepyeon(칠정산외편) to calculate the celestial phenomena including the solar eclipse. By the publications of these two books, the calendar making system of Choseon was firmly established. The Chiljeongsan-oepyeon adopted Huihui calendar(회회력) of Arabia. The Solar eclipse predictions of Chiljeongsan-oepyeon were relative correct compared to modern method in early Choseon dynasty.
The history books of East Asia about astronomical phenomena have the more records of the solar eclipse frequently than any other ones. It is because traditionally, the solar eclipse moaned the fate of dynasty and the king's rule. The Sun, the biggest thing in the heaven symbolized the king, and the solar eclipse foresaw that the king had the problem in private including the body, and the country might suffer from difficulties in a great scale. So the king and all of the ministers used to gather to hold a ceremony named Gusikrye(구식례) which solar eclipse may pass safely. Consequently, kings always had concernments on collecting informations of solar eclipse. Inspite of importance of solar eclipse predictions, but at the beginning of the Choseon, the predictions of the solar eclipse didn't fit. King Sejong compiled the Chiljeongsan-naepion (칠정산내편) and the Chiljeongsan-oepyeon(칠정산외편) to calculate the celestial phenomena including the solar eclipse. By the publications of these two books, the calendar making system of Choseon was firmly established. The Chiljeongsan-oepyeon adopted Huihui calendar(회회력) of Arabia. The Solar eclipse predictions of Chiljeongsan-oepyeon were relative correct compared to modern method in early Ch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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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이에 따라 일식의 정확한 계산과 예보는 조선시대에서도 아주 중요한 국가기관의 임무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의 일식 예보는 역관(曆官)들이 당시의 여러 역법들을 이용해 계산해서 비교해 보고, 실제 관측을 해서 검증하였다.
그리고 일식이 일어나면 국가나 왕실에 변고가 생길 재이(災異)의 한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그에 따라 왕궁에 천문관 측시설을 설치하여 하늘을 열심히 관찰하면서 특히 일식, 월식과 같은 현상을 주의 깊게 관측을 하여 기록으로 남겼고, 그에 관한 이론과 역법을 연구하여 일식을 정확히 예보하려고 노력했다. 일식이 일어나면 임금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이 궁전 뜰에 모여 일식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구식례(求食 禮)를 지냈다는 기록을 조선시대 사서(史書)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연구를 통하여 조선시대의 일식 계산법 중 조선 초기와 중기에 많이 쓰여진 칠정산 외편에 의한 일식 계산방법을 살펴보고, 그 계산된 값들을 당시에 사용한 다른 방법의 역법과 현대의 역법에 의한 계산법과 비교해보면서 당시의 일식 계산방법에 대해 논의해보려고 한다.
이것은 고대부터 사람들은 자연재해 못지않게 천문현상을 중요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천문현상은 하늘에서 일어나지만 인간과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고 믿었고, 당시의 사람들은 이것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려 하였다. 특히 천문현상중에는 일식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타나는데, 왕권은 하늘의 뜻에 의해 결정되어진다는 중국의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나 동중서의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전통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제안 방법
일식 계산 과정은 일식이 일어난 날의 정오에서 평균 합삭까지의 시각인 식심범시를 구한 후, 합삭 때의 태양 황경과 태양 자행도, 태양의 시직경을 구하고, 합삭 때의 달의 본륜행도와 황경을 구한다. 그리고 자정으로부터 식심까지의 시간인 식심 정시를 구하고, 식심때의 달의 황경과 위도를 구한다, 그리고 달의 시직경을 구한 후, 태양이 식을 당하는 정도인 태양식심정분과 시차를 계산한다. 시차는 초휴(初虧, 제 1접촉)에서 식심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표 4. 달의 주전원에서의 위치변화량에 대한 Almagest와 칠정산외편의 값 비교.
표 3. 달의 황경변화량에 대한 Almagest와 칠정산외편의 값 비교.
앞에서 살펴본 정묘년(1447) 일식에 대한 칠정산 내편(유경로 등 1990a)과 칠정산외편(유경로 등 1990b)의 계산값을 현대적인 계산법 결과와 비교하여 표 6에 제시하였다. 또한 일식의 시각표시가 각(刻)단위 까지 비교적 자세흐}게 나와있는 기록들 중 칠정산외편을 이용하여 일식을 계산한 자료를 발췌해서 표 7에 수록하고, 이들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계산한 값들과 비교하여 보았다.
이 연구에서 사용한 현대적 계산법에 의한 계산 시각은 현재의 자오선인 135도를 표준시로 정해서 계산한 후, 계산값에서 각 날짜에 따른 균시차 보정을 한 후, 당시의 측정기준이 었던 한양의 경도인 127도와의 시각 차이인 32분을 보정하였다. 시각표시는 시헌력 사용 이전의 자료만 다루었으므로, 칠정산내편에 따른 100각제를 사용하였다. 칠정산내편과 외편의 계산 방법과 현대적인 계산 방법은 각각 다른 방법으로 일식을 계산하기 때문에 계산되어지는 과정의 값 M을 서로 비교할 수는 없어 최종적인 값만을 비교하였다.
표 3의 달의 평균 황경 변화량인 중심행도(中心行度), 표 4의 달의 주전원(周 轉圓)에서의 위치 변화량인 본륜행도(本輪行度)의 표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비교에서는 1일의 변화량을 비교하였다. 알마게스트의 표에서의 월분(月分) 값인 1년은 365일이고, 칠정산외편에서의 1년은 354일이므로 1월달 이후부터는 각 달(月)의 크기가 달라져서 조금씩 차이가 생기므로 월분의 비교는 하지 않았다.
이 연구에서 사용한 현대적 계산법에 의한 계산 시각은 현재의 자오선인 135도를 표준시로 정해서 계산한 후, 계산값에서 각 날짜에 따른 균시차 보정을 한 후, 당시의 측정기준이 었던 한양의 경도인 127도와의 시각 차이인 32분을 보정하였다. 시각표시는 시헌력 사용 이전의 자료만 다루었으므로, 칠정산내편에 따른 100각제를 사용하였다.
임금이 섬돌로 내려와서 해를 향하여 네 번 절하였다. 추보(推 步)하면서 [각(刻)을 앞당긴 이유로 술자(術者) 이천봉(李天奉)에게 곤장을 쳤다.
시각표시는 시헌력 사용 이전의 자료만 다루었으므로, 칠정산내편에 따른 100각제를 사용하였다. 칠정산내편과 외편의 계산 방법과 현대적인 계산 방법은 각각 다른 방법으로 일식을 계산하기 때문에 계산되어지는 과정의 값 M을 서로 비교할 수는 없어 최종적인 값만을 비교하였다. 현대적인 일식 계산방법은 미국 JPL(Jet Propulsion Laboratory)°1]서 배포한 DE406/LE406 package를 이용하였고, 계산프로그램은 이 package와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개발하였다(Fiala & Bangert 1992, Meeus 1991).
표 7. 칠정산외편과 현대 계산법에 의한 일식 예보시각 비교.
표 2. 태양 황경변화량에 대한 Almagest와 칠정산외편의 값 비교.
성능/효과
외편의 편찬이 완료된 후에는 일식의 계산을 대명력과 칠정산내.외편을 모두 다 사용하여 계산하였지만, 실제 일식 현상을 통해 검증된 결과는 칠정산외편에 의한 계산이 더 잘 맞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방법을 더 신뢰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시헌력이 사용된 후에도 시헌력에 의한 교식방법이 완전히 정착된 18세기 중엽까지는 칠정산외편을 활용했을 것으로 본다.
조선 초기로부터 세월이 지나갈수록 오차는 조금씩 더 커지기 시작하여 표 7의 선조 36년의 일식 때에는 30여분 이상의 오차값이 보인다. 조선 중기와 후기의 기록에는 일식을 계산할 때 칠정산외편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여러 번 있지만 실제 현대의 계산법으로 계산한 결과와 오차가 크게 나타났음을 알았다. 따라서 칠정산 외편에 의한 일식 예보는 조선 초기에 많이 사용되어졌고, 그 예보값도 비교적 정확하였다.
참고문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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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us, J. 1991, Astronomical Algorithms (Virginia: Willmann-Bell, Inc),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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