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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뉴욕의 한국작가: 이주, 망명, 디아스포라의 미술
Art of Dislocation, Exile, and Diaspora: Korean Artists in New York in the 1960s and 1970s 원문보기

미술이론과 현장 = the Journal of art theory & practice, v.16, 2013년, pp.107 - 137  

양은희 (숙명여자대학교)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This paper examines a number of Korean artists-Whanki Kim, Po Kim, Byungki Kim, Lim Choong-Sup, Min Byung-Ok and etc-working in New York in the 1960s and 1970s, focusing on their motivations to head for the U.S. and their life and activity in the newly-emerged city of international art. The thesis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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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 이 논문은 1960년대 전후, 그리고 1970년대에 뉴욕으로 건너간 한국작가를 중심으로 냉전 시대의 민주주의/공산주의, 중심/주변, 미국/한국, 세계/한국이라는 구도와 함께 구상/추상이라는 패러다임이 작용한 흔적을 찾아서 이러한 배경이 어떻게 그들의 정체성과 예술에 영향을 미쳤으며 두 공간을 관통한 작가로서 현대 한국미술의 지형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3 이 시기에 주목하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 이념의 대립이 첨예해지고, 미국이 한국의 정치적 동맹이자 문화적 타자로서 한국의 문화지평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작가의 미국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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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한국출신의 현지에 정착한 작가에 대한 미술사적 조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현지에 정착한 작가들 중에는 위에 언급한 작가들만큼 한국에 알려지지 못한 작가들도 있으며, 소개되었다 하더라도 간헐적으로 개인전과 같은 소규모의 전시로 알려지면서 그들의 예술적 족적에 대한 광범위하고 심도있는 미술사적 조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이 외국에 정착한 후 한국미술의 현장에서 점차 멀어지고, 단색화, 민중미술로 이어지는 주류 한국미술사 속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주변인이자 중간자로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해방이전엔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1945년 이후 한국의 현대미술은 그 이전과 유사하게 유럽의 모더니즘 예술 개념을 수용, 발전시킨 주요 국가와 직간접적 교류를 통한 관계의 망 속에서 전개되었다. 해방 이전에 고희동, 김찬영, 나혜석, 이종우 등이 일본 유학, 프랑스 여행을 통해 서양의 미술을 습득하여 그 지식을 토대로 한국적 미술을 시도했다면, 광복 이후에는 김환기, 권옥연, 남관, 김창렬, 박래현 등이 프랑스, 미국으로의 여행, 이주를 통해 “서양의 미술이 일본이라는 통로를 통해 전달되고 이해되었다는 사실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문명의 중심지에서 자신의 예술을 실현하면서 세계와의 대화를 모색했다.1
1960년대 초반 이후 한국작가의 여행 및 이주의 정착지는 왜 미국으로 바뀌었는가? 1945년 이후 정치적,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외국행에 오를 수 있었던 한국작가들이 1960년대 초반까지 선호한 예술의 중심지는 파리였으며 파리로 간 예술가들-김환기, 권옥연, 손동진 등-의 근황이 국내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당시 예술가의 외국문화체험은 드문 기회였다.2 196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한국작가의 여행, 이주의 종착지는 미국으로 이전되기 시작했는데 전후 미국의 문화적 위상이 높아지고 추상표현주의의 산실이었던 뉴욕이 미술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당시 김환기를 비롯한 다수의 작가들이 뉴욕행을 선택했고 일부는 현지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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