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지리적 해석: 중국 동북3성 조선족 이주를 중심으로 Geographical Interpretation of Korean Diaspora in Northeastern China: Its Migration and Spatial Diffusion원문보기
본 논문은 중국 조선족의 이주과정을 시기별로 해석하고 각 시기에 따른 이주공간의 변화를 조선족 인구분포의 변화를 통해 밝히려고 하였다. 중국 조선족의 이주는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났으며, 1910년까지의 난민 월경기, 1930년까지의 정치 이주기, 1945년까지의 강제 이주기, 그리고 해방이후 최근까지의 경제 이주기로 나누어 그 특징을 고찰할 수 있다. 1910년대와 1930년대, 2000년대의 변화과정을 고찰하면 중국 조선족의 이주는 벼농사의 재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초기에는 국경 인근에 벼농사가 유리한 지역으로 우선 이주가 시작되어 그 주변으로 조선족 취락이 확대되는 접촉확산으로, 1930년대 강제이주에 따라 철도를 따라 집단촌이 건설되고 2000년 이후 연해도시를 중심으로 집적지가 확대되는 계층확산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 조선족의 디아스포라 공간은 초기에 형성된 인구밀집지에서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나, 최근 농촌공동체에서 도시공동체로 변화하고 동북3성 위주의 단일지역 분포 패턴에서 연해 대도시와 해외이주가 포함된 다지역 분포 패턴으로 변화하고 있다.
본 논문은 중국 조선족의 이주과정을 시기별로 해석하고 각 시기에 따른 이주공간의 변화를 조선족 인구분포의 변화를 통해 밝히려고 하였다. 중국 조선족의 이주는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났으며, 1910년까지의 난민 월경기, 1930년까지의 정치 이주기, 1945년까지의 강제 이주기, 그리고 해방이후 최근까지의 경제 이주기로 나누어 그 특징을 고찰할 수 있다. 1910년대와 1930년대, 2000년대의 변화과정을 고찰하면 중국 조선족의 이주는 벼농사의 재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초기에는 국경 인근에 벼농사가 유리한 지역으로 우선 이주가 시작되어 그 주변으로 조선족 취락이 확대되는 접촉확산으로, 1930년대 강제이주에 따라 철도를 따라 집단촌이 건설되고 2000년 이후 연해도시를 중심으로 집적지가 확대되는 계층확산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 조선족의 디아스포라 공간은 초기에 형성된 인구밀집지에서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나, 최근 농촌공동체에서 도시공동체로 변화하고 동북3성 위주의 단일지역 분포 패턴에서 연해 대도시와 해외이주가 포함된 다지역 분포 패턴으로 변화하고 있다.
This paper investigates the migration process of Korean population in Northeastern China since the 19th century, focusing on the population distribution patterns in different time periods which reflect changes and diffusions of diaspora space. Korean migration into Northeastern China seemed to begin...
This paper investigates the migration process of Korean population in Northeastern China since the 19th century, focusing on the population distribution patterns in different time periods which reflect changes and diffusions of diaspora space. Korean migration into Northeastern China seemed to begin from the late 19th century, and can be classified into four different periods including cross-border refugee period (19th to 1910), political exile period(1911-1931), forced migration period(1932-1945), and economic-driven migration period(after 1946). The Korean migration into Northeastern China was closely related to paddy field rice farming by Korean migrants, which can be interpreted as a process of contagious diffusion starting from border area between Korea and China at the early stage. And then, process of hierarchical diffusion occurred along with urban centers on the railways from the 1930s. At the later stage, Korean migration has extended to coastal urban centers, other big cities in China and other countries including Korea since the 2000s. Recently, ethnic Korean communities in China have experienced changes from rural village based community to urban district based community as well as from single-nuclei ethnic structure around Northeastern China toward multi-nuclei ethnic structure extending to coastal urban areas in China.
This paper investigates the migration process of Korean population in Northeastern China since the 19th century, focusing on the population distribution patterns in different time periods which reflect changes and diffusions of diaspora space. Korean migration into Northeastern China seemed to begin from the late 19th century, and can be classified into four different periods including cross-border refugee period (19th to 1910), political exile period(1911-1931), forced migration period(1932-1945), and economic-driven migration period(after 1946). The Korean migration into Northeastern China was closely related to paddy field rice farming by Korean migrants, which can be interpreted as a process of contagious diffusion starting from border area between Korea and China at the early stage. And then, process of hierarchical diffusion occurred along with urban centers on the railways from the 1930s. At the later stage, Korean migration has extended to coastal urban centers, other big cities in China and other countries including Korea since the 2000s. Recently, ethnic Korean communities in China have experienced changes from rural village based community to urban district based community as well as from single-nuclei ethnic structure around Northeastern China toward multi-nuclei ethnic structure extending to coastal urban areas in China.
* AI 자동 식별 결과로 적합하지 않은 문장이 있을 수 있으니, 이용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문제 정의
본 연구는 중국 동북3성에 분포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의 정착과정의 특색과 시기별 인구분포의 특징과 이주 패턴, 그리고 조선족 사회의 문제점을 공간적 시각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구체적인 연구 주제는 다음과 같다.
구체적인 연구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족의 동북 3성 이주의 공간적 확산과정의 특색을 시기별과 지역별로 나누면 어떤 패턴이 나타나는가? 둘째, 조선족인구 분포와 조선족 집거구의 분포 특색은 무엇인가? 셋째, 조선족 인구의 도시체계별 분포 패턴과 그 변화 및 공간적 특색은 무엇인가?
또한 2013년 7월 17일부터 24일까지 실시한 흑룡강성과 길림성 일대의 답사와 인터뷰 결과를 부분적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지리적 근접성에 따라 시기별 이주과정의 차이가 발생하는지, 조선족의 이주 과정에서 연쇄 이주(chain migration)의 특징이 전 시기에 걸쳐 나타나는지, 그리고 공간 확산(spatial diffusion)의 과정이 접촉 확산에서 계층 확산의 유형으로 변화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제안 방법
연구방법으로는 문헌연구를 주로 하였고, ArcGIS 를 이용하여 각 도시와 현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조선족의 인구를 시기별로 지도화하고 해석하였다. 또한 2013년 7월 17일부터 24일까지 실시한 흑룡강성과 길림성 일대의 답사와 인터뷰 결과를 부분적으로 활용하였다.
대상 데이터
연구방법으로는 문헌연구를 주로 하였고, ArcGIS 를 이용하여 각 도시와 현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조선족의 인구를 시기별로 지도화하고 해석하였다. 또한 2013년 7월 17일부터 24일까지 실시한 흑룡강성과 길림성 일대의 답사와 인터뷰 결과를 부분적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지리적 근접성에 따라 시기별 이주과정의 차이가 발생하는지, 조선족의 이주 과정에서 연쇄 이주(chain migration)의 특징이 전 시기에 걸쳐 나타나는지, 그리고 공간 확산(spatial diffusion)의 과정이 접촉 확산에서 계층 확산의 유형으로 변화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연구 자료는 문헌 연구를 통하여 기 출판된 국내외 문헌을 분석하고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의 인구 센서스 자료와 인터넷 접근이 가능한 중국 통계자료와 통계연보를 사용하였다. 상세한 조선족 집거구의 파악은 중국행정구역 총람(www.xzqh.org)을 참고하였다. 이외에 중국에서 출간된 문헌에 나와 있는 인구 자료를 간접적으로 활용하였다.
주요 연구지역은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포함 하는 동북3성으로 설정하고, 연구를 위한 분석 단위로 시와 현, 그리고 조선족 집거구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연구 자료는 문헌 연구를 통하여 기 출판된 국내외 문헌을 분석하고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의 인구 센서스 자료와 인터넷 접근이 가능한 중국 통계자료와 통계연보를 사용하였다. 상세한 조선족 집거구의 파악은 중국행정구역 총람(www.
org)을 참고하였다. 이외에 중국에서 출간된 문헌에 나와 있는 인구 자료를 간접적으로 활용하였다. 중국에서는 인구센서스 자료를 제외하고는 통계자료의 신뢰성이 대체로 낮으며 인구센서스의 해외 공개를 극히 제한하고 국외 반출을 통제하기 때문에 기존의 연구결과의 내용을 엄밀히 분석하여 제2차 자료를 주로 이용하였다.
주요 연구지역은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포함 하는 동북3성으로 설정하고, 연구를 위한 분석 단위로 시와 현, 그리고 조선족 집거구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연구 자료는 문헌 연구를 통하여 기 출판된 국내외 문헌을 분석하고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의 인구 센서스 자료와 인터넷 접근이 가능한 중국 통계자료와 통계연보를 사용하였다.
성능/효과
그러나 각 성의 전체인구수는 증가하는 반면 조선인 인구수는 감소하기 때문에 각성에서 조선인 인구의 비율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그 결과 2010년 길림성의 조선인 비율은 3.79%, 흑룡강성은 0.86%, 요녕성은 0.55%에 불과하다(표 3).
예를 들어 당시 흑룡강성 이주민은 청진-도문-목단강 철도를 통해 동녕과 호림을 거치거나 청진-조양천-돈화-교하 철도를 따라 하얼빈과 치치하얼로 이주하는 노선이 일반적이었다. 그 결과 조선족 인구밀집 지는 한반도 접경지대인 길림성 지역을 벗어나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흑룡강성 일대로 확대되었다(그림 2).
다섯째, 조선족의 민족자치지역은 중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52년 8.
둘째, 1916년과 1930년, 그리고 1936년을 비교하면 각 시기별로 새롭게 조선족의 중심지역으로 부상한 지역이 확인된다. 길림성의 경우 1916년에 조선족이 분포한 기존 도시들 중심으로 1930년에는 거의 모든 도시에서 인구 증가가 있었으며, 연변자치주 훈춘이 새로운 조선족 중심도시로 부상하였다.
특히, 조선족이 가장 집중 거주하고 있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우에도 1995년 859,956명을 정점으로 2000년에는 842,135명, 2010년에는 736,991명으로 감소하였다. 따라서 연변조선족자치주 전체 인구수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도 1978~2010년 동안에 40.6%에서 36.5%로 급격하게 낮아졌다(그림 2). 자치주의 지정 요건이 소수민족 비율이 30%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족자치주의 해체가 현실이 될 우려도 있다(이병기, 2006).
한편, 이들 조선족의 출신 지방은 각 지역과 이주시기에 따라 상이한 패턴을 보인다(김일학·박용한, 2009; 리흥국 등, 2010). 먼저 압록강 유역은 평안도이주민, 그리고 두만강 일대는 함경도 이주민이 주류를 차지하여 지리적인 근접성(proximity)이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예를 들어 ‘1910~1921년 재만조선인의원적 통계표(1922)’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두만강 인근의 북간도는 함경북도 출신이 인구의 70%인 반면, 압록강인근의 서간도는 평안북도 출신이 37%이고 다음으로 경상북도와 함경북도가 각각 10~20%를 차지하였다.
다음으로는 중국 조선족의 거주지는 여러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제3의 영역’에 속하는 특수한 공간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정치 경제 생활에서는 중국화 되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모국문화의 유전인자를 간직하고 있는 변인문화형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김강일·허명철, 2001; 김호웅, 2010). 분명한 점은 전체 인구수가 200만 명에 달하는 중국 조선족이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중국 동북3성의 주요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관계가 밀접해 질수록 중간인으로서의 중국 조선족의 역할이 증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조선족은 동북3성에서 민족자치주, 민족자치향, 민족촌까지 다양한 ‘집거구’를 형성하여 한반도 밖에서 또 다른 민족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셋째, 2000년의 도시별로 인구의 분포를 보면 길림성의 경우 초기 조선족 중심지들이 이후 인구밀접지역으로 발달한 경향을 찾아낼 수 있다. 길림성에서는 1910년대 인구밀집지였던 길림시, 통화시, 장춘시, 백산시가 2000년에 이르기까지 도시위계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셋째, 농촌 마을의 인구 감소로 인한 행정 통폐합에 따라 조선족의 전통 풍습이 사라지고 마을 공동체가 와해되는 문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농촌에서 떠나 도시지역으로의 주거지 이동에 의해 길림성과 흑룡강성에서 도시지역에 조선족의 아파트촌이나 집거구 또는 집중촌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볼 때, 도시지역의 조선족 집거지를 새롭게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양질의 교육환경과 전통보존 환경 및 투자환경의 조성이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지속가능한 조선족 공동체 건설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 1952년 연변 조선족자치구 설립과 1955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승격, 그리고 장백산조선족자치현과 자치향 등이 설립된 뒤에 조선족은 중국국적을 가지게 되었으나 중국의 호구제에 따라 원적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이 중국 동북 3성에 남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은 각각 함경도와 평안도 출신이 많고, 내륙에 있는 흑룡강성은 함경도, 평안도, 경상도, 충청도 등 출신지가 다양하고, 길림성은 경상도와 평안도 두 개 지역 출신이 우세하며, 요녕성은 경북, 평안도, 강원도 등의 출신들이 주로 분포하는 패턴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첫째, 1916년 조선족 인구가 만 명 이상 거주하는 도시는 길림성에서는 통화시(집안현, 통화), 백산시(임강시, 장백자치현), 연변조선자치주에서는 용정, 화룡, 왕청현, 요녕성에서는 본계시(환인자치현) 로 나타나 이들이 조선족 밀집지로서 초기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논농사가 일찍부터 도입된 지역으로서 조선족의 인구분포가 논농사의 분포지와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속연구
셋째, 농촌 마을의 인구 감소로 인한 행정 통폐합에 따라 조선족의 전통 풍습이 사라지고 마을 공동체가 와해되는 문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농촌에서 떠나 도시지역으로의 주거지 이동에 의해 길림성과 흑룡강성에서 도시지역에 조선족의 아파트촌이나 집거구 또는 집중촌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볼 때, 도시지역의 조선족 집거지를 새롭게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양질의 교육환경과 전통보존 환경 및 투자환경의 조성이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지속가능한 조선족 공동체 건설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오늘날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 많은 농촌마을이 급격히 해체되고 있지만 소도시 지역이 새로운 조선족의 집 거지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이 관찰된다.
이중에서 심혜숙(1992)의 연구는 중국 조선족 인구분포에 대한 역사지리적 연구를 수행하여 이주경로의 특색과 출신 지방 등을 밝히고 있어 본 연구 내용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였으나 최근의 경향은 반영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지리학적 시각에서 중국 조선족의 이주 과정을 20세기 초반부터 파악하여 현재까지 인구 분포의 변화와 공간 확산의 과정, 1990년대 이후 인구이동의 동태성과 그 파급효과를 분석한다면 중국 조선족의 디아스포라 공간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의 연구는 현재 한국에서의 중국 조선족의 디아스포라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급격하게 변화하며 기존의 농촌공동체의 와해를 겪고 있는 중국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공간변화라는 상황에서, 조선족 정착과정에 대한 역사지리학적 연구를 통해 과거의 경관 복원, 지명 문제, 중국 조선족의 마을 구성과 경관 해석 등의 연구가 시급하며, 공간 스케일을 고려하여 농촌지역 중심의 중국 내부에서의 조선족공동체의 변화와 방향, 중국 조선족이 목적지가 되고 있는 한국과 해외지역에서의 적응과정과 공동체에 대한 연구 등이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또한, 농촌공동체에서 도시공동체로의 질적 변화에 대한 대응 방안, 중국 조선족의 정체성 교육 방안, 이주과정에서의 사회적 적응과 사회적 병리문제, 지속가능한 중국 조선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계획과 방안 등에 대하여 체계적인 연구가 지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조선족의 위상에 대한 논문에서 나온 세 가지 시각은 무엇인가?
중국 내에서도 조선족의 위상에 대해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먼저 조선족은 디아스포라가 아니며 100% 조선족일 뿐으로 한반도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초국적 이주민(transnational migrant)적인 시각과 함께(황유복, 2008), 이와는 상반되게 중국 조선족을 중국 국민이면서도 이중 문화 배경과 신분을 갖고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한 갈래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각이 존재한다(조성일, 2013). 다음으로는 중국 조선족의 거주지는 여러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제3의 영역’에 속하는 특수한 공간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정치 경제 생활에서는 중국화 되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모국문화의 유전인자를 간직하고 있는 변인문화형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김강일·허명철, 2001; 김호웅, 2010). 분명한 점은 전체 인구수가 200만 명에 달하는 중국 조선족이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중국 동북3성의 주요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관계가 밀접해 질수록 중간인으로서의 중국 조선족의 역할이 증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조선족은 주로 중국의 어디에 거주하는가?
다음으로는 중국 조선족의 거주지는 여러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제3의 영역’에 속하는 특수한 공간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정치 경제 생활에서는 중국화 되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모국문화의 유전인자를 간직하고 있는 변인문화형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김강일·허명철, 2001; 김호웅, 2010). 분명한 점은 전체 인구수가 200만 명에 달하는 중국 조선족이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중국 동북3성의 주요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관계가 밀접해 질수록 중간인으로서의 중국 조선족의 역할이 증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조선족은 동북3성에서 민족자치주, 민족자치향, 민족촌까지 다양한 ‘집거구’를 형성하여 한반도 밖에서 또 다른 민족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중국 조선족이란?
중국 조선족은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민족을 통칭 하는 용어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이주하거나 체류하면서 머무는 조선족의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중국 조선족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 공간 분포, 그리고 조선족 사회의 문제점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요구되고 있다.
※ AI-Helper는 부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