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논문]명말청초(明末淸初) 유민화가(遺民畵家)의 화풍(畵風)에 나타난 예술심미 -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석도(石濤)를 중심으로…- An Aesthetic on painting style of Yumin Painter in Late Ming and Early Qing Dynasty - Focuse on the Paldaesanin and Seokdo -원문보기
명말청초의 화단은 청(淸) 왕조에 충실하게 협력했던 정통파와 청(淸)에 적대적인 태도를 가졌던 개성파가 대립한 혼란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왕조교체기에 국파가망지통(國破家亡之痛)의 한(恨)을 품고 현실을 초월해 산림에 은둔자적하였던 대표적 유민화가였던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석도(石濤)는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개성적 표현 양식으로 어떠한 유파를 이루지 않았고, 작품을 통해서 흉중의 비참함과 현실에 대한 울분을 자신만이 느끼는 새로운 착상과 구도를 통해 광괴적(狂怪的)으로 표현하였다. 이들의 화풍(?風)은 비분에 싸인 자아마저 망각한 반규범적이며 무위자연적 사유를 통해 간일(簡逸)하면서도 광견적 심미관을 형성하여 자신만의 개성미와 독창성을 야일(野逸)한 묵희(墨戱)로 발현하였다. 팔대산인(八大山人)은 저항정신과 비분강개가 함축된 기이한 그림을 독특한 발묵선염법을 통해 주로 그렸는데, 냉소(冷笑) 풍자(諷刺) 반어적(反語的) 표현으로 광방불기(狂放不麒)하게 묘사하였다. 한편, '차고이개금(借古以開今)'을 주장한 석도(石濤)는 "화어록(畵語錄)"에서 화리(畵理)와 필법(筆法)의 일치화를 일획(一劃)으로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일획론(一劃論)은 기존의 법(法)으로부터 벗어난 무법이법(無法而法)의 자율성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감각적 필묵과 색채미를 통해 유민의식에 기반한 흥(興) 욕(欲) 정감(情感)이 유희적(遊戱的)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들의 개성적 화풍은 이후 양주팔괴(楊州八怪)에 전해져 18세기 화풍을 선도하였다.
명말청초의 화단은 청(淸) 왕조에 충실하게 협력했던 정통파와 청(淸)에 적대적인 태도를 가졌던 개성파가 대립한 혼란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왕조교체기에 국파가망지통(國破家亡之痛)의 한(恨)을 품고 현실을 초월해 산림에 은둔자적하였던 대표적 유민화가였던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석도(石濤)는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개성적 표현 양식으로 어떠한 유파를 이루지 않았고, 작품을 통해서 흉중의 비참함과 현실에 대한 울분을 자신만이 느끼는 새로운 착상과 구도를 통해 광괴적(狂怪的)으로 표현하였다. 이들의 화풍(?風)은 비분에 싸인 자아마저 망각한 반규범적이며 무위자연적 사유를 통해 간일(簡逸)하면서도 광견적 심미관을 형성하여 자신만의 개성미와 독창성을 야일(野逸)한 묵희(墨戱)로 발현하였다. 팔대산인(八大山人)은 저항정신과 비분강개가 함축된 기이한 그림을 독특한 발묵선염법을 통해 주로 그렸는데, 냉소(冷笑) 풍자(諷刺) 반어적(反語的) 표현으로 광방불기(狂放不麒)하게 묘사하였다. 한편, '차고이개금(借古以開今)'을 주장한 석도(石濤)는 "화어록(畵語錄)"에서 화리(畵理)와 필법(筆法)의 일치화를 일획(一劃)으로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일획론(一劃論)은 기존의 법(法)으로부터 벗어난 무법이법(無法而法)의 자율성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감각적 필묵과 색채미를 통해 유민의식에 기반한 흥(興) 욕(欲) 정감(情感)이 유희적(遊戱的)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들의 개성적 화풍은 이후 양주팔괴(楊州八怪)에 전해져 18세기 화풍을 선도하였다.
The painting group of Late Ming and Early Qing Dynasty is an era of confusion between the orthodox who faithfully cooperated with the Qing Dynasty and the individualist who had a hostile attitude. The country was ruined by these dynasties, and the family left the real world with the suffering of the...
The painting group of Late Ming and Early Qing Dynasty is an era of confusion between the orthodox who faithfully cooperated with the Qing Dynasty and the individualist who had a hostile attitude. The country was ruined by these dynasties, and the family left the real world with the suffering of the breakdown and stayed in the mountains.Paldaesanin and Seokdo, the representative Yumin painters, did not form any a sect as a unique expression style for finding a true self.And, through his work, he expressed on madness and oddity through new ideas and composition that he feels misery and anger in his heart. The paintings of these paintings had semi-normative and impromptuous views of nature, which even the self burdened with grief was forgotten.And I expressed my own individuality and originality by forming a simple and free, on madness and oddity art aesthetic. The paintings of these paintings had semi-normative and impromptuous views of nature, which even the self burdened with grief was forgotten.And I expressed my own individuality and originality by forming a simple and free, on madness and oddity art aesthetic. Paldaesanin portrayed a strange figure with a spirit of resistance and a sad and angered emotion, through a unique technique of painting.The content is cynical, satirical, ironic, and on madness and oddity. On the other hand, Seokdo explained "ilhoeg" that the method of writing and the method of writing in "Hwaeolog" agree with each other.This has allowed us to achieve autonomy as a "rule without rules" that goes beyond the existing rules. And he delicately portrayed beauty, desire, and emotion with the use of sensuous brushes and the beauty of the colors.Their unique paintings were later conveyed to yangjupalgoe and led to the flow of paintings in the 18th century.
The painting group of Late Ming and Early Qing Dynasty is an era of confusion between the orthodox who faithfully cooperated with the Qing Dynasty and the individualist who had a hostile attitude. The country was ruined by these dynasties, and the family left the real world with the suffering of the breakdown and stayed in the mountains.Paldaesanin and Seokdo, the representative Yumin painters, did not form any a sect as a unique expression style for finding a true self.And, through his work, he expressed on madness and oddity through new ideas and composition that he feels misery and anger in his heart. The paintings of these paintings had semi-normative and impromptuous views of nature, which even the self burdened with grief was forgotten.And I expressed my own individuality and originality by forming a simple and free, on madness and oddity art aesthetic. The paintings of these paintings had semi-normative and impromptuous views of nature, which even the self burdened with grief was forgotten.And I expressed my own individuality and originality by forming a simple and free, on madness and oddity art aesthetic. Paldaesanin portrayed a strange figure with a spirit of resistance and a sad and angered emotion, through a unique technique of painting.The content is cynical, satirical, ironic, and on madness and oddity. On the other hand, Seokdo explained "ilhoeg" that the method of writing and the method of writing in "Hwaeolog" agree with each other.This has allowed us to achieve autonomy as a "rule without rules" that goes beyond the existing rules. And he delicately portrayed beauty, desire, and emotion with the use of sensuous brushes and the beauty of the colors.Their unique paintings were later conveyed to yangjupalgoe and led to the flow of paintings in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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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본 연구는 주연구대상으로 明末淸初 가장 개성적인 유민화가로 손꼽히는 八大山人과 石濤를 중심으로 明末淸初의 왕조교체기에 國破家亡之痛의 恨을 품고 현실을 초월해 주로 산림에 은둔자적하였던 遺民畵家들의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개성적 회화심미에 대해 살펴보고, 그들의 화론 및 다양한 화법으로의 변용과 특징이 어떠한 화풍으로 발현되었는지 그 경향성과 특징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石濤는 明이 멸망할 때 너무 어려서 간접경험에 의해 배양된 유민의식을 가졌기에 八大山人 만큼의 망국의 비통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一劃論으로 당대를 지배하던 董其昌의 南北宗派나 四王의 정통파 화풍을 타파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청초 유민화가들이 추구해 온 개성 존중의 회화이념과 渴筆鉤勒描法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행각승으로서의 편력에서 얻은 자연에 대한 축적된 이해력을 바탕으로 자연으로부터 감각적 인상을 받아들이고 천지에 감추어진 힘을 인식하였고, 인간의 솔직한 감성 표현에 대한 긍정과 회화에 있어 기교와 형식을 주체적으로 확립하며 자아와 개성 발현을 중시한 심미의경을 추구하였다.
제안 방법
다만, 작품을 통해서 흉중의 비참함과 현실에 대한 울분을 자신만이 느끼는 새로운 착상과 구도, 그리고 기법과 자연에 대한 통찰력 등을 통해 狂·奇·怪的으로 발현하였다.
후기에 이르러서는 北宋의 董源(?~962)과 巨然(?~?)의 화풍을 모범으로 하여 沈周(1427~1509), 文徵明(1470~1559), 唐寅(1470~1523), 董其昌(1555~1636) 등으로 이어지는 ‘吳派’가 주도하면서 선비의 고매함과 文人氣를 중요시하고,격조와 정취를 으뜸으로 여기면서 元體派나 浙派와는 다른 南宗文人畵風의 경향을 구사하였다.
그리하여 이전의 고정된 화법을 부정·비판하면서 자신의 성정을 자유롭게 풀어내어 정감의 솔직한 발산을 無碍自在하고, 狂·奇·怪하게 회화에 표출하였다.
그는 簡逸한 필획으로 이루어진 虛實相生하는 여백의 원리를 체득하여 화면상의 자질구레함을 제거하였다. 그리고,속박을 벗어나 무한자유의 심령으로써 逍遙遊하는 초월경지를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화면에 典型的으로 자연미를 재현함과 동시에 여기에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이입하여 主客合一의 경지를 이루었고, ‘我自用我法’이라는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과 심미의경을 이루었다.
근원은 아직 사납게 떨어지지도 않고 도도하게 흐르지도 않지만 그 위치로 인해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담고 있다. 一劃이 산수자연의 존재와 현상을 창조된 존재와 현상으로 바꾸듯이, 근원은 물의 다양한 흐름과 각각의 변화된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 石濤가 제발에서 누군가 자신의 색채미를 구사한 화법을 北宋代 郭熙의 巨碑派(비교적 짙은 수묵을 많이 써 직사각형 꼴의 大山大水를 장엄한 느낌이 나도록 그렸던 五代와 北宋의 화가들을 말한다.
대표적 저술인 『畵語錄』에서 회화는 ‘一劃’의 근본 원리에 따라 자연과 자아가 필묵일체의 상태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哲理的 회화심미를 제시함으로써 淸初의 개성주의 미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하였다. 그리고 一劃論을 통하여 자연과 변화를 중시하며 기운생동하며 격조 높은 개성적 화풍을 구현하였다. 화법에 있어서는 반드시 변화와 혁신정신으로 접근하되, 이는 화가의 생활에 근거하여 세워져야 하며, 작품은 물상을 닮지 않은 듯 하면서 닮음(“不似之似”)을 통해 物我와 主客이 서로 합일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대상 데이터
18세(1644년)에 明이 멸망하자, 亡國의 恨을 품고 괴로운 현실을 초월해 穎學弘敏 선사 아래로 출가하였다. 그리고 淸朝의 잔혹한 통치 하에서 隱遁自適하며 서화활동을 하였는데, 順治16年(1659) 34세에 현존하는 최초의 작품집「傳綮寫生冊」을 엮었다.
성능/효과
石濤는 明이 멸망할 때 너무 어려서 간접경험에 의해 배양된 유민의식을 가졌기에 八大山人 만큼의 망국의 비통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一劃論으로 당대를 지배하던 董其昌의 南北宗派나 四王의 정통파 화풍을 타파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청초 유민화가들이 추구해 온 개성 존중의 회화이념과 渴筆鉤勒描法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행각승으로서의 편력에서 얻은 자연에 대한 축적된 이해력을 바탕으로 자연으로부터 감각적 인상을 받아들이고 천지에 감추어진 힘을 인식하였고, 인간의 솔직한 감성 표현에 대한 긍정과 회화에 있어 기교와 형식을 주체적으로 확립하며 자아와 개성 발현을 중시한 심미의경을 추구하였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명말청초의 화단은 무엇인가?
명말청초의 화단은 청(淸) 왕조에 충실하게 협력했던 정통파와 청(淸)에 적대적인 태도를 가졌던 개성파가 대립한 혼란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왕조교체기에 국파가망지통(國破家亡之痛)의 한(恨)을 품고 현실을 초월해 산림에 은둔자적하였던 대표적 유민화가였던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석도(石濤)는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개성적 표현 양식으로 어떠한 유파를 이루지 않았고, 작품을 통해서 흉중의 비참함과 현실에 대한 울분을 자신만이 느끼는 새로운 착상과 구도를 통해 광괴적(狂怪的)으로 표현하였다.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석도(石濤)의 화풍은 어떠한가?
이러한 왕조교체기에 국파가망지통(國破家亡之痛)의 한(恨)을 품고 현실을 초월해 산림에 은둔자적하였던 대표적 유민화가였던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석도(石濤)는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개성적 표현 양식으로 어떠한 유파를 이루지 않았고, 작품을 통해서 흉중의 비참함과 현실에 대한 울분을 자신만이 느끼는 새로운 착상과 구도를 통해 광괴적(狂怪的)으로 표현하였다. 이들의 화풍(?風)은 비분에 싸인 자아마저 망각한 반규범적이며 무위자연적 사유를 통해 간일(簡逸)하면서도 광견적 심미관을 형성하여 자신만의 개성미와 독창성을 야일(野逸)한 묵희(墨戱)로 발현하였다. 팔대산인(八大山人)은 저항정신과 비분강개가 함축된 기이한 그림을 독특한 발묵선염법을 통해 주로 그렸는데, 냉소(冷笑) 풍자(諷刺) 반어적(反語的) 표현으로 광방불기(狂放不麒)하게 묘사하였다.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석도(石濤)가 유파를 이루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명말청초의 화단은 청(淸) 왕조에 충실하게 협력했던 정통파와 청(淸)에 적대적인 태도를 가졌던 개성파가 대립한 혼란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왕조교체기에 국파가망지통(國破家亡之痛)의 한(恨)을 품고 현실을 초월해 산림에 은둔자적하였던 대표적 유민화가였던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석도(石濤)는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개성적 표현 양식으로 어떠한 유파를 이루지 않았고, 작품을 통해서 흉중의 비참함과 현실에 대한 울분을 자신만이 느끼는 새로운 착상과 구도를 통해 광괴적(狂怪的)으로 표현하였다. 이들의 화풍(?風)은 비분에 싸인 자아마저 망각한 반규범적이며 무위자연적 사유를 통해 간일(簡逸)하면서도 광견적 심미관을 형성하여 자신만의 개성미와 독창성을 야일(野逸)한 묵희(墨戱)로 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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