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는 1930년대 인삼 특별경작구역이 아닌 지역의 인삼업 변동을 살펴보았다. 1930년대 인삼업의 큰 특징으로 삼포 면적의 급격한 증가를 꼽을 수 있다. 1929년 64만2천여 평, 1930년과 1931년 76만여 평이었던 삼포 면적은 1938년에 133만여 평으로 급증하였다. 이는 이 시기에 특별경작구역 외의 인삼경작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1930년대 초반까지 특별경작구역 내 삼포 면적과 특별경작구역 외 삼포 면적 비율은 약 70 대 30 수준이었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이 되면 그 비율이 53대 47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동의 이유는 특별경작구역 내의 경우 신설 삼포 면적이 줄어든 반면 특별경작구역 외에서는 꾸준히 면적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일제의 중국 침략 확대로 중국에서 홍삼을 불매하면서 수출이 부진해지자 특별경작구역 내 삼포 면적을 축소한 것이었다. 반면 특별경작구역 외에서는 그러한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삼포 면적이 증가하였다. 그 결과 1930년대 특별경작구역 외 인삼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특별경작구역 외 인삼업의 성장을 이끈 지역은 전북이었다. 전북은 193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다른 도들을 압도하여서 특별경작구역 외 삼포 면적에서 전북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었다. 전북에 이어서 경북과 강원도에서도 인삼경작이 활발하였다. 이외에도 경기도와 경남, 충북 등지에서도 비교적 인삼경작이 활발하였다. 반면 전남, 충남 등은 인삼경작이 이루어졌지만 활기를 띠지는 못했다. 1930년대 특별경작구역 외 인삼업의 성장을 이끈 것은 삼포민들의 노력과 당국의 지원이었다. 경북의 예천군, 경기의 강화군, 충북의 제천군의 사례를 보면, 세 지역 모두 인삼업이 일정하게 발전하자 삼포민들은 조합을 조직하였다. 조합은 인삼경작과 판매를 위해서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강화군의 경우 특별경작구역 편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제천군의 덕산삼업조합은 경작자금 조달이 관건이라고 보고 도 당국에 보조금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삼포민들의 활동에 대해 행정 당국도 지원하였다. 삼포민의 적극적인 활동과 행정 당국의 지원이 이 시기 인삼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 논문에서는 1930년대 인삼 특별경작구역이 아닌 지역의 인삼업 변동을 살펴보았다. 1930년대 인삼업의 큰 특징으로 삼포 면적의 급격한 증가를 꼽을 수 있다. 1929년 64만2천여 평, 1930년과 1931년 76만여 평이었던 삼포 면적은 1938년에 133만여 평으로 급증하였다. 이는 이 시기에 특별경작구역 외의 인삼경작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1930년대 초반까지 특별경작구역 내 삼포 면적과 특별경작구역 외 삼포 면적 비율은 약 70 대 30 수준이었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이 되면 그 비율이 53대 47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동의 이유는 특별경작구역 내의 경우 신설 삼포 면적이 줄어든 반면 특별경작구역 외에서는 꾸준히 면적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일제의 중국 침략 확대로 중국에서 홍삼을 불매하면서 수출이 부진해지자 특별경작구역 내 삼포 면적을 축소한 것이었다. 반면 특별경작구역 외에서는 그러한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삼포 면적이 증가하였다. 그 결과 1930년대 특별경작구역 외 인삼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특별경작구역 외 인삼업의 성장을 이끈 지역은 전북이었다. 전북은 193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다른 도들을 압도하여서 특별경작구역 외 삼포 면적에서 전북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었다. 전북에 이어서 경북과 강원도에서도 인삼경작이 활발하였다. 이외에도 경기도와 경남, 충북 등지에서도 비교적 인삼경작이 활발하였다. 반면 전남, 충남 등은 인삼경작이 이루어졌지만 활기를 띠지는 못했다. 1930년대 특별경작구역 외 인삼업의 성장을 이끈 것은 삼포민들의 노력과 당국의 지원이었다. 경북의 예천군, 경기의 강화군, 충북의 제천군의 사례를 보면, 세 지역 모두 인삼업이 일정하게 발전하자 삼포민들은 조합을 조직하였다. 조합은 인삼경작과 판매를 위해서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강화군의 경우 특별경작구역 편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제천군의 덕산삼업조합은 경작자금 조달이 관건이라고 보고 도 당국에 보조금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삼포민들의 활동에 대해 행정 당국도 지원하였다. 삼포민의 적극적인 활동과 행정 당국의 지원이 이 시기 인삼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This article focuses on changes in the ginseng industry in the 1930s in areas other than the Government Contract Cultivation (GCC) zones. A major characteristic of the ginseng industry in the 1930s was the rapid increase in the area covered by ginseng gardens: the area was about 212 ha in 1929 and 2...
This article focuses on changes in the ginseng industry in the 1930s in areas other than the Government Contract Cultivation (GCC) zones. A major characteristic of the ginseng industry in the 1930s was the rapid increase in the area covered by ginseng gardens: the area was about 212 ha in 1929 and 252 ha in 1930 and 1931 but soared to around 441 ha in 1938. This occurred because the non-GCC areas increased significantly during this period. Until the early 1930s, the ratio of GCC to non-GCC areas was 70:30. By the late 1930s, however, the ratio had changed to 53:47. The reason for this change was that the area of the newly established ginseng gardens in the GCC zones had decreased, while that of the non-GCC ginseng gardens had steadily increased. Due to the Japanese invasion of China, China boycotted red ginseng, and exports were sluggish, so the GCC areas were reduced. On the other hand, the non-GCC ginseng gardens were not affected, and the area they covered steadily increased. As a result, in the 1930s, the ginseng industry outside of the GCC areas grew rapidly. The region that led the growth of the ginseng industry outside of the GCC zone was Jeonbuk. By the late 1930s, Jeonbuk dominated the other provinces and accounted for more than 50% of the non-GCC farming zone. Gyeongbuk and Gangwon-do followed Jeonbuk in terms of ginseng cultivation areas. While Gyeonggi-do, Gyeongnam, and Chungbuk were also active in ginseng cultivation, Jeonnam and Chungnam were not active. In the 1930s, the growth of the ginseng industry outside of the GCC zones was driven by the efforts of ginseng farmers and the support of local governments. An examination of Yecheon-gun in Gyeongbuk, Ganghwa-gun in Gyeonggi, and Jecheon-gun in Chungcheongbuk-do showed that ginseng farmers organized cooperatives as the ginseng industry steadily developed in these regions, and these cooperatives worked systematically to cultivate and sell ginseng. In the case of Ganghwa-gun, activities were carried out to incorporate the GCC zone. The Deoksan Ginseng Association in Jecheon-gun determined that financing for cultivation was key and requested subsidies from the provincial government. Administrative authorities also supported the activities of the ginseng farmers. The activities of the farmers and the support of the administrative authorities together led to the growth of the ginseng industry during this period.
This article focuses on changes in the ginseng industry in the 1930s in areas other than the Government Contract Cultivation (GCC) zones. A major characteristic of the ginseng industry in the 1930s was the rapid increase in the area covered by ginseng gardens: the area was about 212 ha in 1929 and 252 ha in 1930 and 1931 but soared to around 441 ha in 1938. This occurred because the non-GCC areas increased significantly during this period. Until the early 1930s, the ratio of GCC to non-GCC areas was 70:30. By the late 1930s, however, the ratio had changed to 53:47. The reason for this change was that the area of the newly established ginseng gardens in the GCC zones had decreased, while that of the non-GCC ginseng gardens had steadily increased. Due to the Japanese invasion of China, China boycotted red ginseng, and exports were sluggish, so the GCC areas were reduced. On the other hand, the non-GCC ginseng gardens were not affected, and the area they covered steadily increased. As a result, in the 1930s, the ginseng industry outside of the GCC areas grew rapidly. The region that led the growth of the ginseng industry outside of the GCC zone was Jeonbuk. By the late 1930s, Jeonbuk dominated the other provinces and accounted for more than 50% of the non-GCC farming zone. Gyeongbuk and Gangwon-do followed Jeonbuk in terms of ginseng cultivation areas. While Gyeonggi-do, Gyeongnam, and Chungbuk were also active in ginseng cultivation, Jeonnam and Chungnam were not active. In the 1930s, the growth of the ginseng industry outside of the GCC zones was driven by the efforts of ginseng farmers and the support of local governments. An examination of Yecheon-gun in Gyeongbuk, Ganghwa-gun in Gyeonggi, and Jecheon-gun in Chungcheongbuk-do showed that ginseng farmers organized cooperatives as the ginseng industry steadily developed in these regions, and these cooperatives worked systematically to cultivate and sell ginseng. In the case of Ganghwa-gun, activities were carried out to incorporate the GCC zone. The Deoksan Ginseng Association in Jecheon-gun determined that financing for cultivation was key and requested subsidies from the provincial government. Administrative authorities also supported the activities of the ginseng farmers. The activities of the farmers and the support of the administrative authorities together led to the growth of the ginseng industry during thi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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