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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오유석
아르케실라오스는 점차 독단화되어 가는 아카데미 학파의 탐구정신을 회복시키고자, 독단주의를 논파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부터 아카데미의 철학은 회의주의로 변모한다. 그러면 회의주의자는 단지 독단주의자들을 논파하는 데에만 목표를 둔 것일까, 아니면 더 나아가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을까? 본 논문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결과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얻게 된다.
첫째, 아르케실라오스는 판단의 가능성을 부정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로봇의 동작처럼 만들고 말았다. 그는 자유 의지를 부정했기 때문에, 선택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밝힐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르네아데스는 자기 믿음이 참이라고 확신하지 않는 한 회의주의자도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래 영미 주석가들은 회의주의자의 논변이 순전히 대인논증이며 회의주의자 스스로는 어떤 적극적인 주장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회의주의자는 독단주의자처럼 자기 믿음이 참이라고 간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회의주의자도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논변이 전적으로 대인논증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둘째, 카르네아데스는 그럴듯함을 행동의 기준으로 제시했으며, 이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늘 성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 좋게 보이는 것이 얼마 후에는 나쁘게 보일 수도 있으므로 그럴듯함에만 의존해서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결국 카르네아데스의 주장과는 달리, 그의 행동 기준은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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