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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원유회(園遊會) 설행과 의미
Holding Wonyu-hoe(園遊會, Garden Party) in Royal Palace during the Daehan Empire(大韓帝國) and Their Meaning

韓國音樂硏究, v.45, 2009년, pp.353 - 389  

이정희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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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회(園遊會, 苑遊會)란 가든파티(garden party)를 표방한 서양식 연회(宴會)이다. 즉 실외인 정원(庭園)에서 손님을 초대하여 다과, 주류, 음식 등을 먹으며 서로 친목을 다지는 파티의 한 형식이다. 궁궐 내에서는 1895년에 처음으로 설행된 기록이 보이며 1904년 이후 빈번하게 행해졌다.

원유회는 궁궐 내에서 만수성절, 건원절, 경부철도 개통식, 통감부 설치, 일본 황태자 방문, 이등통감 귀국, 대한의원 개원식, 신구 통감 송별 겸 환영회, 어원 사무국 개원 등을 기념하고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설행되었다. 궁궐 내에서 원유회 장소로 이용된 곳은 창덕궁 비원, 경복궁 후원으로 압축된다. 대략 1000명에서 최고 4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원유회에 참석하였다. 참석자의 범위는 황제ㆍ황후ㆍ신분이 높은 고위층 인시들ㆍ부유한 외국상인들ㆍ외국인과 조선 관료의 부인들로 제한되었다. 즉 고위층만 출입 가능하였고 성별을 제한하지 않았던 여성 동참 연회였다. 그리고 원유회장으로 이용된 궁궐의 후원 곳곳에는 서양요리ㆍ조선요리ㆍ중국요리ㆍ과자ㆍ소바ㆍ아이스크림ㆍ스시ㆍ오뎅ㆍ맥주ㆍ샴페인ㆍ탄산수ㆍ위스키ㆍ브랜디ㆍ일본술ㆍ홍차ㆍ담배 등이 제공되었다. 궁궐의 문화유산을 훼손시키고 궁궐문화의 전통을 깨뜨리며 궁궐을 상류층이 향락문화를 즐기는 유흥장으로 격하시키는 컨텐츠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녀ㆍ기생ㆍ고인(鼓人)ㆍ창부ㆍ악공ㆍ전악ㆍ군악대ㆍ게이코(藝妓) 등이 검무ㆍ항장무ㆍ학무ㆍ선유락ㆍ광대의 유희ㆍ손재주ㆍ줄타기ㆍ격검(擊劍)ㆍ줄타기ㆍ고취(鼓吹)ㆍ양악ㆍ청나라 연극ㆍ수용(手踊) 등을 연행하여 청나라ㆍ일본ㆍ조선의 기예가 뒤섞였으며, 조선의 궁중 연향에서는 행해지지 않던 민간 연희와 잡기도 공연되어 다국적ㆍ다층적ㆍ복합적인 공연장으로 변해버렸다.

이렇듯 대한제국기에 궁궐 안에서 열린 원유회는 각종 기념행사를 명분으로 설행되었다. 대한제국의 황제를 비롯한 국내외 고위층 인사들은 대부분 참석하였으며 조선의 궁중연향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짜여 있었다. 즉 내외국인이 어울리는 새로운 상위문화, 상류문화의 연회장이 되었다. 그러나 자주적인 근대화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아니라 궁궐문화 파괴를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심어진 불건전한 파티였다. 원유회라는 명목으로 창덕궁과 경복궁 후원 곳곳을 천명이 넘는 인파가 드나들며 대한제국의 궁궐 문화가 철저히 짓밟혔다. 특히 대한제국기 말엽에는 일본에 아첨하는 친일 인사들의 로비장이 되어 버렸다. 친일 관료의 부인들까지 이에 동참하였다. 즉 원유회는 조선의 전통적인 연회 양식과 서양식 파티 문화가 조화를 이룬 대한제국의 새로운 연향 문화로 자리 잡거나 고종이 도입했던 많은 근대 문화의 하나로 건강하게 터를 잡지 못한 채 궁궐 파괴 주범의 하나, 일인(日人) 혹은 친일 인사 중심의 불건전한 고위층의 향락문화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서양식 가든파티는 대한제국의 근대화 작업 선상에서 들어와 이 땅에 정착한 파티 문화가 아니었다. 이 땅에 도입된 궁궐 내 원유회 모습은 여러 나라의 각종 문화가 교류되는 장이라기보다는 무분별하고 잣대 없이 다국적인 문회를 섞어 놓은 기이한 형상이었다. 결국 궁궐 내 원유회는 일제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대한제국의 궁궐을 파괴하려는 장치의 하나였으며 그 가운데에서 궁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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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yu-hoe(園遊會, 苑遊會) was a westernized banquet standing for a garden party. Namely, it was a type of a party where the guests were invited to an outdoor garden and their friendship was promoted while enjoying refreshments, beverages, and foods. It was first held in 1895 in the royal palace accor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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