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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예멘은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 상호간의 불신과 갈등을 극복하고 1990년 민족통일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아랍권이 미증유의 분열된 상태에서 있는 동안 그 협상을 성사시켰다. 이 사례는 이러한 외적 통일환경에서의 통일 추진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시사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말, 남북 수뇌들은 예멘 통일에 대한 두 가지의 외적인 장애라고 할 수 있는 소련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견제가 소멸 또는 완화됨을 빌미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이 협상을 주도한 북예멘의 알리 살레 대통령은 주저하는 남예멘 사회당 서기장 알리 알-비드의 요구조건을 수락함으로써 전격 통일헌법에 합의하였다. 통일전 북예멘은 이라크가 주도하는 동맹에 가입하여 이라크 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남북예멘 수뇌들은 아랍세계가 크게 분열되는 전야에 그 틈새를 이용하여 6개월이나 예정을 앞당겨 예멘 통일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 후 예멘 통일정부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이라크를 격퇴시킬 미군 등 서방연합군의 아라비아반도 진주를 반대하였다. 이에 격분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보복조치는 외자 도입으로 석유매장량을 개발하고 아덴항을 지역의 허브항으로 발전시키려던 남예멘 사회당의 당초 통일동기를 무산시켜버렸다. 이 같은 사회혼란과 경제난은 통일 협상과 과도기 연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던 북부 부족세력과 남예멘 사회당간의 갈등을 더욱 조장시킴으로써 1994년 5월 급기야 내전 발발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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