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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 암세포의 핵, 조직의 틈 ‘물방울’처럼 빠져나간다

2022-08-23

상처가 치유되려면 필요한 세포가 주변 섬유 조직의 ‘간극 공간'(interstitial space)을 통해 이동해야 한다.
원발 암에서 이탈한 암세포 무리도 이런 미세 공간을 거쳐 다른 기관으로 전이한다.
인체 내 조직의 이런 미세한 틈은 보통 세포핵보다 작다. 따라서 세포가 이를 통과하려면 핵의 형태가 변해야 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세포핵이 탄력적인 고무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섬유 조직 사이의 미세한 구멍을 통과하려면 고무공과 같은 탄력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관념이 오류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세포핵의 기계적 행동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고무공보다는 액체 방울(liquid drop)에 가까웠다.
미국 텍사스 A&M 대학(TAMU)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학제 간 오픈 엑세스 저널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논문으로 실렸다.
이 연구엔 미국 플로리다대 과학자들도 참여했다.
22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세포핵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세포의 기능과 행동을 지배하는 유전체를 안전히 지키는 것이다.
이런 세포핵의 형태가 변하는 건 암과 같은 주요 질병의 경고 신호다.
실제로 핵의 형태가 비정상으로 바뀐 암세포가 전이 과정을 거쳐 다른 기관으로 이동한다.
한 곳에 생긴 암이 이렇게 전이하면 치명적인 암으로 변한다.
암 사망은 대부분 전이암에서 생긴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도 세포핵 형태를 관찰하는 건 유력한 암 진단법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세포핵이 왜 비정상 형태로 변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포핵이 비정상화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정상 형태로 되돌리는 방법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연히 이것은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인 탠메이 렐레 생물의학공학과 교수는 “암과 같은 질병에서 세포핵의 형태가 어떻게 비정상으로 변하는지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이번 연구에서 드러났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텍사스 암 예방 치료 연구소'(CPRIT)의 일원이기도 하다.
보통 ‘라미나'(lamina)로 불리는 핵 보호막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한 것도 이번 연구의 주요 성과다.
전이성 암세포가 섬유 조직 사이의 험로를 뚫고 가면서도 핵의 기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모두 이 보호막 덕이었다.
연구팀은 5㎛(인간 머리카락의 100분의 1) 높이의 미세 탄력 기둥이 늘어선 ‘장애물 코스’를 섬유아세포가 어떻게 통과하는지 실험했다.
섬유아세포는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결합 조직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세포 유형이지만, 이 코스를 지나려면 기둥 사이에 끼일 수밖에 없었다.
고해상도 전자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니, 코스를 통과한 세포핵 표면엔 기둥에 긁힌 자국이 뚜렷이 남았다.
하지만 세포핵의 형태는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세포핵이 고무공처럼 행동한 건 아니고 액체 방울과 비슷한 방법으로 기둥 사이를 통과했다.
세포핵 보호막의 주요 성분인 ‘라민(lamin)’ 단백질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확인됐다.
실제로 ‘라민 A/C’ 단백질을 제거하면 세포핵이 장애물 기둥에 걸려 꼼짝하지 못했다.
액체 형태의 세포핵이 표면 장력을 유지하려면 이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걸 시사한다.
렐레 교수는 “세포핵이 형태를 유지하면서 유전체도 보호하는 기본적 메커니즘이 드러났다”라면서 “어떻게 암세포의 핵이 변형하는지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견은 비정상으로 변했던 암세포 핵을 다시 정상 형태로 되돌리는 열쇠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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