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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조선전기 역관 연구
Translators in the early Chosun Dynasty 원문보기


백옥경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국내박사)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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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 譯官은 대외 관계에서 通譯을 비롯하여 각종 外交 實務를 담당했던 技術官員이다. 역관은 외국 사신 및 수행원 영접·使行 隨行 등을 통해 외국인과의 실제 접촉은 물론 정보활동까지 수행하였고, 經濟·文化的으로는 公貿易을 담당하고 先進 文物 導入의 통로 역할을 하였다. 역관에 대한 기존 연구는 주로 朝鮮時代 中人과 관련된 身分 硏究의 일환으로 진행되어 왔다. 역관이 上級 技術官員으로서 양반에 못지 않은 知識과 經濟的 實力을 축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회적 差別待遇를 받으며 技術職 中人으로 고정되었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역관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으로서의 정치·경제·문화 활동에 대해 주목해 왔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역관을 연구하는 목적이 사회 신분제도 규명에 모아진 결과, 정작 역관 자체에는 별다른 관심이 기울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기적으로도 朝鮮 後期에 연구가 집중되어 있어서, 역관에 대한 전체적인 歷史像을 그려낼 수 없었다. 특히 譯科榜目이나 完薦記, 譯官 家門 연구를 통해 職役의 세습 경향을 밝히고, 이를 근거로 身分의 固着化 혹은 신분의 閉鎖性을 주장하는 것은, 통계 해석에 恣意性이 있으며 세습의 기준 설정이 모호하여 문제를 안고 있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朝鮮 前期 譯官을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우선은 역관 이해를 위한 기초적인 작업으로서, 조선 전기의 역관에 대해 客觀的이고 綜合的인 고찰을 시도하였다. 역관에 관련된 제도의 변화는 물론, 조선 전기 약 100여년간 활동한 역관의 官職과 활동내용 등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역관직의 구조, 역관의 선발·임기·관직 진출, 활동 내용 등을 상세하게 밝히고자 하였다. 두 번째로는 위의 결과를 토대로 조선 전기 사회에서 譯官의 性格과 位相은 어떠하였는가 하는 점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國家 統治 體制 하에서의 譯官 업무의 특성과 그 世傳性 여부, 역관에 대한 差別 여부를 고찰하는 작업으로 구체화되었다. 본 연구는 譯官이 中人身分으로 존재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것으로서, 역관 더 나아가 중인 이해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조선 전기 역관은 高麗末 朝鮮初를 거치면서 기술관으로서의 位相을 확보하였다. 고려말 조선초 對外關係의 多元化와 明의 留學生 파견 금지 조치는 譯官 養成의 필요성을 증대시켰다.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富國强兵을 추진하는 가운데, 明의 선진 기술을 도입해오기 위해서는 역관의 활동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조선 건국 직후부터 역대 국왕은 역관 양성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 결과 역관을 문무 관료체계 속에 編制하는 한편, 역관의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 관서의 설립이 시행되었다. 역관의 敎育과 選拔 제도가 성립되었고, 역관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실시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 역관은 司譯院 官職과 軍職에 진출할 수 있었던 中央 譯官, 지방에서 직접적인 對外 交涉을 수행했던 外任 譯官이 있었고, 그 외 鄕通事라는 이름의 지방 通譯人도 있었다. 이들은 上下의 연결 구조 속에서 국가의 대외관계 업무를 수행해 나갔던 것으로 여겨진다. 역관의 충원대상은 良家子弟 혹은 鄕校生徒, 鄕吏 三丁一子, 鄕吏, 庶孼, 歸化人이었다. 일부 文武 官僚 및 그 子弟들이 국가의 역학 장려정책에 따라 習讀官이나 講隸官으로 진출한 예는 있으나, 실제 역관으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역관은 일반적으로 生徒로 入屬한 뒤 譯科 혹은 取才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였다. 역과나 취재는 능력 위주의 선발 방식으로서, 역관의 자질 함양에 기여하였다. 역관은 司譯院 官職과 軍職에 진출할 수 있었다. 사역원 관직은 세종대 遞兒職으로 정비되면서 6개월마다 교체 제수되어야 하고, 最高位가 정3품으로 한정되어 그 이상의 진출이 사실상 제한되어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역관에게는 일반 문신과는 다른 人事規定이 적용되고 있었다. 역관은 仍任制로 인해 역관으로서의 職任을 벗어날 수 없었고, 取才 성적에 의해 관직의 陞黜이 좌우되었다. 이러한 인사규정은 업무의 지속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만약 취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勤務年限이 아무리 오래되어도 승진하지 못하고 祿俸도 받지 못한 채 역관의 업에 종사하도록 강제되었다. 역관의 활동은 매우 다양하였는데, 특히 外交 부문에서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신 영접과 使行 隨行 등을 통해 직접적인 外交 實務를 담당하면서, 일부 역관은 외교관으로서의 뛰어난 업적을 이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상대국에 국가의 기밀을 누설하는 등 逆機能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반면, 조선 초기 역관의 정치·경제·문화 활동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지위 상승 욕구를 표출하거나, 문화적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集團的 수준에서 표현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도 권세가나 富商大賈의 대리 무역 수준이었고, 獨自的인 무역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점차 집단적인 상언의 형태로 처우 개선을 요구하거나, 선진 기술 수용에도 적극적이고 유교적인 소양을 갖춘 역관들이 文人과 교류하는 등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조선전기 사회에서 이러한 역관의 性格과 位相은 역관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의 특성, 역관에 대한 差別의 實在 與否, 역관 職役의 世傳 與否를 기준으로 고찰될 수 있다. 역관의 주업무인 통역은 쌍방의 의사 소통에 도움을 주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사실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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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ors in the early Chosun Dynasty were techno-officers who had worked for translating and diplomacy. They had contacts with foreigners and collected the information during their meeting, played an important role as the pipeline of public trading and introducing the advanced foreign culture. Th...

학위논문 정보

저자 백옥경
학위수여기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학위구분 국내박사
학과 사학과
발행연도 2000
총페이지 vi, 201 p.
언어 kor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7892906&outLink=K
정보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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