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복음주의의 신학적 의미와 역사적 의미, 웨슬리 신학의 형성 배경과 과정, 웨슬리 신학을 신론, 기독론, 성령론, 성경론,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으로 나누어 조직신학적(기독교의 진리를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의미)으로 살펴보았다. 웨슬리는 18세기 암울했던 영국을 하나님의 복음의 빛으로 변화시킨 설교자였고 신학자였다. 웨슬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와 ‘칭의와 동시에 중생하여, 이로부터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의하여 성화된다’는 성화론의 교리를 그의...
지금까지 복음주의의 신학적 의미와 역사적 의미, 웨슬리 신학의 형성 배경과 과정, 웨슬리 신학을 신론, 기독론, 성령론, 성경론,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으로 나누어 조직신학적(기독교의 진리를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의미)으로 살펴보았다. 웨슬리는 18세기 암울했던 영국을 하나님의 복음의 빛으로 변화시킨 설교자였고 신학자였다. 웨슬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와 ‘칭의와 동시에 중생하여, 이로부터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의하여 성화된다’는 성화론의 교리를 그의 신학 전체에서 놓쳐본 적이 없다. 웨슬리의 신학 전반에는 복음주의의 특징이 전재가 되어 있고 잘 나타나 있다. 웨슬리의 신학 어느 부분도 이신칭의 교리와 성화론의 교리가 전제되거나 연결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이러한 그의 신학은 종교개혁전통의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맥을 같이한다. 웨슬리는 설교만 하고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가르침은 하나의 운동이 되었다. 영국국교회가 채워주지 못한 영적 필요들을 채워주었고, 부패한 성직자들을 일깨웠고, 성도들의 방탕한 생활과 허울뿐인 신앙에 변화를 주었으며 가난한 노동자들, 굶주린 이웃들을 돕는 사회봉사의 모습들도 보였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일들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믿음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을 떠나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 받고 성화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섬기고 기도했다. 그로 인해서 구원받은 자가 날마다 더해져 갔고, 그래서 이 사람들이 모여서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성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말씀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행하자'고 가르쳤던 웨슬리의 가르침을 따라 움직였더니 그 결과로 나라가 변화되고 민족이 바뀌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국 감리교회는 웨슬리의 복음주의 신학전통을 이어받은 교단이다. 그러나 1885년 미 북감리교의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를 통해 들어온 감리교 신학은 여러 가지 원인들로 인해 웨슬리의 복음주의 신학전통을 상실하게 되었고, 특히 웨슬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의 신학 전체의 기초가 되고 있는 이신칭의 교리와 성화론의 교리마저 상실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는 오늘날 한국 감리교회의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서 웨슬리의 신학 전체를 뒷받침하고 있는 이신칭의 교리와 성화론의 교리, 그리고 성경에 대한 그의 신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로 인해 성립되어진 그의 신학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18세기 영국에서 죄 가운데 살고 있던 많은 영혼들과 부패한 영국 사회 전체를 복음으로 치유했던 것처럼 이제 한국 감리교회도 우리 민족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물론이요 이 나라 전체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복음주의의 신학적 의미와 역사적 의미, 웨슬리 신학의 형성 배경과 과정, 웨슬리 신학을 신론, 기독론, 성령론, 성경론,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으로 나누어 조직신학적(기독교의 진리를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의미)으로 살펴보았다. 웨슬리는 18세기 암울했던 영국을 하나님의 복음의 빛으로 변화시킨 설교자였고 신학자였다. 웨슬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와 ‘칭의와 동시에 중생하여, 이로부터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의하여 성화된다’는 성화론의 교리를 그의 신학 전체에서 놓쳐본 적이 없다. 웨슬리의 신학 전반에는 복음주의의 특징이 전재가 되어 있고 잘 나타나 있다. 웨슬리의 신학 어느 부분도 이신칭의 교리와 성화론의 교리가 전제되거나 연결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이러한 그의 신학은 종교개혁전통의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맥을 같이한다. 웨슬리는 설교만 하고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가르침은 하나의 운동이 되었다. 영국국교회가 채워주지 못한 영적 필요들을 채워주었고, 부패한 성직자들을 일깨웠고, 성도들의 방탕한 생활과 허울뿐인 신앙에 변화를 주었으며 가난한 노동자들, 굶주린 이웃들을 돕는 사회봉사의 모습들도 보였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일들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믿음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을 떠나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 받고 성화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섬기고 기도했다. 그로 인해서 구원받은 자가 날마다 더해져 갔고, 그래서 이 사람들이 모여서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성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말씀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행하자'고 가르쳤던 웨슬리의 가르침을 따라 움직였더니 그 결과로 나라가 변화되고 민족이 바뀌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국 감리교회는 웨슬리의 복음주의 신학전통을 이어받은 교단이다. 그러나 1885년 미 북감리교의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를 통해 들어온 감리교 신학은 여러 가지 원인들로 인해 웨슬리의 복음주의 신학전통을 상실하게 되었고, 특히 웨슬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의 신학 전체의 기초가 되고 있는 이신칭의 교리와 성화론의 교리마저 상실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는 오늘날 한국 감리교회의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서 웨슬리의 신학 전체를 뒷받침하고 있는 이신칭의 교리와 성화론의 교리, 그리고 성경에 대한 그의 신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로 인해 성립되어진 그의 신학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18세기 영국에서 죄 가운데 살고 있던 많은 영혼들과 부패한 영국 사회 전체를 복음으로 치유했던 것처럼 이제 한국 감리교회도 우리 민족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물론이요 이 나라 전체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존 웨슬리 복음주의 신학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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