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창세기 1장과 2장의 연구를 통해 구약성서의 인간이해를 살펴보았다. 우리가 주지해야 할 사실은 각각의 기자들이 긍정적, 부정적 인간상으로의 인간 이해를 하게 된 상황들과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성이라는 측면이다. J 기자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유례가 없을 정도로 번영했던 솔로몬의 통치기간에 그러한 인간이해의 고백을 하고 있다. 지파동맹과의 단절 속에서 이스라엘은 왕정제도로 하나의 국가로 변모하면서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번영을 이룩하지만, 그 속에서 야웨 신앙은 다윗 왕조와 유다 국가를 지지하는 어용종교로 전락하는 시련을 맞게 된다. 야웨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협소한 장소에 갇히게 되었고, 권력과 경제적인 부를 쌓은 사람들은 더 많은 부의 창출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악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J 기자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교만함과 오만함에 대해 경고의 소리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흙에서 나온 존재요, 하나님의 생명의 입김에 의해 생명력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 그렇게 때문에 아무리 많은 권력과 부를 누리고 산다 ...
지금까지 창세기 1장과 2장의 연구를 통해 구약성서의 인간이해를 살펴보았다. 우리가 주지해야 할 사실은 각각의 기자들이 긍정적, 부정적 인간상으로의 인간 이해를 하게 된 상황들과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성이라는 측면이다. J 기자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유례가 없을 정도로 번영했던 솔로몬의 통치기간에 그러한 인간이해의 고백을 하고 있다. 지파동맹과의 단절 속에서 이스라엘은 왕정제도로 하나의 국가로 변모하면서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번영을 이룩하지만, 그 속에서 야웨 신앙은 다윗 왕조와 유다 국가를 지지하는 어용종교로 전락하는 시련을 맞게 된다. 야웨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협소한 장소에 갇히게 되었고, 권력과 경제적인 부를 쌓은 사람들은 더 많은 부의 창출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악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J 기자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교만함과 오만함에 대해 경고의 소리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흙에서 나온 존재요, 하나님의 생명의 입김에 의해 생명력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 그렇게 때문에 아무리 많은 권력과 부를 누리고 산다 해도 하나님이 그의 생명의 호흡을 거두어 가시면 흙으로 돌아가 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연 약한 존재라는 사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야웨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라는 것이 J 기자가 이해한 인간이었다. 반면 P 기자의 인간이해는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가장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태 가운데 있을 때 나온 것이다. 바벨론 포로기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유다의 멸망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생활이라는 상황은 침묵하고 계시는 것 같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게 했고, 자신들의 점령국인 바벨론의 신 마르둑보다 강한 온 세상의 유일한 창조주이신 야웨를 생각하게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자신들의 하나님 야웨가 힘이 없어서이거나 살아 계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성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비록 지금은 이방 바벨론의 땅에서 낙심하고 절망한,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와 같지만, 올바른제의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회복된다면 다시금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축복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하나님의 통치자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들에게 희망과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두 문서의 시대는 많은 차이점을 내포한다. 그리고 두 기자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고, 조금은 다른 입장에서 하나님의 인간창조라는 위대한 일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에게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자리를 잡는다. 하나님의 인간창조는 매우 특별한 것임을 본문에 나타난 몇 가지 중요한 용어들을 사용함으로 나타내고 있다. 먼저 P 기자는 인간의 위치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독특하며, 이해하기 쉽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여 진술하였고, J 기자는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심' 이라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여 인간에 대한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두 경우가 서로 다르게 표현되고 있지만, 둘의 공통점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과는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로 침범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특별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된 인간의 모습, 하나님의 어떠한 공급이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 이것이 인간임을 선포하는 특별한 용어를 채택한 두 기자의 신학적인 의도이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최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솔로몬 시대를 삶의 자리로 인정받고 있는 J 기자의 인간이해는 더욱 이러한 사실에 대한 진술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으로 영원하지 않은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흙으로 창조된 존재이므로 인간은 철저히 땅에 의존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선포한다. 또한 인간은 땅을 기업으로 받아 땅의 소산으로 그의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철저히 땅에 의존된 존재로서의 피조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이 죽을 존재로 피조 되었다는 구약의 인간의 죽음 이해를 통해서 인간은 그 죽음을 땅에 흙에 의존한다고 하겠다. 네페쉬로 창조된 인간은 끊임없이 생명을 구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다. J 기자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여 이미 이방종교가 뿌리를 내린 솔로몬 왕국과 그로 인해 야웨 종교의 정체성을 잃고 있었던 이방 종교에 젖어 있는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시대는 이스라엘의 왕국이 멸망으로 이스라엘의 야웨종교 공동체는 대단히 심각한 신학적 위기를 겪게 되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P기자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할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여호와의 도성인 예루살렘의 함락과 더불어 야웨종교의 영원한 언약의 중단이라는 심각한 신앙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또한 다윗왕가를 통하여 영원한 왕위를 계승하시겠다던 야웨의 언약은 예루 살렘함락과 성전의 불타버림으로 끝났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P 기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철저히 신앙의 반성을 하게 되었고, 이스라엘멸망의 원인을 제의적인 범죄에 있음을 선포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제 제의의 회복이다. 제의의 회복을 위해서는 창조된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이스라엘 포로민은 정복국가의 이방종교가 대단히 우월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하나님에 대한 실망은 그들로 하여금 대단히 심각한 신앙적 위기를 갖게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백성들에게 P 기자는 주관적인 진술을 통하여 야웨 신앙관을 바르게 확립하고자 한다. 야웨 하나님만이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선포하고 있다. p 기자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하여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섭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특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의 인간을 선포한다. 이것은 실의에 빠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대한 존재로서 지음을 받았음을 선포한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용어이다. 다른 피조물보다 특별한 관계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용어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된 관계로서의 피조물임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남자와 여자로 지음을 받았다. 그리고 인간에게 하나님은 생육과 번성의 복을 허락하신다. 둘에게 주어진 이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전적으로 의존하여야만 하나님이 주신 이 과업을 이룰 수 있다. 남자와 여자로 지음을 받은 것은 서로가 경쟁의 관계이며, 한쪽이 더 우월한 존재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의존하는 관계로 창조된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과업을 주신다. 이 과업의 수행은 남자나 여자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이 과업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도 인간은 상호 보완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따라 온전히 다른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인간은 인간 상호간에도 의존적인 관계로서 창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J 기자와 P 기자는 서로 다른 시대적인 상황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동일하게 인간을 의존적인 관계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적용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명심해야 하며 또한 피조물로서 남 여 상호간의 관계와 땅과의 관계가 서로 함께 하는 관계임을 인식해야 한다. 물질적 풍요와 동시에 정신적 빈곤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현재의 삶 가운데 있는, 긍정적 인간이해의 부재에서 오는 극심한 인간소외의 어려움 속에 서도 하나님의 존귀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아무리 풍요한 물질문명과 발달된 과학문명 속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없이는 지극히 보잘것없는 존재, 즉 하나님께 철저히 의존된 관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창세기 1장과 2장의 연구를 통해 구약성서의 인간이해를 살펴보았다. 우리가 주지해야 할 사실은 각각의 기자들이 긍정적, 부정적 인간상으로의 인간 이해를 하게 된 상황들과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성이라는 측면이다. J 기자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유례가 없을 정도로 번영했던 솔로몬의 통치기간에 그러한 인간이해의 고백을 하고 있다. 지파동맹과의 단절 속에서 이스라엘은 왕정제도로 하나의 국가로 변모하면서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번영을 이룩하지만, 그 속에서 야웨 신앙은 다윗 왕조와 유다 국가를 지지하는 어용종교로 전락하는 시련을 맞게 된다. 야웨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협소한 장소에 갇히게 되었고, 권력과 경제적인 부를 쌓은 사람들은 더 많은 부의 창출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악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J 기자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교만함과 오만함에 대해 경고의 소리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흙에서 나온 존재요, 하나님의 생명의 입김에 의해 생명력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 그렇게 때문에 아무리 많은 권력과 부를 누리고 산다 해도 하나님이 그의 생명의 호흡을 거두어 가시면 흙으로 돌아가 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연 약한 존재라는 사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야웨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라는 것이 J 기자가 이해한 인간이었다. 반면 P 기자의 인간이해는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가장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태 가운데 있을 때 나온 것이다. 바벨론 포로기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유다의 멸망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생활이라는 상황은 침묵하고 계시는 것 같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게 했고, 자신들의 점령국인 바벨론의 신 마르둑보다 강한 온 세상의 유일한 창조주이신 야웨를 생각하게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자신들의 하나님 야웨가 힘이 없어서이거나 살아 계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성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비록 지금은 이방 바벨론의 땅에서 낙심하고 절망한,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와 같지만, 올바른제의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회복된다면 다시금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축복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하나님의 통치자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들에게 희망과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두 문서의 시대는 많은 차이점을 내포한다. 그리고 두 기자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고, 조금은 다른 입장에서 하나님의 인간창조라는 위대한 일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에게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자리를 잡는다. 하나님의 인간창조는 매우 특별한 것임을 본문에 나타난 몇 가지 중요한 용어들을 사용함으로 나타내고 있다. 먼저 P 기자는 인간의 위치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독특하며, 이해하기 쉽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여 진술하였고, J 기자는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심' 이라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여 인간에 대한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두 경우가 서로 다르게 표현되고 있지만, 둘의 공통점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과는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로 침범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특별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된 인간의 모습, 하나님의 어떠한 공급이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 이것이 인간임을 선포하는 특별한 용어를 채택한 두 기자의 신학적인 의도이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최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솔로몬 시대를 삶의 자리로 인정받고 있는 J 기자의 인간이해는 더욱 이러한 사실에 대한 진술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으로 영원하지 않은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흙으로 창조된 존재이므로 인간은 철저히 땅에 의존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선포한다. 또한 인간은 땅을 기업으로 받아 땅의 소산으로 그의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철저히 땅에 의존된 존재로서의 피조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이 죽을 존재로 피조 되었다는 구약의 인간의 죽음 이해를 통해서 인간은 그 죽음을 땅에 흙에 의존한다고 하겠다. 네페쉬로 창조된 인간은 끊임없이 생명을 구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다. J 기자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여 이미 이방종교가 뿌리를 내린 솔로몬 왕국과 그로 인해 야웨 종교의 정체성을 잃고 있었던 이방 종교에 젖어 있는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시대는 이스라엘의 왕국이 멸망으로 이스라엘의 야웨종교 공동체는 대단히 심각한 신학적 위기를 겪게 되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P기자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할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여호와의 도성인 예루살렘의 함락과 더불어 야웨종교의 영원한 언약의 중단이라는 심각한 신앙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또한 다윗왕가를 통하여 영원한 왕위를 계승하시겠다던 야웨의 언약은 예루 살렘함락과 성전의 불타버림으로 끝났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P 기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철저히 신앙의 반성을 하게 되었고, 이스라엘멸망의 원인을 제의적인 범죄에 있음을 선포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제 제의의 회복이다. 제의의 회복을 위해서는 창조된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이스라엘 포로민은 정복국가의 이방종교가 대단히 우월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하나님에 대한 실망은 그들로 하여금 대단히 심각한 신앙적 위기를 갖게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백성들에게 P 기자는 주관적인 진술을 통하여 야웨 신앙관을 바르게 확립하고자 한다. 야웨 하나님만이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선포하고 있다. p 기자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하여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섭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특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의 인간을 선포한다. 이것은 실의에 빠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대한 존재로서 지음을 받았음을 선포한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용어이다. 다른 피조물보다 특별한 관계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용어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된 관계로서의 피조물임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남자와 여자로 지음을 받았다. 그리고 인간에게 하나님은 생육과 번성의 복을 허락하신다. 둘에게 주어진 이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전적으로 의존하여야만 하나님이 주신 이 과업을 이룰 수 있다. 남자와 여자로 지음을 받은 것은 서로가 경쟁의 관계이며, 한쪽이 더 우월한 존재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의존하는 관계로 창조된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과업을 주신다. 이 과업의 수행은 남자나 여자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이 과업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도 인간은 상호 보완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따라 온전히 다른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인간은 인간 상호간에도 의존적인 관계로서 창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J 기자와 P 기자는 서로 다른 시대적인 상황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동일하게 인간을 의존적인 관계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적용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명심해야 하며 또한 피조물로서 남 여 상호간의 관계와 땅과의 관계가 서로 함께 하는 관계임을 인식해야 한다. 물질적 풍요와 동시에 정신적 빈곤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현재의 삶 가운데 있는, 긍정적 인간이해의 부재에서 오는 극심한 인간소외의 어려움 속에 서도 하나님의 존귀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아무리 풍요한 물질문명과 발달된 과학문명 속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없이는 지극히 보잘것없는 존재, 즉 하나님께 철저히 의존된 관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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