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대상들을 만나며, 그 대상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만나고, 조금 자라난 다음 이웃과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며, 그 후 결혼을 해서 아내와 남편이나 자녀들을 만나는 등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기쁨과 슬픔은 물론 괴로움을 겪으면서 성장해가는 것이다. 이 많은 만남들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주고, 우리의 내면세계를 형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모든 만남들이 긍정적인 영항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좋지 않은 대상은 우리 안에 좋지 않은 정신요소들을 형성시키고 우리 삶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유년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사랑의 결핍을 느꼈거나 과도한 사랑을 받았을 경우 자기방어적인 사람이 되거나 지극히 의존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신의 치료가 필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편안하게 느끼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끼거나 소외감을 느끼며 고통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유년시절의 잘못된 만남을 치유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이 필요하다. 그들이 유년시절 좋지 않은 대상의 영향으로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만 살피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유년시절 지나치게 요구가 많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들의 정신에너지를 부모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사용했던 것이 습관처럼 되어서, 성장한 다음에도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알지 못하고 자기실현에 집중시키지 못하여 결국 문제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G. 올프트는 성숙한 인간이란 "고유한 자아"를 찾은 사람이라고 주장하였고, C. G.융은 "개성화가 된 사람" 이라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타고난 본성을 찾아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우리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고유한 자아를 찾는 것이나 개성화가 되는 것이나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필요하고, 정신의 치료가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진정한 자신을 찾아서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지 않고,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마틴 부버는 자기 회복의 길을 '나'를 '그것'으로 만나지 않고 대화의 상대자인 '너'로 만나주는 존재를 만날 때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나'를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만나지 않고, 고유한 인격체인 '너'로 만나면서 '나' 자신을 인정해주는 존재를 통해서 사람들은 억압되어 있던 '나'를 발견하고, '나'를 찾아서 ...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대상들을 만나며, 그 대상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만나고, 조금 자라난 다음 이웃과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며, 그 후 결혼을 해서 아내와 남편이나 자녀들을 만나는 등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기쁨과 슬픔은 물론 괴로움을 겪으면서 성장해가는 것이다. 이 많은 만남들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주고, 우리의 내면세계를 형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모든 만남들이 긍정적인 영항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좋지 않은 대상은 우리 안에 좋지 않은 정신요소들을 형성시키고 우리 삶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유년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사랑의 결핍을 느꼈거나 과도한 사랑을 받았을 경우 자기방어적인 사람이 되거나 지극히 의존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신의 치료가 필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편안하게 느끼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끼거나 소외감을 느끼며 고통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유년시절의 잘못된 만남을 치유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이 필요하다. 그들이 유년시절 좋지 않은 대상의 영향으로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만 살피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유년시절 지나치게 요구가 많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들의 정신에너지를 부모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사용했던 것이 습관처럼 되어서, 성장한 다음에도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알지 못하고 자기실현에 집중시키지 못하여 결국 문제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G. 올프트는 성숙한 인간이란 "고유한 자아"를 찾은 사람이라고 주장하였고, C. G.융은 "개성화가 된 사람" 이라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타고난 본성을 찾아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우리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고유한 자아를 찾는 것이나 개성화가 되는 것이나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필요하고, 정신의 치료가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진정한 자신을 찾아서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지 않고,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마틴 부버는 자기 회복의 길을 '나'를 '그것'으로 만나지 않고 대화의 상대자인 '너'로 만나주는 존재를 만날 때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나'를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만나지 않고, 고유한 인격체인 '너'로 만나면서 '나' 자신을 인정해주는 존재를 통해서 사람들은 억압되어 있던 '나'를 발견하고, '나'를 찾아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버는 '나'를 '너'로 제일 처음 만나주는 이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만이 '나'를 수단이나 도구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으로 만나주는 최초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부버의 이런 사상을 분석심리학자 C. G.융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 되는 것- 융의 용어로는 개성화가 되는 것- 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인 자기(Self)를 만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융에 의하면 사람들의 내면에는 매우 강력한 정신 에너지를 가진 정신요소인 자기가 들어있으며, 자기는 사람들의 모든 정신요소들을 통합하는데, 자기에게는 가장 그 사람다운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를 찾아서 살 때 사람들은 가장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자기에게는 가히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에너지가 들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를 체험할 때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강력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체험이나 '자기'의 체험은 현상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개성화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만남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개성화 과정을 위한 정신분석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따뜻한 만남을 체험하였고, 그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아서 내면에 있는 정신요소들이 건강한 경우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그런 사람들은 경직되어 있는 페르조나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친밀성(intimacy)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기쁨과 편안함과 사랑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과 불안함과 미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대인관계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인간이 경험하는 다양한 정서는 서로 밀접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자신에 대한 이해, 다양한 인간의 만남에 대한 것으로 효과적 자기표현 방법을 통해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과 자신의 통합을 이루어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인간의 행동이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으려는 욕망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삶 속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주요한 과제는 함께 살아가야 할 여러 영역의 사람들과 불필요한 갈등 없이 친밀하고 협동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즉 삶의 문제는 인간의 만남의 문제로 귀착되는 것이다. 결국에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만남의 확대된 차원은 하나님과 만남이며, 자아와 자기의 만남이다. 이 만남은 위해 통합된 인격의 전일을 이루어가는데 심리학은 도움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인간관계의 차원에서 치유 목적이 이루어지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무의식을 다루면서 기독교에서 목회자들이 사람들과 하나님을 만나도록 중재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남의 관계를 통해서 사람들은 인간 실존의 왜곡 상을 극복하고, 그 것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은 인간의 삶에 있는 여러 가지 모순 된 것들을 수용하고, 끌어안을 수 있도록 성숙 되어야 한다. 그것이 융이 주장하는 자기실현이며 그것은 무의식의 내용들을 분화시키고 통합하여 전일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 통합은 온전성을 이루는 것이며 통합이 되는 것이다. 융은 개성화란 정신치료의 목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개성화란 사람들이 본래부터 타고난 자기 자신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성화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아의 안목을 넓힐 수 있으며, 무의식적인 상태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기를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바꿔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실현과 인간의 회복으로 나가는 길이며 진정한 만남은 실존적 상황에서 다가오는 좌절과 아픔을 극복하게 하고 상실되었던 인간성을 회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본 연구는 인간의 내면의 심오한 깊이를 탐색하였으며, 만남이란 궁극적인 존재의미를 제공하는 삶의 목표와 창조적 가치를 발견하는 도구가 되고, 자아실헌으로까지 이끌어 줄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라는 사실을 밝히려고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대상들을 만나며, 그 대상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만나고, 조금 자라난 다음 이웃과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며, 그 후 결혼을 해서 아내와 남편이나 자녀들을 만나는 등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기쁨과 슬픔은 물론 괴로움을 겪으면서 성장해가는 것이다. 이 많은 만남들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주고, 우리의 내면세계를 형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모든 만남들이 긍정적인 영항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좋지 않은 대상은 우리 안에 좋지 않은 정신요소들을 형성시키고 우리 삶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유년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사랑의 결핍을 느꼈거나 과도한 사랑을 받았을 경우 자기방어적인 사람이 되거나 지극히 의존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신의 치료가 필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편안하게 느끼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끼거나 소외감을 느끼며 고통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유년시절의 잘못된 만남을 치유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이 필요하다. 그들이 유년시절 좋지 않은 대상의 영향으로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만 살피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유년시절 지나치게 요구가 많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들의 정신에너지를 부모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사용했던 것이 습관처럼 되어서, 성장한 다음에도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알지 못하고 자기실현에 집중시키지 못하여 결국 문제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G. 올프트는 성숙한 인간이란 "고유한 자아"를 찾은 사람이라고 주장하였고, C. G.융은 "개성화가 된 사람" 이라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타고난 본성을 찾아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우리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고유한 자아를 찾는 것이나 개성화가 되는 것이나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필요하고, 정신의 치료가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진정한 자신을 찾아서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지 않고,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마틴 부버는 자기 회복의 길을 '나'를 '그것'으로 만나지 않고 대화의 상대자인 '너'로 만나주는 존재를 만날 때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나'를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만나지 않고, 고유한 인격체인 '너'로 만나면서 '나' 자신을 인정해주는 존재를 통해서 사람들은 억압되어 있던 '나'를 발견하고, '나'를 찾아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버는 '나'를 '너'로 제일 처음 만나주는 이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만이 '나'를 수단이나 도구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으로 만나주는 최초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부버의 이런 사상을 분석심리학자 C. G.융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 되는 것- 융의 용어로는 개성화가 되는 것- 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인 자기(Self)를 만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융에 의하면 사람들의 내면에는 매우 강력한 정신 에너지를 가진 정신요소인 자기가 들어있으며, 자기는 사람들의 모든 정신요소들을 통합하는데, 자기에게는 가장 그 사람다운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를 찾아서 살 때 사람들은 가장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자기에게는 가히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에너지가 들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를 체험할 때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강력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체험이나 '자기'의 체험은 현상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개성화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만남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개성화 과정을 위한 정신분석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따뜻한 만남을 체험하였고, 그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아서 내면에 있는 정신요소들이 건강한 경우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그런 사람들은 경직되어 있는 페르조나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친밀성(intimacy)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기쁨과 편안함과 사랑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과 불안함과 미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대인관계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인간이 경험하는 다양한 정서는 서로 밀접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자신에 대한 이해, 다양한 인간의 만남에 대한 것으로 효과적 자기표현 방법을 통해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과 자신의 통합을 이루어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인간의 행동이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으려는 욕망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삶 속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주요한 과제는 함께 살아가야 할 여러 영역의 사람들과 불필요한 갈등 없이 친밀하고 협동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즉 삶의 문제는 인간의 만남의 문제로 귀착되는 것이다. 결국에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만남의 확대된 차원은 하나님과 만남이며, 자아와 자기의 만남이다. 이 만남은 위해 통합된 인격의 전일을 이루어가는데 심리학은 도움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인간관계의 차원에서 치유 목적이 이루어지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무의식을 다루면서 기독교에서 목회자들이 사람들과 하나님을 만나도록 중재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남의 관계를 통해서 사람들은 인간 실존의 왜곡 상을 극복하고, 그 것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은 인간의 삶에 있는 여러 가지 모순 된 것들을 수용하고, 끌어안을 수 있도록 성숙 되어야 한다. 그것이 융이 주장하는 자기실현이며 그것은 무의식의 내용들을 분화시키고 통합하여 전일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 통합은 온전성을 이루는 것이며 통합이 되는 것이다. 융은 개성화란 정신치료의 목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개성화란 사람들이 본래부터 타고난 자기 자신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성화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아의 안목을 넓힐 수 있으며, 무의식적인 상태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기를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바꿔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실현과 인간의 회복으로 나가는 길이며 진정한 만남은 실존적 상황에서 다가오는 좌절과 아픔을 극복하게 하고 상실되었던 인간성을 회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본 연구는 인간의 내면의 심오한 깊이를 탐색하였으며, 만남이란 궁극적인 존재의미를 제공하는 삶의 목표와 창조적 가치를 발견하는 도구가 되고, 자아실헌으로까지 이끌어 줄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라는 사실을 밝히려고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 AI-Helper는 부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