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 사역'의 관계에 대한 연구 : '구원의 서정' 안에서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중심으로 (A) Stud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nion with Christ'and the 'Work of the Holy Spirit' : Focused on 'Mystical Union with Christ' in the 'Ordo Salutis'원문보기
본 논문은 ‘개혁파’의 구원론을 중심으로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와 알미니안파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 사역’의 ‘관계’에 대한 교리를 비교하여,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서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의 ‘성찬중시교리’와 알미니안파의 ‘신인협동교리’ 등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하여 개혁파가 주장하는 ‘구원의 서정’ 교리만이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는「성경」적인 교리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창세전에 작정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말씀(복음)에로의 초청’으로 구원이 시작된다. ‘성령의 단독 사역’(Work of the Holy ...
본 논문은 ‘개혁파’의 구원론을 중심으로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와 알미니안파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 사역’의 ‘관계’에 대한 교리를 비교하여,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서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의 ‘성찬중시교리’와 알미니안파의 ‘신인협동교리’ 등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하여 개혁파가 주장하는 ‘구원의 서정’ 교리만이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는「성경」적인 교리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창세전에 작정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말씀(복음)에로의 초청’으로 구원이 시작된다. ‘성령의 단독 사역’(Work of the Holy Spiritalone)으로 소명, 중생, 회심, ‘믿음’이 주어지며, 그 믿음에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Mystical Union with Christ)'이 적용되어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와 같은 성도의 완전한 구원이 성취된다. 이러한 ‘구원의 서정’ 전체 순서에서 ‘성령의 주권적 사역’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개혁파의 구원교리는 구원의 확실성이 있다. 이러한 교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목회 현장에 적용하여 교회의 부흥과 성도의 실제적인 삶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1. 로마 가토릭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로마 가토릭파는 구원을 ‘교회’에서부터 시작한다. 교회의 전승(傳承)과 ‘성경(복음)’, 하나님과 사제를 동일하게 생각하여 교회가 성령이고 사제가 ‘또 다른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사제의 ‘성례’(세례·성찬)와 연옥미사가 구원의 방편이다. ‘성령의 사역’을 무시하는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의 서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단계 ‘충족은혜(로마 가토릭 지식 습득), 2단계 사제의 ’세례(중생)‘인 ‘주입은혜·상존은혜(성체성사)’로 ‘칭의’함을 받는다. 제3단계 ‘협력은혜(선행공로)’는 ‘조력은총’이라고도 하며, 회심(고해 성사)·소명·영화를 ‘만족’이라고도 한다. 로마 가토릭파는 전 구속 적용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핵심으로 ‘세례·성찬미사’에 의한 중생·칭의 교리를 꼽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이라는 필수불가결한 구원의 역사를 받으려면, 오직 사제가 베푸는 충족은혜(세례)와 주입은혜(성체성사)를 받는 길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2006년에 “칭의는 인간(사제)의 공로를 포함한다.”고 신문과 기독교TV를 통하여 발표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 교리를 신학적 검증 없이 수용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은 ‘성도의 구속’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허상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성경」을 가감하여, 로마 카톨릭파의 교리인 ‘교황무오설’과 사제의 ‘세례·성찬교리’가 필수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로마 가토릭파 교리를 성도의 삶속에 적용한다면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성화)’의 삶을 살기보다는 미사에 참석하고, 사제들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에 치중하고 우상을 숭배하여 ‘구원의 확신’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의 서정’ 교리는 목회와 성도의 삶 속에 ‘성령의 사역’에 의한 구원을 적용할 수 없으며, 성찬교리와 ‘신인협동교리’로서 교조주의적 체제만 농후하다는 비판을 계속하여 받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세례·성찬’에 의한 ‘공로주의교리’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은혜의 복음과 십자가 수난이, 사제에 의하여 차단됨으로써 성령이 동인(動因)이 된 ‘성령의 주권적 사역’과 그로인한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도깨비신학’이다. 개혁파 입장에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성령의 ‘중생’하게 하시는 역사를 필요로 한다. 2. 루터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루터파는 창세전의 구속사역은 말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사람이 노력을 다하여 그 은혜를 잡는 것이 ‘소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세례를 통하여 ‘중생’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루터는 ‘노예의지’를 지닌 인간 편에서 본 ‘신앙’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구원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인간의 ‘협동작용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루터파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서 창세전의 하나님의 작정사역과 그리스도와의 구속언약, 성령의 주권적 사역과 ’복음에로의 초청을 생략한다. 그리고 소명→조명→회심→중생‧신앙→칭의→신비적 연합→갱신→보존으로 구별한다. 구원의 순서에서 소명→조명→회심→중생‧신앙→칭의 까지는 사람의 노력과 교회의 세례, 사람의 의지에 의한 ‘믿음’과 선행에 의한 칭의가 주어지며, ‘칭의’ 이후에 ‘신인협동’으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Mystical Union with Christ)’을 하고 ‘갱신’되어 ‘하나님의 형상(εἰκῲν τοῡ θεοῡ)’을 갖는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보존’은 영생을 보증하는 단계인데, 성도의 신앙생활의 상태에 따라 성도가 소유한 구원을 잃을 수도 있고 보전할 수도 있다. 루터파의 구원론에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강조하는 장점이 있으나, 로마 가토릭파처럼 ‘세례·성찬’에 의한 ‘중생’을 주장하고, 사람의 의지에 의한 믿음과 선행으로 ‘칭의’를 이루게 한다고 하므로 성경적이지 못하다. 이들은 사람의 신앙이 ‘칭의’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룬다는 견해 때문에, ‘유효적 소명’부터 그리스도의 충족성·확실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인간의 ‘공로(功勞)’에 의한 ‘칭의’와 ‘신비적 연합’을 강조한다. 또한 루터파는 ‘회심’을 ‘신앙’과 분리시키고 이 둘을 별개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개혁파의 입장에서 ‘회심’과 ‘신앙’ 등 모든 ‘구원의 순서’는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논리적인 구원의 적용 순서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수양’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수양’을 목회와 성도의 삶 속에 적용하지 않는 큰 문제점이 있다. 이들은 ‘성도의 견인’을 기각하면서도 성도의 ‘선행’에 의한 구원의 확신은 인정한다. 그러나 ‘성도의 견인’이 없는 구원 교리는 논리적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보존’이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루터파의 구원 교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하여 인간의 ‘노예의지’와 ‘가항적 은혜’를 주장하므로 ‘구원의 확실성’이 없으며,「성경」에 계시되어 있는바 창세전의 구속사역에 대한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 결여되었고, ‘수양’과 ‘견인’과 ‘영화’, 천국소망이 결여된 ‘신인협동’교리는 목회와 성도의 바른 삶 속에 구원을 적용할 수 없는 예비적 수준의 구원론이다. 3. 알미니안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알미니안의 의미는 하나님은 항상 사람을 구속하려 하시지만 사람이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구속 섭리에 항거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미니안파가 주장하는 ‘구원의 서정’은 그리스도의 선행은총으로 모든 인간이 원죄가 없는 상태에서 소명→회개·신앙→칭의→중생→성화→견인으로 구별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충족적 은혜’로 시작하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인간의 협력 작용으로 성취되는 것이라고 하며, ‘그리스도와의 연합’ 관계는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 아니라 인간의 전횡적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알미니안파의 인간론 중심의 ‘신인협동교리’는 성도에게 ‘구원의 확실성’을 주지 못한다. ‘신앙’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따로 독립시키고, 성도의 ‘구원’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서 인본주의적 ‘신앙’을 구성하고 있으며, 성도의 의지로 ‘신앙’의 은혜를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성도의 삶에 ‘성령의 단독사역’에 의한 ‘신앙’과 완전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적용할 수 없다. 실제 예를 들어보면 교회 역사상 가장 열정적인 목회자중의 한사람이었던 18세기 영국의 감리교 웨슬레 목사는 일만 명 출석 초대형 교회를 영국의 각 도시 마다 세우고 ‘나의 교구는 세계다!’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유럽과 미국과 한국에 까지 감리교회를 전파했지만 그가 소천한지 200년 만에 그가 세운 영국의 일만 명 교회는 하나도 없이 사라졌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영국의 노예제도를 성경적이 아니라며 반대했고 술과 도박을 금지하도록 노력했으며, 복음전도를 하다 고난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지만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교회의 몰락과 함께 그가 세운 사회적 공로마저 빛을 바랬다. 양차 세계대전 후 그의 신인협동의 교리는 이제 다시는 성도의 삶에 올바른 ‘신앙’을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알미니안파의 자유의지와 ‘신인협동교리’에 영향을 받아 펠라기우스주의와 반(半)펠라기우스주의로 회귀한 자유주의 신학자 쉴라이에르마허와 그의 영향을 받은 신정통주의자 칼 바르트와 실존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중심의 신학자로서,「성경」은 ‘신화’라는 공통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쉴라이에르마허는 ‘「성경」과 교회의 필연성’을 뒤집어 교회에서 성경말씀이 나왔다고 주장함으로써 로마 가토릭 교회의 ‘교황무오설’을 지지하였다. 그는 ‘그리스도 안의’ 인격적 ‘좌소’가 아닌 몰아지경(엑스터시)의 ‘종교 감정상태’를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인간의 전횡적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과 인간의 ‘원죄’를 부인한다. 따라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객관적 구원 사역과 이천년 전에 십자가 수난을 받은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는 오늘날의 나의 실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다. 자아충족적인 개념에 기초한 이들의 구원의 관심은 오직 인간예수와 도덕적 연합만 존재하는 것이다.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헤겔, 파스칼, 부버 등은 인간의 ‘자아 충족적 원리’에 기초하여 신학적 인간론을 말한다. 한편 초교파연합단체인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는 ‘성령의 주권적 사역’을 생략하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가르치고 나서, ‘성령수여의 두 단계’ 이론을 가르치고 우리가 믿음으로 성령 충만을 체험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우리는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각자의 초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과,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약속하신 풍성하고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고 가르치는 것이 그러하다. C.C.C에서는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 의한 성경말씀을 믿는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적용받는다. ‘성령충만’한 생활의 비결을 발견 한다 등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요약정리하면 개혁파입장에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협력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알미니안파의 교리는 ‘성령의 세속적 내재론’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 결과 ‘성령의 단독사역’으로 주어지는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되는 완전한 구원은 인정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노력과 믿음에 의한 ‘신인협동론’을 주장한다. 알미니안파의 영향을 받아 펠라기우스주의와 반(半)펠라기우스주의로 회귀해버린 ‘자유주의’자들에게는 ‘합리적·도덕적·감정적인 ‘그리스도와의 연합’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이들의 인간론 중심의 신학에서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 의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주는 칼빈주의 신학과 개혁파교회로 모여야 한다는 절대적인 목회 교훈을 얻는다. 4. 개혁파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scriptura scripturam interpretatur).’는 입장에 서있는 개혁파의 ‘구원의 서정’교리는 신론, 인죄론, 기독론, 성령론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속 적용을 시작하는 특별한 행위 주체이고 그리스도는 ‘구원의 충족성’을 주는 구원의 중심이다. 성령은 구원의 주권적 사역을 담당하는 요소이다. 개혁파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기초를 둔 ‘은혜의 교리’이므로 ‘구원의 확실성’이 있다. 창세전에 예정된 성도의 객관적인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그리스도의 구속은혜’와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사실은「성경」이 증언하며 또 가르친다(에베소서 1장 1-14절).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증언하며,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은혜는 모든 것에 선행한다고 가르친다. 존 칼빈은 그의 저서「첫 번째 교리문답주석」과「성경주석」과「기독교강요」에서 ‘성령의 단독사역’으로 ‘믿음’이 주어지며,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성도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된다. 성도의 주관적인 ‘구원의 서정’에서 ‘성도의 조력’은 전혀 필요하지 않으므로 ‘구원의 확실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미국의 칼빈주의 신학자 A. A. 하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신비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긴밀(緊密)한 관계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성도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나 결과적으로 성도들에게 새 생명의 부활처럼 모두 지상적(地上的)관계의 유추(類推)를 초월하는 ‘성령의 단독사역’에 의한 구원이기 때문이라고 진술한다. 이렇게 볼 때 바울과 어거스틴, 칼빈과 모든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사역이 적용된다는 견해를 지닌다. ‘구원의 서정’에서 시간적인 의미보다 동시다발적인 경험이며, 논리적 순서인 ‘소명’과 ‘중생’과 ‘회심’과 ‘믿음’과 ‘칭의’와 ‘수양’과 ‘성화’와 ‘성도의 견인’과 ‘영화’까지 구원의 각 단계마다 ‘성령의 단독사역’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되어 성도에게 ‘구원의 확신’을 준다. ‘그리스도 밖에서’(에베소서 2장 3절), 그리스도 없는 ‘믿음’이 어디 있겠는가? ‘구원의 서정’에서 개혁파교리를 요약정리하면 칼빈은 객관적인 ‘삼위일체 하나님’ 관점에서 구원을 이해했으며, ‘성령의 단독 사역’으로 주어지는 ‘믿음’과 그 믿음으로 인해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되어 완전한 연합이 성취되는 관계를 가르쳤다. ‘성령의 단독사역’은 ‘구원의 서정’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유효적 소명’을 주며, 논리적으로 구원의 전 순서를 포괄하여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의 적용을 가능하게 하여 구원을 준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구속사역인 하나님의 ‘창세전(創世前)의 작정’을 강조하였다(에베소서 1장 3, 4절). 둘째,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구속사역을 통하여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들과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였다(요한복음 3장 16절). 셋째, ‘성령의 단독사역’과 구속사역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었다. 넷째, ‘믿음’으로 구원 받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천국소망을 갖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세상에서 성령의 ‘견인’을 받는 기도와 간구로서 이 세상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5. 결론 및 제언 바울과 어거스틴, 칼빈과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의 구원사역이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복음에로의 초청’으로 시작되는 성도의 구원은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다. 주관적인 ‘구원의 서정’에서 ‘소명’과 ‘중생’과 ‘회심’과 ‘믿음’과 ‘칭의’와 ‘수양’과 ‘성화’와 ‘성도의 견인’과 ‘영화’의 각 단계는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구원의 동시다발적이고, ‘논리적인 경험의 순서’를 의미하며, 성도에게 ‘구원의 확신’을 준다.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의 ‘성례·공로주의’와 알미니안파의 ‘신인협동’교리는 모두 사상의 ‘합리주의’로서 타락한 인간이 신인협력을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의 구원론은 모두 ‘그리스도 충족성’을 상실한 도덕적 구원의 공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실존주의 신학은 개혁파의 교리와 정반대 입장이다. ‘삼위일체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부정하는 이들은 인간의 ‘자아 충족적 원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나오는 줄 믿는다. 이러한 인본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을 모두 합하여 비유하면, 공전하는 태양이 멈추어도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는 진리를 모르고, 참 빛과 거울에 반사된 빛의 차이를 모르듯이, 창조주의 지혜와 의(Justification)와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주신 지혜와 의의 차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이 땅 위에서 낙원(樂園)이 나오는 줄 믿는다. 저 강 건너 초자연적 질서가 있는 세계를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개혁파의 ‘성령의 단독사역(Work of the Holy Spirit alone)'으로 주어지는 ‘믿음’과 그 믿음에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Mystical Union with Christ)이 적용되어 성도의 완전한 구원이 성취된다는 성경적인 구원 교리를 겸허하게 수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충족성’으로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타락한 인간이 성령과 협력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성령의 세속적 내재론’과 ‘신인협동교리’로 신앙의 ‘합리주의자’들이 되어 ‘성령의 사역’에 의한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성도의 견인’과 기도의 확신이 결여되었다. 그리스도는 모두가 다 하나가 되도록 오신 것이므로(요한복음 17장 21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주는 개혁파교회를 세계로 전파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을 한 성도는 광야 같은 나그네 길에서, ‘성도의 견인’을 받아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보호하심(기도응답)을 받으며, 교회는 예배와 설교와 기도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며, 가난과 무지와 외침과 신분차별과 남북분단으로 한이 맺힌 이민족을 위해 성령의 바람으로 위로를 하고, 세계만방의 모든 문제들, 곧 에큐메니칼운동, 진화론(이사야 44장 2절), 신학과 철학과 교육과 모든 문화에서의 자충족성 원리, 인권문제, 석유문제, 환경문제, 재난 등을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실례를 들어 대한민국에 2006년 7월 24일(월) 전후로 발생한 장마폭우에 14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2조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당했다. 이러한 재난과 위기의 때야말로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통성기도를 할 때가 아니겠는가? ‘물에 빠진 사람은 헬프 미!(사람 살려!)한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의 영혼과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헬프 미!(사람 살려!) 기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과 몸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도록 ‘믿음’을 준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 우리는 성경적인 개혁파의 교리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개혁파’의 구원론을 중심으로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와 알미니안파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 사역’의 ‘관계’에 대한 교리를 비교하여,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서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의 ‘성찬중시교리’와 알미니안파의 ‘신인협동교리’ 등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하여 개혁파가 주장하는 ‘구원의 서정’ 교리만이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는「성경」적인 교리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창세전에 작정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말씀(복음)에로의 초청’으로 구원이 시작된다. ‘성령의 단독 사역’(Work of the Holy Spirit alone)으로 소명, 중생, 회심, ‘믿음’이 주어지며, 그 믿음에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Mystical Union with Christ)'이 적용되어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와 같은 성도의 완전한 구원이 성취된다. 이러한 ‘구원의 서정’ 전체 순서에서 ‘성령의 주권적 사역’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개혁파의 구원교리는 구원의 확실성이 있다. 이러한 교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목회 현장에 적용하여 교회의 부흥과 성도의 실제적인 삶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1. 로마 가토릭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로마 가토릭파는 구원을 ‘교회’에서부터 시작한다. 교회의 전승(傳承)과 ‘성경(복음)’, 하나님과 사제를 동일하게 생각하여 교회가 성령이고 사제가 ‘또 다른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사제의 ‘성례’(세례·성찬)와 연옥미사가 구원의 방편이다. ‘성령의 사역’을 무시하는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의 서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단계 ‘충족은혜(로마 가토릭 지식 습득), 2단계 사제의 ’세례(중생)‘인 ‘주입은혜·상존은혜(성체성사)’로 ‘칭의’함을 받는다. 제3단계 ‘협력은혜(선행공로)’는 ‘조력은총’이라고도 하며, 회심(고해 성사)·소명·영화를 ‘만족’이라고도 한다. 로마 가토릭파는 전 구속 적용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핵심으로 ‘세례·성찬미사’에 의한 중생·칭의 교리를 꼽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이라는 필수불가결한 구원의 역사를 받으려면, 오직 사제가 베푸는 충족은혜(세례)와 주입은혜(성체성사)를 받는 길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2006년에 “칭의는 인간(사제)의 공로를 포함한다.”고 신문과 기독교TV를 통하여 발표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 교리를 신학적 검증 없이 수용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은 ‘성도의 구속’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허상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성경」을 가감하여, 로마 카톨릭파의 교리인 ‘교황무오설’과 사제의 ‘세례·성찬교리’가 필수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로마 가토릭파 교리를 성도의 삶속에 적용한다면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성화)’의 삶을 살기보다는 미사에 참석하고, 사제들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에 치중하고 우상을 숭배하여 ‘구원의 확신’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의 서정’ 교리는 목회와 성도의 삶 속에 ‘성령의 사역’에 의한 구원을 적용할 수 없으며, 성찬교리와 ‘신인협동교리’로서 교조주의적 체제만 농후하다는 비판을 계속하여 받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세례·성찬’에 의한 ‘공로주의교리’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은혜의 복음과 십자가 수난이, 사제에 의하여 차단됨으로써 성령이 동인(動因)이 된 ‘성령의 주권적 사역’과 그로인한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도깨비신학’이다. 개혁파 입장에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성령의 ‘중생’하게 하시는 역사를 필요로 한다. 2. 루터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루터파는 창세전의 구속사역은 말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사람이 노력을 다하여 그 은혜를 잡는 것이 ‘소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세례를 통하여 ‘중생’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루터는 ‘노예의지’를 지닌 인간 편에서 본 ‘신앙’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구원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인간의 ‘협동작용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루터파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서 창세전의 하나님의 작정사역과 그리스도와의 구속언약, 성령의 주권적 사역과 ’복음에로의 초청을 생략한다. 그리고 소명→조명→회심→중생‧신앙→칭의→신비적 연합→갱신→보존으로 구별한다. 구원의 순서에서 소명→조명→회심→중생‧신앙→칭의 까지는 사람의 노력과 교회의 세례, 사람의 의지에 의한 ‘믿음’과 선행에 의한 칭의가 주어지며, ‘칭의’ 이후에 ‘신인협동’으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Mystical Union with Christ)’을 하고 ‘갱신’되어 ‘하나님의 형상(εἰκῲν τοῡ θεοῡ)’을 갖는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보존’은 영생을 보증하는 단계인데, 성도의 신앙생활의 상태에 따라 성도가 소유한 구원을 잃을 수도 있고 보전할 수도 있다. 루터파의 구원론에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강조하는 장점이 있으나, 로마 가토릭파처럼 ‘세례·성찬’에 의한 ‘중생’을 주장하고, 사람의 의지에 의한 믿음과 선행으로 ‘칭의’를 이루게 한다고 하므로 성경적이지 못하다. 이들은 사람의 신앙이 ‘칭의’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룬다는 견해 때문에, ‘유효적 소명’부터 그리스도의 충족성·확실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인간의 ‘공로(功勞)’에 의한 ‘칭의’와 ‘신비적 연합’을 강조한다. 또한 루터파는 ‘회심’을 ‘신앙’과 분리시키고 이 둘을 별개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개혁파의 입장에서 ‘회심’과 ‘신앙’ 등 모든 ‘구원의 순서’는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논리적인 구원의 적용 순서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수양’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수양’을 목회와 성도의 삶 속에 적용하지 않는 큰 문제점이 있다. 이들은 ‘성도의 견인’을 기각하면서도 성도의 ‘선행’에 의한 구원의 확신은 인정한다. 그러나 ‘성도의 견인’이 없는 구원 교리는 논리적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보존’이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루터파의 구원 교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하여 인간의 ‘노예의지’와 ‘가항적 은혜’를 주장하므로 ‘구원의 확실성’이 없으며,「성경」에 계시되어 있는바 창세전의 구속사역에 대한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 결여되었고, ‘수양’과 ‘견인’과 ‘영화’, 천국소망이 결여된 ‘신인협동’교리는 목회와 성도의 바른 삶 속에 구원을 적용할 수 없는 예비적 수준의 구원론이다. 3. 알미니안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알미니안의 의미는 하나님은 항상 사람을 구속하려 하시지만 사람이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구속 섭리에 항거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미니안파가 주장하는 ‘구원의 서정’은 그리스도의 선행은총으로 모든 인간이 원죄가 없는 상태에서 소명→회개·신앙→칭의→중생→성화→견인으로 구별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충족적 은혜’로 시작하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인간의 협력 작용으로 성취되는 것이라고 하며, ‘그리스도와의 연합’ 관계는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 아니라 인간의 전횡적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알미니안파의 인간론 중심의 ‘신인협동교리’는 성도에게 ‘구원의 확실성’을 주지 못한다. ‘신앙’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따로 독립시키고, 성도의 ‘구원’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서 인본주의적 ‘신앙’을 구성하고 있으며, 성도의 의지로 ‘신앙’의 은혜를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성도의 삶에 ‘성령의 단독사역’에 의한 ‘신앙’과 완전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적용할 수 없다. 실제 예를 들어보면 교회 역사상 가장 열정적인 목회자중의 한사람이었던 18세기 영국의 감리교 웨슬레 목사는 일만 명 출석 초대형 교회를 영국의 각 도시 마다 세우고 ‘나의 교구는 세계다!’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유럽과 미국과 한국에 까지 감리교회를 전파했지만 그가 소천한지 200년 만에 그가 세운 영국의 일만 명 교회는 하나도 없이 사라졌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영국의 노예제도를 성경적이 아니라며 반대했고 술과 도박을 금지하도록 노력했으며, 복음전도를 하다 고난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지만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교회의 몰락과 함께 그가 세운 사회적 공로마저 빛을 바랬다. 양차 세계대전 후 그의 신인협동의 교리는 이제 다시는 성도의 삶에 올바른 ‘신앙’을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알미니안파의 자유의지와 ‘신인협동교리’에 영향을 받아 펠라기우스주의와 반(半)펠라기우스주의로 회귀한 자유주의 신학자 쉴라이에르마허와 그의 영향을 받은 신정통주의자 칼 바르트와 실존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중심의 신학자로서,「성경」은 ‘신화’라는 공통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쉴라이에르마허는 ‘「성경」과 교회의 필연성’을 뒤집어 교회에서 성경말씀이 나왔다고 주장함으로써 로마 가토릭 교회의 ‘교황무오설’을 지지하였다. 그는 ‘그리스도 안의’ 인격적 ‘좌소’가 아닌 몰아지경(엑스터시)의 ‘종교 감정상태’를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인간의 전횡적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과 인간의 ‘원죄’를 부인한다. 따라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객관적 구원 사역과 이천년 전에 십자가 수난을 받은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는 오늘날의 나의 실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다. 자아충족적인 개념에 기초한 이들의 구원의 관심은 오직 인간예수와 도덕적 연합만 존재하는 것이다.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헤겔, 파스칼, 부버 등은 인간의 ‘자아 충족적 원리’에 기초하여 신학적 인간론을 말한다. 한편 초교파연합단체인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는 ‘성령의 주권적 사역’을 생략하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가르치고 나서, ‘성령수여의 두 단계’ 이론을 가르치고 우리가 믿음으로 성령 충만을 체험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우리는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각자의 초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과,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약속하신 풍성하고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고 가르치는 것이 그러하다. C.C.C에서는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 의한 성경말씀을 믿는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적용받는다. ‘성령충만’한 생활의 비결을 발견 한다 등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요약정리하면 개혁파입장에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협력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알미니안파의 교리는 ‘성령의 세속적 내재론’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 결과 ‘성령의 단독사역’으로 주어지는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되는 완전한 구원은 인정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노력과 믿음에 의한 ‘신인협동론’을 주장한다. 알미니안파의 영향을 받아 펠라기우스주의와 반(半)펠라기우스주의로 회귀해버린 ‘자유주의’자들에게는 ‘합리적·도덕적·감정적인 ‘그리스도와의 연합’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이들의 인간론 중심의 신학에서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 의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주는 칼빈주의 신학과 개혁파교회로 모여야 한다는 절대적인 목회 교훈을 얻는다. 4. 개혁파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scriptura scripturam interpretatur).’는 입장에 서있는 개혁파의 ‘구원의 서정’교리는 신론, 인죄론, 기독론, 성령론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속 적용을 시작하는 특별한 행위 주체이고 그리스도는 ‘구원의 충족성’을 주는 구원의 중심이다. 성령은 구원의 주권적 사역을 담당하는 요소이다. 개혁파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기초를 둔 ‘은혜의 교리’이므로 ‘구원의 확실성’이 있다. 창세전에 예정된 성도의 객관적인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그리스도의 구속은혜’와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사실은「성경」이 증언하며 또 가르친다(에베소서 1장 1-14절).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증언하며,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은혜는 모든 것에 선행한다고 가르친다. 존 칼빈은 그의 저서「첫 번째 교리문답주석」과「성경주석」과「기독교강요」에서 ‘성령의 단독사역’으로 ‘믿음’이 주어지며,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성도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된다. 성도의 주관적인 ‘구원의 서정’에서 ‘성도의 조력’은 전혀 필요하지 않으므로 ‘구원의 확실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미국의 칼빈주의 신학자 A. A. 하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신비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긴밀(緊密)한 관계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성도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나 결과적으로 성도들에게 새 생명의 부활처럼 모두 지상적(地上的)관계의 유추(類推)를 초월하는 ‘성령의 단독사역’에 의한 구원이기 때문이라고 진술한다. 이렇게 볼 때 바울과 어거스틴, 칼빈과 모든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사역이 적용된다는 견해를 지닌다. ‘구원의 서정’에서 시간적인 의미보다 동시다발적인 경험이며, 논리적 순서인 ‘소명’과 ‘중생’과 ‘회심’과 ‘믿음’과 ‘칭의’와 ‘수양’과 ‘성화’와 ‘성도의 견인’과 ‘영화’까지 구원의 각 단계마다 ‘성령의 단독사역’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되어 성도에게 ‘구원의 확신’을 준다. ‘그리스도 밖에서’(에베소서 2장 3절), 그리스도 없는 ‘믿음’이 어디 있겠는가? ‘구원의 서정’에서 개혁파교리를 요약정리하면 칼빈은 객관적인 ‘삼위일체 하나님’ 관점에서 구원을 이해했으며, ‘성령의 단독 사역’으로 주어지는 ‘믿음’과 그 믿음으로 인해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되어 완전한 연합이 성취되는 관계를 가르쳤다. ‘성령의 단독사역’은 ‘구원의 서정’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유효적 소명’을 주며, 논리적으로 구원의 전 순서를 포괄하여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의 적용을 가능하게 하여 구원을 준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구속사역인 하나님의 ‘창세전(創世前)의 작정’을 강조하였다(에베소서 1장 3, 4절). 둘째,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구속사역을 통하여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들과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였다(요한복음 3장 16절). 셋째, ‘성령의 단독사역’과 구속사역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었다. 넷째, ‘믿음’으로 구원 받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천국소망을 갖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세상에서 성령의 ‘견인’을 받는 기도와 간구로서 이 세상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5. 결론 및 제언 바울과 어거스틴, 칼빈과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의 구원사역이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복음에로의 초청’으로 시작되는 성도의 구원은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다. 주관적인 ‘구원의 서정’에서 ‘소명’과 ‘중생’과 ‘회심’과 ‘믿음’과 ‘칭의’와 ‘수양’과 ‘성화’와 ‘성도의 견인’과 ‘영화’의 각 단계는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구원의 동시다발적이고, ‘논리적인 경험의 순서’를 의미하며, 성도에게 ‘구원의 확신’을 준다.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의 ‘성례·공로주의’와 알미니안파의 ‘신인협동’교리는 모두 사상의 ‘합리주의’로서 타락한 인간이 신인협력을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의 구원론은 모두 ‘그리스도 충족성’을 상실한 도덕적 구원의 공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실존주의 신학은 개혁파의 교리와 정반대 입장이다. ‘삼위일체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부정하는 이들은 인간의 ‘자아 충족적 원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나오는 줄 믿는다. 이러한 인본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을 모두 합하여 비유하면, 공전하는 태양이 멈추어도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는 진리를 모르고, 참 빛과 거울에 반사된 빛의 차이를 모르듯이, 창조주의 지혜와 의(Justification)와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주신 지혜와 의의 차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이 땅 위에서 낙원(樂園)이 나오는 줄 믿는다. 저 강 건너 초자연적 질서가 있는 세계를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개혁파의 ‘성령의 단독사역(Work of the Holy Spirit alone)'으로 주어지는 ‘믿음’과 그 믿음에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Mystical Union with Christ)이 적용되어 성도의 완전한 구원이 성취된다는 성경적인 구원 교리를 겸허하게 수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충족성’으로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타락한 인간이 성령과 협력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성령의 세속적 내재론’과 ‘신인협동교리’로 신앙의 ‘합리주의자’들이 되어 ‘성령의 사역’에 의한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성도의 견인’과 기도의 확신이 결여되었다. 그리스도는 모두가 다 하나가 되도록 오신 것이므로(요한복음 17장 21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주는 개혁파교회를 세계로 전파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을 한 성도는 광야 같은 나그네 길에서, ‘성도의 견인’을 받아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보호하심(기도응답)을 받으며, 교회는 예배와 설교와 기도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며, 가난과 무지와 외침과 신분차별과 남북분단으로 한이 맺힌 이민족을 위해 성령의 바람으로 위로를 하고, 세계만방의 모든 문제들, 곧 에큐메니칼운동, 진화론(이사야 44장 2절), 신학과 철학과 교육과 모든 문화에서의 자충족성 원리, 인권문제, 석유문제, 환경문제, 재난 등을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실례를 들어 대한민국에 2006년 7월 24일(월) 전후로 발생한 장마폭우에 14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2조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당했다. 이러한 재난과 위기의 때야말로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통성기도를 할 때가 아니겠는가? ‘물에 빠진 사람은 헬프 미!(사람 살려!)한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의 영혼과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헬프 미!(사람 살려!) 기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과 몸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도록 ‘믿음’을 준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 우리는 성경적인 개혁파의 교리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This dissertation is a study focusing on the soteriology of reformed theology in a comparative and critical view concerning the relationship of Roman Catholicism, Lutheran and Arminianism with the study of the 'Union with Christ' and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he Roman Catholic Church bases its...
This dissertation is a study focusing on the soteriology of reformed theology in a comparative and critical view concerning the relationship of Roman Catholicism, Lutheran and Arminianism with the study of the 'Union with Christ' and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he Roman Catholic Church bases its Faith on the doctrine of salvation. Roman Catholicism emphasizes their soteriology by focusing on sacramentism rather than the Holy Scripture.(The Holy Spirit is emphasized through sacramentism since the Holy Spirit is "the only efficient agent in the application of redemption"). The main role of the Holy Spirit in the process of our salvation is to make us one with Christ. Having examined the concepts behind the 'Union with Christ', the next step is to study what the Bible has to say concerning the actual union between Christ and his people during the course of history. This union underlies and makes the entire process of salvation possible. Throughout this process we are only saved in Christ and b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he following steps outline the process of our salvation: Firstly, we are initially united with Christ in the 'calling' and 'regeneration'. Secondly, we appropriate and continue to live out of this Union through 'Faith' and 'conversion'. Thirdly, we are 'justified' in Union with Christ. Fourthly, we are 'sanctified' through Union with Christ. Fifthly, we persevere in the life of 'Faith' in Union with Christ. Sixthly, we are even said to die in Christ. Seventhly, we shall be raised with Christ. Eighthly, we shall be eternally 'glorified' with Christ. Ninthly, we shall ascend to heaven with Christ.
This dissertation is a study focusing on the soteriology of reformed theology in a comparative and critical view concerning the relationship of Roman Catholicism, Lutheran and Arminianism with the study of the 'Union with Christ' and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he Roman Catholic Church bases its Faith on the doctrine of salvation. Roman Catholicism emphasizes their soteriology by focusing on sacramentism rather than the Holy Scripture.(The Holy Spirit is emphasized through sacramentism since the Holy Spirit is "the only efficient agent in the application of redemption"). The main role of the Holy Spirit in the process of our salvation is to make us one with Christ. Having examined the concepts behind the 'Union with Christ', the next step is to study what the Bible has to say concerning the actual union between Christ and his people during the course of history. This union underlies and makes the entire process of salvation possible. Throughout this process we are only saved in Christ and b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he following steps outline the process of our salvation: Firstly, we are initially united with Christ in the 'calling' and 'regeneration'. Secondly, we appropriate and continue to live out of this Union through 'Faith' and 'conversion'. Thirdly, we are 'justified' in Union with Christ. Fourthly, we are 'sanctified' through Union with Christ. Fifthly, we persevere in the life of 'Faith' in Union with Christ. Sixthly, we are even said to die in Christ. Seventhly, we shall be raised with Christ. Eighthly, we shall be eternally 'glorified' with Christ. Ninthly, we shall ascend to heaven with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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