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및 그 제고를 위한 과제 한국교회는 대단히 풍부한 선교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선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교회의 선교자원들은 바르게 정렬되어 있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한국교회의 선교자원은 풍부하나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은 대단히 미약하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뿌리깊은 반공성과 사회성 결여, 그리고 분열상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형성된 에큐메니칼 진영이 성장하면서 1980년대와 그 후에 이르러 한반도 평화의 진전에 크게 기여한 바가 있지만, 기본적 선교 자원의 부족으로 한계에 다달아 있다. 오히려 대다수의 선교자원은 뿌리깊은 반공성으로 인해 한반도 평화실현의 과제에 있어 역행 양상을 보이고 있는 보수적 복음주의 진영에 축적되어 있다. 이 둘 사이의 분열관계가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제고를 위해서는 몇 가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양적 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보적인 교회는 양적 성장을 이루어야 하고, 한반도 평화 문제를 선교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으나 보수적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개교회 내에서 선교적 방향 전환을 이룸으로써 이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평화지향성과 평화 실현체로서의 사회적 공인을 얻어 내야 한다. 교회의 사회성을 보다 깊이 인식하고 민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선교활동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이룰 위해서는 선교신학적 방향전환이 있어야 한다. 기독교적 정체성만이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과 인류공동체척 정체성을 자각하고 아울러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간의 상호 인정과 협력을 통한 역량의 극대화가 요청되고 있다. 북한교회는 외견상 그 선교역량이 매우 미약하다. 교인의 수나 교회 지도자의 수 등 기본적인 선교자원이 대단히 빈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체주의 사회인 북한 체제의 특성상 종교의 자율성이 약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갈등 경험 안에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내면화되어 작용하고 있다. 북한사회 내에서의 역할 가능성이 매우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한계점이 북한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을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교회는 나름의 역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적대적인 여건 안에서도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 적응하면서 그 안에서의 생존을 이루어냈다. 또한 사회건설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기여를 함으로써 교회를 세우고 교회지도자를 길러낼 수 있을 정도로 운신의 폭을 넓힘으로써 향후의 발전기반을 마련해 놓았다. 그 과정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신앙형태를 창출함으로써, 세계교회 및 남한교회와의 관계맺기를 통해 한반도 평화선교에 참여하여 기여하는 정도의 역량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북한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제고를 위해서는 교회의 기본적인 선교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선은 체제 내에서의 위상을 강화함으로써 자율성을 보다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의 리더쉽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의 협력이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북한교회가 처해 있는 체제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또한 북한교회가 수행하는 통일전선체적 기능을 인정하고,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것에 협력해 주는 것은 매우 요긴한 일이 될 수 있다. 북한교회의 선교자원 확충을 위해 시급히 요청되는 목회적 신학적 지도력의 육성을 위한 인적 물적 지원과 교류도 매우 유효한 일이 될 것이다. 북한체제에서 북한교회는 남한 및 서방세계로 나아가는 접촉의 통로라는 통일전선체적 차원에서 가치를 갖는다. 그러므로 남한교회가 북한교회를 통하여 북한사회에 대한 접촉과 지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확대해 나감으로써 북한교회의 체제 내 위상을 보다 높여줄 수 있다. 또한 북한교회가 사회 내에서 기여할 기회가 많아짐으로써, 북한사회 내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이 불식되어지고 새로운 관계설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남한 교회는 북한교회의 지도력이 강화되도록 하기 위해 북한교회의 신학수준이 높아지도록 학문적 교류 및 신학교육 지원을 할 수 있다. 평양신학원에 신학서적들과 교육기자재들을 지원하고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신학교육 요원을 파송하거나 북한교회의 인재들이 남한 내의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성찬예전의 활용 가능성 이상과 같은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제고를 위한 과제들의 해결에 성찬이 활용될 수 있다. 선교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 성찬예전은 상징의 생산지로, 선교와 예배의 ...
1.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및 그 제고를 위한 과제 한국교회는 대단히 풍부한 선교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선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교회의 선교자원들은 바르게 정렬되어 있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한국교회의 선교자원은 풍부하나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은 대단히 미약하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뿌리깊은 반공성과 사회성 결여, 그리고 분열상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형성된 에큐메니칼 진영이 성장하면서 1980년대와 그 후에 이르러 한반도 평화의 진전에 크게 기여한 바가 있지만, 기본적 선교 자원의 부족으로 한계에 다달아 있다. 오히려 대다수의 선교자원은 뿌리깊은 반공성으로 인해 한반도 평화실현의 과제에 있어 역행 양상을 보이고 있는 보수적 복음주의 진영에 축적되어 있다. 이 둘 사이의 분열관계가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제고를 위해서는 몇 가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양적 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보적인 교회는 양적 성장을 이루어야 하고, 한반도 평화 문제를 선교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으나 보수적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개교회 내에서 선교적 방향 전환을 이룸으로써 이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평화지향성과 평화 실현체로서의 사회적 공인을 얻어 내야 한다. 교회의 사회성을 보다 깊이 인식하고 민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선교활동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이룰 위해서는 선교신학적 방향전환이 있어야 한다. 기독교적 정체성만이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과 인류공동체척 정체성을 자각하고 아울러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간의 상호 인정과 협력을 통한 역량의 극대화가 요청되고 있다. 북한교회는 외견상 그 선교역량이 매우 미약하다. 교인의 수나 교회 지도자의 수 등 기본적인 선교자원이 대단히 빈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체주의 사회인 북한 체제의 특성상 종교의 자율성이 약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갈등 경험 안에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내면화되어 작용하고 있다. 북한사회 내에서의 역할 가능성이 매우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한계점이 북한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을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교회는 나름의 역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적대적인 여건 안에서도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 적응하면서 그 안에서의 생존을 이루어냈다. 또한 사회건설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기여를 함으로써 교회를 세우고 교회지도자를 길러낼 수 있을 정도로 운신의 폭을 넓힘으로써 향후의 발전기반을 마련해 놓았다. 그 과정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신앙형태를 창출함으로써, 세계교회 및 남한교회와의 관계맺기를 통해 한반도 평화선교에 참여하여 기여하는 정도의 역량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북한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제고를 위해서는 교회의 기본적인 선교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선은 체제 내에서의 위상을 강화함으로써 자율성을 보다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의 리더쉽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의 협력이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북한교회가 처해 있는 체제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또한 북한교회가 수행하는 통일전선체적 기능을 인정하고,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것에 협력해 주는 것은 매우 요긴한 일이 될 수 있다. 북한교회의 선교자원 확충을 위해 시급히 요청되는 목회적 신학적 지도력의 육성을 위한 인적 물적 지원과 교류도 매우 유효한 일이 될 것이다. 북한체제에서 북한교회는 남한 및 서방세계로 나아가는 접촉의 통로라는 통일전선체적 차원에서 가치를 갖는다. 그러므로 남한교회가 북한교회를 통하여 북한사회에 대한 접촉과 지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확대해 나감으로써 북한교회의 체제 내 위상을 보다 높여줄 수 있다. 또한 북한교회가 사회 내에서 기여할 기회가 많아짐으로써, 북한사회 내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이 불식되어지고 새로운 관계설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남한 교회는 북한교회의 지도력이 강화되도록 하기 위해 북한교회의 신학수준이 높아지도록 학문적 교류 및 신학교육 지원을 할 수 있다. 평양신학원에 신학서적들과 교육기자재들을 지원하고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신학교육 요원을 파송하거나 북한교회의 인재들이 남한 내의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성찬예전의 활용 가능성 이상과 같은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제고를 위한 과제들의 해결에 성찬이 활용될 수 있다. 선교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 성찬예전은 상징의 생산지로, 선교와 예배의 통전 지점으로, 그리고 영성의 고양처로 역할하며 한반도 평화 정착과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신학과 종교의 추상적 개념들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유통관계에서 상징이라는 매개체는 필수불가결하다. 그리고 기독교의 경우 가장 풍부한 상징유통의 현장이 바로 성례전이다. 일상성을 대변하는 상징 매개물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사건과 그 의미들이라고 하는 비일상적 차원들이 일상화되고 구체화, 경험화되는 현장이 바로 성례전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성찬은 규칙적으로 행해질 수 있으면서도 풍부한 상징력을 담고 있는 예전이다. 이러한 성찬예전의 상징적 기능은 한반도 평화선교를 위해서도 넉넉한 활용 가능성을 지닌다. 우선은 남과 북의 교회가 만나고 교류할 때 성찬을 적절히 시행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강력한 상징을 표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자체를 한반도 평화의 상징으로 드러낼 수가 있다. 남과 북의 교회가 함께 참여하는 성찬예전은 한반도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며, 그것은 곧 남북통일을 가리키는 지시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성찬예전은 한반도 교회의 자기시여적 선교의 사명을 새롭게 함으로써 남과 북 양측의 교회로 하여금 한반도 평화선교에 보다 매진토록 힘을 부여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그 자체로 선교활동임과 동시에 남과 북의 교회가 공히 한반도 평화선교 수행자로서의 역량을 크게 강화하는 일이다. 한국교회의 일치 문제에도 성찬의 상징 기능을 활용함으로써,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제고에 기여토록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을 저하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교회일치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성찬예전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교회의 본질적인 일치성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교회일치 과제의 실천을 위해 성찬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치성의 본질을 먼저 주목하고 확인함으로써, 차이를 넘어선 자기동질성에 따라 대화하고 협력토록 하는 데에 성찬예전이 긴요하게 활용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선교와 예배는 각각 기독교의 관계성과 자기정체성의 표현을 대변하면서도 서로가 긴밀한 관계를 갖는 활동들이다. 특히 이 둘은 공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활동에 본원을 두고 교회의 참여를 요청한다는 점에서 본원적 일치성을 갖는다. 이 둘의 불일치는 각각의 왜곡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바른 선교, 바른 예배는 선교와 예배의 일치가 담보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선교와 예배의 가장 확실한 통전지점이 바로 성찬이다. 성찬은 기독교 예배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선교자들의 계약관계를 새롭게 갱신하고 흥기하는 선교적 예전이기 때문이다. 선교와 예배의 통전은,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과 관련하여,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진영과 보수 진영 모두에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의 자기정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표현하는 교회 활동인 성찬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진영은 기독교적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복음주의 진영의 우려를 확실히 불식시키고 상호협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한국의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는 예배와 선교의 자기봉사적 내향성이라고 하는 왜곡을 바로잡고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고 성령에 의해 인도되어지는 하나님의 활동에로 각각 내향화하고 또한 외향화함으로써 자기정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선교와 예전의 통전을 필요로 하며, 성찬이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을 통해 자주적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중요한 이정표로 삼지만, 그곳에 이르기까지와 그 이후의 여정은 매우 복잡하고 많은 부침을 동반하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매우 길고 지루하며 혼란스럽기까지 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발걸음이 중단없이 이어지기 위해서 절실히 필요케 되는 것이 평화를 위한 영성의 측면이다. 한반도 내에 뿌리내린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여정에서 끊임없는 영성의 물줄기가 되어주어야 한다. 끊임없이 평화의 비전을 선포하고 이정표들을 만들어 나갈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할 인재들을 양성하여 공급하고, 평화의 모범을 창출하여 민족적 평화공동체 창출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평화적 영성 고양처로서 성찬의 활용 가능성은 크게 두드러진다. 성찬예전을 통해 복음과 선교의 평화적 의미가 강조되도록 할 수 있다. 말씀을 듣고 배움으로만이 아니라 성찬예전을 통해 평화와 화해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 사건 및 평화와 화해의 화신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경험함으로써 교회 안에서는 평화와 화해의 영성이 크게 고양될 수 있다. 성찬예전을 중심으로 예배교육을 시행하면서 교회의 평화교육이 크게 강화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평화의 일꾼들이 길러지고 그들의 평화 영성이 고양되며 그들을 위한 후원기반이 든든해 질 수 있다. 특히 개교회 내에서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회중들의 인식을 전환하고, 회중 내에 평화와 화해의 영성을 진작시킴으로써 한반도 평화선교를 위한 개교회적 활력과 전교회적 역량을 총체적으로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선교 자원들이 전면적으로 재조직, 재배치됨으로써 교회의 선교 잠재력이 한반도 평화선교에서 현실화되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3. 선결되어야 할 과제들 이처럼 성찬예전은 한반도 평화선교와 그 역량강화를 위해 활용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활용의 실제에 있어서는 먼저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한국교회는 다음의 두 가지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점은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에 공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선은 한국교회의 예배가 갱신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초기 선교사들이 전하여 준 예배형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청교도적 혹은 개척자 예배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이 예배형태로 인해 한국교회의 예배는 설교에만 주안점을 둘 뿐 성찬예전을 도외시하고 있다. 성찬은 1년에 2회 정도만 시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성찬예전을 회복해야 한다. 성찬예전이 말씀의 예전과 함께 예배의 중요한 기둥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찬의 횟수뿐만 아니라 성찬의 의미 부분에서도 갱신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성찬은 '기념'에만 강조점을 두고 있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대속성을 회상하는 것으로서만 시행되고 있다. 한국 교회는 BEM 문서에 나타나고 있는 성찬의 5가지 의미 등을 참고하여 성찬의 다양한 의미들을 교육하고 그것이 교회의 선교적 삶과 영성으로 기어지도록 하는 예배의 갱신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선교신학적 전환의 노력이 필요하다.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 모두 선교신학적 전환을 이루지 않고서는 선교의 물적 기반의 확충과 평화지향성, 교회의 일치라고 하는 과제를 동시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성찬을 통하여 상징을 생산하고, 예배와 선교의 통전을 이루며 평화와 화해의 영성을 고양시켜 한반도 평화선교 및 그 역량 제고를 실천하는 것은 요원케 된다. 이에 관해서는 세계교회의 사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20세기 후반 세계 선교신학계는 통전적 관점으로의 수렴을 이루었다.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이 서로의 강조점이 동시적으로 필요함을 인정하고 각각 문서화하면서 통전적 선교를 실천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즉 복음전도와 그에 부합하는 사회참여를 동시에 포괄하는 통전적 선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양진영이 일치를 보고 있다. 복음주의의 "로잔언약"(1974년)과 에큐메니칼의 "Ecumenical Affermation: Mission and Evangelism"(1982년)이 바로 그 문서들이다. 물론 두 선교운동이 걸어온 여정이 다르듯이 통전성 이해의 세부적 구조에서는 차이점들도 안고 있다. 그러나 선교의 통전성이라고 하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이 정도의 차이점은, 장애물이라기보다는 건전한 다양성을 위한 토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 양 진영은 세계교회의 이러한 흐름과 접맥하는 가운데, 각각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의 통전적 선교신학을 수용할 수 있다. 서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선교신학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1.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및 그 제고를 위한 과제 한국교회는 대단히 풍부한 선교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선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교회의 선교자원들은 바르게 정렬되어 있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한국교회의 선교자원은 풍부하나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은 대단히 미약하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뿌리깊은 반공성과 사회성 결여, 그리고 분열상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형성된 에큐메니칼 진영이 성장하면서 1980년대와 그 후에 이르러 한반도 평화의 진전에 크게 기여한 바가 있지만, 기본적 선교 자원의 부족으로 한계에 다달아 있다. 오히려 대다수의 선교자원은 뿌리깊은 반공성으로 인해 한반도 평화실현의 과제에 있어 역행 양상을 보이고 있는 보수적 복음주의 진영에 축적되어 있다. 이 둘 사이의 분열관계가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제고를 위해서는 몇 가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양적 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보적인 교회는 양적 성장을 이루어야 하고, 한반도 평화 문제를 선교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으나 보수적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개교회 내에서 선교적 방향 전환을 이룸으로써 이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평화지향성과 평화 실현체로서의 사회적 공인을 얻어 내야 한다. 교회의 사회성을 보다 깊이 인식하고 민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선교활동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이룰 위해서는 선교신학적 방향전환이 있어야 한다. 기독교적 정체성만이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과 인류공동체척 정체성을 자각하고 아울러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간의 상호 인정과 협력을 통한 역량의 극대화가 요청되고 있다. 북한교회는 외견상 그 선교역량이 매우 미약하다. 교인의 수나 교회 지도자의 수 등 기본적인 선교자원이 대단히 빈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체주의 사회인 북한 체제의 특성상 종교의 자율성이 약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갈등 경험 안에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내면화되어 작용하고 있다. 북한사회 내에서의 역할 가능성이 매우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한계점이 북한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을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교회는 나름의 역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적대적인 여건 안에서도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 적응하면서 그 안에서의 생존을 이루어냈다. 또한 사회건설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기여를 함으로써 교회를 세우고 교회지도자를 길러낼 수 있을 정도로 운신의 폭을 넓힘으로써 향후의 발전기반을 마련해 놓았다. 그 과정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신앙형태를 창출함으로써, 세계교회 및 남한교회와의 관계맺기를 통해 한반도 평화선교에 참여하여 기여하는 정도의 역량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북한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제고를 위해서는 교회의 기본적인 선교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선은 체제 내에서의 위상을 강화함으로써 자율성을 보다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의 리더쉽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의 협력이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북한교회가 처해 있는 체제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또한 북한교회가 수행하는 통일전선체적 기능을 인정하고,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것에 협력해 주는 것은 매우 요긴한 일이 될 수 있다. 북한교회의 선교자원 확충을 위해 시급히 요청되는 목회적 신학적 지도력의 육성을 위한 인적 물적 지원과 교류도 매우 유효한 일이 될 것이다. 북한체제에서 북한교회는 남한 및 서방세계로 나아가는 접촉의 통로라는 통일전선체적 차원에서 가치를 갖는다. 그러므로 남한교회가 북한교회를 통하여 북한사회에 대한 접촉과 지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확대해 나감으로써 북한교회의 체제 내 위상을 보다 높여줄 수 있다. 또한 북한교회가 사회 내에서 기여할 기회가 많아짐으로써, 북한사회 내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이 불식되어지고 새로운 관계설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남한 교회는 북한교회의 지도력이 강화되도록 하기 위해 북한교회의 신학수준이 높아지도록 학문적 교류 및 신학교육 지원을 할 수 있다. 평양신학원에 신학서적들과 교육기자재들을 지원하고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신학교육 요원을 파송하거나 북한교회의 인재들이 남한 내의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성찬예전의 활용 가능성 이상과 같은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제고를 위한 과제들의 해결에 성찬이 활용될 수 있다. 선교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 성찬예전은 상징의 생산지로, 선교와 예배의 통전 지점으로, 그리고 영성의 고양처로 역할하며 한반도 평화 정착과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신학과 종교의 추상적 개념들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유통관계에서 상징이라는 매개체는 필수불가결하다. 그리고 기독교의 경우 가장 풍부한 상징유통의 현장이 바로 성례전이다. 일상성을 대변하는 상징 매개물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사건과 그 의미들이라고 하는 비일상적 차원들이 일상화되고 구체화, 경험화되는 현장이 바로 성례전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성찬은 규칙적으로 행해질 수 있으면서도 풍부한 상징력을 담고 있는 예전이다. 이러한 성찬예전의 상징적 기능은 한반도 평화선교를 위해서도 넉넉한 활용 가능성을 지닌다. 우선은 남과 북의 교회가 만나고 교류할 때 성찬을 적절히 시행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강력한 상징을 표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자체를 한반도 평화의 상징으로 드러낼 수가 있다. 남과 북의 교회가 함께 참여하는 성찬예전은 한반도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며, 그것은 곧 남북통일을 가리키는 지시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성찬예전은 한반도 교회의 자기시여적 선교의 사명을 새롭게 함으로써 남과 북 양측의 교회로 하여금 한반도 평화선교에 보다 매진토록 힘을 부여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그 자체로 선교활동임과 동시에 남과 북의 교회가 공히 한반도 평화선교 수행자로서의 역량을 크게 강화하는 일이다. 한국교회의 일치 문제에도 성찬의 상징 기능을 활용함으로써,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 제고에 기여토록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을 저하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교회일치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성찬예전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교회의 본질적인 일치성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교회일치 과제의 실천을 위해 성찬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치성의 본질을 먼저 주목하고 확인함으로써, 차이를 넘어선 자기동질성에 따라 대화하고 협력토록 하는 데에 성찬예전이 긴요하게 활용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선교와 예배는 각각 기독교의 관계성과 자기정체성의 표현을 대변하면서도 서로가 긴밀한 관계를 갖는 활동들이다. 특히 이 둘은 공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활동에 본원을 두고 교회의 참여를 요청한다는 점에서 본원적 일치성을 갖는다. 이 둘의 불일치는 각각의 왜곡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바른 선교, 바른 예배는 선교와 예배의 일치가 담보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선교와 예배의 가장 확실한 통전지점이 바로 성찬이다. 성찬은 기독교 예배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선교자들의 계약관계를 새롭게 갱신하고 흥기하는 선교적 예전이기 때문이다. 선교와 예배의 통전은, 한반도 평화선교 역량과 관련하여,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진영과 보수 진영 모두에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의 자기정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표현하는 교회 활동인 성찬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진영은 기독교적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복음주의 진영의 우려를 확실히 불식시키고 상호협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한국의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는 예배와 선교의 자기봉사적 내향성이라고 하는 왜곡을 바로잡고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고 성령에 의해 인도되어지는 하나님의 활동에로 각각 내향화하고 또한 외향화함으로써 자기정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선교와 예전의 통전을 필요로 하며, 성찬이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을 통해 자주적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중요한 이정표로 삼지만, 그곳에 이르기까지와 그 이후의 여정은 매우 복잡하고 많은 부침을 동반하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매우 길고 지루하며 혼란스럽기까지 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발걸음이 중단없이 이어지기 위해서 절실히 필요케 되는 것이 평화를 위한 영성의 측면이다. 한반도 내에 뿌리내린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여정에서 끊임없는 영성의 물줄기가 되어주어야 한다. 끊임없이 평화의 비전을 선포하고 이정표들을 만들어 나갈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할 인재들을 양성하여 공급하고, 평화의 모범을 창출하여 민족적 평화공동체 창출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평화적 영성 고양처로서 성찬의 활용 가능성은 크게 두드러진다. 성찬예전을 통해 복음과 선교의 평화적 의미가 강조되도록 할 수 있다. 말씀을 듣고 배움으로만이 아니라 성찬예전을 통해 평화와 화해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 사건 및 평화와 화해의 화신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경험함으로써 교회 안에서는 평화와 화해의 영성이 크게 고양될 수 있다. 성찬예전을 중심으로 예배교육을 시행하면서 교회의 평화교육이 크게 강화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평화의 일꾼들이 길러지고 그들의 평화 영성이 고양되며 그들을 위한 후원기반이 든든해 질 수 있다. 특히 개교회 내에서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회중들의 인식을 전환하고, 회중 내에 평화와 화해의 영성을 진작시킴으로써 한반도 평화선교를 위한 개교회적 활력과 전교회적 역량을 총체적으로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선교 자원들이 전면적으로 재조직, 재배치됨으로써 교회의 선교 잠재력이 한반도 평화선교에서 현실화되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3. 선결되어야 할 과제들 이처럼 성찬예전은 한반도 평화선교와 그 역량강화를 위해 활용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활용의 실제에 있어서는 먼저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한국교회는 다음의 두 가지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점은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에 공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선은 한국교회의 예배가 갱신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초기 선교사들이 전하여 준 예배형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청교도적 혹은 개척자 예배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이 예배형태로 인해 한국교회의 예배는 설교에만 주안점을 둘 뿐 성찬예전을 도외시하고 있다. 성찬은 1년에 2회 정도만 시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성찬예전을 회복해야 한다. 성찬예전이 말씀의 예전과 함께 예배의 중요한 기둥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찬의 횟수뿐만 아니라 성찬의 의미 부분에서도 갱신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성찬은 '기념'에만 강조점을 두고 있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대속성을 회상하는 것으로서만 시행되고 있다. 한국 교회는 BEM 문서에 나타나고 있는 성찬의 5가지 의미 등을 참고하여 성찬의 다양한 의미들을 교육하고 그것이 교회의 선교적 삶과 영성으로 기어지도록 하는 예배의 갱신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선교신학적 전환의 노력이 필요하다.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 모두 선교신학적 전환을 이루지 않고서는 선교의 물적 기반의 확충과 평화지향성, 교회의 일치라고 하는 과제를 동시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성찬을 통하여 상징을 생산하고, 예배와 선교의 통전을 이루며 평화와 화해의 영성을 고양시켜 한반도 평화선교 및 그 역량 제고를 실천하는 것은 요원케 된다. 이에 관해서는 세계교회의 사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20세기 후반 세계 선교신학계는 통전적 관점으로의 수렴을 이루었다.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이 서로의 강조점이 동시적으로 필요함을 인정하고 각각 문서화하면서 통전적 선교를 실천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즉 복음전도와 그에 부합하는 사회참여를 동시에 포괄하는 통전적 선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양진영이 일치를 보고 있다. 복음주의의 "로잔언약"(1974년)과 에큐메니칼의 "Ecumenical Affermation: Mission and Evangelism"(1982년)이 바로 그 문서들이다. 물론 두 선교운동이 걸어온 여정이 다르듯이 통전성 이해의 세부적 구조에서는 차이점들도 안고 있다. 그러나 선교의 통전성이라고 하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이 정도의 차이점은, 장애물이라기보다는 건전한 다양성을 위한 토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 양 진영은 세계교회의 이러한 흐름과 접맥하는 가운데, 각각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의 통전적 선교신학을 수용할 수 있다. 서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선교신학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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