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노인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발달심리학에 근거하여 노 인의 죽음 이해를 고찰했고, 죽음 준비교육의 역사와 내용을 살피고, 특별히 N 노인 복지관의 사례를 통해 일반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죽음 준비교육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지 살펴보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 의 주어진 삶에 대하여 강한 애착을 가지...
지금까지 노인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발달심리학에 근거하여 노 인의 죽음 이해를 고찰했고, 죽음 준비교육의 역사와 내용을 살피고, 특별히 N 노인 복지관의 사례를 통해 일반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죽음 준비교육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지 살펴보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 의 주어진 삶에 대하여 강한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 즉, 종교적·철학적·윤리적·사회적 방면에 있어서의 제반 행위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보다 더 만족할 만한 삶의 완성에 있다. 따라서 각자 주어진 상황 아래서 흡 사 어느 노련한 등반가가 높은 산 정상을 목표로 열심히 땀 흘리고 온 정열을 쏟듯 이 삶의 완성을 위한 끊임없는 추구는, 갓 태어난 아기의 흡유 본능으로부터 시작하 여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죽 음이라는 벽에는 무기력하다. 사람은 죽음으로 일생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사람 이 태어남을 시작으로 해서 죽는 것을 통해 인생이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제품처럼 태어나지 않았듯이, 작은 씨앗이 점점 자라나듯 사람은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가진 존재로 창조 되었다. 문제는 사람이 죽음으로 인해 성장이 멈 추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 자라난 아이가 편안하고 아늑하 던 자리에서 나와 이 땅에 출생하는 것이 하나의 큰 변화이듯 죽음도 또 다른 발전을 위 한 변화의 과정이다. 죽음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성장과정이다. 그리하여 현세에 들어와서는 이에 부딪쳐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공포에 떨던 그 본연의 나약 한 모습을 재정립시키고자 세상은 소위 죽음에 대한 연구를 전개시키고 있다. 그러 나 그 죽음에 관한 교육과 관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순히 죽음을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할 수 있 다는 현재의 노력은 죽음을 앞에 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한가. 기독교에서는 죽음을 단순한 생물학적인 과정으로 이 해하지 않는다. 이 말의 의미는 첫째, 인간 생명의 죽음이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 라 원래의 창조질서 안에서 그리고 십자가 사건의 빛으로 극복되어야 하고 정복되 어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다. 둘째, 죽음은 단순히 생물학적 정신적으로 한 개체가 종말에 이르고 해체되는 중성적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엄연한 생명에 대한 횡포이 자 공격, 죽임의 독화살, 쏘는 가시로서 매우 부정적인 과정이라는 인식이다. 죽음의 치명성 속에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무력함과 한계를 깊이 느끼게 된다. 기독교에서 죽음은 어둠과 그림자처럼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기독교의 죽음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에 따라 긍정적인 의 미로, 즉 인간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긍정적인 계기로 인식되기도 한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죽음의 의미는 영원한 종말이 아닌 인간 삶의 완성이며 결실이요, 보다 영 원한 삶으로의 초대, 삶의 마지막 완성이다. 이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 예수 그리스 도의 고난의 십자가와 이를 극복한 부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참 신앙을 통해서 이 루어지는 삶의 최종적인 열매이다.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 도와의 교통으로 들어가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본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에서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바로 이 땅의 삶 대신에 영원한 삶을 목표로 달려가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이 땅의 삶은 온전히 영 원한 삶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나그네 과정으로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목표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이 땅에 사는 80여년의 삶은 바로 “끊임없 이 새로워지기” 위한 기간이다. 인간의 육체가 쇠약해지는 것과는 반비례로 그의 내적 삶은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늙어갈수록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 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점점 더 성숙해지고 점점 더 새로 워지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사람은 육체적으로 노쇠할 때 기억력도 약화되고 공부할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의 영적 능력은 더 욱 개발될 수 있다. 바깥을 향해서만 나가던 젊은 시절과는 달리 그 바깥으로 향하던 정 열이 약해지면서 오히려 정신적으로 내적으로 영적으로 들어가는 시기가 노년기이다. 그 러므로 노년기야말로 더욱 인생을 성숙하게 만드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노년의 삶이 인간을 성숙시키지만 완전한 성숙은 죽음으로서 가능하다.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불완 전한 곳에 있는 것이기에 하나님 품에 있을 때 우리는 완전한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죽음을 통해 인간은 완성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교회가 앞서 죽음을 대비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다가오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고, 그 결말을 어떻게 표현해 가느냐 하 는 인간 존재의 주장이나, 일그러진 죽음으로부터의 탈출, 행복한 죽음을 추구하는 모습 등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무늬와 색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 명의 존귀함이라는 명제아래 마지막 한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존적 노력이 우 리 주위에 존재하고, 일단 환자가 죽은 뒤는 ‘남은 자’ 와 ‘떠난 자’ 의 관계로서 갈 수록 멀어지고 잊혀지는 것이며, 여기에 태고의 원초적 의문인 ‘영혼’ 의 존재가치에 그 핵심이 모아지게 된다. 결국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즉 죽음을 설계한다는 것 은, 죽음의 시각으로부터 삶을 되돌아보는 생의 설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곧 영혼에 대한 경외와 기원을 간직한 인간의 자긍심을 창출해 나가는 작업인 동시에 완성을 향해가는 끊임없는 순례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노인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발달심리학에 근거하여 노 인의 죽음 이해를 고찰했고, 죽음 준비교육의 역사와 내용을 살피고, 특별히 N 노인 복지관의 사례를 통해 일반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죽음 준비교육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지 살펴보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 의 주어진 삶에 대하여 강한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 즉, 종교적·철학적·윤리적·사회적 방면에 있어서의 제반 행위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보다 더 만족할 만한 삶의 완성에 있다. 따라서 각자 주어진 상황 아래서 흡 사 어느 노련한 등반가가 높은 산 정상을 목표로 열심히 땀 흘리고 온 정열을 쏟듯 이 삶의 완성을 위한 끊임없는 추구는, 갓 태어난 아기의 흡유 본능으로부터 시작하 여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죽 음이라는 벽에는 무기력하다. 사람은 죽음으로 일생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사람 이 태어남을 시작으로 해서 죽는 것을 통해 인생이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제품처럼 태어나지 않았듯이, 작은 씨앗이 점점 자라나듯 사람은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가진 존재로 창조 되었다. 문제는 사람이 죽음으로 인해 성장이 멈 추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 자라난 아이가 편안하고 아늑하 던 자리에서 나와 이 땅에 출생하는 것이 하나의 큰 변화이듯 죽음도 또 다른 발전을 위 한 변화의 과정이다. 죽음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성장과정이다. 그리하여 현세에 들어와서는 이에 부딪쳐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공포에 떨던 그 본연의 나약 한 모습을 재정립시키고자 세상은 소위 죽음에 대한 연구를 전개시키고 있다. 그러 나 그 죽음에 관한 교육과 관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순히 죽음을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할 수 있 다는 현재의 노력은 죽음을 앞에 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한가. 기독교에서는 죽음을 단순한 생물학적인 과정으로 이 해하지 않는다. 이 말의 의미는 첫째, 인간 생명의 죽음이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 라 원래의 창조질서 안에서 그리고 십자가 사건의 빛으로 극복되어야 하고 정복되 어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다. 둘째, 죽음은 단순히 생물학적 정신적으로 한 개체가 종말에 이르고 해체되는 중성적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엄연한 생명에 대한 횡포이 자 공격, 죽임의 독화살, 쏘는 가시로서 매우 부정적인 과정이라는 인식이다. 죽음의 치명성 속에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무력함과 한계를 깊이 느끼게 된다. 기독교에서 죽음은 어둠과 그림자처럼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기독교의 죽음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에 따라 긍정적인 의 미로, 즉 인간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긍정적인 계기로 인식되기도 한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죽음의 의미는 영원한 종말이 아닌 인간 삶의 완성이며 결실이요, 보다 영 원한 삶으로의 초대, 삶의 마지막 완성이다. 이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 예수 그리스 도의 고난의 십자가와 이를 극복한 부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참 신앙을 통해서 이 루어지는 삶의 최종적인 열매이다.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 도와의 교통으로 들어가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본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에서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바로 이 땅의 삶 대신에 영원한 삶을 목표로 달려가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이 땅의 삶은 온전히 영 원한 삶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나그네 과정으로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목표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이 땅에 사는 80여년의 삶은 바로 “끊임없 이 새로워지기” 위한 기간이다. 인간의 육체가 쇠약해지는 것과는 반비례로 그의 내적 삶은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늙어갈수록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 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점점 더 성숙해지고 점점 더 새로 워지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사람은 육체적으로 노쇠할 때 기억력도 약화되고 공부할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의 영적 능력은 더 욱 개발될 수 있다. 바깥을 향해서만 나가던 젊은 시절과는 달리 그 바깥으로 향하던 정 열이 약해지면서 오히려 정신적으로 내적으로 영적으로 들어가는 시기가 노년기이다. 그 러므로 노년기야말로 더욱 인생을 성숙하게 만드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노년의 삶이 인간을 성숙시키지만 완전한 성숙은 죽음으로서 가능하다.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불완 전한 곳에 있는 것이기에 하나님 품에 있을 때 우리는 완전한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죽음을 통해 인간은 완성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교회가 앞서 죽음을 대비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다가오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고, 그 결말을 어떻게 표현해 가느냐 하 는 인간 존재의 주장이나, 일그러진 죽음으로부터의 탈출, 행복한 죽음을 추구하는 모습 등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무늬와 색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 명의 존귀함이라는 명제아래 마지막 한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존적 노력이 우 리 주위에 존재하고, 일단 환자가 죽은 뒤는 ‘남은 자’ 와 ‘떠난 자’ 의 관계로서 갈 수록 멀어지고 잊혀지는 것이며, 여기에 태고의 원초적 의문인 ‘영혼’ 의 존재가치에 그 핵심이 모아지게 된다. 결국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즉 죽음을 설계한다는 것 은, 죽음의 시각으로부터 삶을 되돌아보는 생의 설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곧 영혼에 대한 경외와 기원을 간직한 인간의 자긍심을 창출해 나가는 작업인 동시에 완성을 향해가는 끊임없는 순례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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