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탈냉전이후 세계정세와 동북아 역학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남북한과 주변열강과의 관계 및 남북한의 안보외교 전략을 고찰하였다. 한반도는 예로부터 주변 국제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역사를 진행하여 왔다. 영향권 하에서 독립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면서 조공외교에서부터 때로는 굴욕스런 사대외교를 전개했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한반도에는 중국과 함께 일본이 강대국으로 행사하면서 한반도에는 일, 중 2개의 강대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임진왜란과 청일전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가 양강대국의 전쟁터가 되었다. 구한말에는 새로운 강대국인 러시아와 일본, 중국 3개국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아관파천(1896)경우에는 한때 러시아가 득세하기도 하였으나 20세기 전후 한반도와 아시아 대륙의 패권을 향한 노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한반도는 일본이라는 하나의 강대국 지배체제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구한말 한국은 미국과도 수교하였고 조선독립 유지를 위해 미국의 힘에 기대하기도 하였으나 당시 동북아에는 미·소 양극체제의 중심국가와 함께 중국, 일본의 부상으로 4강 체제가 형성되었으며 미국, 일본, 한국의 남방 3각관계와 소련, 중국, 북한의 북방3각관계가 세계균형을 이루면서 냉전체제하에서 소규모의 접촉, 대화, 회담이 진행되는 한계점을 지녔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진행된 소련붕괴, 동구민주화, 독일통일이라는 세계적 차원의 변화는 미·소 이념대결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주도해 온 서방측을 대표하는 미국의 승리를 의미하며 미국주도의 신세계질서를 태동시키게 되었다. 세계사의 흐름은 그대로 한반도에도 투영되어 남북한의 총리급 차원의 고위급 회담으로 1990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체결되어 본격적인 남북한 교류협력과 평화체제 구축의 서막이 오르게 되었으나, 90년대 이후 북한은 비밀리에 추진해온 영변핵시설이 발견되면서 북한 핵문제는 치명적으로 남북대화를 중단하게 되었다. 결국 북한은 심각한 경제 침체로 세계 경쟁에서 한국에 밀리게 되고 전통적 우방이던 중국이 미국과의 전략적 화해 협력을 추구하고 소련과는 1980년대 이후 동맹이 해제되었으며, 예상치 못한 소련붕괴와 동구민주화 물결속에서 오로지 핵 개발 촉진 전략으로 북한 안보와 내부동요를 막으며 북한을 결속 하고자 했다고 본다. 미국은 태프트-가쯔라 협약으로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필리핀 경영에 힘을 구사하게 되었다. 2차대전시 미·일의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은 승리하게 되었으나, 전쟁 말기에 소련의 참전으로 한반도는 미·소 양극의 영향권에 놓이면서 3·8선 분단의 비극이 잉태 되었다. 한반도에는 이념을 달리하는 2개의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북한은 1950년 6·25전쟁으로 공산화 통일을 추구하며 남침을 강행 하였으나 유엔의 참전으로 3·8선은 오늘의 휴전선으로 교체 되었다. 미·소 이념대결, 양극체제, 냉전체제 하에서 한반도는 정전상태 하에서 긴장이 상존 하였고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는 심화되었다. 한국은 6.25전쟁 직후 미국과의 동맹체결로 안보를 보장하고자 했으며 북한은 김일성 수령체제를 공고히 차고 ...
필자는 탈냉전이후 세계정세와 동북아 역학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남북한과 주변열강과의 관계 및 남북한의 안보외교 전략을 고찰하였다. 한반도는 예로부터 주변 국제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역사를 진행하여 왔다. 영향권 하에서 독립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면서 조공외교에서부터 때로는 굴욕스런 사대외교를 전개했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한반도에는 중국과 함께 일본이 강대국으로 행사하면서 한반도에는 일, 중 2개의 강대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임진왜란과 청일전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가 양강대국의 전쟁터가 되었다. 구한말에는 새로운 강대국인 러시아와 일본, 중국 3개국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아관파천(1896)경우에는 한때 러시아가 득세하기도 하였으나 20세기 전후 한반도와 아시아 대륙의 패권을 향한 노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한반도는 일본이라는 하나의 강대국 지배체제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구한말 한국은 미국과도 수교하였고 조선독립 유지를 위해 미국의 힘에 기대하기도 하였으나 당시 동북아에는 미·소 양극체제의 중심국가와 함께 중국, 일본의 부상으로 4강 체제가 형성되었으며 미국, 일본, 한국의 남방 3각관계와 소련, 중국, 북한의 북방3각관계가 세계균형을 이루면서 냉전체제하에서 소규모의 접촉, 대화, 회담이 진행되는 한계점을 지녔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진행된 소련붕괴, 동구민주화, 독일통일이라는 세계적 차원의 변화는 미·소 이념대결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주도해 온 서방측을 대표하는 미국의 승리를 의미하며 미국주도의 신세계질서를 태동시키게 되었다. 세계사의 흐름은 그대로 한반도에도 투영되어 남북한의 총리급 차원의 고위급 회담으로 1990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체결되어 본격적인 남북한 교류협력과 평화체제 구축의 서막이 오르게 되었으나, 90년대 이후 북한은 비밀리에 추진해온 영변핵시설이 발견되면서 북한 핵문제는 치명적으로 남북대화를 중단하게 되었다. 결국 북한은 심각한 경제 침체로 세계 경쟁에서 한국에 밀리게 되고 전통적 우방이던 중국이 미국과의 전략적 화해 협력을 추구하고 소련과는 1980년대 이후 동맹이 해제되었으며, 예상치 못한 소련붕괴와 동구민주화 물결속에서 오로지 핵 개발 촉진 전략으로 북한 안보와 내부동요를 막으며 북한을 결속 하고자 했다고 본다. 미국은 태프트-가쯔라 협약으로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필리핀 경영에 힘을 구사하게 되었다. 2차대전시 미·일의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은 승리하게 되었으나, 전쟁 말기에 소련의 참전으로 한반도는 미·소 양극의 영향권에 놓이면서 3·8선 분단의 비극이 잉태 되었다. 한반도에는 이념을 달리하는 2개의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북한은 1950년 6·25전쟁으로 공산화 통일을 추구하며 남침을 강행 하였으나 유엔의 참전으로 3·8선은 오늘의 휴전선으로 교체 되었다. 미·소 이념대결, 양극체제, 냉전체제 하에서 한반도는 정전상태 하에서 긴장이 상존 하였고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는 심화되었다. 한국은 6.25전쟁 직후 미국과의 동맹체결로 안보를 보장하고자 했으며 북한은 김일성 수령체제를 공고히 차고 주체사상으로 무장하였으며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소련, 중국과 동맹을 체결하면서 남북한의 체제경쟁과 함께 군비경쟁을 고조시켰다. 한국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와 함께 일본과의 경제 협력을 시도하였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야심차게 추진하였다. 1970년대에는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 화해의 영향으로 한반도에는 해방무드가 태동되면서 1972년의 7·4공동성명으로 남북한 간 접촉이 시작되었다. 1994년 북·미 제네바회담으로 북한에 경수로2개를 제공한다는 협상으로 북핵문제는 일단 수습 된 듯 하였으며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에는 역사적인 6·15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1998년에 시작된 금강산 관광에 이어 한국정부의 대북햇볕정책이 성과를 보이면서 한반도 평화구축의 가능성이 보였으나, 북한은 또다시 이번에는 우라늄을 원료로 한 핵개발을 공개하였으며 마침내 핵개발을 성공하였으며 핵보유국을 자임하게 되면서 2002년 10월에 발생한 제2차 북 핵위기는 한반도 평화구축에 균열을 가져 오게 되었다. 결국 탈냉전 이후 동북아 역학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북한은 체제위기와 미국등서방세력의 위협을 받는 와중에서 대남유화정책을 펼치면서 핵개발에 올인하는 정책을 채택하게 되었다. 한국은 지난 19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면서 국제적 위상을 높였으며 경제성장으로 인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1990년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을 주도하였으며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아울러 한국은 적극적 북방정책을 전개하여 당시 소련과 중국의 국교를 수립하게 되면서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함께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대화·협력정책을 통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여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모색코져 하였다. 김영삼 정부는 대북 강·온 정책이 교차되곤 하였으나 그 이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을 통한 대북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으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가동으로 북한개방의 단초가 열리는 듯 하였으나 북한 핵개발 정책의 역풍을 맞게 되면서 탈냉전 이후 동북아 정세변화 와중에서 남북한의 안보전략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2008년 현시점에서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의 공고화를 강화하고 북한 핵폐기를 전제로 대북협력지원정책을 조절코져 한다. 반면 북한은 핵개발 포기를 선언적으로 표명하곤 있으나 기본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가능한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핵협상을 통해 안보보장과 경제지원을 획득한다는 전략을 추구코져 한다. 세계적 차원에서는 21세기 초유에 미본토가 공격받은 9.11사태가 발생되고 미국은 악의 축으로 이란과 함께 북한을 지목하면서 미·북한 관계는 적대적 관계가 고조되기도 하였으나 북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채널로써 동북아 6자회담이 탄생되었으며 2005년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베이징 합의에 따라 북 핵불능과 폐기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으나 아직도 해결은 묘연해 보인다. 북한은 최종적으로는 핵협상 결과로써 북·미, 북·일 수교를 달성하여 북한 체제를 정치ㆍ군사적 안보를 보장받으며 대규모의 자본, 기술 지원을 통해 북한식 경제 개발을 획기적으로 추진하려 할 것이다. 즉 북한은 전통적인 우방국가로서의 중국과 호혜협력 관계로서의 러시아와의 관계강화는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미국과 일본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최대한 발전시켜 동북아와 한반도에서의 위상을 고양하고자 할 것이다. 북한이 미·일등 서방진영의 대규모 경제 지원이 진행되면서 개방에 따른 체제위협이 또 다른 문제로서 발생될 것이 예상 될 수 있을 것이나, 북한 나름대로의 주체사상으로 내부를 공고히 하면서 점차적으로 중국식과 유사한 형태의 사회주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시장경제 체제의 일부를 수용하게 될 것으로 사료된다. 북한은 특히 일본과의 수교 협상으로 100억불 안팎의 경제 지원을 통해 미국의 안보보안과 함께 서방세력과의 접근을 시도할 것이나 기본적으로 체제유지, 정권유지 차원에서 북한판 민족주의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미 제국주의와 일본의 호전적 위협을 최대한 경계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가 완전한 체제 과정에 이르기 까지 어떤 수준에서 사실상 당사국인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6개국의 합의가 이루어질 것인가의 과제가 남아있다. 북한 최대 목표는 핵을 보유한 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으며 북ㆍ미 수교를 포함하여 세계체제에 편입하면서 서방의 경제 지원을 통해 소위 그들이 말하는 강성대국을 구축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보유 정책을 강행하게 될 때는 동북아 강대국으로서의 미·일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중국까지도 북한의 군사 경제적으로 북한의 붕괴 내지는 체제, 정권 변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중국은 미·일의 일방적인 대북강경책을 반대할 것이며 북핵 문제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 입장을 조율하는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면서 중국 나름대로는 미국경제 전략의 일환으로 북한 존재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북한은 소위 ‘살라미’ 전술 전략으로 북핵문제를 궁극적으로 해체하게 되는 경우에도 최대한 지연 전략으로 시간을 연장시키면서 한국은 물론 미·일의 경제 지원과 안보 보장을 단계 단계마다 협상 댓가로서 요구하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북한은 동북아 국제 관계에 있어서 한국을 제압하는 안보외교 전략을 추구 하려 할 것이다. 즉 필자가 상정한 동맹관계 모델에서 북한은 가능한 한국의 위상을 축소시키고 고립화시키는 방향으로 미·일·중·러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구도를 그리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북한 나름대로는 북한체제유지와 경제발전을 위해 최소한 남북한 협력 관계를 추구하면서도 북한의 최대목표는 경제회복과 함께 한반도에 있어 정치·군사적 위상으로 한국을 제압할 수 있는 외교전략을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북한주도의 한반도 통합전략을 희구할 것이라고 사료된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북한 안보 외교의 최대 목표를 인지하고 한반도 평화통일 과정에서 시대정신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한국주도의 한반도 통합역사가 진행될 수 있는 준비 태세가 촉구된다.
필자는 탈냉전이후 세계정세와 동북아 역학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남북한과 주변열강과의 관계 및 남북한의 안보외교 전략을 고찰하였다. 한반도는 예로부터 주변 국제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역사를 진행하여 왔다. 영향권 하에서 독립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면서 조공외교에서부터 때로는 굴욕스런 사대외교를 전개했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한반도에는 중국과 함께 일본이 강대국으로 행사하면서 한반도에는 일, 중 2개의 강대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임진왜란과 청일전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가 양강대국의 전쟁터가 되었다. 구한말에는 새로운 강대국인 러시아와 일본, 중국 3개국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아관파천(1896)경우에는 한때 러시아가 득세하기도 하였으나 20세기 전후 한반도와 아시아 대륙의 패권을 향한 노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한반도는 일본이라는 하나의 강대국 지배체제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구한말 한국은 미국과도 수교하였고 조선독립 유지를 위해 미국의 힘에 기대하기도 하였으나 당시 동북아에는 미·소 양극체제의 중심국가와 함께 중국, 일본의 부상으로 4강 체제가 형성되었으며 미국, 일본, 한국의 남방 3각관계와 소련, 중국, 북한의 북방3각관계가 세계균형을 이루면서 냉전체제하에서 소규모의 접촉, 대화, 회담이 진행되는 한계점을 지녔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진행된 소련붕괴, 동구민주화, 독일통일이라는 세계적 차원의 변화는 미·소 이념대결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주도해 온 서방측을 대표하는 미국의 승리를 의미하며 미국주도의 신세계질서를 태동시키게 되었다. 세계사의 흐름은 그대로 한반도에도 투영되어 남북한의 총리급 차원의 고위급 회담으로 1990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체결되어 본격적인 남북한 교류협력과 평화체제 구축의 서막이 오르게 되었으나, 90년대 이후 북한은 비밀리에 추진해온 영변핵시설이 발견되면서 북한 핵문제는 치명적으로 남북대화를 중단하게 되었다. 결국 북한은 심각한 경제 침체로 세계 경쟁에서 한국에 밀리게 되고 전통적 우방이던 중국이 미국과의 전략적 화해 협력을 추구하고 소련과는 1980년대 이후 동맹이 해제되었으며, 예상치 못한 소련붕괴와 동구민주화 물결속에서 오로지 핵 개발 촉진 전략으로 북한 안보와 내부동요를 막으며 북한을 결속 하고자 했다고 본다. 미국은 태프트-가쯔라 협약으로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필리핀 경영에 힘을 구사하게 되었다. 2차대전시 미·일의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은 승리하게 되었으나, 전쟁 말기에 소련의 참전으로 한반도는 미·소 양극의 영향권에 놓이면서 3·8선 분단의 비극이 잉태 되었다. 한반도에는 이념을 달리하는 2개의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북한은 1950년 6·25전쟁으로 공산화 통일을 추구하며 남침을 강행 하였으나 유엔의 참전으로 3·8선은 오늘의 휴전선으로 교체 되었다. 미·소 이념대결, 양극체제, 냉전체제 하에서 한반도는 정전상태 하에서 긴장이 상존 하였고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는 심화되었다. 한국은 6.25전쟁 직후 미국과의 동맹체결로 안보를 보장하고자 했으며 북한은 김일성 수령체제를 공고히 차고 주체사상으로 무장하였으며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소련, 중국과 동맹을 체결하면서 남북한의 체제경쟁과 함께 군비경쟁을 고조시켰다. 한국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와 함께 일본과의 경제 협력을 시도하였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야심차게 추진하였다. 1970년대에는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 화해의 영향으로 한반도에는 해방무드가 태동되면서 1972년의 7·4공동성명으로 남북한 간 접촉이 시작되었다. 1994년 북·미 제네바회담으로 북한에 경수로2개를 제공한다는 협상으로 북핵문제는 일단 수습 된 듯 하였으며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에는 역사적인 6·15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1998년에 시작된 금강산 관광에 이어 한국정부의 대북햇볕정책이 성과를 보이면서 한반도 평화구축의 가능성이 보였으나, 북한은 또다시 이번에는 우라늄을 원료로 한 핵개발을 공개하였으며 마침내 핵개발을 성공하였으며 핵보유국을 자임하게 되면서 2002년 10월에 발생한 제2차 북 핵위기는 한반도 평화구축에 균열을 가져 오게 되었다. 결국 탈냉전 이후 동북아 역학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북한은 체제위기와 미국등서방세력의 위협을 받는 와중에서 대남유화정책을 펼치면서 핵개발에 올인하는 정책을 채택하게 되었다. 한국은 지난 19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면서 국제적 위상을 높였으며 경제성장으로 인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1990년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을 주도하였으며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아울러 한국은 적극적 북방정책을 전개하여 당시 소련과 중국의 국교를 수립하게 되면서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함께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대화·협력정책을 통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여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모색코져 하였다. 김영삼 정부는 대북 강·온 정책이 교차되곤 하였으나 그 이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을 통한 대북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으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가동으로 북한개방의 단초가 열리는 듯 하였으나 북한 핵개발 정책의 역풍을 맞게 되면서 탈냉전 이후 동북아 정세변화 와중에서 남북한의 안보전략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2008년 현시점에서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의 공고화를 강화하고 북한 핵폐기를 전제로 대북협력지원정책을 조절코져 한다. 반면 북한은 핵개발 포기를 선언적으로 표명하곤 있으나 기본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가능한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핵협상을 통해 안보보장과 경제지원을 획득한다는 전략을 추구코져 한다. 세계적 차원에서는 21세기 초유에 미본토가 공격받은 9.11사태가 발생되고 미국은 악의 축으로 이란과 함께 북한을 지목하면서 미·북한 관계는 적대적 관계가 고조되기도 하였으나 북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채널로써 동북아 6자회담이 탄생되었으며 2005년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베이징 합의에 따라 북 핵불능과 폐기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으나 아직도 해결은 묘연해 보인다. 북한은 최종적으로는 핵협상 결과로써 북·미, 북·일 수교를 달성하여 북한 체제를 정치ㆍ군사적 안보를 보장받으며 대규모의 자본, 기술 지원을 통해 북한식 경제 개발을 획기적으로 추진하려 할 것이다. 즉 북한은 전통적인 우방국가로서의 중국과 호혜협력 관계로서의 러시아와의 관계강화는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미국과 일본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최대한 발전시켜 동북아와 한반도에서의 위상을 고양하고자 할 것이다. 북한이 미·일등 서방진영의 대규모 경제 지원이 진행되면서 개방에 따른 체제위협이 또 다른 문제로서 발생될 것이 예상 될 수 있을 것이나, 북한 나름대로의 주체사상으로 내부를 공고히 하면서 점차적으로 중국식과 유사한 형태의 사회주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시장경제 체제의 일부를 수용하게 될 것으로 사료된다. 북한은 특히 일본과의 수교 협상으로 100억불 안팎의 경제 지원을 통해 미국의 안보보안과 함께 서방세력과의 접근을 시도할 것이나 기본적으로 체제유지, 정권유지 차원에서 북한판 민족주의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미 제국주의와 일본의 호전적 위협을 최대한 경계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가 완전한 체제 과정에 이르기 까지 어떤 수준에서 사실상 당사국인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6개국의 합의가 이루어질 것인가의 과제가 남아있다. 북한 최대 목표는 핵을 보유한 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으며 북ㆍ미 수교를 포함하여 세계체제에 편입하면서 서방의 경제 지원을 통해 소위 그들이 말하는 강성대국을 구축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보유 정책을 강행하게 될 때는 동북아 강대국으로서의 미·일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중국까지도 북한의 군사 경제적으로 북한의 붕괴 내지는 체제, 정권 변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중국은 미·일의 일방적인 대북강경책을 반대할 것이며 북핵 문제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 입장을 조율하는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면서 중국 나름대로는 미국경제 전략의 일환으로 북한 존재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북한은 소위 ‘살라미’ 전술 전략으로 북핵문제를 궁극적으로 해체하게 되는 경우에도 최대한 지연 전략으로 시간을 연장시키면서 한국은 물론 미·일의 경제 지원과 안보 보장을 단계 단계마다 협상 댓가로서 요구하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북한은 동북아 국제 관계에 있어서 한국을 제압하는 안보외교 전략을 추구 하려 할 것이다. 즉 필자가 상정한 동맹관계 모델에서 북한은 가능한 한국의 위상을 축소시키고 고립화시키는 방향으로 미·일·중·러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구도를 그리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북한 나름대로는 북한체제유지와 경제발전을 위해 최소한 남북한 협력 관계를 추구하면서도 북한의 최대목표는 경제회복과 함께 한반도에 있어 정치·군사적 위상으로 한국을 제압할 수 있는 외교전략을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북한주도의 한반도 통합전략을 희구할 것이라고 사료된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북한 안보 외교의 최대 목표를 인지하고 한반도 평화통일 과정에서 시대정신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한국주도의 한반도 통합역사가 진행될 수 있는 준비 태세가 촉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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