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일어난 진정한 부흥 운동을 서로 비교, 관찰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주도하시는 부흥은 어떤 공통적 속성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예상했던대로 조나단 에드워즈가 이끌었던 미국 1차 대각성운동과 1907년 한국의 평양대부흥운동은 발흥 배경과 전개, 그리고 부흥의 원동력과 그 영향에 있어서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이 두 나라에게 부흥을 주시기 전의 나라의 상황은 총체적인 혼란을 맞이한 시대였다는 점이 우선 공통되었다. 미국은 철학 사조의 파도와 청교도들의 세...
본 논문의 목적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일어난 진정한 부흥 운동을 서로 비교, 관찰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주도하시는 부흥은 어떤 공통적 속성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예상했던대로 조나단 에드워즈가 이끌었던 미국 1차 대각성운동과 1907년 한국의 평양대부흥운동은 발흥 배경과 전개, 그리고 부흥의 원동력과 그 영향에 있어서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이 두 나라에게 부흥을 주시기 전의 나라의 상황은 총체적인 혼란을 맞이한 시대였다는 점이 우선 공통되었다. 미국은 철학 사조의 파도와 청교도들의 세속화 물결, 그리고 정치와 민족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신앙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던 시대에 하나님께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하여 일하셨다. 한국도 동학란과 청일전쟁, 그리고 민비시해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웠으며, 세계 열강들의 침략 야욕으로 불안한 정세였다. 더군다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영원한 우방으로 생각했던 미국이 일본의 조선 통치를 허락하는 조약으로 인해 사람들은 공포속에서 살아갔던 것이다. 이렇듯 나라가 깊은 영적 침체 가운데에서 허덕일 때, 국운이 쇠하여 앞이 캄캄하여 불안할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부흥을 일으키셨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비로소 고백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신 것이다. 이 부흥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리를 깨닫게 되며, 고난과 시련이 축복과 영광의 첫 단추임을 생각하게 된다. 두 번 째 공통점은 사상적인 배경이다.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은 대륙의 경건주의와 청교도주의가 영향을 끼쳤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경건주의는 스콜라적 경향에서 갈려나와 크리스챤 생활의 체험과 감정을 중요시하였고, 성경을 읽음으로서 죄인됨의 고백과 회심의 고백 등 개인적 체험을 중요시하였다. 이것은 영국의 복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촉발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런 운동은 신대륙의 각성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결국 침체된 청교도 신앙에 대한 반동으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대각성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1907년에 일어난 평양대부흥운동은 바로 미국 1차 대각성운동의 후예들의 헌신과 노력이 한 몫 하였다. 미국 1,2차 대각성운동의 아들들과 무디의 학생자원운동으로 인한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프린스톤 신학교에 선교 열풍으로 인하여 미국의 경건주의적이고 부흥적 전통위에 각성 받은 선교사들도 한국에 오게 되었다. 이처럼 대륙의 경건주의와 청교도주의 사상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1차 대각성운동에도 영향을 주었고, 평양대부흥운동 때에도 그 줄기로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이것을 볼 때 한국의 대부흥운동은 단순히 어떤 사람이나 제도를 통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대한 부흥의 물줄기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일어난 섭리적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세 번 째 공통점은 부흥의 성격이다. 부흥회 하면 얼른 권세 있는 부흥사의 설교와 그와 함께한 합심기도를 통하여 은혜를 경험하고 은사를 받는 것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의 대각성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의 사건은 너무나 신기하게도 은사 중심이 아닌 회개 중심의 부흥운동임을 깨달을 수 있다. 진정한 부흥은 무엇일까 고민해 볼 때 각종 은사를 받는 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신의 죄를 목도하고, 두려워 떨며 슬퍼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회개를 하는 것, 그래서 그 죄씻음에 대한 기쁨과 그 은혜를 인하여 전도하며 세상속에서 능력있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회개 중심의 부흥운동은 그냥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운동을 위한 기도와 말씀을 공부하는 모임이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꼭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부흥의 원동력은 기도와 말씀이라는 답을 얻게 되는데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 부흥의 공통적 속성은 지도자들의 경건 생활과 설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한 사람을 통하여 그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조나단 에드워즈나 조지 휫필드, 길선주 이 세 사람의 경건생활을 앞에서 살펴보았는데, 모두가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고 경건한 삶을 살았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회심의 체험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다. 분명한 회심 체험과 회심 이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경건 훈련을 통하여 부흥의 주역으로 준비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설교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케 하는 설교였다. 말씀 선포 가운데 청중들은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떨게 되었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회개하였다. 세속화로 인한 습관화된 죄악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그들의 설교를 통해 하나없이 폭로되었던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지만,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들은 부흥을 사모하며 평소에 경건의 칼을 갈고 닦았던 것이다. 결코 하
본 논문의 목적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일어난 진정한 부흥 운동을 서로 비교, 관찰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주도하시는 부흥은 어떤 공통적 속성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예상했던대로 조나단 에드워즈가 이끌었던 미국 1차 대각성운동과 1907년 한국의 평양대부흥운동은 발흥 배경과 전개, 그리고 부흥의 원동력과 그 영향에 있어서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이 두 나라에게 부흥을 주시기 전의 나라의 상황은 총체적인 혼란을 맞이한 시대였다는 점이 우선 공통되었다. 미국은 철학 사조의 파도와 청교도들의 세속화 물결, 그리고 정치와 민족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신앙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던 시대에 하나님께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하여 일하셨다. 한국도 동학란과 청일전쟁, 그리고 민비시해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웠으며, 세계 열강들의 침략 야욕으로 불안한 정세였다. 더군다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영원한 우방으로 생각했던 미국이 일본의 조선 통치를 허락하는 조약으로 인해 사람들은 공포속에서 살아갔던 것이다. 이렇듯 나라가 깊은 영적 침체 가운데에서 허덕일 때, 국운이 쇠하여 앞이 캄캄하여 불안할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부흥을 일으키셨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비로소 고백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신 것이다. 이 부흥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리를 깨닫게 되며, 고난과 시련이 축복과 영광의 첫 단추임을 생각하게 된다. 두 번 째 공통점은 사상적인 배경이다.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은 대륙의 경건주의와 청교도주의가 영향을 끼쳤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경건주의는 스콜라적 경향에서 갈려나와 크리스챤 생활의 체험과 감정을 중요시하였고, 성경을 읽음으로서 죄인됨의 고백과 회심의 고백 등 개인적 체험을 중요시하였다. 이것은 영국의 복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촉발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런 운동은 신대륙의 각성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결국 침체된 청교도 신앙에 대한 반동으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대각성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1907년에 일어난 평양대부흥운동은 바로 미국 1차 대각성운동의 후예들의 헌신과 노력이 한 몫 하였다. 미국 1,2차 대각성운동의 아들들과 무디의 학생자원운동으로 인한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프린스톤 신학교에 선교 열풍으로 인하여 미국의 경건주의적이고 부흥적 전통위에 각성 받은 선교사들도 한국에 오게 되었다. 이처럼 대륙의 경건주의와 청교도주의 사상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1차 대각성운동에도 영향을 주었고, 평양대부흥운동 때에도 그 줄기로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이것을 볼 때 한국의 대부흥운동은 단순히 어떤 사람이나 제도를 통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대한 부흥의 물줄기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일어난 섭리적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세 번 째 공통점은 부흥의 성격이다. 부흥회 하면 얼른 권세 있는 부흥사의 설교와 그와 함께한 합심기도를 통하여 은혜를 경험하고 은사를 받는 것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의 대각성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의 사건은 너무나 신기하게도 은사 중심이 아닌 회개 중심의 부흥운동임을 깨달을 수 있다. 진정한 부흥은 무엇일까 고민해 볼 때 각종 은사를 받는 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신의 죄를 목도하고, 두려워 떨며 슬퍼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회개를 하는 것, 그래서 그 죄씻음에 대한 기쁨과 그 은혜를 인하여 전도하며 세상속에서 능력있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회개 중심의 부흥운동은 그냥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운동을 위한 기도와 말씀을 공부하는 모임이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꼭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부흥의 원동력은 기도와 말씀이라는 답을 얻게 되는데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 부흥의 공통적 속성은 지도자들의 경건 생활과 설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한 사람을 통하여 그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조나단 에드워즈나 조지 휫필드, 길선주 이 세 사람의 경건생활을 앞에서 살펴보았는데, 모두가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고 경건한 삶을 살았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회심의 체험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다. 분명한 회심 체험과 회심 이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경건 훈련을 통하여 부흥의 주역으로 준비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설교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케 하는 설교였다. 말씀 선포 가운데 청중들은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떨게 되었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회개하였다. 세속화로 인한 습관화된 죄악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그들의 설교를 통해 하나없이 폭로되었던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지만,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들은 부흥을 사모하며 평소에 경건의 칼을 갈고 닦았던 것이다. 결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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