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성경의 근거들을 신약과 구약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교리의 신학적 의미와 그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하나님의 형상 회복의 필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진술된 원리에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내용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로, 하나님의 형성은 구속사의 긴장을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적어도 원래 상태, 부패 상태, 은혜의 상태, 영광의 상태의 관점에서 형상을 설명할수 있다. 둘째로, 인간은 단순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거나 소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 자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전인에 퍼져 있다. 인간이 만일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다. 인간의 인간 된 소이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어떤 우유적(偶有的)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이나 혹은 영적인 국면과 같은 인간의 어느 한 부분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전인과 관련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육 이원론의 설 자리가 없다. 셋째로, 하나님의 형상에는 두 국면이 있다. 구조적인 면과 기능적인 면이다. 어떤 신학자들은 구조적인 면, 즉 인간의 존재론적인 면만을 강조한다. 반면에 또 다른 신학자들은 기능적인 면, 즉 윤리적인 측면만을 강조한다. 이레니우스나 ...
지금까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성경의 근거들을 신약과 구약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교리의 신학적 의미와 그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하나님의 형상 회복의 필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진술된 원리에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내용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로, 하나님의 형성은 구속사의 긴장을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적어도 원래 상태, 부패 상태, 은혜의 상태, 영광의 상태의 관점에서 형상을 설명할수 있다. 둘째로, 인간은 단순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거나 소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 자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전인에 퍼져 있다. 인간이 만일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다. 인간의 인간 된 소이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어떤 우유적(偶有的)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이나 혹은 영적인 국면과 같은 인간의 어느 한 부분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전인과 관련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육 이원론의 설 자리가 없다. 셋째로, 하나님의 형상에는 두 국면이 있다. 구조적인 면과 기능적인 면이다. 어떤 신학자들은 구조적인 면, 즉 인간의 존재론적인 면만을 강조한다. 반면에 또 다른 신학자들은 기능적인 면, 즉 윤리적인 측면만을 강조한다. 이레니우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들은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성이 우선적으로 이성이나 도덕성 등과 같은 구조적인 능력들 속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인간의 기능은 인간 구조에 대한 일종의 부록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르트나 베르까우워나 스킬더같은 최근의 신학자들은 예배드리는 것, 섬기는 것, 사랑하는 것, 다스리는 것 등 인간의 기능이 하나님의 형상에 본질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모두는 전인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미흡한 것으로 판단된다. 전인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당연히 위의 두 국면, 곧 구조적인 면과 기능적인 면, 이 양자는 총체적으로 견지되어야 할 것이다. 구조와 기능은 서로 구별되기는 하나 결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전인의 두 국면이기 때문이다. 구조 없는 기능은 있을 수 없으며 기능을 못하는 구조는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존재는 기능을 하도록 지음 받았다.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이웃을 사랑하도록, 자연을 다스리도록 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할 때 반드시 구조와 기능의 두 국면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신학자들 사이에는 이 두 국면을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었다. 어떤 이들은 광의의 형상과 협의의 형상으로 부르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형식적 형상과 실질적 형상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며, 또한 다른 신학자는 재능과 창조성으로 말하기도 하였다. 명칭이야 어찌 되었든지간에 이 두 국면이 하나님의 형상 이해에 있어서 본질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좁은 의미의, 혹은 실직적인 의미의 형상, 곧 기능적인 면을 말하는 협의의 하나님의 형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전통적으로 개혁 신학자들은 이 협의의 하나님의 형상을 참된 지식과 의와 거룩으로 인식해 왔다. 그것은 헤르만 바빙크를 비롯한 전통적인 개혁 신학자들의 글 속에서뿐만 아니라, 하이델베르크 신조나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등 전통적인 개혁신학의 표준 문서들 속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의 근거를 성경 에베소서 4장 24절과 골로새서 3장 20절에서 찾고 있다.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는 신앙 윤리적인 성격이 그 본질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즉, 이 협의의 신 형상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의 적절한 기능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 지성적인 국면에는 참된 지식으로, 의미적인 국면에는 의롭게, 마음에는 거룩함으로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로, 하나님의 형상에 있어서 구조적인 면과 기능적인 국면 사이의 구별은 인간의 타락 전 상태와 타락 후 상태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그는 구조적이며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이었을 뿐 아니라, 동시에 기능적이며 좁은 의미에서도 하나님을 잘 반영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순종 속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죄로 타락한 이후, 구조적이며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은 보유하고 있었으나, 기능적이며 좁은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상실하였다. 말하자면, 타락한 인간의 존재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구조적인 국면에 속하는 재능과 능력을 소유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이제 그와 같은 재능들을 죄악된 방법, 곧 불순종의 방법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양자, 구조적인 면과 기능적인 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성경의 근거들을 신약과 구약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교리의 신학적 의미와 그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하나님의 형상 회복의 필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진술된 원리에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내용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로, 하나님의 형성은 구속사의 긴장을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적어도 원래 상태, 부패 상태, 은혜의 상태, 영광의 상태의 관점에서 형상을 설명할수 있다. 둘째로, 인간은 단순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거나 소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 자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전인에 퍼져 있다. 인간이 만일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다. 인간의 인간 된 소이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어떤 우유적(偶有的)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이나 혹은 영적인 국면과 같은 인간의 어느 한 부분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전인과 관련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육 이원론의 설 자리가 없다. 셋째로, 하나님의 형상에는 두 국면이 있다. 구조적인 면과 기능적인 면이다. 어떤 신학자들은 구조적인 면, 즉 인간의 존재론적인 면만을 강조한다. 반면에 또 다른 신학자들은 기능적인 면, 즉 윤리적인 측면만을 강조한다. 이레니우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들은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성이 우선적으로 이성이나 도덕성 등과 같은 구조적인 능력들 속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인간의 기능은 인간 구조에 대한 일종의 부록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르트나 베르까우워나 스킬더같은 최근의 신학자들은 예배드리는 것, 섬기는 것, 사랑하는 것, 다스리는 것 등 인간의 기능이 하나님의 형상에 본질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모두는 전인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미흡한 것으로 판단된다. 전인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당연히 위의 두 국면, 곧 구조적인 면과 기능적인 면, 이 양자는 총체적으로 견지되어야 할 것이다. 구조와 기능은 서로 구별되기는 하나 결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전인의 두 국면이기 때문이다. 구조 없는 기능은 있을 수 없으며 기능을 못하는 구조는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존재는 기능을 하도록 지음 받았다.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이웃을 사랑하도록, 자연을 다스리도록 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할 때 반드시 구조와 기능의 두 국면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신학자들 사이에는 이 두 국면을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었다. 어떤 이들은 광의의 형상과 협의의 형상으로 부르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형식적 형상과 실질적 형상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며, 또한 다른 신학자는 재능과 창조성으로 말하기도 하였다. 명칭이야 어찌 되었든지간에 이 두 국면이 하나님의 형상 이해에 있어서 본질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좁은 의미의, 혹은 실직적인 의미의 형상, 곧 기능적인 면을 말하는 협의의 하나님의 형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전통적으로 개혁 신학자들은 이 협의의 하나님의 형상을 참된 지식과 의와 거룩으로 인식해 왔다. 그것은 헤르만 바빙크를 비롯한 전통적인 개혁 신학자들의 글 속에서뿐만 아니라, 하이델베르크 신조나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등 전통적인 개혁신학의 표준 문서들 속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의 근거를 성경 에베소서 4장 24절과 골로새서 3장 20절에서 찾고 있다.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는 신앙 윤리적인 성격이 그 본질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즉, 이 협의의 신 형상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의 적절한 기능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 지성적인 국면에는 참된 지식으로, 의미적인 국면에는 의롭게, 마음에는 거룩함으로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로, 하나님의 형상에 있어서 구조적인 면과 기능적인 국면 사이의 구별은 인간의 타락 전 상태와 타락 후 상태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그는 구조적이며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이었을 뿐 아니라, 동시에 기능적이며 좁은 의미에서도 하나님을 잘 반영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순종 속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죄로 타락한 이후, 구조적이며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은 보유하고 있었으나, 기능적이며 좁은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상실하였다. 말하자면, 타락한 인간의 존재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구조적인 국면에 속하는 재능과 능력을 소유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이제 그와 같은 재능들을 죄악된 방법, 곧 불순종의 방법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양자, 구조적인 면과 기능적인 면
※ AI-Helper는 부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