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과 웨슬리가 주장하고 있는 구원론과 이들의 견해에 관한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해 고찰해 보았다. 구원론에 관한 설명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분에서 ‘이중예정론’을 전제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으며, 웨슬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선행은혜’을 전제로 자신의 구원론을 주장하였다. 성경에 나타나는 구원에 관해서만 칼빈과 웨슬리는 제시하였으며 두 신학자는 동시대 사람이 아닌 다른 시대의 사람으로, 칼빈은 그 시대의 필요에 맞게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강조하는 예정론에 기초한 구원론을 주창했고, 웨슬리는 오로지 그...
칼빈과 웨슬리가 주장하고 있는 구원론과 이들의 견해에 관한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해 고찰해 보았다. 구원론에 관한 설명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분에서 ‘이중예정론’을 전제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으며, 웨슬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선행은혜’을 전제로 자신의 구원론을 주장하였다. 성경에 나타나는 구원에 관해서만 칼빈과 웨슬리는 제시하였으며 두 신학자는 동시대 사람이 아닌 다른 시대의 사람으로, 칼빈은 그 시대의 필요에 맞게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강조하는 예정론에 기초한 구원론을 주창했고, 웨슬리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순간부터 나타난 칭의와 성화를 분명하게 구분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측면 성경을 통해 강조하였다. 칼빈과 웨슬리는 이신 칭의, 즉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불변 할 수 없는 진리를 주장하였고 인간은 모두 자신의 죄로 인하여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부분에 있어서 두 학자의 견해는 동일하다. 강조하자면,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함 받았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에 있다는 것이 기독교 구원의 핵심 원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칼빈은 성화에 있어선 오직 믿음에 의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고, 이 전적인 은혜는 부르심의 열매로서, 이로 인해 주께서 자신을 자녀로 택정하셨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였다. 웨슬리 또한 성화에 대해서,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데서 비롯된 지속적인 성화에 기반을 둠을 확실하게 한다. 인간의 전적부패에 관해서는 칼빈과 웨슬리는 동일한 의견을 보인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역사가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느냐에 관한 견해에서는 서로 아주 다른 이견을 가지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은혜의 역사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 택정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은혜라는 사실이다. 반면에 웨슬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라고 이해하였다. 즉, 선행하시는 은혜(은총의 역사)는 세상 모든 이에게 이미 주어졌다는 것이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잃어버빈 사람은 없으며,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유기된 사람도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구속사는 오직 예정 받은 자만을 구하려고 계획된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은총은 오로지 택함을 받은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선택된 구원역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는 보혈의 공로로 인한 속죄가 선택된 자들에게만 나타나는 단편적인 십자가의 구속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칼빈은 선택과 유기의 교리를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를 나타낸 것이고, 구원에 관한 부분에 있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을 통해서만 인간이 받을 수 있음을 말하려 한 것이다. 반면, 웨슬리는 인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을 믿느냐 또는 안 믿느냐에 따른 믿음의 조건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즉. 웨슬리는 선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칼빈의 ‘무조건적인 선택’의 예정을 인정한다면, ‘무조건적인 유기’의 예정자체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무조건적인 유기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공의를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건이 선택된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베풀어 주시는 선행에 은혜에 입각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칼빈은 한 번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자는 결코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즉, 택함 받은 자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쉬지 않고 능력으로 보호함으로써 영원히 확실하고 안전한 것이다. 한번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은 끝까지 견인되어 영원히 버림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러한 칼빈의 견인에 관하여 반대한다. 웨슬리는 믿음의 단계속에 있든지 거룩함을 겸비한 자라고 할지라도 타락하고 부패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유는 영혼의 속성은 순간적으로 반응하며 믿음에 거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점진적인 성화의 과정과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거룩함의 본성으로 변화한다는 웨슬리의 성화론을 비판한다. 또한 칼빈은 죽기 전에 온전한 성화가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웨슬리는 가능하다고 해석한다. 칼빈은 성화의 모든 것이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신자에게 있어서 선행 등의 성화의 열매가 맺히는 것은 그가 그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이뤄진 구원이 외부로 열매를 맺
칼빈과 웨슬리가 주장하고 있는 구원론과 이들의 견해에 관한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해 고찰해 보았다. 구원론에 관한 설명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분에서 ‘이중예정론’을 전제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으며, 웨슬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선행은혜’을 전제로 자신의 구원론을 주장하였다. 성경에 나타나는 구원에 관해서만 칼빈과 웨슬리는 제시하였으며 두 신학자는 동시대 사람이 아닌 다른 시대의 사람으로, 칼빈은 그 시대의 필요에 맞게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강조하는 예정론에 기초한 구원론을 주창했고, 웨슬리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순간부터 나타난 칭의와 성화를 분명하게 구분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측면 성경을 통해 강조하였다. 칼빈과 웨슬리는 이신 칭의, 즉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불변 할 수 없는 진리를 주장하였고 인간은 모두 자신의 죄로 인하여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부분에 있어서 두 학자의 견해는 동일하다. 강조하자면,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함 받았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에 있다는 것이 기독교 구원의 핵심 원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칼빈은 성화에 있어선 오직 믿음에 의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고, 이 전적인 은혜는 부르심의 열매로서, 이로 인해 주께서 자신을 자녀로 택정하셨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였다. 웨슬리 또한 성화에 대해서,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데서 비롯된 지속적인 성화에 기반을 둠을 확실하게 한다. 인간의 전적부패에 관해서는 칼빈과 웨슬리는 동일한 의견을 보인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역사가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느냐에 관한 견해에서는 서로 아주 다른 이견을 가지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은혜의 역사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 택정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은혜라는 사실이다. 반면에 웨슬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라고 이해하였다. 즉, 선행하시는 은혜(은총의 역사)는 세상 모든 이에게 이미 주어졌다는 것이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잃어버빈 사람은 없으며,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유기된 사람도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구속사는 오직 예정 받은 자만을 구하려고 계획된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은총은 오로지 택함을 받은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선택된 구원역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는 보혈의 공로로 인한 속죄가 선택된 자들에게만 나타나는 단편적인 십자가의 구속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칼빈은 선택과 유기의 교리를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를 나타낸 것이고, 구원에 관한 부분에 있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을 통해서만 인간이 받을 수 있음을 말하려 한 것이다. 반면, 웨슬리는 인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을 믿느냐 또는 안 믿느냐에 따른 믿음의 조건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즉. 웨슬리는 선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칼빈의 ‘무조건적인 선택’의 예정을 인정한다면, ‘무조건적인 유기’의 예정자체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무조건적인 유기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공의를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건이 선택된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베풀어 주시는 선행에 은혜에 입각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칼빈은 한 번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자는 결코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즉, 택함 받은 자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쉬지 않고 능력으로 보호함으로써 영원히 확실하고 안전한 것이다. 한번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은 끝까지 견인되어 영원히 버림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러한 칼빈의 견인에 관하여 반대한다. 웨슬리는 믿음의 단계속에 있든지 거룩함을 겸비한 자라고 할지라도 타락하고 부패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유는 영혼의 속성은 순간적으로 반응하며 믿음에 거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점진적인 성화의 과정과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거룩함의 본성으로 변화한다는 웨슬리의 성화론을 비판한다. 또한 칼빈은 죽기 전에 온전한 성화가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웨슬리는 가능하다고 해석한다. 칼빈은 성화의 모든 것이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신자에게 있어서 선행 등의 성화의 열매가 맺히는 것은 그가 그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이뤄진 구원이 외부로 열매를 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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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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