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를 우리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정의 내린다. 이는 청소년기에 그들이 겪게 되는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인 혼돈과 방황으로 인한 영향력이 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급속하게 성장하는 신체는 생식기능을 갖게 되고 이성 및 배우자를 찾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지능력의 발달과 더불어 자기 나름대로의 성격과 가치관을 형성하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노력한다. 에릭 에릭슨(E. H. Erikson)은 인간 ...
청소년기를 우리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정의 내린다. 이는 청소년기에 그들이 겪게 되는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인 혼돈과 방황으로 인한 영향력이 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급속하게 성장하는 신체는 생식기능을 갖게 되고 이성 및 배우자를 찾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지능력의 발달과 더불어 자기 나름대로의 성격과 가치관을 형성하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노력한다. 에릭 에릭슨(E. H. Erikson)은 인간 발달의 전체 8단계 중에서 특별히 청소년기의 정체성 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아동기와는 달리 새로운 시각에서 자기에 대한 탐색과 고민이 증가된다. 이 시기에 청소년은 ‘나는 누구이며,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청소년기의 시기가 아직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미완성의 시기이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대를 품을 수 있는 희망적인 시기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청소년기에 건전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면 사회적 성취와 사회적 기술의 획득, 갈등해결 능력, 장래 직업적 성취, 가족생활, 성 역할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즉, 이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보다 큰 안목에서 키워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정체성의 위기로 건전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할 경우에는 많은 고민과 갈등 그리고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은 그들 자신의 실존적인 삶의 문제와 충돌을 일으키면서 오랜 방황과 비행을 경험할 수도 있다. 예전에 비해 현대는 학업의 기간이 길어지고, 빠른 신체적 성장으로 인해 청소년기의 기간은 점차 길어지는 추세이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이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실존적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도록 교회는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청소년들의 생각들을 읽고 시대적 상황의 흐름에 맞은 교회교육 이론과 방법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신앙공동체를 통해 변화될 다음세대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청소년들을 교육하기가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교회는 청소년들을 포기할 수 없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변화이다. 복음을 통하여 삶의 이유와 목적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이전에 아무런 의미가 없던 삶이 신앙교육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자신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복음을 통한 삶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포기할 수 없다. 적어도 교회교육의 가치를 믿고 있고 그 영향력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 기대와 소망이 포기 될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것임을 받아들 수 있어야 한다.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는 최근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일관된 가치와 목적의 상실로 오는 공허감으로 인해 종교가 부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의 부흥과 더불어 종교 신비주의와 영성의 위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많은 집단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종교형식과 실천의 권위주의적 뿌리에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점이다. 또한, 근대 생활의 모호성과 영적인 분열을 경험해 오면서 공유된 의미를 유지할 이미지, 신뢰, 공동체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대의 불확실성 속에서 현대인들은 새로운 기적과 권위를 필요로 한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풍요로운 생활 가운데서도 폭력, 전쟁, 마약, 성적타락으로 인한 가정의 파괴 등의 문제는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의 다원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존재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종교에서 찾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생활하게 될 다음세대인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교육에서 회심과 양육은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회심과 양육은 서로 상반되어지는 개념이 아니다. 회심과 양육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는 상호보완적관계이다. 교회교육을 통한 신앙의 이해에 대한 토대위에 회심이 경험되어져야 한다. 또한 회심의 경험 이후에는 교회교육을 통해서 열매가 맺혀지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 경험인 회심을 인간적이고 의도적으로 계획하여서 주도한다는 것은 아니다. 회심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비추어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러나 교육적으로 환경을 제공하여 줌으로서 회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여 스스로 군림했던 자아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아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맡겨드릴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한 회심의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껏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변화되는 것은 일상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지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강한 그 무엇인가의 개입이 있어야 하며 우리는 이것을 회심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회심은 분명한 목적이 있는 엑스타시이며 이 경험은 경험자를 새로운 역사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회심의 종교적 경험을 위한 교회교육은 곧 신앙교육이다. 신앙교육의 본질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쌓이도록 돕는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에밀 부르너(E. Brunner)는 신앙을 만남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만남에 의해서 형성되어지고 일정한 행동(certain acts)에 의해 성취되며 일정한 존재상태(states of being)에 의해 특징 지워지고, 일정한 전제조건(pre-conditions) 위에 근거하여, 일정한 주제들과 관련되며 증거에 의해서 구별되어지고, 일정한 동력(dynamics)에 의해서 동기가 유발되고 유지되어지는 친교 안에서의 관계로 정의하고 있다. 신앙의 전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은 새로운 삶으로의 변화를 일으킨다. 즉, 인간존재의 물음에 해답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교회교육이 실현되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은 쉽게 변화되는 존재가 아니다. 만약에 한 사람의 변화가 있었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계기가 있게 되어 있다. 즉,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미하는 회심의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자신이 지녀왔던 삶의 습관들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회심은 교회의 교리목록에 대한 동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을 교회로 모집하는 것도 아니다. 회심의 목표는 일련의 감정적 여행을 공급하는 것이며 분명하게 ‘무엇을 위해서’ 라는 목표의 지점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설픈 가르침이나 일방적인 주입식의 교육만으로는 파격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회심의 경험은 이전의 삶의 형태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으로서의 전인적인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한 종교적 경험인 회심이야 말로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에 중요하다. 기독교 신학 및 기독교교육의 입장에서 볼 때, 크리스찬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은 객관적 기독교 진리와 신앙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하고 내면화할 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즉, 기독교의 진리와 신앙이 내재화 되고 내면화가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순간이 회심의 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연구의 목적은 종교적 경험의 대표적 현상으로 간주되는 회심이 청소년기의 자아정체성 형성과 어떠한 상관성을 갖는가를 규명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서 균형 잡힌 자아 정체성 형성을 위한 회심교육의 원리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청소년기를 우리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정의 내린다. 이는 청소년기에 그들이 겪게 되는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인 혼돈과 방황으로 인한 영향력이 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급속하게 성장하는 신체는 생식기능을 갖게 되고 이성 및 배우자를 찾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지능력의 발달과 더불어 자기 나름대로의 성격과 가치관을 형성하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노력한다. 에릭 에릭슨(E. H. Erikson)은 인간 발달의 전체 8단계 중에서 특별히 청소년기의 정체성 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아동기와는 달리 새로운 시각에서 자기에 대한 탐색과 고민이 증가된다. 이 시기에 청소년은 ‘나는 누구이며,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청소년기의 시기가 아직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미완성의 시기이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대를 품을 수 있는 희망적인 시기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청소년기에 건전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면 사회적 성취와 사회적 기술의 획득, 갈등해결 능력, 장래 직업적 성취, 가족생활, 성 역할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즉, 이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보다 큰 안목에서 키워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정체성의 위기로 건전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할 경우에는 많은 고민과 갈등 그리고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은 그들 자신의 실존적인 삶의 문제와 충돌을 일으키면서 오랜 방황과 비행을 경험할 수도 있다. 예전에 비해 현대는 학업의 기간이 길어지고, 빠른 신체적 성장으로 인해 청소년기의 기간은 점차 길어지는 추세이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이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실존적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도록 교회는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청소년들의 생각들을 읽고 시대적 상황의 흐름에 맞은 교회교육 이론과 방법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신앙공동체를 통해 변화될 다음세대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청소년들을 교육하기가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교회는 청소년들을 포기할 수 없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변화이다. 복음을 통하여 삶의 이유와 목적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이전에 아무런 의미가 없던 삶이 신앙교육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자신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복음을 통한 삶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포기할 수 없다. 적어도 교회교육의 가치를 믿고 있고 그 영향력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 기대와 소망이 포기 될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것임을 받아들 수 있어야 한다.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는 최근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일관된 가치와 목적의 상실로 오는 공허감으로 인해 종교가 부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의 부흥과 더불어 종교 신비주의와 영성의 위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많은 집단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종교형식과 실천의 권위주의적 뿌리에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점이다. 또한, 근대 생활의 모호성과 영적인 분열을 경험해 오면서 공유된 의미를 유지할 이미지, 신뢰, 공동체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대의 불확실성 속에서 현대인들은 새로운 기적과 권위를 필요로 한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풍요로운 생활 가운데서도 폭력, 전쟁, 마약, 성적타락으로 인한 가정의 파괴 등의 문제는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의 다원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존재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종교에서 찾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생활하게 될 다음세대인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교육에서 회심과 양육은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회심과 양육은 서로 상반되어지는 개념이 아니다. 회심과 양육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는 상호보완적관계이다. 교회교육을 통한 신앙의 이해에 대한 토대위에 회심이 경험되어져야 한다. 또한 회심의 경험 이후에는 교회교육을 통해서 열매가 맺혀지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 경험인 회심을 인간적이고 의도적으로 계획하여서 주도한다는 것은 아니다. 회심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비추어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러나 교육적으로 환경을 제공하여 줌으로서 회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여 스스로 군림했던 자아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아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맡겨드릴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한 회심의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껏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변화되는 것은 일상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지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강한 그 무엇인가의 개입이 있어야 하며 우리는 이것을 회심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회심은 분명한 목적이 있는 엑스타시이며 이 경험은 경험자를 새로운 역사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회심의 종교적 경험을 위한 교회교육은 곧 신앙교육이다. 신앙교육의 본질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쌓이도록 돕는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에밀 부르너(E. Brunner)는 신앙을 만남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만남에 의해서 형성되어지고 일정한 행동(certain acts)에 의해 성취되며 일정한 존재상태(states of being)에 의해 특징 지워지고, 일정한 전제조건(pre-conditions) 위에 근거하여, 일정한 주제들과 관련되며 증거에 의해서 구별되어지고, 일정한 동력(dynamics)에 의해서 동기가 유발되고 유지되어지는 친교 안에서의 관계로 정의하고 있다. 신앙의 전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은 새로운 삶으로의 변화를 일으킨다. 즉, 인간존재의 물음에 해답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교회교육이 실현되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은 쉽게 변화되는 존재가 아니다. 만약에 한 사람의 변화가 있었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계기가 있게 되어 있다. 즉,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미하는 회심의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자신이 지녀왔던 삶의 습관들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회심은 교회의 교리목록에 대한 동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을 교회로 모집하는 것도 아니다. 회심의 목표는 일련의 감정적 여행을 공급하는 것이며 분명하게 ‘무엇을 위해서’ 라는 목표의 지점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설픈 가르침이나 일방적인 주입식의 교육만으로는 파격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회심의 경험은 이전의 삶의 형태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으로서의 전인적인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한 종교적 경험인 회심이야 말로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에 중요하다. 기독교 신학 및 기독교교육의 입장에서 볼 때, 크리스찬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은 객관적 기독교 진리와 신앙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하고 내면화할 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즉, 기독교의 진리와 신앙이 내재화 되고 내면화가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순간이 회심의 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연구의 목적은 종교적 경험의 대표적 현상으로 간주되는 회심이 청소년기의 자아정체성 형성과 어떠한 상관성을 갖는가를 규명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서 균형 잡힌 자아 정체성 형성을 위한 회심교육의 원리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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