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데카르트(R. Descartes)의 마지막 저작 정념론(Les Passions de l'âme)에서 다루어지는 자유의지가 어떤 의미에서 자유로운 것인지 밝히는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 실체이원론을 제시하면서, 정신과 육체를 종적으로 철저히 분리시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분리된 두 실체가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의지와 정념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 주장...
본 논문의 목적은, 데카르트(R. Descartes)의 마지막 저작 정념론(Les Passions de l'âme)에서 다루어지는 자유의지가 어떤 의미에서 자유로운 것인지 밝히는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 실체이원론을 제시하면서, 정신과 육체를 종적으로 철저히 분리시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분리된 두 실체가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의지와 정념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 주장은 이론적으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심각한 곤경을 불러일으킨다. 자유의지 문제에 국한해서 볼 때, 의지가 정념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것이 참된 의미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실체이원론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유의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왜 실체이원론을 고수하는가?’ 그리고 ‘그의 의지는 어떤 의미에서 자유로운가?’ 이것이 이 논문을 이끌어 가는 두 가지 물음이다.
먼저, 정념론에서 자유의지는 참으로 자유로운가? 그는 정신과 육체를 철저히 분리시킨 다음, 의지는 정신에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 정념은 육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더 나아가 정신에 근거를 두고 있기에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의지가 수동적인 물리적 인과운동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정념을 제어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한편으로는 정신이 육체와 종적으로 분리되었고, 의지가 그러한 정신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에서는 자유롭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과 육체가 긴밀히 결합되어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에, 육체가 정신에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정념에 의해 의지가 휘둘리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 의지는 정념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인 자유를 주장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는 여전히 의지의 자유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의지는 자유롭다. 그것은 정신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정신은 자유의지의 근거가 되는가?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켰다. 이는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실체적 형상과 질료의 관계를 비판한 새로운 주장이었다. 그는 실체적 형상이 아니라 오직 사유하는 활동으로서 정신을 주장하여 정신에 자발적인 능동성을 부여한다. 반면, 질료가 아니라 기계로서 육체를 주장함으로써 육체에는 철저한 수동성을 부여한다. 결국 데카르트가 주장하는 자유의지의 근거는 육체에 대한 정신의 능동성이다.
그러나 정신은 순수한 의미에서 능동성일 수 없다. 앞서 보았듯이, 육체가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한, 언제든지 정신은 육체에 의해 수동성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능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지가 가지고 있는 선과 악 혹은 좋음과 나쁨에 관한 판단능력을 주장한다. 이는 새로운 주장이었는데, 전통적인 입장으로는 판단능력은 의지가 아니라 지성에 부여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능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성이 수동적으로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면, 의지가 그것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즉 의지에 판단능력을 부여 했던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비결정성의 자유가 아니라 자발성의 자유를 더욱 고차원적인 자유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자발성의 자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근거는 바로 정신이 명석판명한 직관으로 확증한 인간의 인식이다.
자유의지는 근원적으로 인간의 인식에 뿌리박고 있다. 이때 인간의 인식이란 대상의 운동 원리를 파악해내는 과학적 인식이다. 아무리 정신이 육체의 정념으로 인해 수동성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대상의 운동 원리를 발견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 우리는 정념을 잘 통제할 수 있다. 즉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데카르트(R. Descartes)의 마지막 저작 정념론(Les Passions de l'âme)에서 다루어지는 자유의지가 어떤 의미에서 자유로운 것인지 밝히는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 실체이원론을 제시하면서, 정신과 육체를 종적으로 철저히 분리시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분리된 두 실체가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의지와 정념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 주장은 이론적으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심각한 곤경을 불러일으킨다. 자유의지 문제에 국한해서 볼 때, 의지가 정념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것이 참된 의미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실체이원론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유의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왜 실체이원론을 고수하는가?’ 그리고 ‘그의 의지는 어떤 의미에서 자유로운가?’ 이것이 이 논문을 이끌어 가는 두 가지 물음이다.
먼저, 정념론에서 자유의지는 참으로 자유로운가? 그는 정신과 육체를 철저히 분리시킨 다음, 의지는 정신에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 정념은 육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더 나아가 정신에 근거를 두고 있기에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의지가 수동적인 물리적 인과운동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정념을 제어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한편으로는 정신이 육체와 종적으로 분리되었고, 의지가 그러한 정신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에서는 자유롭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과 육체가 긴밀히 결합되어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에, 육체가 정신에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정념에 의해 의지가 휘둘리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 의지는 정념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인 자유를 주장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는 여전히 의지의 자유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의지는 자유롭다. 그것은 정신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정신은 자유의지의 근거가 되는가?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켰다. 이는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실체적 형상과 질료의 관계를 비판한 새로운 주장이었다. 그는 실체적 형상이 아니라 오직 사유하는 활동으로서 정신을 주장하여 정신에 자발적인 능동성을 부여한다. 반면, 질료가 아니라 기계로서 육체를 주장함으로써 육체에는 철저한 수동성을 부여한다. 결국 데카르트가 주장하는 자유의지의 근거는 육체에 대한 정신의 능동성이다.
그러나 정신은 순수한 의미에서 능동성일 수 없다. 앞서 보았듯이, 육체가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한, 언제든지 정신은 육체에 의해 수동성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능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지가 가지고 있는 선과 악 혹은 좋음과 나쁨에 관한 판단능력을 주장한다. 이는 새로운 주장이었는데, 전통적인 입장으로는 판단능력은 의지가 아니라 지성에 부여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능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성이 수동적으로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면, 의지가 그것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즉 의지에 판단능력을 부여 했던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비결정성의 자유가 아니라 자발성의 자유를 더욱 고차원적인 자유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자발성의 자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근거는 바로 정신이 명석판명한 직관으로 확증한 인간의 인식이다.
자유의지는 근원적으로 인간의 인식에 뿌리박고 있다. 이때 인간의 인식이란 대상의 운동 원리를 파악해내는 과학적 인식이다. 아무리 정신이 육체의 정념으로 인해 수동성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대상의 운동 원리를 발견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 우리는 정념을 잘 통제할 수 있다. 즉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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