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목적은 생산력, 시간, 그리고 개인의 변증법을 통해서 마르크스(K.Marx)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있다.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생산력 발전을 공산주의의 전제로 제시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생산력의 경향적 발전과 계급투쟁을 통해서 성취되는 노동시간 단축=자유시간 증대를 공산주의의 근본조건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시간 단축=자유시간 증대 테제에 나타난 노동시간과 ...
이 글의 목적은 생산력, 시간, 그리고 개인의 변증법을 통해서 마르크스(K.Marx)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있다.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생산력 발전을 공산주의의 전제로 제시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생산력의 경향적 발전과 계급투쟁을 통해서 성취되는 노동시간 단축=자유시간 증대를 공산주의의 근본조건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시간 단축=자유시간 증대 테제에 나타난 노동시간과 자유시간은 측정 가능한 계량화된 시간으로만 이해될 뿐만 아니라, 특히 자유시간 개념은 남는 시간 혹은 노동 이외의 시간으로만 고찰됐다. 더 나아가 자유시간은 오직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성취되는 시간으로 혹은 취미활동을 위한 시간으로만 이해되어 왔다. 이와 달리 필자는 이 테제에 나타난 자유시간을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시간 혹은 질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시간인 “여유시간”(die Mußezeit)으로 재해석할 것이다. 그리고 여유시간의 구성주체를 계급적 관점에서 서 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개인으로 설정할 것이다. 그 후 계급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힘의, 즉 계급에서 개인으로 지양될 수 있는 힘의 형성 과정이 여유시간의 구성 과정이라는 점을 밝힐 것이다. 끝으로 자본의 기획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진정한 삶의 시간, 즉 여유 시간을 구성할 수 있는 개인들의 힘을 에피쿠로스(Epikur)의 원자들의 운동과 슈티르너(M. Stirner)의 “창조적인 무”의 종합으로 제시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시간 이해이다. 필자는 마르크스의 시간 이해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에피쿠로스는 사물과 현상의 매개체인 감각적 지각을 통해서 세계 및 시간의 근원을 “변화”의 영원성으로 구성했다. 이로부터 마르크스는 세계 및 시간의 구성을 원자로서 개인들의 운동혹은 힘의 발현으로 재해석했다. 둘째, 마르크스가 제시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역사적 시간은 “지금 여기”라는 시간과 공간의 종합적 구성, 즉 세계의 구성을 함축한다. 셋째, “지금 여기”의 자본주의에서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노동시간 혹은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시간은 인간의 삶을 전반적으로 규제한다. 넷째, 노동시간 밖에서 삶을 향유하는 자유시간 혹은 취미로서의 자유시간과 다섯째, 질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자유시간 혹은 노동시간과 자유시간의 대립 속에서 나타나는 여유시간은 인간의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열리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물론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의 지양으로서 자유시간을 자본의 삶이 아닌 개인들의 삶의 시간으로 설정하기는 했지만, 취미로서 자유시간과 여유시간으로서 자유시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유시간이 취미로서의 여가시간으로만 기능적으로 작동할 위험을 보지 못했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는 취미로서 여가 시간이 문화 산업에 포섭될 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활동이 자기착취로 변질될 가능성을 쉽게 지나쳤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필자는 자유시간으로서 여유시간을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체화된 시간에 대한 비판적 운동으로, 더 나아가 질적으로 다양하고 특이한 특성을 지닌 시간으로 제시한다. 또한 여유시간은 항상 현재적인 지평, 즉 “지금 여기”라는 지평에서 구성될 뿐만 아니라, 자본에 의해서 기획되는 거짓된 자유시간 혹은 노동력과 동일하게 판매되는 여가시간으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으로 정립한다. 이러한 측면을 개인과 관련해서 보면, 여유시간을 구성하는 개인은 “있는바 그대로”의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힘은 한편으로 ①의 시간 이해에 나타난 원자들의 운동인 편위를 통해서 세계를 구성할 가능성을 담지하면서, 동시에 세계 구성을 통한 자기 현존재의 회복의 힘을 함축한다. 여유시간을 구성하는 원자로서 개인은 슈티르너가 언급한 모든 전제를 파괴하면서 동시에 창조하는 유일자들의 힘, 즉 개인들의 창조적인 무라는 힘을 발휘한다. 여유시간 속에서 “있는바 그대로”의 개인들은 현존하는 생산 양식에 의해서 왜곡된 자연과 인간 및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구성할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된다. 즉 여유시간의 구성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객관적 기초이며, 개인의 창조적인 무는 연합을 구성하는 주체들의 힘인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생산력, 시간, 그리고 개인의 변증법을 통해서 마르크스(K.Marx)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있다.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생산력 발전을 공산주의의 전제로 제시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생산력의 경향적 발전과 계급투쟁을 통해서 성취되는 노동시간 단축=자유시간 증대를 공산주의의 근본조건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시간 단축=자유시간 증대 테제에 나타난 노동시간과 자유시간은 측정 가능한 계량화된 시간으로만 이해될 뿐만 아니라, 특히 자유시간 개념은 남는 시간 혹은 노동 이외의 시간으로만 고찰됐다. 더 나아가 자유시간은 오직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성취되는 시간으로 혹은 취미활동을 위한 시간으로만 이해되어 왔다. 이와 달리 필자는 이 테제에 나타난 자유시간을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시간 혹은 질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시간인 “여유시간”(die Mußezeit)으로 재해석할 것이다. 그리고 여유시간의 구성주체를 계급적 관점에서 서 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개인으로 설정할 것이다. 그 후 계급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힘의, 즉 계급에서 개인으로 지양될 수 있는 힘의 형성 과정이 여유시간의 구성 과정이라는 점을 밝힐 것이다. 끝으로 자본의 기획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진정한 삶의 시간, 즉 여유 시간을 구성할 수 있는 개인들의 힘을 에피쿠로스(Epikur)의 원자들의 운동과 슈티르너(M. Stirner)의 “창조적인 무”의 종합으로 제시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시간 이해이다. 필자는 마르크스의 시간 이해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에피쿠로스는 사물과 현상의 매개체인 감각적 지각을 통해서 세계 및 시간의 근원을 “변화”의 영원성으로 구성했다. 이로부터 마르크스는 세계 및 시간의 구성을 원자로서 개인들의 운동혹은 힘의 발현으로 재해석했다. 둘째, 마르크스가 제시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역사적 시간은 “지금 여기”라는 시간과 공간의 종합적 구성, 즉 세계의 구성을 함축한다. 셋째, “지금 여기”의 자본주의에서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노동시간 혹은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시간은 인간의 삶을 전반적으로 규제한다. 넷째, 노동시간 밖에서 삶을 향유하는 자유시간 혹은 취미로서의 자유시간과 다섯째, 질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자유시간 혹은 노동시간과 자유시간의 대립 속에서 나타나는 여유시간은 인간의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열리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물론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의 지양으로서 자유시간을 자본의 삶이 아닌 개인들의 삶의 시간으로 설정하기는 했지만, 취미로서 자유시간과 여유시간으로서 자유시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유시간이 취미로서의 여가시간으로만 기능적으로 작동할 위험을 보지 못했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는 취미로서 여가 시간이 문화 산업에 포섭될 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활동이 자기착취로 변질될 가능성을 쉽게 지나쳤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필자는 자유시간으로서 여유시간을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체화된 시간에 대한 비판적 운동으로, 더 나아가 질적으로 다양하고 특이한 특성을 지닌 시간으로 제시한다. 또한 여유시간은 항상 현재적인 지평, 즉 “지금 여기”라는 지평에서 구성될 뿐만 아니라, 자본에 의해서 기획되는 거짓된 자유시간 혹은 노동력과 동일하게 판매되는 여가시간으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으로 정립한다. 이러한 측면을 개인과 관련해서 보면, 여유시간을 구성하는 개인은 “있는바 그대로”의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힘은 한편으로 ①의 시간 이해에 나타난 원자들의 운동인 편위를 통해서 세계를 구성할 가능성을 담지하면서, 동시에 세계 구성을 통한 자기 현존재의 회복의 힘을 함축한다. 여유시간을 구성하는 원자로서 개인은 슈티르너가 언급한 모든 전제를 파괴하면서 동시에 창조하는 유일자들의 힘, 즉 개인들의 창조적인 무라는 힘을 발휘한다. 여유시간 속에서 “있는바 그대로”의 개인들은 현존하는 생산 양식에 의해서 왜곡된 자연과 인간 및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구성할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된다. 즉 여유시간의 구성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객관적 기초이며, 개인의 창조적인 무는 연합을 구성하는 주체들의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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