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quire{mediawiki-texvc}$

연합인증

연합인증 가입 기관의 연구자들은 소속기관의 인증정보(ID와 암호)를 이용해 다른 대학, 연구기관, 서비스 공급자의 다양한 온라인 자원과 연구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행자가 자국에서 발행 받은 여권으로 세계 각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연합인증으로 이용이 가능한 서비스는 NTIS, DataON, Edison, Kafe, Webinar 등이 있습니다.

한번의 인증절차만으로 연합인증 가입 서비스에 추가 로그인 없이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연합인증을 위해서는 최초 1회만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회원이 아닐 경우 회원 가입이 필요합니다.)

연합인증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최초이용시에는
ScienceON에 로그인 → 연합인증 서비스 접속 → 로그인 (본인 확인 또는 회원가입) → 서비스 이용

그 이후에는
ScienceON 로그인 → 연합인증 서비스 접속 → 서비스 이용

연합인증을 활용하시면 KISTI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상층향유 연희무대와 현대화 방안 원문보기


정현정 (高麗大學校 大學院 文化遺産學科 民俗學專攻 국내박사)

초록
AI-Helper 아이콘AI-Helper

조선시대의 상층향유 연희무대와 현대화 방안

서양은 고대 그리스를 시작으로 공연을 위한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어 있었고 중국에서도 완구, 노대, 희대, 구란, 희원과 같은 공연장 문화가 발전해 왔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전통연희의 무대는 조선시대까지 서양이나 중국과 같이 공연을 위한 건축물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연희자와 관객이 만나는 공간은 건축물로 규정된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사회의 공동체개 공유하고 있는 문화로서의 공연예술에 있어 모든 예능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 무대이며 무대를 매개로 하여 관객과 배우가 만나는 곳이 공연장이 된다.
상고시대의 공연 장소는 일상적 야외공간이 제의와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로 변화되는 형태를 가진다. 울산의 대곡리와 천전리, 고령 장기리와 경주 석장동 등 암각화에 나타나 있는 주술성, 물을 사이에 두고 장소를 분리한 상징적 특성, 절벽과 수면이 만들어 내는 공간의 특성으로 두 암각화의 장소가 제의와 축제의 장소로 사용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고구려는 고분벽화에 나타나 있는 연희의 모습으로 야외의 공간에서 연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고 백제의 경우 백제금동대향로의 악사의 모습에서 연희자가 앉아서 공연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이것은 왕실에서 사용했던 향로이며 따라서 향로에 나타난 악기 역시 왕실의 연희에 사용되던 악기들일 것으로 보았다. 신라의 연희 공간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통해 전문연희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 이들의 연희를 위한 공간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삼국은 모두 음악과 춤은 물론 산악?백희가 연행되었다. 전문연희자의 존재와 궁궐의 연희가 있었다는 점, 고분벽화에서 산악?백희의 종목들을 구경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당시에 관객과 연희자가 존재하는 공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상층계급이 향유했던 연희 장소는 궁궐이 주로 사용되었던 것이나 누정과 누각이 많이 활용되었던 점,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거리 전체가 축제의 장으로 변화된다는 점, 수희를 즐겼던 것이나 채붕과 같은 구조물을 배경으로 사용했다는 점 등 다양한 점에서 조선시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연희무대는 도판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기록으로만 유추할 수 있다. 다만 불교국가였던 고려시대는 조선시대보다 불교관련 행사가 성행했고 이에따라 조선시대보다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무대를 꾸몄을 것으로 짐작된다. 불교행사와 관련된 행사에서는 절에서부터 관청에 이르는 모든 공간, 즉 거리 전체가 연희의 공간으로 변화된다. 산대와 채붕은 축제의 장소에 등장하는 중요한 구조물이었다. 임금과 신하들은 자주 연향을 즐겼는데 사신연이 열렸던 대관전, 회경전, 문하성, 연친전, 제포관, 수창궁, 연경궁, 양로연이 열렸던 구정과 합문, 수희가 설행되었던 많은 강과 누정 및 누각, 궁궐의 전각은 물론 광화문을 비롯한 도심에서도 연향들이 베풀어졌다.
조선시대 상층계급이 향유했던 연향은 당시 연향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특히 궁궐에서 열린 연향, 국가 행사로 열린 축제들은 당시의 기술력과 예술이 총 망라되는 것들이었다. 가례의 일환으로 열리는 각종 궁궐 연향, 팔관회나 연등회 같은 축제, 임금이 거둥하는 어가행렬, 강에서 배를 띄우고 즐기는 수희, 경수연이나 계회, 삼일유가와 문희연 같은 다양한 종류의 연향이 설행되었다. 연향마다 거리 전체가 연향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연희를 위한 무대가 마련되며 산대와 같은 대규모의 구조물을 세우거나 관람과 우천을 대비한 설비, 밤에 즐기기 위한 등과 횃불 설치 등 연향을 즐기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고려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조선시대의 화려했던 연향은 현대에 계승되지 못했고 재현의 형태로 현대인들에게 단편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궁궐의 재현 연향이 문화상품으로서, 관광상품으로서 갖는 의미는 공연상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내적으로는 단절된 문화를 되살리고 현대인들에게 궁궐의 연향을 알려내 공유하고 향유시킨다는 의의가 있다. 외적으로는 궁궐이라는 ...

주제어

#연향 무대 현대화 

학위논문 정보

저자 정현정
학위수여기관 高麗大學校 大學院
학위구분 국내박사
학과 文化遺産學科 民俗學專攻
지도교수 田耕旭
발행연도 2015
총페이지 vii, 206 p.
키워드 연향 무대 현대화
언어 kor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3835434&outLink=K
정보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섹션별 컨텐츠 바로가기

AI-Helper ※ AI-Helper는 오픈소스 모델을 사용합니다.

AI-Helper 아이콘
AI-Helper
안녕하세요, AI-Helper입니다. 좌측 "선택된 텍스트"에서 텍스트를 선택하여 요약, 번역, 용어설명을 실행하세요.
※ AI-Helper는 부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선택된 텍스트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