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탕평론의 정치철학적 의미 본 연구는 정조 탕평론의 정치철학적 의미에 대한 연구이다. 본 연구는 조선에서 탕평론이 등장하게 된 정치·사회적 배경과 철학적 연원을 밝히는 데에서 시작하여, 유교 경전에 대한 정조 특유의 이해 속에서 드러나는 탕평 이념적 사고 특징과 논리체계의 분석을 토대로, 정조의 대표적인 정치판단과 정치행위의 관념들을 이해한다. 나아가 정조의 탕평 정치사상과 철학이 현실 정치에서 구현되는 방법과 양상을 조명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탕평론에 내재하는 ‘준론탕평’과 ‘황극탕평’의 원리가 갖는 정치철학적 성격을 구별하여, 그것을 정조의 전반기 통치기와 후반기 통치기에 대응시켜보는 방식으로 그 양자의 성격과 의의를 평가하였다. 정조는 논리적 측면에서는 만인이 평등한 '명덕 본심'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귀천이나 입장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대하고 포용할 수 있는 탕평 군주의 태도와 입지를 마련하였고, 동시에 세상 사람들이 최대한 수평적으로 서로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면서도 쉽게 일상의 체험 위주로 참된 앎을 얻는 인격적 성장의 공부에 매진할 것을 독려하는 공부론적 견해를 취함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완선하고 정의로운 주체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의지할 수 있도록 적극 계발하였다. 이것이 탕평정치의 인간학적 기반이었다 정조는 탕평론에 입각해 왕권을 강화하고 사회를 개혁하여 유교적 이상사회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것을 위해 그는 제약된 왕권을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성리학의 교조적 원리주의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였고,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기성의 학문적 권위를 승계하면서도 다소 새로이 재편하고자 했다. 정조는 ...
정조 탕평론의 정치철학적 의미 본 연구는 정조 탕평론의 정치철학적 의미에 대한 연구이다. 본 연구는 조선에서 탕평론이 등장하게 된 정치·사회적 배경과 철학적 연원을 밝히는 데에서 시작하여, 유교 경전에 대한 정조 특유의 이해 속에서 드러나는 탕평 이념적 사고 특징과 논리체계의 분석을 토대로, 정조의 대표적인 정치판단과 정치행위의 관념들을 이해한다. 나아가 정조의 탕평 정치사상과 철학이 현실 정치에서 구현되는 방법과 양상을 조명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탕평론에 내재하는 ‘준론탕평’과 ‘황극탕평’의 원리가 갖는 정치철학적 성격을 구별하여, 그것을 정조의 전반기 통치기와 후반기 통치기에 대응시켜보는 방식으로 그 양자의 성격과 의의를 평가하였다. 정조는 논리적 측면에서는 만인이 평등한 '명덕 본심'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귀천이나 입장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대하고 포용할 수 있는 탕평 군주의 태도와 입지를 마련하였고, 동시에 세상 사람들이 최대한 수평적으로 서로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면서도 쉽게 일상의 체험 위주로 참된 앎을 얻는 인격적 성장의 공부에 매진할 것을 독려하는 공부론적 견해를 취함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완선하고 정의로운 주체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의지할 수 있도록 적극 계발하였다. 이것이 탕평정치의 인간학적 기반이었다 정조는 탕평론에 입각해 왕권을 강화하고 사회를 개혁하여 유교적 이상사회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것을 위해 그는 제약된 왕권을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성리학의 교조적 원리주의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였고,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기성의 학문적 권위를 승계하면서도 다소 새로이 재편하고자 했다. 정조는 주자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와 토론을 감수해가며 사대부들이 점유하고 있던 성리학적 지식의 편견들을 깨고 당대의 주류적 신념체계와 정치질서를 재편하려 하였다. 그는 유교 경전들의 제왕학적 위상을 강화하고 왕의 대민 접촉을 강화하여 정치적 재량권을 높임으로써 군주의 능동적 유위정치를 건립하려 하였다. 정조는 윤리와 정치행위가 가지는 차별성, 그리고 일반인과 군주의 정치행위가 가지는 차별성을 드러내려 하였고, 스스로 황극을 세우는 군사로서 나라를 다스리려 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 실천적 정치행위를 강력하게 연결시키는 실용적인 ‘공감의 공공정치’와 의리에 투철한 준론을 우대하는 ‘의견의 정치’를 지향한 정조의 또 다른 정치 구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 즉 ‘황극’을 위주로 한 탕평과 ‘준론’을 위주로 한 탕평이 원리적으로 충돌하게 되는데, 실제 이것이 정조의 재위기간 전반기를 ‘의견의 정치’로, 후반기를 ‘진리의 정치’로 기울게 하였다.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정조 탕평정치의 가치를 간단히 귀결하자면, 그것은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는) 공정한 다원주의’와 ‘의견의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탕평은 단순한 정치술을 넘어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개혁의 이론적 근거요, 포괄적 정치철학이었다. 이런 준론탕평은 무엇보다 정치가 말과 행위의 차원임을 잘 이해한 정치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통치 후반기에 들어 태극의 군주로서 처세한 정조의 황극탕평은 다원주의적 활력을 잃은 전제적 모습을 보임으로써, 진리를 앞세운 철학의 정치는 ‘진리의 폭정’이 된다는 한나 아렌트의 경고를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정조 탕평론의 정치철학적 의미 본 연구는 정조 탕평론의 정치철학적 의미에 대한 연구이다. 본 연구는 조선에서 탕평론이 등장하게 된 정치·사회적 배경과 철학적 연원을 밝히는 데에서 시작하여, 유교 경전에 대한 정조 특유의 이해 속에서 드러나는 탕평 이념적 사고 특징과 논리체계의 분석을 토대로, 정조의 대표적인 정치판단과 정치행위의 관념들을 이해한다. 나아가 정조의 탕평 정치사상과 철학이 현실 정치에서 구현되는 방법과 양상을 조명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탕평론에 내재하는 ‘준론탕평’과 ‘황극탕평’의 원리가 갖는 정치철학적 성격을 구별하여, 그것을 정조의 전반기 통치기와 후반기 통치기에 대응시켜보는 방식으로 그 양자의 성격과 의의를 평가하였다. 정조는 논리적 측면에서는 만인이 평등한 '명덕 본심'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귀천이나 입장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대하고 포용할 수 있는 탕평 군주의 태도와 입지를 마련하였고, 동시에 세상 사람들이 최대한 수평적으로 서로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면서도 쉽게 일상의 체험 위주로 참된 앎을 얻는 인격적 성장의 공부에 매진할 것을 독려하는 공부론적 견해를 취함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완선하고 정의로운 주체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의지할 수 있도록 적극 계발하였다. 이것이 탕평정치의 인간학적 기반이었다 정조는 탕평론에 입각해 왕권을 강화하고 사회를 개혁하여 유교적 이상사회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것을 위해 그는 제약된 왕권을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성리학의 교조적 원리주의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였고,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기성의 학문적 권위를 승계하면서도 다소 새로이 재편하고자 했다. 정조는 주자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와 토론을 감수해가며 사대부들이 점유하고 있던 성리학적 지식의 편견들을 깨고 당대의 주류적 신념체계와 정치질서를 재편하려 하였다. 그는 유교 경전들의 제왕학적 위상을 강화하고 왕의 대민 접촉을 강화하여 정치적 재량권을 높임으로써 군주의 능동적 유위정치를 건립하려 하였다. 정조는 윤리와 정치행위가 가지는 차별성, 그리고 일반인과 군주의 정치행위가 가지는 차별성을 드러내려 하였고, 스스로 황극을 세우는 군사로서 나라를 다스리려 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 실천적 정치행위를 강력하게 연결시키는 실용적인 ‘공감의 공공정치’와 의리에 투철한 준론을 우대하는 ‘의견의 정치’를 지향한 정조의 또 다른 정치 구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 즉 ‘황극’을 위주로 한 탕평과 ‘준론’을 위주로 한 탕평이 원리적으로 충돌하게 되는데, 실제 이것이 정조의 재위기간 전반기를 ‘의견의 정치’로, 후반기를 ‘진리의 정치’로 기울게 하였다.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정조 탕평정치의 가치를 간단히 귀결하자면, 그것은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는) 공정한 다원주의’와 ‘의견의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탕평은 단순한 정치술을 넘어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개혁의 이론적 근거요, 포괄적 정치철학이었다. 이런 준론탕평은 무엇보다 정치가 말과 행위의 차원임을 잘 이해한 정치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통치 후반기에 들어 태극의 군주로서 처세한 정조의 황극탕평은 다원주의적 활력을 잃은 전제적 모습을 보임으로써, 진리를 앞세운 철학의 정치는 ‘진리의 폭정’이 된다는 한나 아렌트의 경고를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The Political Philosophical Meanings of King Jôngjo's Tangpyông Doctrine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political philosophical meanings of the Tangpyông(蕩平) Doctrine of King Jôngjo(正祖). The study began by examining the political and social backgrounds and philosophical origins of Tan...
The Political Philosophical Meanings of King Jôngjo's Tangpyông Doctrine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political philosophical meanings of the Tangpyông(蕩平) Doctrine of King Jôngjo(正祖). The study began by examining the political and social backgrounds and philosophical origins of Tangpyông Doctrine in Chosôn(朝鮮) and moved to understand the conceptions of his representative political judgments and actions based on the analysis of ideological thinking characteristics and logical systems of Tangpyông revealed in his unique understanding of Confucian scriptures. It then shed light onto the methods and patterns of his political thought and philosophy being implemented in real politics and finally distinguished the political philosophical nature of the "Junlon Tangpyông(峻論蕩平)" and "Whangkûk Tangpyông(皇極蕩平)" principles inherent in the Tangpyông Doctrine and assessed their nature and significance by matching them with the former and latter half of his reign. In the logical aspect, King Jôngjo established the attitudes and positions of the Tangpyông monarch to recognize that all people had equal "Myôngdoeg(明德) Bonsim(本心)" and thus deal with and embrace people regardless of their statuses and situations. He, at the same time, provided an opportunity for all people in the world to understand one another to recognize and communicate each other as horizontally as possible. By taking the Gongbu(工夫)-based view of encouraging people to commit themselves to Gongbu of personality growth, which involves true knowing based on simple daily experiences, he promoted the active and diligent development of determination for people not to give up on becoming impeccable and just subjects themselves. Those were the anthropological base of Tangpyông politics. King Jôngjo wished to realize a Confucian ideal society, by reinforcing the royal power and reforming the society based on the Tangpyông Doctrine, thus trying to free himself from the doctrinaire fundamentalism of Sônglihak(性理學), which considers limited royal power as ideal, and inherit and also reorganize anew the established academic authority to broaden the range of his movements. Putting up with critical research and discussions about Jujahak(朱子學), he also tried to break the Sônglihak-based prejudices of knowledge that were occupied by the Sadaebu(士大夫) and reorganize the maintain belief system and political order of the times. Furthermore, he attempted to establish active Yuwijôngchi(有爲政治) for monarchs by strengthening the Jewanghak(帝王學) status of Confucian scriptures and kings' contacts with people and thus increasing their political discretionary authority. He tried to reveal differentiation between ethics and political acts and that between the political acts of common people and those of monarchs and to rule the country as the Master King(君師) to build Whangkûk(皇極) himself, which is not in harmony with another political conception of his oriented toward "public politics of practical empathy" to strongly connect the human nature to their practical political actions and "politics of opinion" to give preference to Euli(義理)-abiding Junlon(峻論). That is, "Whangkûk-based Tangpyông" and "Junlon-based Tangpyông" clashed with each other in terms of principle, which made the former and latter half of his reign incline toward "politics of opinion" and "politics of truth," respectively. The values of his Tangpyông politics, which attracts special attention from the perspective of political philosophy, can be summarized as "fair pluralism (not falling into relativism)" and "politics of opinion." Tangpyông was a theoretical ground for reform across all the sectors of society and comprehensive political philosophy beyond simple political tactics. The Junlon Tangpyông was a political ideology that understood well that politics was in the dimension of speech and action most of all. The Whangkûk Tangpyông of King Jôngjo, who conducted himself as a monarch of the Great Absolute(太極) in the latter part of his reign, exhibited the aspects of absolutism that lost the pluralist vitality and confirmed Hannah Arendt's warning that politics of philosophy putting forward truth would be "tyranny of truth."
The Political Philosophical Meanings of King Jôngjo's Tangpyông Doctrine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political philosophical meanings of the Tangpyông(蕩平) Doctrine of King Jôngjo(正祖). The study began by examining the political and social backgrounds and philosophical origins of Tangpyông Doctrine in Chosôn(朝鮮) and moved to understand the conceptions of his representative political judgments and actions based on the analysis of ideological thinking characteristics and logical systems of Tangpyông revealed in his unique understanding of Confucian scriptures. It then shed light onto the methods and patterns of his political thought and philosophy being implemented in real politics and finally distinguished the political philosophical nature of the "Junlon Tangpyông(峻論蕩平)" and "Whangkûk Tangpyông(皇極蕩平)" principles inherent in the Tangpyông Doctrine and assessed their nature and significance by matching them with the former and latter half of his reign. In the logical aspect, King Jôngjo established the attitudes and positions of the Tangpyông monarch to recognize that all people had equal "Myôngdoeg(明德) Bonsim(本心)" and thus deal with and embrace people regardless of their statuses and situations. He, at the same time, provided an opportunity for all people in the world to understand one another to recognize and communicate each other as horizontally as possible. By taking the Gongbu(工夫)-based view of encouraging people to commit themselves to Gongbu of personality growth, which involves true knowing based on simple daily experiences, he promoted the active and diligent development of determination for people not to give up on becoming impeccable and just subjects themselves. Those were the anthropological base of Tangpyông politics. King Jôngjo wished to realize a Confucian ideal society, by reinforcing the royal power and reforming the society based on the Tangpyông Doctrine, thus trying to free himself from the doctrinaire fundamentalism of Sônglihak(性理學), which considers limited royal power as ideal, and inherit and also reorganize anew the established academic authority to broaden the range of his movements. Putting up with critical research and discussions about Jujahak(朱子學), he also tried to break the Sônglihak-based prejudices of knowledge that were occupied by the Sadaebu(士大夫) and reorganize the maintain belief system and political order of the times. Furthermore, he attempted to establish active Yuwijôngchi(有爲政治) for monarchs by strengthening the Jewanghak(帝王學) status of Confucian scriptures and kings' contacts with people and thus increasing their political discretionary authority. He tried to reveal differentiation between ethics and political acts and that between the political acts of common people and those of monarchs and to rule the country as the Master King(君師) to build Whangkûk(皇極) himself, which is not in harmony with another political conception of his oriented toward "public politics of practical empathy" to strongly connect the human nature to their practical political actions and "politics of opinion" to give preference to Euli(義理)-abiding Junlon(峻論). That is, "Whangkûk-based Tangpyông" and "Junlon-based Tangpyông" clashed with each other in terms of principle, which made the former and latter half of his reign incline toward "politics of opinion" and "politics of truth," respectively. The values of his Tangpyông politics, which attracts special attention from the perspective of political philosophy, can be summarized as "fair pluralism (not falling into relativism)" and "politics of opinion." Tangpyông was a theoretical ground for reform across all the sectors of society and comprehensive political philosophy beyond simple political tactics. The Junlon Tangpyông was a political ideology that understood well that politics was in the dimension of speech and action most of all. The Whangkûk Tangpyông of King Jôngjo, who conducted himself as a monarch of the Great Absolute(太極) in the latter part of his reign, exhibited the aspects of absolutism that lost the pluralist vitality and confirmed Hannah Arendt's warning that politics of philosophy putting forward truth would be "tyranny of truth."
Keyword
#정조 탕평론 탕평정치 황극탕평 준론탕평 황극주권 정치철학 공공성 공론 정치행위 정치판단 진리의 정치 의견의 정치
학위논문 정보
저자
안효성
학위수여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학위구분
국내박사
학과
철학과
지도교수
박치완
발행연도
2016
총페이지
ii, 209 p.
키워드
정조 탕평론 탕평정치 황극탕평 준론탕평 황극주권 정치철학 공공성 공론 정치행위 정치판단 진리의 정치 의견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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