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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수도사제 가브리엘레 아모르트(Gabriele Amorth, 1925년-)는 자신의 저서『한 사제의 구마 실화 - 구마』(원제:Nuovi Racconti Di Un Esorcista)에서 1972년 6월 29일, 교황 바오로 6세(Pope Paul VI, 1897-1978년)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을 기념한 연설 가운데, 사탄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어딘지 깨진 틈을 통해 하느님...

이탈리아의 수도사제 가브리엘레 아모르트(Gabriele Amorth, 1925년-)는 자신의 저서『한 사제의 구마 실화 - 구마』(원제:Nuovi Racconti Di Un Esorcista)에서 1972년 6월 29일, 교황 바오로 6세(Pope Paul VI, 1897-1978년)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을 기념한 연설 가운데, 사탄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어딘지 깨진 틈을 통해 하느님 성전 안으로 사탄의 연기가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 그런데도 교회는 이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세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종교에 관해 회의론적인 견해를 갖고 있거나 무신론자, 혹은 과학적 사고에 근거하여 비합리적인 현상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악마나 사탄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주제이자, 사람들로부터 하여금 공포와 불안을 야기하는 존재이다. 그만큼 악마는 오늘날까지 인간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으며, 사회와 역사, 예술과 문학 안에서 기록되고 표현되면서 재해석되고 있기까지 하다. 그리스도교역사 안에서 이 악마는 하느님과 대적하고 있으나, 하느님의 구원 메시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매개적 소재이다. 사도 요한이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요한묵시록에서 악마는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많이 묘사되었으며, 악마, 사탄, 용, 뱀, 짐승, 바빌론의 탕녀, 거짓 예언자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인간에게 혼란과 파멸을 자초(自招) 시키려 한다. 고대의 주석가들에게도 묵시록적 악(惡)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은 주 하느님의 세계에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시험이자 과제였다. 중세 필사가들은 고대 주석가들의 주석을 참고하여 그들의 상상력과 나름의 방식으로 묵시록적 악(惡)을 기록하고, 이미지화하여 표현하였다. 본 연구의 시작은 중세의 악마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아울러 오토기에 제작된 밤베르크묵시록에 묘사된 ‘용’이 본 연구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이끌어 주었다. 본 연구는 밤베르크묵시록에 등장하는 악(惡)의 이미지를 통하여, 종말론이 대두되고, 묵시록적 악(惡)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던 천 년경, 중세의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묵시록적 악(惡)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으며, 고찰되었는지를 조명해보는 데 목적이 있다.
밤베르크묵시록(1000-1020년경)은 오토 3세에 의해 주문되었고, 그의 사후, 하인리히 2세와 그의 아내 크니쿤데의 후원으로 완성되어 밤베르크교구의 슈테판 성당에 헌정한 필사본으로 오토기의 뛰어난 예술을 조명해볼 수 있는 귀한 사례이다. 밤베르크묵시록은 요한묵시록을 토대로 제작 되었기 때문에 천 년경, 묵시록적 악(惡)에 대한 중세인들의 관념과 중세채색필사가들이 묵시록의 악마를 이미지화하여 필사본 안에 묘사하기 위해 심사숙고했던 열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밤베르크묵시록에서 그림이 들어있는 총 49장의 도판들 가운데 13장의 악(惡)의 이미지를 요한묵시록의 주석을 참고하여 고찰해 보았으며, 그 악(惡)의 이미지의 조형적 형태를 기준으로 다섯 그룹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중세시대에 제작된 요한묵시록을 테마로 하는 타(他) 필사본(트리어묵시록, 파쿤두스묵시록)과 밤베르크묵시록의 악(惡)의 이미지들을 심층적으로 비교, 분석해 보았다. 밤베르크묵시록에 묘사된
악(惡)의 이미지들을 관찰해보면, 악(惡)을 매우 중요한 소재로 삼아 고유한 독창성을 부여하여 악마적 이미지들을 형성하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조형적 측면에서 보면, 이 악마적 이미지들은 단순화한 형태와 조화로운 색채대비를 통해 유사성과 대비성이 적절히 강조되어 세련되고 안정된 통일감을 느끼게 한다. 밤베르크묵시록에서 악(惡)의 이미지들은 선(善)의 존재들과는 달리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면모가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악(惡)의 이미지에 뿔이 달린 모습, 화려한 날개장식, 활동적인 움직임과 방향성 그리고 그들의 색채와 외형은 선한 존재와는 다르게 강렬하다. 그러면서도 밤베르크묵시록 전체의 안정감과 통일성을 해치지 않고 악(惡)의 표현이 정형화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도판 속에서 드러나는 악(惡)의 섬세하고 뛰어난 묘사는 비잔틴이나 카롤링 양식의 필사본에서 드러나는 악(惡)의 존재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된다. 밤베르크묵시록의 악(惡)의 이미지들은 리우타르 그룹의 필사가들이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요한묵시록을 주석하고, 아울러 악(惡)에 대한 고대의 전통과 개념을 연구하여 악(惡)을 그들만의 독창적인 이미지로 그려낼 수 있었던 뛰어난 예술적 능력의 성공적 결과였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사례이다.
결론적으로 밤베르크묵시록의 악(惡)의 이미지는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요소들이 결합된 훌륭한 지적, 예술적 영감의 결과물이었다. 이 필사본에 묘사된 다양한 악(惡)의 모습은 오토기, 그리스도교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던 중세인들의 깊은 신앙심과 천 년경, 묵시록적 악(惡)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 제국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신성로마제국황제들의 종교적 고취, 카롤링기 예술의 전통과 비잔틴 미술을 향한 개방, 그리고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학문적 발판의 토대와 리우타르 필사가들의 위대한 열정으로 이루어낸, 괄목할 만한 성과로 판단된다. 이로써 악마는 밤베르크묵시록에서 하느님의 초월적 세계와 승리를 드러내기 위한 매개적 소재로, 동시에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특별한 존재로서 영원히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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