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경(高麗圖經)』은 송나라 국신사인 서긍(徐兢, 1091~1153)의 기행록으로 정식 이름은 『선화봉사고려도경』이다. 동북아에서 금(金)나라가 발흥하던 1123년, 북송 왕조는 고려에 사상 최대 규모의 사절단, 즉 ‘선화봉사고려사절단(宣和奉使高麗使節團)’을 파견하였다. 이 사절단의 핵심 멤버로 참여해 ‘제할인선예물관(提轄人船禮物官)’을 맡았던 서긍은 고려에서 약 1개월간 체류하고 귀국한 뒤 외국인의 시각으로 자기의 고려 견문을 글과 그림을...
『고려도경(高麗圖經)』은 송나라 국신사인 서긍(徐兢, 1091~1153)의 기행록으로 정식 이름은 『선화봉사고려도경』이다. 동북아에서 금(金)나라가 발흥하던 1123년, 북송 왕조는 고려에 사상 최대 규모의 사절단, 즉 ‘선화봉사고려사절단(宣和奉使高麗使節團)’을 파견하였다. 이 사절단의 핵심 멤버로 참여해 ‘제할인선예물관(提轄人船禮物官)’을 맡았던 서긍은 고려에서 약 1개월간 체류하고 귀국한 뒤 외국인의 시각으로 자기의 고려 견문을 글과 그림을 통해 300여조 40권 분량의 『고려도경』을 편찬하여 휘종에게 바쳤다. 『고려도경』은 고려의 문화·역사·정치경제·사회·종교·교육등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비록 외국인이 1달 동안 일부지역에 국한하여 보고 들은 것을 적은 것이긴 하지만, 12세기 중엽의 고려시대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써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고려도경』에 나타난 민속 양상이다. 현존하는 고려의 민속 관련 자료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특히 『고려도경』에서 기록 된 민속은 12세기 고려시대의 민속 양상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하고 유일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러므로 필자는 『고려도경』에 나타난 민속 양상 가운데 신앙·의례·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였다. 본고에서 논의한 양상들을 종합하여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려도경』에 나타난 신앙은 크게 ‘무속신앙’, ‘용신앙’, ‘동신성모신앙’ 그리고 ‘오방색신앙’의 4가지 양상을 꼽을 수 있다. 『고려도경』을 통해 고려 당시 사회에서 ‘무속신앙’은 이미 널리 성행하고 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고, ‘용신앙’과 ‘동신성모신앙’의 경우는 신앙 자체가 일만 민간신앙의 차원에서 벗어나 국가제사에 편입되는 것으로 보아 신앙의 기복양재적 기능이 매우 크다고 본다. 한편 ‘오방색신앙’은 중국에서 유래된 음양오행사상이 한국 토속적인 무속신앙과 융합해서 나온 산물이라 볼 수 있고 그의 연원도 결국 『고려도경』에서 찾을 수 있다. 의례에서는 ‘출산의례’, ‘혼례’, ‘장례 및 제례’의 순서대로 각 의례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출산의례’의 경우 『고려도경』에 나타난 다양한 기록을 통해 간접적으로 고려 당시 특히 민중 생활에서 이미 ‘주술기자’와 ‘치성기자’, 그리고 삼심숭배 등 풍습이 존재하였음을 추론할 수 있고, ‘혼례’에 대해서는 『고려도경』에서 ‘납폐’와 ‘일부다처’ 그리고 ‘자유혼’ 등 형태의 자료가 존재한 것을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장례 및 제례’에 관한 내용에서 고려 장례풍습 중에 염습(殮襲)과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있고 풍장(風葬)과 야장(野葬)풍습의 기록을 보면 고려 당시 다양한 장례풍습이 존재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고려도경』을 통해서 고려 당시 제례와 관련된 풍습 중에 승재(僧齋)제도가 존재하였음을 보인다. 일상생활에 관한 양상은 본론에서 ‘복식생활’, ‘음식생활’ 그리고 ‘거주생활’의 3가지 주제로 정리하였다. 복식생활에서 『고려도경』에 나타난 고려시대 남성 및 여성복식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았고, 음식생활에서는 고려 당시에 곡물 형태과 음다(飮茶)풍습, 그리고 술문화에 대한 양상들이 눈길을 끈다. 거주생활에 관한 내용에서는 기록에 의해 당시 개경의 도시 구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고 특히 상업 활동으로 형성된 건축물의 특징을 논의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 논문은 기존의 『고려도경』에 관한 연구 가운데 누락된 민속 양상에 대한 부분을 보완하고, 『고려도경』이라는 귀중한 자료는 고려시대 민속연구에 있어서 어떠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은 송나라 국신사인 서긍(徐兢, 1091~1153)의 기행록으로 정식 이름은 『선화봉사고려도경』이다. 동북아에서 금(金)나라가 발흥하던 1123년, 북송 왕조는 고려에 사상 최대 규모의 사절단, 즉 ‘선화봉사고려사절단(宣和奉使高麗使節團)’을 파견하였다. 이 사절단의 핵심 멤버로 참여해 ‘제할인선예물관(提轄人船禮物官)’을 맡았던 서긍은 고려에서 약 1개월간 체류하고 귀국한 뒤 외국인의 시각으로 자기의 고려 견문을 글과 그림을 통해 300여조 40권 분량의 『고려도경』을 편찬하여 휘종에게 바쳤다. 『고려도경』은 고려의 문화·역사·정치경제·사회·종교·교육등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비록 외국인이 1달 동안 일부지역에 국한하여 보고 들은 것을 적은 것이긴 하지만, 12세기 중엽의 고려시대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써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고려도경』에 나타난 민속 양상이다. 현존하는 고려의 민속 관련 자료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특히 『고려도경』에서 기록 된 민속은 12세기 고려시대의 민속 양상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하고 유일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러므로 필자는 『고려도경』에 나타난 민속 양상 가운데 신앙·의례·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였다. 본고에서 논의한 양상들을 종합하여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려도경』에 나타난 신앙은 크게 ‘무속신앙’, ‘용신앙’, ‘동신성모신앙’ 그리고 ‘오방색신앙’의 4가지 양상을 꼽을 수 있다. 『고려도경』을 통해 고려 당시 사회에서 ‘무속신앙’은 이미 널리 성행하고 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고, ‘용신앙’과 ‘동신성모신앙’의 경우는 신앙 자체가 일만 민간신앙의 차원에서 벗어나 국가제사에 편입되는 것으로 보아 신앙의 기복양재적 기능이 매우 크다고 본다. 한편 ‘오방색신앙’은 중국에서 유래된 음양오행사상이 한국 토속적인 무속신앙과 융합해서 나온 산물이라 볼 수 있고 그의 연원도 결국 『고려도경』에서 찾을 수 있다. 의례에서는 ‘출산의례’, ‘혼례’, ‘장례 및 제례’의 순서대로 각 의례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출산의례’의 경우 『고려도경』에 나타난 다양한 기록을 통해 간접적으로 고려 당시 특히 민중 생활에서 이미 ‘주술기자’와 ‘치성기자’, 그리고 삼심숭배 등 풍습이 존재하였음을 추론할 수 있고, ‘혼례’에 대해서는 『고려도경』에서 ‘납폐’와 ‘일부다처’ 그리고 ‘자유혼’ 등 형태의 자료가 존재한 것을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장례 및 제례’에 관한 내용에서 고려 장례풍습 중에 염습(殮襲)과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있고 풍장(風葬)과 야장(野葬)풍습의 기록을 보면 고려 당시 다양한 장례풍습이 존재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고려도경』을 통해서 고려 당시 제례와 관련된 풍습 중에 승재(僧齋)제도가 존재하였음을 보인다. 일상생활에 관한 양상은 본론에서 ‘복식생활’, ‘음식생활’ 그리고 ‘거주생활’의 3가지 주제로 정리하였다. 복식생활에서 『고려도경』에 나타난 고려시대 남성 및 여성복식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았고, 음식생활에서는 고려 당시에 곡물 형태과 음다(飮茶)풍습, 그리고 술문화에 대한 양상들이 눈길을 끈다. 거주생활에 관한 내용에서는 기록에 의해 당시 개경의 도시 구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고 특히 상업 활동으로 형성된 건축물의 특징을 논의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 논문은 기존의 『고려도경』에 관한 연구 가운데 누락된 민속 양상에 대한 부분을 보완하고, 『고려도경』이라는 귀중한 자료는 고려시대 민속연구에 있어서 어떠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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