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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正祖의 華城築城과 隆.健陵의 風水論的 고찰 원문보기


허태호 (서경대학교 경영문화대학원 동양학과 국내석사)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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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祖의 華城築城과 隆⦁健陵의 風水論的 고찰
허 태 호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는 조선왕조 전체를 통해 가장 비극적 부자관계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살아남은 정조는 11세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보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강요하는 조부 영조, 이를 거부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아버지 사도, 어린 정조는 정치권력의 비정함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꼈을 것이다. 정조는 억울하게 죽어간 사도세자의 억울함을 풀어드릴 것을 다짐하였다. 11세의 어린 나이에 영조의 대를 이을 세자가 된 정조는 조심 또 조심 하였다, 세자가 아닌 왕인 영조의 손자로서 왕의 후계자 지위에 있던 그는 언제 아버지 사도세자처럼 모함에 의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내며 조용히 학문에만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정조는 즉위 직후 대신들에게 말씀 하기를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공표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莊獻)으로, 사도세자의 묘소인 수은묘(垂恩廟)의 명칭을 영우원(永佑園)으로, 또한 사당을 경모궁(景慕宮)으로 바꿀 것을 명 하였다. 이와 같은 정조의 정책은 효를 기반으로 한 풍수와 연관시켜 궁극적으로는 사도세자를 국왕으로 추대하여 종묘에 올리는 것이, 정조가 하고자 한 개혁과 왕권강화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의 첫 번째가 경기도 양주군(현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새로운 장소인 수원부 읍지가 있는 화산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필자는 영우원을 천장하고자 정조가 보인 효심과 사도세자의 묘소를 좋은 장소로 옮기고자 펼치는 정조의 풍수인식을 밝혀 보고자 하였다.
정조는 화산 현륭원으로 천장하기까지 영우원을 매년 1회 이상 참배하여 풍수적인 지형, 지세를 살폈으며 마침내 정조 13년(1789) 전국 3대 명당의 하나로 유일하게 남아있던 화산 현륭원 자리에 아버지를 모시고 장차 자신도 아버지 발아래 묻히기를 원했다. 정조는 현륭원 조성 후에는 능행 시에 머물게 될 행궁도 화성에 건설하였다. 그리고 그는 재위기간 중 열 세 차례 현륭원을 참배하였다.
조선의 역사를 통해 국왕이 풍수에 관심을 가진 경우는 많다. 그러나 선왕의 장지(葬地)를 선정하기 위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풍수에 대체적으로 무관심하였다. 그것은 조선의 왕들의 풍수 관심은 유교적 합리주의에 바탕 한 현실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왕조 고려가 명당, 길지 등을 통해 왕조의 번창을 바라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정조는 국왕으로 드물게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용주사를 창건한다. 조선왕조는 불교에 대해 억압정책을 쓰고 있었으나 실생활에서 신앙하고 있다. 그것은 내세관이 뚜렷하지 않은 유교에 비해 사후세계가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는 교리적 특징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능을 관리하는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원찰이란 제도를 통해 사찰이 창건되었다. 조선에서 사찰은 내세관에 의한 필요성과 함께 궁에 살던 여인들의 노후를 의탁한 주체로써 요긴한 시설이었다.
수원 화성에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사도세자와 직간접으로 인연 있는 사람들의 후손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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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on Jeongjo(正祖)’s Hwaseong Construction(華城築城) and FengShu(風水論的) of Yung(隆)⦁Geonneung(健陵)
Heo Taeho

King Youngjo and Crown Prince Sado are recorded as the most tragic father and son in history all through Joseon Dynasty. King Jeongjo, who survived between them, experienced his fathe...

학위논문 정보

저자 허태호
학위수여기관 서경대학교 경영문화대학원
학위구분 국내석사
학과 동양학과
발행연도 2018
총페이지 104 p.
언어 kor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4793430&outLink=K
정보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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