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많은 사지 가운데 하나인 崇福寺址는 외동읍 말방리 토함산의 서쪽 능선 말단부의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한 절터로 최치원이 896년에 지은 四山碑銘이 남아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숭복사는 원래 鵠寺로 불리었는데, 원성왕릉을 조영하기 위해 곡사를 이건하면서 창건된 사찰로 경문왕, 헌강왕, 진성왕 등 왕실에서 지속적으로 후원과 중수를 거듭한 사찰로 왕실의 원찰이었다. 숭복사가 지속적으로 왕과 종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중창이 이뤄진 것은 숭복사 중창이 왕권을 강화하고 경문왕계 세력을 결집시키는 상징적인 불사였기 때문이었다. 숭복사지의 입지를 살펴보면, 토함산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줄기의 서쪽 기슭의 ...
경주의 많은 사지 가운데 하나인 崇福寺址는 외동읍 말방리 토함산의 서쪽 능선 말단부의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한 절터로 최치원이 896년에 지은 四山碑銘이 남아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숭복사는 원래 鵠寺로 불리었는데, 원성왕릉을 조영하기 위해 곡사를 이건하면서 창건된 사찰로 경문왕, 헌강왕, 진성왕 등 왕실에서 지속적으로 후원과 중수를 거듭한 사찰로 왕실의 원찰이었다. 숭복사가 지속적으로 왕과 종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중창이 이뤄진 것은 숭복사 중창이 왕권을 강화하고 경문왕계 세력을 결집시키는 상징적인 불사였기 때문이었다. 숭복사지의 입지를 살펴보면, 토함산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줄기의 서쪽 기슭의 해발고도 160~170m 지점의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다. 숭복사지가 위치한 외동읍 말방리는 경주에서 울산으로 연결되는 교통로 상에 해당하는데, 8세기 중엽 이후 경주 일원에서 사찰 건립이 점차 시가지 외곽으로 확장되어 가는 시대적 흐름을 보인다. 아울러 경주에서 석탑 건립 문화는 시가지 보다는 외곽에서부터 건립되는데, 숭복사지 석탑 역시 경주 지역의 석탑 건립 양상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숭복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상층기단의 팔부중상의 배치 및 조각수법, 1층 문비 형식, 옥개석 장엄공, 석탑 치석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두 석탑은 동일한 설계도면을 사용하여 동시기에 제작된 쌍탑으로 9세기 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경문왕에 의해 중건된 865년, 즉 9세기 중반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라 쌍신두 귀부 4기를 함께 고찰한 결과, 창림사지, 무장사지, 법광사지, 숭복사지 순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발굴조사된 숭복사지의 가람배치를 분석한 결과 숭복사지 금당의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3칸 형식이며 불전 내부에 중앙 3칸에 내진벽체가 가설되어 있는 구조로 추정된다. 또한 숭복사지 가람배치에서 귀부전지가 현재 숭복사지 가람 내가 아닌 별도의 구역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가람의 진입부가 단순하게 평지형 중문 형태가 아닌 불국사 자하문처럼 높이 3m 이상의 층계를 밟고 진입하는 방식으로 추정하였으며, 이 계단 중간에 불국사나 사천왕사지 같은 누교가 가설되었을 것으로 추론하였다. 마지막으로 숭복사지의 의의를 가람배치와 석조유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가람배치의 건축적 의의는 크게 다섯 가지로 확인하였다. 첫째, 숭복사지에서 처음으로 자연석 대석단 조성 방식이 시작되었고 이후 신라 산지사찰의 전형적인 석단 방식으로 조성되어 갔다는 점, 둘째, 숭복사지는 산지사찰에 적합한 배수체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 셋째, 숭복사지 별원의 귀부전지 성립을 통해 부속별원의 출현 시기를 토함산 일원의 산지사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점, 넷째, 숭복사지는 서라벌의 외곽에 조성되는 산지가람 사찰이지만 평지가람과 같은 남-북 자오선을 중심으로 가람 주축선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 다섯째, 숭복사지 석탑을 비롯하여 불국사, 원원사 등 토함산 일원 사찰의 쌍탑 구성에 있어 다양성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석조유물의 미술사적 의의를 살펴보면, 첫째, 쌍탑으로 조성된 원탑이라는 점, 둘째, 숭복사지 석탑이 쌍탑으로 조성된 원탑이면서 기단부에 팔부중상이 장엄되어 있다는 것과 경주 지역에 조성된 왕실 발원의 마지막 원탑이라는데, 쌍신두 귀부는 모두 원성왕계 왕실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왕권 강화 의도를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출현한 조형이라는 점, 넷째, 숭복사지 쌍신두 귀부는 통일신라 쌍신두 귀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 다섯 째, 쌍신두 귀부 형식이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경주의 많은 사지 가운데 하나인 崇福寺址는 외동읍 말방리 토함산의 서쪽 능선 말단부의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한 절터로 최치원이 896년에 지은 四山碑銘이 남아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숭복사는 원래 鵠寺로 불리었는데, 원성왕릉을 조영하기 위해 곡사를 이건하면서 창건된 사찰로 경문왕, 헌강왕, 진성왕 등 왕실에서 지속적으로 후원과 중수를 거듭한 사찰로 왕실의 원찰이었다. 숭복사가 지속적으로 왕과 종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중창이 이뤄진 것은 숭복사 중창이 왕권을 강화하고 경문왕계 세력을 결집시키는 상징적인 불사였기 때문이었다. 숭복사지의 입지를 살펴보면, 토함산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줄기의 서쪽 기슭의 해발고도 160~170m 지점의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다. 숭복사지가 위치한 외동읍 말방리는 경주에서 울산으로 연결되는 교통로 상에 해당하는데, 8세기 중엽 이후 경주 일원에서 사찰 건립이 점차 시가지 외곽으로 확장되어 가는 시대적 흐름을 보인다. 아울러 경주에서 석탑 건립 문화는 시가지 보다는 외곽에서부터 건립되는데, 숭복사지 석탑 역시 경주 지역의 석탑 건립 양상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숭복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상층기단의 팔부중상의 배치 및 조각수법, 1층 문비 형식, 옥개석 장엄공, 석탑 치석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두 석탑은 동일한 설계도면을 사용하여 동시기에 제작된 쌍탑으로 9세기 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경문왕에 의해 중건된 865년, 즉 9세기 중반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라 쌍신두 귀부 4기를 함께 고찰한 결과, 창림사지, 무장사지, 법광사지, 숭복사지 순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발굴조사된 숭복사지의 가람배치를 분석한 결과 숭복사지 금당의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3칸 형식이며 불전 내부에 중앙 3칸에 내진벽체가 가설되어 있는 구조로 추정된다. 또한 숭복사지 가람배치에서 귀부전지가 현재 숭복사지 가람 내가 아닌 별도의 구역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가람의 진입부가 단순하게 평지형 중문 형태가 아닌 불국사 자하문처럼 높이 3m 이상의 층계를 밟고 진입하는 방식으로 추정하였으며, 이 계단 중간에 불국사나 사천왕사지 같은 누교가 가설되었을 것으로 추론하였다. 마지막으로 숭복사지의 의의를 가람배치와 석조유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가람배치의 건축적 의의는 크게 다섯 가지로 확인하였다. 첫째, 숭복사지에서 처음으로 자연석 대석단 조성 방식이 시작되었고 이후 신라 산지사찰의 전형적인 석단 방식으로 조성되어 갔다는 점, 둘째, 숭복사지는 산지사찰에 적합한 배수체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 셋째, 숭복사지 별원의 귀부전지 성립을 통해 부속별원의 출현 시기를 토함산 일원의 산지사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점, 넷째, 숭복사지는 서라벌의 외곽에 조성되는 산지가람 사찰이지만 평지가람과 같은 남-북 자오선을 중심으로 가람 주축선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 다섯째, 숭복사지 석탑을 비롯하여 불국사, 원원사 등 토함산 일원 사찰의 쌍탑 구성에 있어 다양성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석조유물의 미술사적 의의를 살펴보면, 첫째, 쌍탑으로 조성된 원탑이라는 점, 둘째, 숭복사지 석탑이 쌍탑으로 조성된 원탑이면서 기단부에 팔부중상이 장엄되어 있다는 것과 경주 지역에 조성된 왕실 발원의 마지막 원탑이라는데, 쌍신두 귀부는 모두 원성왕계 왕실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왕권 강화 의도를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출현한 조형이라는 점, 넷째, 숭복사지 쌍신두 귀부는 통일신라 쌍신두 귀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 다섯 째, 쌍신두 귀부 형식이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One of many temples of Gyeongju, Sungboksaji is the temple site located in Malbang-li, Oedong-eup, on the gentle slope of the western ridge end of Tohamsan Mountain, well known as the place where the Sasan epigraphy Choi Chiwon built in 896 remained. Sungboksa temple was originally called Goksa ...
One of many temples of Gyeongju, Sungboksaji is the temple site located in Malbang-li, Oedong-eup, on the gentle slope of the western ridge end of Tohamsan Mountain, well known as the place where the Sasan epigraphy Choi Chiwon built in 896 remained. Sungboksa temple was originally called Goksa temple, which was built as Goksa was relocated to establish Wonseong royal tomb, a royal temple that continuously repeated Huwon and Jungsu by the royal family, such as King Gyeongmun, King Heongang, King Jinseong. Sungboksa temple was continuously built under full support of the King and royal family, since it was a symbolic temple to reinforce royal authority and unify King Gyeongmun line power. Sungboksa temple is located on a slow slope around altitude 160~170m of western shore of a southern branch of Tohamsan mountain chain. Malbang-li, Oedong-eub, where Sungboksa temple is located, belongs to a traffic route between Gyeongju and Ulsan, which shows a stream of period that temple construction was extended to the town suburb since the mid 8th century. Also, stone pagoda construction culture of Gyeongju began from the suburb instead of downtown area, stone pagoda of Sungboksa temple also had something in common with Gyeongju area stone pagoda construction. Sungboksa temple east· west three-story stone pagoda is a twin pagoda built during the same period using the same design drawing, considering the arrangement and sculpting technique of Palbujungsang of upper layer, Munbi form, Okgaeseok jang-eomgong, stone pagoda stone layering, etc. on the whole, which see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9th century, in around 865, built by King Gyeongmun, which is mid 9th century. Also, as the result of considering also Silla Ssangsindu Gwibu 4 units, they are assumed to have been built in order of Changrimsaji, Mujangsaji, Beobgwangsaji, Sungboksaji. As the result of analyzing Garam arrangement of excavated Sungboksaji, the surface of Sungboksaji Geumdang was in 5 rooms on the front and 3 rooms on the side, and earthquake-proof was installed in the central 3 rooms inside. Also, there’s a high possibility that Gwibujeonji was located in a separate space in Garam arrangement of Sungboksa temple, instead of current location, in Sungboksa temple Garam. And the entry of Garam is supposed to be a high step over 3m, just like Bulguksa Jahamun gate, instead of a simple flat mid-gate, and Nugyo such as Bulguksa or Sacheonwangsaji were built in the middle of the stairway. Lastly, this research investigated the significance of Sungboksa temple by dividing into Garam arrangement and stone building. The architectural significance of Garam arrangement was confirmed largely in 5 points. First, natural stone construction began firstly in Sungboksa temple, later, it was established as a typical stone layer of Silla mountain temple, second, Sungboksa temple showed a drainage system proper for mountain temple, third, Busokbyeolwon appeared from mountain temple of Tohamsan mountain area through establishment of Sungboksaji Byeolwon Gwibujeonji, fourth, Sungboksaji was a mountain Garam temple constructed around Seorabeol, however it formed a Garam main line mainly with south- north meridian just like a flatland Garam, fifth, diversity was formed in composition of twin pagoda of Tohamsan mountain temples such as Bulguksa, Wonwonsa, etc. including Sungboksa temple stone pagoda. In respect of art historical significance of stone building, first, it was a twin pagoda based round tower, second, it was a round tower based on stone twin pagoda with Palbujungsang on the stylobate, as the last round tower built by royal family, built in Gyeongju area, third, stone tower and Ssangsindu Gwibu were built in Sungboksa temple together among Palbu of twin tower, which was a sculpture to express an intention to reinforce royal authority symbolically, in respect that each of them were related to Wonseongwang line royal family, fourth, Sungboksa temple Ssangsindu Gwibu was the last work of Ssangsindu Gwibu of unified Silla, fifth, the form of Ssangsindu Gwibu was also found in Gyeongsangdo during Joseon Dynasty.
One of many temples of Gyeongju, Sungboksaji is the temple site located in Malbang-li, Oedong-eup, on the gentle slope of the western ridge end of Tohamsan Mountain, well known as the place where the Sasan epigraphy Choi Chiwon built in 896 remained. Sungboksa temple was originally called Goksa temple, which was built as Goksa was relocated to establish Wonseong royal tomb, a royal temple that continuously repeated Huwon and Jungsu by the royal family, such as King Gyeongmun, King Heongang, King Jinseong. Sungboksa temple was continuously built under full support of the King and royal family, since it was a symbolic temple to reinforce royal authority and unify King Gyeongmun line power. Sungboksa temple is located on a slow slope around altitude 160~170m of western shore of a southern branch of Tohamsan mountain chain. Malbang-li, Oedong-eub, where Sungboksa temple is located, belongs to a traffic route between Gyeongju and Ulsan, which shows a stream of period that temple construction was extended to the town suburb since the mid 8th century. Also, stone pagoda construction culture of Gyeongju began from the suburb instead of downtown area, stone pagoda of Sungboksa temple also had something in common with Gyeongju area stone pagoda construction. Sungboksa temple east· west three-story stone pagoda is a twin pagoda built during the same period using the same design drawing, considering the arrangement and sculpting technique of Palbujungsang of upper layer, Munbi form, Okgaeseok jang-eomgong, stone pagoda stone layering, etc. on the whole, which see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9th century, in around 865, built by King Gyeongmun, which is mid 9th century. Also, as the result of considering also Silla Ssangsindu Gwibu 4 units, they are assumed to have been built in order of Changrimsaji, Mujangsaji, Beobgwangsaji, Sungboksaji. As the result of analyzing Garam arrangement of excavated Sungboksaji, the surface of Sungboksaji Geumdang was in 5 rooms on the front and 3 rooms on the side, and earthquake-proof was installed in the central 3 rooms inside. Also, there’s a high possibility that Gwibujeonji was located in a separate space in Garam arrangement of Sungboksa temple, instead of current location, in Sungboksa temple Garam. And the entry of Garam is supposed to be a high step over 3m, just like Bulguksa Jahamun gate, instead of a simple flat mid-gate, and Nugyo such as Bulguksa or Sacheonwangsaji were built in the middle of the stairway. Lastly, this research investigated the significance of Sungboksa temple by dividing into Garam arrangement and stone building. The architectural significance of Garam arrangement was confirmed largely in 5 points. First, natural stone construction began firstly in Sungboksa temple, later, it was established as a typical stone layer of Silla mountain temple, second, Sungboksa temple showed a drainage system proper for mountain temple, third, Busokbyeolwon appeared from mountain temple of Tohamsan mountain area through establishment of Sungboksaji Byeolwon Gwibujeonji, fourth, Sungboksaji was a mountain Garam temple constructed around Seorabeol, however it formed a Garam main line mainly with south- north meridian just like a flatland Garam, fifth, diversity was formed in composition of twin pagoda of Tohamsan mountain temples such as Bulguksa, Wonwonsa, etc. including Sungboksa temple stone pagoda. In respect of art historical significance of stone building, first, it was a twin pagoda based round tower, second, it was a round tower based on stone twin pagoda with Palbujungsang on the stylobate, as the last round tower built by royal family, built in Gyeongju area, third, stone tower and Ssangsindu Gwibu were built in Sungboksa temple together among Palbu of twin tower, which was a sculpture to express an intention to reinforce royal authority symbolically, in respect that each of them were related to Wonseongwang line royal family, fourth, Sungboksa temple Ssangsindu Gwibu was the last work of Ssangsindu Gwibu of unified Silla, fifth, the form of Ssangsindu Gwibu was also found in Gyeongsangdo during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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