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결여 개념이야말로 악의 문제에 대한 기존 신정론의 답변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악의 문제에 대한 유효하고 타당성 있는 하나의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결여 개념은 대체로 세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i) 기독교 자체에 제기되는 악의 문제의 딜레마, (ii)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기존의 답변들이 발생시키는 문제, 그리고 (iii) 결여 개념에 대한 섣부른 판단으로부터 야기되는 오해 등이다. 악의 문제는 오랫동안 기독교 진영에서 상당한 논쟁거리로 여겨져 왔다. “하나님이 인간사를 돌보시는데도, 인간사에 그 숱한 부조리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제기된 이 질문은 악의 문제를 대변한다. 만약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그는 악을 없애려 할 것이다. 또한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그는 악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악을 없애기를 원한다면 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선하지 않거나 전지전능하지 않은가? 이처럼 악의 문제는 선하고 강력한 신에 대한 믿음과 악의 존재 사이에 명백한 불일치에 기인한다. 이러한 악의 문제에 대한 기독교 신정론의 해법 중 본 논문이 주목하는 답변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사탄에 의한 인간의 범죄”라는 해법이다. 이러한 기계론적 이해에 따르면 실체적이고 적극적인 존재로서의 사탄이 인간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다. 둘째, 또 다른 해법은 하나님을 악의 원인으로 귀결시키는 스토아식 이해이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섭리이기에,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악의 원인을 악한 존재인 사탄에게 ...
본 논문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결여 개념이야말로 악의 문제에 대한 기존 신정론의 답변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악의 문제에 대한 유효하고 타당성 있는 하나의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결여 개념은 대체로 세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i) 기독교 자체에 제기되는 악의 문제의 딜레마, (ii)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기존의 답변들이 발생시키는 문제, 그리고 (iii) 결여 개념에 대한 섣부른 판단으로부터 야기되는 오해 등이다. 악의 문제는 오랫동안 기독교 진영에서 상당한 논쟁거리로 여겨져 왔다. “하나님이 인간사를 돌보시는데도, 인간사에 그 숱한 부조리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제기된 이 질문은 악의 문제를 대변한다. 만약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그는 악을 없애려 할 것이다. 또한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그는 악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악을 없애기를 원한다면 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선하지 않거나 전지전능하지 않은가? 이처럼 악의 문제는 선하고 강력한 신에 대한 믿음과 악의 존재 사이에 명백한 불일치에 기인한다. 이러한 악의 문제에 대한 기독교 신정론의 해법 중 본 논문이 주목하는 답변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사탄에 의한 인간의 범죄”라는 해법이다. 이러한 기계론적 이해에 따르면 실체적이고 적극적인 존재로서의 사탄이 인간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다. 둘째, 또 다른 해법은 하나님을 악의 원인으로 귀결시키는 스토아식 이해이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섭리이기에,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악의 원인을 악한 존재인 사탄에게 돌리는 기계론적 이해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 구도를 형성하며 결국 이원론으로 빠지게 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 차원에서의 스토아식의 답변도 문제에 부딪히고 만다. 만일 악이 필연적인 존재라면, 하나님은 악한 존재 혹은 악의 조성자로 간주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이러한 기존의 답변들이 초래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선의 결여로서의 악” 개념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의 본성은 선하며, 인간의 본성 역시 그러하다. 비록 이러한 선한 존재들이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부패되었다 하더라도, 그 부패는 악한 실체가 아니며 여전히 선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자연본성의 당위를 스스로 결여하기를 선택하게 된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의지라는 자연본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각각의 사람은 각자의 의지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다른 결정을 한다. 이때 인간은 그 자신에게 좋은 것, 자신이 좋다고 판단한 것을 선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이 선이라고 생각해서 원하는 것은 그에게 실제로 선할 수도, 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선택의 결과가 자유의지의 작동이 올바른지, 그른지를 결정한다. 즉, 인간의 의지의 선택이 궁극적으로 선한지 악한지는 그것의 결과로서 증명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의 자유의지가 악을 선택한 것은 선을 선택해야 하는 본성의 당위를 어긴 것이 된다. 이러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 마땅히 선택하고 따라야 할 궁극 목적은 최고선이신 하나님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궁극적으로 신앙적인 계기로 논의를 전환하여, 인간의 행복과 참된 선을 하나님에게서 찾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악의 개념은 ‘나쁜 실체로서의 악’ 개념이 아니다. 무엇인가 결여 된 것이 곧 악한 것이다. 그것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전체가 악해진 것이고, 그 결여를 보완하게 되면 전체가 선해질 수 있는 것이다. 악을 이해하고 악의 문제에 대한 대답을 제시함에 있어 전통적 이해는, ‘악한 세력’에 의해 악이 발생한다는 접근이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바와 같이 결여 개념으로 악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악의 문제를 보다 긍정적이고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결여 개념이야말로 악의 문제에 대한 기존 신정론의 답변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악의 문제에 대한 유효하고 타당성 있는 하나의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결여 개념은 대체로 세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i) 기독교 자체에 제기되는 악의 문제의 딜레마, (ii)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기존의 답변들이 발생시키는 문제, 그리고 (iii) 결여 개념에 대한 섣부른 판단으로부터 야기되는 오해 등이다. 악의 문제는 오랫동안 기독교 진영에서 상당한 논쟁거리로 여겨져 왔다. “하나님이 인간사를 돌보시는데도, 인간사에 그 숱한 부조리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제기된 이 질문은 악의 문제를 대변한다. 만약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그는 악을 없애려 할 것이다. 또한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그는 악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악을 없애기를 원한다면 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선하지 않거나 전지전능하지 않은가? 이처럼 악의 문제는 선하고 강력한 신에 대한 믿음과 악의 존재 사이에 명백한 불일치에 기인한다. 이러한 악의 문제에 대한 기독교 신정론의 해법 중 본 논문이 주목하는 답변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사탄에 의한 인간의 범죄”라는 해법이다. 이러한 기계론적 이해에 따르면 실체적이고 적극적인 존재로서의 사탄이 인간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다. 둘째, 또 다른 해법은 하나님을 악의 원인으로 귀결시키는 스토아식 이해이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섭리이기에,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악의 원인을 악한 존재인 사탄에게 돌리는 기계론적 이해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 구도를 형성하며 결국 이원론으로 빠지게 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 차원에서의 스토아식의 답변도 문제에 부딪히고 만다. 만일 악이 필연적인 존재라면, 하나님은 악한 존재 혹은 악의 조성자로 간주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이러한 기존의 답변들이 초래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선의 결여로서의 악” 개념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의 본성은 선하며, 인간의 본성 역시 그러하다. 비록 이러한 선한 존재들이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부패되었다 하더라도, 그 부패는 악한 실체가 아니며 여전히 선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자연본성의 당위를 스스로 결여하기를 선택하게 된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의지라는 자연본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각각의 사람은 각자의 의지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다른 결정을 한다. 이때 인간은 그 자신에게 좋은 것, 자신이 좋다고 판단한 것을 선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이 선이라고 생각해서 원하는 것은 그에게 실제로 선할 수도, 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선택의 결과가 자유의지의 작동이 올바른지, 그른지를 결정한다. 즉, 인간의 의지의 선택이 궁극적으로 선한지 악한지는 그것의 결과로서 증명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의 자유의지가 악을 선택한 것은 선을 선택해야 하는 본성의 당위를 어긴 것이 된다. 이러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 마땅히 선택하고 따라야 할 궁극 목적은 최고선이신 하나님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궁극적으로 신앙적인 계기로 논의를 전환하여, 인간의 행복과 참된 선을 하나님에게서 찾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악의 개념은 ‘나쁜 실체로서의 악’ 개념이 아니다. 무엇인가 결여 된 것이 곧 악한 것이다. 그것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전체가 악해진 것이고, 그 결여를 보완하게 되면 전체가 선해질 수 있는 것이다. 악을 이해하고 악의 문제에 대한 대답을 제시함에 있어 전통적 이해는, ‘악한 세력’에 의해 악이 발생한다는 접근이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바와 같이 결여 개념으로 악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악의 문제를 보다 긍정적이고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아우구스티누스 악의 문제 선의 결여 자유의지 자유 선택 인간 본성 실제 선 죄와 죄벌 하나님의 섭리 최고선
학위논문 정보
저자
문유미
학위수여기관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학위구분
국내박사
학과
기독교철학
발행연도
2020
키워드
아우구스티누스 악의 문제 선의 결여 자유의지 자유 선택 인간 본성 실제 선 죄와 죄벌 하나님의 섭리 최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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