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 한국사회는 3, 4, 5공화국에 걸쳐, 28년간의 독재정권기를 거쳤다. 각기 비민주적인 집권이라는 점에서 정통성의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에 정권은 효과적인 국민통제를 위해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문화정책을 펼쳤다.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기 위해 수단으로 전통 문화를 주목하고 임의로 선별, 고안해 내었으며, '한국문화정체성', 혹은 '한국성'으로 규정해 나갔다. 미술분야의 작가들은 정권이 규정한 한국성을 중심으로 '한국적' 작품들을 생산해내었는데, 대부분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데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이시기 형성된 '한국적 디자인'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환경디자인, 공공건축, 그래픽 디자인, 공공디자인, 영상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한국적 디자인은 각기 공화국 별 문화정책 방향에 발맞추어 내용과 양식을 조금씩 달리하며 발전하여 현대에 이르고 있다.
지난 반세기 한국사회는 3, 4, 5공화국에 걸쳐, 28년간의 독재정권기를 거쳤다. 각기 비민주적인 집권이라는 점에서 정통성의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에 정권은 효과적인 국민통제를 위해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문화정책을 펼쳤다.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기 위해 수단으로 전통 문화를 주목하고 임의로 선별, 고안해 내었으며, '한국문화정체성', 혹은 '한국성'으로 규정해 나갔다. 미술분야의 작가들은 정권이 규정한 한국성을 중심으로 '한국적' 작품들을 생산해내었는데, 대부분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데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이시기 형성된 '한국적 디자인'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환경디자인, 공공건축, 그래픽 디자인, 공공디자인, 영상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한국적 디자인은 각기 공화국 별 문화정책 방향에 발맞추어 내용과 양식을 조금씩 달리하며 발전하여 현대에 이르고 있다.
Over the past half the 20th century, Korea has been through the period of three dictatorial regimes. In each regime the orthodox problem was raised due to its undemocratic ruling. Nationalism in particular was perverted by the authoritarian regimes' exploitation of it as a form of cultural policy to...
Over the past half the 20th century, Korea has been through the period of three dictatorial regimes. In each regime the orthodox problem was raised due to its undemocratic ruling. Nationalism in particular was perverted by the authoritarian regimes' exploitation of it as a form of cultural policy to control their people effectively. To emphasize it's ideology the government sought, selected and devised cultural heritage and defined it as the 'Korean cultural identity' or 'Koreaness'. Artists have produced works in the 'Korean style' focused on 'Koreaness' which had been prescribed by the government. These works were sewed as a propaganda and contributed to the reproduction of ideology. In addition to the 'Korean-style design' formed in this period, this case includes a wide range of environmental design, public construction, graphic design, public design, films, etc. The Korean-style design has been developed in accordance with each government's cultural policy with a little difference in content and form.
Over the past half the 20th century, Korea has been through the period of three dictatorial regimes. In each regime the orthodox problem was raised due to its undemocratic ruling. Nationalism in particular was perverted by the authoritarian regimes' exploitation of it as a form of cultural policy to control their people effectively. To emphasize it's ideology the government sought, selected and devised cultural heritage and defined it as the 'Korean cultural identity' or 'Koreaness'. Artists have produced works in the 'Korean style' focused on 'Koreaness' which had been prescribed by the government. These works were sewed as a propaganda and contributed to the reproduction of ideology. In addition to the 'Korean-style design' formed in this period, this case includes a wide range of environmental design, public construction, graphic design, public design, films, etc. The Korean-style design has been developed in accordance with each government's cultural policy with a little difference in content and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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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한국 사회에서는 두 번의 군부독재기를 거치며 각각 조금씩 다른 '한국성을 표방하였고 이때마다 한국적 디자인의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였으나, 정권의 문화정책이 가시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그 구조는 동일하다. 이 글에서는 독재정권 기간 동안 전통이 어떤 식으로 선별되어 '한국성'을 형성해 내었고, 이를 통해 '한국적 디자인'을 구현해 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안 방법
1) 특히 나치정권에서는 민족정체성 형성이라는 명분으로 나치가 승인하지 않는 미술작품들을 '퇴폐미술'로 분류하여 철거하고 파괴하였다. 대신 독일이 역사적으로 성취한 것에 대한 해석을 강화하였고, 과거의 영광을 상기시켜줄 구조물로 고전시대 기념물들을 주목하고, 거대하고 화려한 외관을 가진 축조물을 건설하였다. 과거 독일과 동맹관계였던 일제도 역시 신고전주의만을 공식양식으로 인정하고, 여러가지 실험미술들을 금지시켰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재생산했던 적이 있다.
특히 일제시대의 식민지 사관에 동조하였던 박정희 정권에서는 전근대적인 봉건잔재로 인식되고 '제거해야 할 대상', '구악'등으로 통칭되었던 동양적 속성, 전통 민간 신앙, 무속(巫俗), 풍수, 음양오행 등에까지 '한국성'의 범위가 확장되었고 삼태극, 사신도, 오방색, 십장생 등의 상징물들이 그 매개체로 활용되었다. 또 '고유성'을 문화 정체성의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제시하며, 하회탈, 태권도, 한복, 한글 등과 같이 지역성을 띠는 소재를 부각시켰다. 반면 호국선현, 반공과 관련된 소재들이 대부분 사라지거나 그 비중이 축소되었는데, 특히 민족의 상징적 인물로 이순신 장군을 대신하여 세종대왕을 내세웠다는 점은 당시의 문화정책 방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상 데이터
1969년 이후에도 동상건립은 계속되어 사직공원에는 이율곡 동상과 신사임당 동상이, 효창공원에는 원효대사의 동상이, 시청광장에는 김유신 장군의 동상이, 남대문 앞에는 유관순 동상이 남산의 시립도서관 앞에는 정약용 동상과 이퇴계 동상이, 제2한강교의 양편에는 정몽주와 을지문덕 장군의 동 상이 들어섰다. 김유신 장군의 동상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1969년 9월 23일 준공되었고, 유관순 열사의 동상은 1970년 10월 12일에 남대문 앞 녹지대에 세워졌다. 또 12번째 동상 기공식에 때까지 박정희 대통령이 어김없이 제막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오방색은 음양 오행 사상에 뿌리를 두고, 주술적 속성을 띠며 민간신앙으로 발전해 온 색상 조합으로 사찰이나 궁궐에서부터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곳곳 이르기까지 깊숙이 배어있던 것이었다. 특히 오방색에서 파생된 단청과 색동저고리는 중국과 일본에도 없는 한국 고유의 소재로 '한국성', '한국적 디자인'에 주요한 테마로 자리 잡았다. 이외에도 시각적인 자극이 강한 굿, 부적, 성황당 등과 같은 무속적 요소들이 세계와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한국의 '고유성'으로 인식되는 경향도 생겨났다.
성능/효과
"고 주장했다.24) 독재정권의 민족주의 문화정책은 정체성 규정의 과정이자, 한국성 형성의 문제였고, 정체성의 문제는 문화예술문화 활동의 방향을 규정지었다. 정체성과 결부시켜 논의가 되어온 '한국적 디자인'은 독재정권의 정치이데올로기의 선전수단으로 활용되며, 정권에 의해 '고안된 전통'이 민족의 정체성, 한국성으로 정착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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