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bok, the first birthday suit, is a formal suit a person puts on for the first time after birth. It not only a symbolizes of Korean customs or traditions, but also represents transmitted ideas, values and lifestyles of Koreans. In this nation where strong preferences for son prevailed, dolbok for ...
Dolbok, the first birthday suit, is a formal suit a person puts on for the first time after birth. It not only a symbolizes of Korean customs or traditions, but also represents transmitted ideas, values and lifestyles of Koreans. In this nation where strong preferences for son prevailed, dolbok for boy was specially important. 1.Styles of weaing Dolbok are classfied into trousers and jeogori, baeja, magoja, durumagi, jeonbok, sagyusam and yongpo styles in accordance with what kind of clothes was finally worn. 2. Accessories of dolbok for boys included dolddi, dol jumeoni, gulre, bokgeon, hogeon and tarae baeseon. 3. Dolbok of trousers and jeogori, baeja or magoja style simply consisted of 2 to 4 units of clothes. It was usually worn by ordinary people, and strongly imaged as common. Dolbok of durumagi or jeonbok style was a combination of 5 to 6 units of clothes and mainly worn by noble and royal families. It was remarkably formal, but quite brilliant. The suit for first birth anniversary which was sagyusam or yongpo was made in accordance with court rules and used by the royal family, It consisted of 7 to 8 units of clothes. Dolbok of sagyusam or yongpo style used invariable, simple patterns and colors, but had strong images of courtesy and dignity. 4. Regarding accessories of dolbok, the long-hanged goreum was a symbol of parental wishes for the $baby^{\circ}{\emptyset}s$ health and longevity and dolddi was joined by dol jumeonisymbolizing the wealth and prosperity of the baby. In addition, hogeon was a hat whose shape was the head of tiger symbolizing wishes for bravery and health and tarae beoseon was childlen's socks that had seams, symbolizing prosperity, on the fore edge. Seon for sagyusam was used as a symbol of preventing diseases or evil spirits to protect the health of the baby.
Dolbok, the first birthday suit, is a formal suit a person puts on for the first time after birth. It not only a symbolizes of Korean customs or traditions, but also represents transmitted ideas, values and lifestyles of Koreans. In this nation where strong preferences for son prevailed, dolbok for boy was specially important. 1.Styles of weaing Dolbok are classfied into trousers and jeogori, baeja, magoja, durumagi, jeonbok, sagyusam and yongpo styles in accordance with what kind of clothes was finally worn. 2. Accessories of dolbok for boys included dolddi, dol jumeoni, gulre, bokgeon, hogeon and tarae baeseon. 3. Dolbok of trousers and jeogori, baeja or magoja style simply consisted of 2 to 4 units of clothes. It was usually worn by ordinary people, and strongly imaged as common. Dolbok of durumagi or jeonbok style was a combination of 5 to 6 units of clothes and mainly worn by noble and royal families. It was remarkably formal, but quite brilliant. The suit for first birth anniversary which was sagyusam or yongpo was made in accordance with court rules and used by the royal family, It consisted of 7 to 8 units of clothes. Dolbok of sagyusam or yongpo style used invariable, simple patterns and colors, but had strong images of courtesy and dignity. 4. Regarding accessories of dolbok, the long-hanged goreum was a symbol of parental wishes for the $baby^{\circ}{\emptyset}s$ health and longevity and dolddi was joined by dol jumeonisymbolizing the wealth and prosperity of the baby. In addition, hogeon was a hat whose shape was the head of tiger symbolizing wishes for bravery and health and tarae beoseon was childlen's socks that had seams, symbolizing prosperity, on the fore edge. Seon for sagyusam was used as a symbol of preventing diseases or evil spirits to protect the health of the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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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이에 본 연구에서는 문헌과 박물관 도록에 나타난 돌복식 117점(의복 82점, 부속품 35점)을 선별하여 남아 돌복의 착장 양식 중 외의(外衣)의 형태를 중심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또한 착장양식별 특성을 착용계층, 구성방법으로 고찰함으로써 돌복을 체계화ㆍ정형화 시켜 조상들의 지혜와 얼이 담긴 훌륭한 복식임을 밝히고 전통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돌복을 계승 발전시켜 현대생활에 적합한 디자인을 제시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는 남자아이의 돌복을 편의상 ‘남아 돌복’이라고 칭하기로 하며, 이는 돌복 관련 부속품도 모두 포함하기로 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문헌과 박물관 도록에 나타난 돌복식 117점(의복 82점, 부속품 35점)을 선별하여 남아 돌복의 착장 양식 중 외의(外衣)의 형태를 중심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또한 착장양식별 특성을 착용계층, 구성방법으로 고찰함으로써 돌복을 체계화ㆍ정형화 시켜 조상들의 지혜와 얼이 담긴 훌륭한 복식임을 밝히고 전통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돌복을 계승 발전시켜 현대생활에 적합한 디자인을 제시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
제안 방법
6)은 두루마기이나 전복 위에 사규삼을 착용한 양식이다. 고찰 가능한 의복 유물 목록 총 82점중 5점이며, 사규삼의 색상은 주로 연두와 분홍이며, 선은 모두 흑색으로 선 위에 금박법을 사용하여 길상도안과 길상문양을 부금(付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복을 독립적인 주제로 다룬 연구는 미흡하며, 더구나 남아 돌복을 주제로 다룬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문헌과 도록에 나타난 남아 돌복을 중심으로 그 착장양식을 외의의 형태를 중심으로 분류하고, 남아 돌복의 특성을 착장양식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돌띠는 띠의 아랫단 끝 쪽에 귀엽게 자수한 오방색 주머니를 달고 잠자리매듭으로 장식하여 남자아기의 첫 돌때 전복허리에 채워 꿰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마고자의 뒤 허리에 주머니가 세 개 달린 돌띠를 부착하기도 했으며, 돌띠에는 안락장춘(安樂長春), 길 상여수(吉祥如壽)가 부금(付金)되어있고, 분홍ㆍ노랑ㆍ연두 3색 주머니에 화문을 수놓았다. 돌 주머니는 돌날 아기에게 달아주는 주머니로 염낭 또는 협낭이라고도 한다.
깃과 소매가 없고 옆과 뒤가 트였으며, 천도모양의 다홍색 단추가 달려있고, 금박한 붉은색 띠를 마치 전대(纏帶)처럼 매어주도록 되어있다. 또한, 전복의 고대와 진동, 앞단과 밑단에는 금박이나 은박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부금 하였는데 그 금박 문양사이에는 인(仁), 의(義), 지(智), 효(孝), 제(弟), 충(忠), 신 (信) 등의 문자문과 국화문을 깃, 진동, 도련을 따라 금박하였다.
모부(帽部) 또는 수하식(垂下飾)에는 금박을 하여 장식하고수(壽), 복(福), 희(囍), 수복강령(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등의 길상 문자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한 폭(幅)의 천으로 만들기 때문에 복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마 부분에 수(壽), 복(福) 등 길상어문이나 불로초문(不老草紋)등 어린이의 무병장수와 부귀다남에 대한 염원을 담아금박하였다.
따라서 돌복은 가장 마지막에 착용되는 의복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착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은 남아 돌복의 착장양식을 현존하는 돌복의 유물 중 고찰 가능한 유물사진 82점을 대상으로 가장 마지막에 착용된 의복의 종류를 기준으로 하여 바지ㆍ저고리형, 배자형, 마고자형, 두루마기형, 전복형, 사규삼형, 용포형 등으로 분류하였다. 한편, 돌복사진 82점에는 치수와 꾸밈새로 보았을 때 돌복으로 추정 가능한 옷들을 포함시켰다.
타래버선 : 돌을 맞이한 아이에게 타래버선(Fig. 12)을 신기는데 타래버선은 돌옷과 함께 신는 어린이용 버선으로 버선목과 사선에 두 땀 상침하고 버선볼에 장생을 상징하는 불로초 (不老草)와 화문(花紋)을 수놓았다. 고찰 가능한 유물 총 35점중 8점이며, 타래버선의 색상은 모두 백색이며 시문방법 또한 모두 자수를 사용하였다.
복건과 호건은 관을 대신하는 간편한 쓰개로 돌이나 명절 등에 착용하였는데 아이의 무병장수, 부귀다남에 대한 염원을 담은 길상문양을 금박하여 두루마기, 전복, 사규삼과 함께 착용하였다. 타래버선은 돌옷과 함께 신는 어린이용 버선으로 버선목과 사선에 두땀 상침하고 버선볼에 장생을 상징하는 불로초와 화문을 수 놓았다.
조끼는 근대 이후 외래어로서 배자의 깃이 없어지고 주머니를 봉재하면서 생긴 용어로 조선조말기의 발기에도 ‘족기’등의 용어가 나오며 저고리 위에 입어 배자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배자는 점차 보이지 않게 되었고 전통 의복과 잘 융화되어 의례적인 의복이 되었다. 형태는 쌍 깃이며 앞이 뒤보다 짧고 어깨에서 앞뒤로 연결되어있고 입는 방법은 앞자락의 겨드랑이 양쪽 밑에 긴 끈이 달려있어 이것을 뒷자락 겨드랑이 밑의 고리에 꿰어 앞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어린이의 조끼도 어른의 것과 모양이 같으며 겨울에는 짙은 색, 봄 여름 가을에는 옅은 색 견(絹)조끼를 입고 여름에는 옥양목이나 모시로 만든 홑조끼를 입었다.
대상 데이터
8)는 돌을 맞은 아기의 허리에 매주는 띠로서 옷의 가장 바깥쪽에 매어 준다. 고찰 가능한 유물 목록 총 35점 중 8점이며 돌띠의 색상은 주로 적색이며, 자수법과 금박 법을 사용하였고 길상문양, 길상도안, 화문양등을 사용하였다.
11)은 조선후기 사대부가의 남아용 쓰개로 복건과 비슷한 형태이나 머리 정상의 양 끝에 호랑이의 두 귀를 만들어 달고 눈, 코, 입, 수염을 수놓아 장식하였다. 고찰 가능한 유물 총 35점 중 4점이며, 호건의 색상은 흑색과 짙은 남색이고 주로 금박을 사용하였으며 사용문양은 길상문양으로 나타났다.
12)을 신기는데 타래버선은 돌옷과 함께 신는 어린이용 버선으로 버선목과 사선에 두 땀 상침하고 버선볼에 장생을 상징하는 불로초 (不老草)와 화문(花紋)을 수놓았다. 고찰 가능한 유물 총 35점중 8점이며, 타래버선의 색상은 모두 백색이며 시문방법 또한 모두 자수를 사용하였다. 버선코에 색실 술을 달고 양 볼에는 장생을 상징하는 화문(花紋)을 수놓았으며 앞코에 남아는 남색여아는 홍색실로 영화를 상징하는 삭모(毛)를 달았으며 뒤축에 끈을 달아 앞으로 돌려 매게 되어있는데 남자아이는 남색, 여자아이는 홍색의 대님을 달았다.
고찰 가능한 유물 총 82점 중 9점이며, 바지·저고리형 유물의 색상을 보면 저고리는 주로 흰색, 옥색, 분홍에 남색의 고름을 사용하였으며, 연두, 분홍, 노랑의 삼색을 사용한 동다리 저고리도 고름을 남색으로 사용하였다. 바지의 색상은 흰색, 분홍, 보라로 대체로 옅은 색이었다.
배자는 신라 때 당 복식의 영향으로 들어온 반비가 변천해온 것이며 저고리 위에 덧입는 단추가 없는 짧은 조끼모양의 옷으로 남녀 모두 착용하였다. 조끼는 근대 이후 외래어로서 배자의 깃이 없어지고 주머니를 봉재하면서 생긴 용어로 조선조말기의 발기에도 ‘족기’등의 용어가 나오며 저고리 위에 입어 배자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배자는 점차 보이지 않게 되었고 전통 의복과 잘 융화되어 의례적인 의복이 되었다.
복식연구는 유물을 통한 고찰이 중요하지만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온도, 습도, 광선, 접촉 등의 환경적 요소에 의해 자연 소실되거나 손상되므로 유물 관리의 어려움이 있으며 개인의 경우 오랫동안 소장해 온 경우가 드물어 직접적인 유물자료의 고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박물관소장 유물도록집의 자료를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성능/효과
2. 돌복의 착장양식은 가장 마지막에 착용된 외의의 형태에따라 바지·저고리형, 배자형, 마고자형, 두루마기형, 전복형, 사규삼형 그리고 용포형으로 분류된다. 바지·저고리형은 남아 돌복의 기본형인 바지와 저고리만을 착용한 형이고, 배자형은 바지와 저고리위에 배자를 착용한 형이며, 마고자형은 바지와 저고리위에 배자나 조끼를 입고 마고자를 착용한 형이다.
3. 남아 돌복에 착용된 부속품에는 돌띠, 돌주머니, 굴레, 복건, 호건이 있으며 타래버선이 있다. 돌띠는 돌을 맞은 아기의 허리에 매주는 띠로서 붉은 바탕에 십장생을 수놓은 남색돌띠에 여러 종류의 곡식을 담아 한평생 곡식걱정하지 말라는 뜻의 작은 염낭을 달아 주기도 하였다.
4. 돌복의 특성을 고찰하기위해 착용계층, 구성방법으로 분류 하였고 그 결과 착용빈도는 총 82점 중 배자형이 21점으로 가장 많이 선호됨을 알 수 있었다. 착용계층별특성을 살펴보면 바지·저고리형, 배자형, 마고자형은 착용벌수가 2~4벌로 대체로 간소하였으며, 사용계층은 주로 일반 서민층이었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이미지가 강했다.
5)은 두루마기형 즉 저고리 바지, 조끼, 마고자, 두루마기에 전복을 착용한 양식이다. 고찰 가능한 의복 유물 총 82점 중 17점이며, 전복의 색상은 주로 남색이며, 시문방법은 금박법을 사용했고 길상문양과 길상도안이 대부분이었다.
남아 돌복의 착장양식을 외의 형태에 따라 분류한 결과 바지·저고리형 9점, 배자형 21점, 마고자형 9점, 두루마기형 18점, 전복형 17점, 사규삼형 5점, 용포형 3점으로 고찰 가능한 유물사진 총 82점중 배자형이 가장 많이 선호되고 다음으로 두루마기형, 전복형 순으로 나타났다.
두루마기와 전복형은 의례적인 형식을 갖춘 의복으로서 의복의 벌수도 5~6벌로 나타났으며, 문양의 표현기법도 자수, 금박, 직문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색상도 오방색과 색동의 색을 사용하였으며, 양반층에서 선호된 돌복으로서 형식적이고 화려한 이미지가 강하다.
이상 살펴본 결과 양반층에서 사용된 돌복이 궁중에서 착용된 돌복보다 문양이나 색상면에서 훨씬 화려한데 이는 궁중복식을 모방하기도 했지만 부를 축적한 양반이 취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규삼, 용포는 의복자체로는 최고의 의복이지만 색상, 문양, 조형기법면에서 양반층의 돌복보다 더 간소한 점은 옷을 짓는 의복규범이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오늘날에는 신분상승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최고로 만들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사규삼형과 용포형을 비롯하여 아이에게 화려하게 입히고 싶은 부모마음을 담은 색동 두루마기형과 전복형을 선호하는 부류로 나누어 질 것으로 사료된다.
돌복의 특성을 고찰하기위해 착용계층, 구성방법으로 분류 하였고 그 결과 착용빈도는 총 82점 중 배자형이 21점으로 가장 많이 선호됨을 알 수 있었다. 착용계층별특성을 살펴보면 바지·저고리형, 배자형, 마고자형은 착용벌수가 2~4벌로 대체로 간소하였으며, 사용계층은 주로 일반 서민층이었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이미지가 강했다. 두루마기와 전복형은 착용벌수가 5~6벌로 사용계층은 사대부와 왕족이었으며 형식적이고 화려한 이미지가 강했다.
즉 황색은 중앙을, 청색은 동쪽을, 적색은 남쪽을, 백색은 서쪽을, 흑색은 북쪽을 상징한다. 한편, 유물을 통해 보면 오방장두루마기에는 오방색 중 청색, 적색, 황색, 백색 등이 주로 사용되었고, 흑색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대신 오방색에 없는 녹색계열의 색상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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