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신문 기사제목의 형성과 발전: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Article Titles in the Beginning Period of Korean Newspapers: Focused on The Independent, The Korea Daily News and The Dong-A Ilbo원문보기
본 연구는 한국 근대신문의 기사제목이 형성, 정착되는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그 변화의 양상과 의미를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1890년대의 "독립신문", 1900년대의 "대한매일신보",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동아일보"를 대상으로 이들 신문 기사제목 체제의 변화와 그 표현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독립신문"은 창간 초기 "한성순보"와 마찬가지로 제목 없이 유목만으로 지면을 구분하다가 1898년 7월에 처음으로 제목을 사용하였다. "대한매일신보"의 경우 1910년부터 제목을 별행 처리하여 본문과 확연히 구분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는 본문의 서체와 제목의 서체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제목 크기는 1단만 사용하여 기사의 중요도를 가늠하는 기능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20년대의 "동아일보"는 다단과 다행, 본문과 확연히 구별되는 크기의 제목활자 등을 사용하며, 지면 레이아웃을 도입하는 등 오늘날의 신문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에 오면 제목의 크기가 더욱 커지면서 지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전에 비해 확연하게 늘어났다. 이는 1930년대 민간지의 선정주의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신문에서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중대해진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서는 편집진의 시각이 개입된 주관형 제목이 각각 44.4%, 28.3% 정도 나타나고 있는 데 반해 1920년대의 "동아일보"는 주관형이 4.2%로 크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당시 신문들에서도 객관 저널리즘이 정착되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한국 근대신문의 기사제목이 형성, 정착되는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그 변화의 양상과 의미를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1890년대의 "독립신문", 1900년대의 "대한매일신보",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동아일보"를 대상으로 이들 신문 기사제목 체제의 변화와 그 표현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독립신문"은 창간 초기 "한성순보"와 마찬가지로 제목 없이 유목만으로 지면을 구분하다가 1898년 7월에 처음으로 제목을 사용하였다. "대한매일신보"의 경우 1910년부터 제목을 별행 처리하여 본문과 확연히 구분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는 본문의 서체와 제목의 서체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제목 크기는 1단만 사용하여 기사의 중요도를 가늠하는 기능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20년대의 "동아일보"는 다단과 다행, 본문과 확연히 구별되는 크기의 제목활자 등을 사용하며, 지면 레이아웃을 도입하는 등 오늘날의 신문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에 오면 제목의 크기가 더욱 커지면서 지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전에 비해 확연하게 늘어났다. 이는 1930년대 민간지의 선정주의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신문에서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중대해진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서는 편집진의 시각이 개입된 주관형 제목이 각각 44.4%, 28.3% 정도 나타나고 있는 데 반해 1920년대의 "동아일보"는 주관형이 4.2%로 크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당시 신문들에서도 객관 저널리즘이 정착되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This research is a comparative analysis of article titles in the beginning period of Korean newspapers. The Independent, The Korea Daily News and The Dong-A Ilbo were chosen for this research because each was the representative newspaper of 1890s, 1900s and $1920s{\sim}1930s$ respectively...
This research is a comparative analysis of article titles in the beginning period of Korean newspapers. The Independent, The Korea Daily News and The Dong-A Ilbo were chosen for this research because each was the representative newspaper of 1890s, 1900s and $1920s{\sim}1930s$ respectively. In result, The Independent's article titles had been appeared on nearly 2 years after its first issue. Before the appearance of titles, The Independent had divided articles only with section names. In 1900s, The Korean Daily News's article titles was longer than those of The independent. And in 1910, the titles of The Korean Daily News had been placed on separated line to divide articles clearly. But during these period, typographical development of titles was not shown and the width of title was remained in one column. This means, the function of title in these periods was not to represent the value of article but only to divide the articles. In 1920s, The Dong-A Ilbo had used big size types and multi-column edit and those changes enabled newspaper to introduce the concept of layout. During the decade of 1930s, The Dong-A Ilbo's titles had occupied more space on newspaper than earlier period. This could be explained from the perspective of sensationalism of commercial newspaper and a tendency of putting more weight on titles. On the dimension of expression, proportions of subjective titles in The Independent, The Korea Daily News were 44.4% and 28.3% each, but the subjective titles of The Dong-A Ilbo in 1920's were only 4.2%. This decrease can be explained by the settlement of objective journalism in Korean newspapers during $1920s{\sim}1930s$.
This research is a comparative analysis of article titles in the beginning period of Korean newspapers. The Independent, The Korea Daily News and The Dong-A Ilbo were chosen for this research because each was the representative newspaper of 1890s, 1900s and $1920s{\sim}1930s$ respectively. In result, The Independent's article titles had been appeared on nearly 2 years after its first issue. Before the appearance of titles, The Independent had divided articles only with section names. In 1900s, The Korean Daily News's article titles was longer than those of The independent. And in 1910, the titles of The Korean Daily News had been placed on separated line to divide articles clearly. But during these period, typographical development of titles was not shown and the width of title was remained in one column. This means, the function of title in these periods was not to represent the value of article but only to divide the articles. In 1920s, The Dong-A Ilbo had used big size types and multi-column edit and those changes enabled newspaper to introduce the concept of layout. During the decade of 1930s, The Dong-A Ilbo's titles had occupied more space on newspaper than earlier period. This could be explained from the perspective of sensationalism of commercial newspaper and a tendency of putting more weight on titles. On the dimension of expression, proportions of subjective titles in The Independent, The Korea Daily News were 44.4% and 28.3% each, but the subjective titles of The Dong-A Ilbo in 1920's were only 4.2%. This decrease can be explained by the settlement of objective journalism in Korean newspapers during $1920s{\sim}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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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지금까지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동아일보』에 나타난 제목의 양상을 분석해보았다. 그것을 바탕으로 여기서는 제목 형태 그리고 제목 내용및 표현으로 나누어 각 신문 사이에 나타난 변화를 정리해보고 그러한 변화의 배경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두 번째로는 앞서의 신문들을 중심으로 각 시기별 근대신문 제목의 변화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다. 앞서의 분석에서 나타난 매체별 그리고 시기별 제목의 특징을 분석하고 변화가 있었다면 그러한 변화를 수반한 내외의 배경을 관련 문헌자료의 분석 등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
즉 기사제목 변화에 대한 고찰은 우리 근대신문의 사회적 역할 및 그 본질적 기능과 더불어 신문 발전의 전반적인 과정을 가늠하게 해주는 유용한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 중요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흡했던 우리 근대신문의 제목에 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또한 지면 공간 측정은 연구 대상 지면을 스캔,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에서 실물 크기로 맞춘 뒤 각각의 기사, 제목, 사진, 광고 등을 하나씩 오려내 가로와 세로의 크기를 측정, 합산하여 계산하였다. 또한 내용 부문에서는 사용된 단어 및 표현 방식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주관형과 객관형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전술한 대로 이러한 구분이 제목 서술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구분의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사내용에 대해 주관적인 개입 없이 기사 본문을 나열하거나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가 혹은 편집자가 본문의 내용을 압축 또는 재해석하여 감정이나 생각 등을 새로운 표현으로 나타내는가 등의 구분을 통해 각 시기 신문들의 편집에 나타난 저널리즘적 성격을 고찰해보기 위해서이다.
본 연구에서는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를 대상으로 각 시기별 대표적인 근대 신문에서 제목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제목의 내용 및 형태의 변화 과정을 먼저 고찰하고 나아가 변화의 배경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와 같은 연구 주제를 바탕으로 두 가지의 연구 문제를 설정하였다.
두 번째로는 앞서의 신문들을 중심으로 각 시기별 근대신문 제목의 변화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다. 앞서의 분석에서 나타난 매체별 그리고 시기별 제목의 특징을 분석하고 변화가 있었다면 그러한 변화를 수반한 내외의 배경을 관련 문헌자료의 분석 등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 자료의 제한으로 인해 변화의 동인을 직접적으로 규명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신문 제목 변화에 영향을 미친 당시의 편집, 제작 여건 및 환경 등 간접적인 자료들을 통해 원인규명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개화기 민중 계몽의 주요한 수단으로 기능하였던 초기 근대신문들은 늘어나는 언로(言路)로서의 사회적 필요와 요구에 발맞추어 각기 그 내용과 체제 면에서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변화하였고, 이후 민간지의 상업적 성격이 더욱 강화되는 1930년대1)에 이르면 신문들은 점점 더 오늘날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기사의 주제와 내용, 편집뿐만 아니라 판형 및 활자 등 체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본 연구는 그 가운데 『독립신문』 이래로 나타난 한국 근대신문 기사제목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개화기 이후 대표적인 근대신문들에서 제목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각 신문에 나타난 제목의 외형적 형태 변화를 비교해보고 또한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분석의 대상으로는 10년을 단위로 하여 1890년대 『독립신문』, 1900년대 『대한매일신보』,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동아일보』를 선정하였다.
이상으로 『독립신문』으로부터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근대신문 제목을 형태와 표현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 변화의 양상을 고찰해보았다. 이는 기사내용에 대한 연구와 함께 각 시기의 신문 안팎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첫 번째, 개화기 이후 대표적인 근대신문들에서 제목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각 신문에 나타난 제목의 외형적 형태 변화를 비교해보고 또한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제안 방법
제목 분석의 유목으로는 체제 부문에서 글자 크기와 단수 및 자수, 지면에서의 공간 점유 비율 등이다. 글자 크기는 관련 문헌 등을 통해 제목에 사용된 활자를 조사한 뒤 한국편집기자회(1972)의 조견표를 사용하여 실제 크기로 확대한 지면과 비교하여 측정하였다. 또한 지면 공간 측정은 연구 대상 지면을 스캔,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에서 실물 크기로 맞춘 뒤 각각의 기사, 제목, 사진, 광고 등을 하나씩 오려내 가로와 세로의 크기를 측정, 합산하여 계산하였다.
두 종류의 제목 구분은 앞서의 제목 구분의 기준을 따른 감정 표출, 호소·요청, 문제 제기, 질문, 조어, 의인화, 명령 등의 표현 형태 그리고 기사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표현의 경우는 주관형 제목으로 분류하였으며 기사 내용의 일부를 그대로 다시 나열하는 경우는 객관형으로 분류하였다.
글자 크기는 관련 문헌 등을 통해 제목에 사용된 활자를 조사한 뒤 한국편집기자회(1972)의 조견표를 사용하여 실제 크기로 확대한 지면과 비교하여 측정하였다. 또한 지면 공간 측정은 연구 대상 지면을 스캔,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에서 실물 크기로 맞춘 뒤 각각의 기사, 제목, 사진, 광고 등을 하나씩 오려내 가로와 세로의 크기를 측정, 합산하여 계산하였다. 또한 내용 부문에서는 사용된 단어 및 표현 방식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제목의 내용 및 표현을 단순한 사실 전달이나 요약을 주로하는 객관형과 편집자의 감정이나 생각 등 주관이 개입된 주관형으로 크게 나누어 분석해보았다. 시기별 분석결과를 취합하여 교차분석한 결과 아래의<표 10>과 같이 유의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의 <표 5>과 <표 6>은 1920년대와 1930년대 조사대상 지면에서 구성 요소들의 점유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사회기사를 주로 다룬 2면 전체를 기사, 제목, 사진, 광고 및 기타 영역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크기를 측정하여 전체 지면 대비 비율로 환산하였다.
대상 데이터
이를 통해 각 신문에 나타난 제목의 외형적 형태 변화를 비교해보고 또한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분석의 대상으로는 10년을 단위로 하여 1890년대 『독립신문』, 1900년대 『대한매일신보』,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동아일보』를 선정하였다. 그 이유는 이들 신문이 해당 시기의 대표적인 신문으로서 일정 기간 꾸준히 발행되어 신문 간의 변화상뿐만 아니라 신문 내에서의 시기별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 표현에 대한 분석 대상으로는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는 전체 발행 기간의 중간 시기를 선택하였으며, 『동아일보』는 10년 단위의 시기별 분석을 위해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중간 시기를 선택하였다. 구체적인 각 시기의 분석대상은 아래 <표 1>과 같다.
지금까지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동아일보』에 나타난 제목의 양상을 분석해보았다. 그것을 바탕으로 여기서는 제목 형태 그리고 제목 내용및 표현으로 나누어 각 신문 사이에 나타난 변화를 정리해보고 그러한 변화의 배경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성능/효과
6) 분석 대상 지면에 나타난 주제목 서체의 크기는 1~2호 크기의 일정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지면 전체가 세로쓰기로 편집되고 있는 가운데 ‘麗日下에 除幕戰’(1925년 7월 27일자) 등과 같이 가로쓰기로 된 제목이 극히 일부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아래의 <표 11>은 객관형과 주관형 제목의 글자 수 평균을 비교, 분석한 결과이다. 『독립신문』과 1920년대 『동아일보』의 객관형 제목과 주관형 제목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대한매일신보』와 1930년대 『동아일보』의 제목은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F-test 결과 『독립신문』 이래 객관형과 주관형 제목의 길이는 지속적으로 길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특징적인 것은 1930년대 『동아일보』의 주관형 제목이 평균 약 17자에 이를 정도로 길어지고 있는 점이다.
『독립신문』의 잡보 제목 유형을 분석한 결과, 객관형 제목이 주관형 제목보다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의 첫머리나 내용을 그대로 뽑아낸 객관형 제목은 ‘상회 상쇼’, ‘통샹회’(이상 1898년 10월 1일자), ‘경샹 어##적’(1898년 10월 3일자), ‘협회 #회’(1898년 10월 6일자) 등 총 15건으로 나타났다.
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편집진의 시각이 개입된 주관형제목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주제는 사건보도나 정치 관련 기사로 53.1%의 비율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1907년 7월 24일자 잡보 가운데 관보를 가지고 가던 사람을 연행해 검문한 순사를 힐난하는 ‘관보도 모르나’, 갑자기 울려 퍼진 총성에 일본인이 쓰러지자 한 서민이 놀라서 도망간 이야기를 담은 ‘한씨가 혼낫내’, 그리고 한일 협약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는 대신들을 비난하는 1907년 7월 27일자 ‘얼굴이겁지아닌가’ 등의 제목이 사건보도 및 정치 관련 기사의 주관형 제목이다(부록 <제목 목록 2> 참고).
글자자수의 측면에서는 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객관형 제목의 경우 5자 내외의 간결한 표현이 많이 나타나며 주관형 제목의 경우 6~7자 내외의 상대적으로 긴 제목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독립신문』에 비해 제목의 길이가 길어진 것이다.
다음으로 제목 길이를 살펴보면, <표 9>는 각 신문에 나타난 제목 글자 수의 평균과 그 표준편차를 정리한 것이다. 네 신문의 제목 글자 수에 대한 변량분석(ANOVA) 결과 각 신문 간의 제목 글자 수 차이는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근대신문들의 제목이 차츰 길어져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제목이 단순히 기사를 요약하거나 분리하던 기능에서 차츰 지면을 분할하고 기사의 초점을 상세히 제시하는 기능까지 하게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위의 표에서 나타나듯 1930년대의 『동아일보』에서는 제목이 차지하는 공간이 기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제목이 차지하는 공간이 커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기사의 양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1925년 7월 24일자~7월 28일자 2면의 평균기사 건수가 26.8개였던 반면, 1935년 7월 24일~7월 28일자 2면의 경우 평균 기사수가 21.4개로 나타났다.9)
종합해보면, 전근대적 커뮤니케이션이 지배적이던 조선조 말에 근대적 대중매체인 신문이 도입되면서 초기에는 그 형식에 어느 정도 구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요소가 존재하였음을 『독립신문』의 제목 생성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으며, 『대한매일신보』 이후 저널리즘이 정착하고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제목은 점점 오늘날의 기사 제목과 같은 기능을 하는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개화기에서 『대한매일신보』에 이르는 시기는 신문의 제목이 생성 및 정착된 과정으로서, 이를 근대신문 편집에 있어서 제목의 ‘발아기’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표 3>에 나타난 『대한매일신보』의 제목 유형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것이 상대적인 비율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독립신문』과 마찬가지로 주관형 제목이 꾸준히 나타난다는 점이다. 평균 5.07자 내외로 단순하게 사실을 적시한 객관형 제목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주제는 관(官)의 동정으로, 34.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편집진의 시각이 개입된 주관형제목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주제는 사건보도나 정치 관련 기사로 53.
후속연구
이는 기사내용에 대한 연구와 함께 각 시기의 신문 안팎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각 신문의 중간 시기만을 대상으로 분석이 이루어져 전체시기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본 연구의 한계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우리 근대신문의 편집과 관련한 자료가 많지 않아 편집의 변화를 둘러싼 당시의 신문 내·외적 환경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점인데, 앞으로도 우리 근대신문의 편집 및 제작과 관련한 많은 자료탐색과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는 신문이 도입되고 주요한 사회적 매스미디어로 정착해가는 시기에서 기사 내용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제목에 대한 연구도 신문 편집과 제작 전반에 관련한 다양한 부분을 아울러 고찰해볼 수 있는 중요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제목의 변화에 대한 분석은 당시 독자들의 신문 문화를 살펴보게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기사제목 변화에 대한 고찰은 우리 근대신문의 사회적 역할 및 그 본질적 기능과 더불어 신문 발전의 전반적인 과정을 가늠하게 해주는 유용한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우리 근대신문의 편집과 관련한 자료가 많지 않아 편집의 변화를 둘러싼 당시의 신문 내·외적 환경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점인데, 앞으로도 우리 근대신문의 편집 및 제작과 관련한 많은 자료탐색과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 신문에 대한 감시 및 견제와 민간지들의 경쟁도 제목에서 가급적 주관을 배제시키거나 선정적인 표현을 증가시킨 시대적 요인으로 생각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요인들이 존재할 것으로 여겨지며 제목의 형성과 발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이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찰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의 분석에서 나타난 매체별 그리고 시기별 제목의 특징을 분석하고 변화가 있었다면 그러한 변화를 수반한 내외의 배경을 관련 문헌자료의 분석 등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 자료의 제한으로 인해 변화의 동인을 직접적으로 규명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신문 제목 변화에 영향을 미친 당시의 편집, 제작 여건 및 환경 등 간접적인 자료들을 통해 원인규명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은?
1883년 10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가 창간된 이후『독립신문』을 비롯한 여러 신문들은 시대와 사회의 흐름에 따라 그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개화기 민중 계몽의 주요한 수단으로 기능하였던 초기 근대신문들은 늘어나는 언로(言路)로서의 사회적 필요와 요구에 발맞추어 각기 그 내용과 체제 면에서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변화하였고, 이후 민간지의 상업적 성격이 더욱 강화되는 1930년대1)에 이르면 신문들은 점점 더 오늘날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이상우‧류창하가 언급한 기사 제목의 변화가 갖는 중요성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기사 제목의 변화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 이상우‧류창하(1993, 171쪽)도 “근대적인 제목이 이룩될 때까지 제목의 발전은 신문의 발전과 거의 맥을 같이해온 것이다”라고 언급하면서 제목의 변화가 근대신문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신문이 도입되고 주요한 사회적 매스미디어로 정착해가는 시기에서 기사 내용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제목에 대한 연구도 신문 편집과 제작 전반에 관련한 다양한 부분을 아울러 고찰해볼 수 있는 중요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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