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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조선미술전람회" 관련 신문보도에 나타난 일본의 오리엔탈리즘
Discourse Analysis of News Coverage about Chosun Art Exhibition in the Japanese Occupational Era 원문보기

한국언론정보학보 = Korean Journal of Communication & Information, no.54 = no.54, 2011년, pp.5 - 31  

유진환 (국민대학교) ,  이창현 (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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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22년부터 1944년까지 열렸던 조선미술전람회에 대한 신문보도의 내용을 분석하여 그 특성을 파악한 것이다. 조선미술전람회는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있는 조선 미술의 낙후성과 미개함을 강조하고, '지방색'만을 강조함으로써 식민지 조선의 '열등한 정체성'과 일본의 '우월한 정체성'을 차별적으로 확인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었다. 아울러 서양은 발전된 현재이고 동양은 과거에는 발전했으나 현재는 정체된 것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기본 시각이 재현되어 조선의 미술문화를 쇠락(衰落)한 지방문화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일제하 총독부 신문이었던, 매일신보에 대한 담론 분석결과 한편으로는 식민지 조선을 중앙(일본)의 연장선상에 있는 '지방(내지)'으로 편입하는 '동화주의적' 측면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화된 일본과는 구분되는 미개한 일개의 '지방(외지)'으로 차별화하는 '배제주의적' 측면을 갖고 있었다. 동아일보의 경우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조선 미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방식으로 기사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혼종적인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In this paper, the news coverage of Chosun Art Exhibition(鮮展) in the Japanese occupational era were analyzed by the discourse analysis technique. Japan was advocated the slogan of 'escape from the asia go to the west' and calls itself as western civilized nations during Japanese occupational era. Ja...

주제어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일본이 문화통치 정책으로 기존의 식민지 정책을 전환한 이유는? 일본은 1919년 3ㆍ1 독립운동을 계기로 조선의 식민지 통치가 힘에 의한 압제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그동안에 취해 왔던 무단통치 방식을 바꿔 ‘문화의 발달과 민력(民力)의 충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른바 ‘문화정치’1)로 표현되는 문화통치 정책으로 기존의 식민지 정책을 전환하였다. 이에 따라 종전의 헌병경찰 제도를 보통경찰로 바꾸고, 언론ㆍ집회ㆍ출판의 자유를 제한적이지만 인정하게 된다.
조선미술전람회는 언제 창설되었는가? 바로 이 ‘문화정치’의 과정에서 탄생한 정책적 산물 중의 하나가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였는데, 이는 조선총독부가 동경의 ‘제국미술원전람회(帝國美術院展覽會)’를 모방하여 1922년 처음 창설하여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까지 이어갔다.
관설 전람회의 본질적인 권위가 미술상에 나타나는 기회라고 생각한 이유는? 제23회 미술전람회가 개최된다는 것은 치열한 결전 하 일본의 굳센 자태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선전이라는 관설 전람회의 중대한 의의는 이 점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설 전람회의 본질적인 권위가 미술상에 나타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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