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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한국의사학회지 = the journal of Korean medical history, v.26 no.2, 2013년, pp.99 - 110
방성혜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 김남일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 김도훈 (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 원전의사학교실) , 차웅석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a doctor whose name is Baek Kwang-hyeon. He was at first a soldier and later became a doctor. After years of practicing, he was chosen as a acupuncture specialist doctor of Royal Office of Medicine. He was also chosen as a Roya...
핵심어 | 질문 |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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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事公遺事 附經驗方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 | 이 책은 저자 미상으로 白光玹의 후손 혹은 제자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원본은 일본의 杏雨書屋에 보관되어 있고 사본이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여기에는 본래 武人이었던 白光玹이 醫人이 된 계기부터 시작하여 그의 일생에 걸친 여러 중요한 의료 행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양반 위주의 계급사회였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한 醫人의 행적을 기록한 전기 형식의 책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은 특이하고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 |
白光玹은 누구인가? | 白光玹1)(1625~1697)은 인조 3년에 태어나 효종 대를 거쳐 현종 대와 숙종 대에 활약하면서 종기를 잘 치료하기로 이름을 떨친 鍼醫이다. 그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鄭來僑(1681-1759)가 지은 『浣巖集』 중 「白太醫傳」과, 趙顯命(1690-1752)이 지은 『歸鹿集』 중 「白知事墓表」에 간략히 전해지고 있다. | |
백광현 의원의 침술로 의료사고가 발생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사람의 병을 잘 고친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말을 치료하던 침술을 사람에게 적용하였기에 간혹 침술의 정도가 지나쳐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의료사고도 발생하였다고 전해진다.17) 이런 의료사고가 발생했던 것은 우선은 말에게 사용하는 침은 사람에게 사용하는 침보다 크기가 더욱 컸고, 또 말의 가죽은 사람의 가죽보다 더욱 질기고 단단하였기에 말에게는 적당한 침습의 정도가 사람에게는 과도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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