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우리나라의 불탑은 목탑, 전탑, 석탑 등 다양하게 조영되었다. 하지만 전래되어 지고 있는 불탑은 전탑, 석탑 등 소실되기 어려운 재질의 불탑 형식만이 있다. 석탑에 비해 전탑의 경우 실측 등 실물에 대한 자료는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으나, 문헌적인 자료 및 축조방법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탑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점, 지역적으로 제한적인 점, 재료적인 한계를 문헌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점, 탑의 구성을 시대적, 지역적인 문제로 해석하지 않고 탑의 조영에만 초점을 맞추어 연구한 것 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 연구는 전탑이 축조된 지역에서의 지역적 문화적인 특성을 중심으로 전탑형성과정을 해석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는 나타난 유적을 비교해 살펴보면,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와 함께 해상경로로의 교류가 있었으며, 이러한 교류는 동아시아지역과도 함께 공유되었다. 그리고 중국과의 교류는 전파를 통한 맹목적인 습득이 아니라 지역적인 세력의 선택적인 교류라 할 수 있었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전탑이 조영된 이유로 이제까지의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양질의 흙 뿐 만 아니라 불교적으로 중심세력에 부합하지 않는 의상의 화엄종의 교섭 및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인 불교의 대중화, 지방세력의 거점화 등이 지방세력과의 밀접한 관계가 전탑 조영의 원인으로 나타났다. 셋째, 전탑의 조영은 발해와 신라와의 교섭관계 및 지역적, 민족적 영향력이 작용하고 중국에서 넘어온 문화에 대한 선택적인 소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전탑이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적인 전파 및 중국의 소국으로서의 발생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국가의 형성에서 발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우리나라의 불탑은 목탑, 전탑, 석탑 등 다양하게 조영되었다. 하지만 전래되어 지고 있는 불탑은 전탑, 석탑 등 소실되기 어려운 재질의 불탑 형식만이 있다. 석탑에 비해 전탑의 경우 실측 등 실물에 대한 자료는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으나, 문헌적인 자료 및 축조방법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탑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점, 지역적으로 제한적인 점, 재료적인 한계를 문헌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점, 탑의 구성을 시대적, 지역적인 문제로 해석하지 않고 탑의 조영에만 초점을 맞추어 연구한 것 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 연구는 전탑이 축조된 지역에서의 지역적 문화적인 특성을 중심으로 전탑형성과정을 해석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는 나타난 유적을 비교해 살펴보면,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와 함께 해상경로로의 교류가 있었으며, 이러한 교류는 동아시아지역과도 함께 공유되었다. 그리고 중국과의 교류는 전파를 통한 맹목적인 습득이 아니라 지역적인 세력의 선택적인 교류라 할 수 있었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전탑이 조영된 이유로 이제까지의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양질의 흙 뿐 만 아니라 불교적으로 중심세력에 부합하지 않는 의상의 화엄종의 교섭 및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인 불교의 대중화, 지방세력의 거점화 등이 지방세력과의 밀접한 관계가 전탑 조영의 원인으로 나타났다. 셋째, 전탑의 조영은 발해와 신라와의 교섭관계 및 지역적, 민족적 영향력이 작용하고 중국에서 넘어온 문화에 대한 선택적인 소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전탑이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적인 전파 및 중국의 소국으로서의 발생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국가의 형성에서 발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Korean pagodas were constructed in the shape of a wood pagoda, brick pagoda, stone pagoda, etc. On the other hand, the currently remaining traditional pagodas are those having nonflammable materials, such as brick, stone, etc. Compared to the stone pagoda, there is data regarding brick pagodas, but ...
Korean pagodas were constructed in the shape of a wood pagoda, brick pagoda, stone pagoda, etc. On the other hand, the currently remaining traditional pagodas are those having nonflammable materials, such as brick, stone, etc. Compared to the stone pagoda, there is data regarding brick pagodas, but there is little literature data on how to construct these pagodas. This appears to be because there are relatively few Korean brick pagodas currently remaining, they are locally restricted, the material limit is not overcome, pagoda's historical and regional problems have not been analyzed, and pagoda construction is centered on pagoda construction. Therefore, this study examined the local cultural characteristics on the construction of brick pagodas. As a result,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China was performed through the silk road and there was a marine route for cultural exchange. Such exchange was shared with the East Asia area as well, which can be found by comparing remains at related areas. Exchange with China can be mentioned as the selective exchange of local powers as well as blind learning. Second, brick pagoda were constructed in Korea because of the good quality soil easily. Uisang's Hwaeomjong was negotiated with the main power not agreeing with Buddhism, which was popularized and the local power. Third, brick pagoda construction was influenced by negotiation related between Balhae and Silla, in which the ethnic influence was locally affected and could be mentioned as being a culturally selective result transferred from China. As a result, brick pagodas can be oriented by forming a unitary state rather than a small country within China's influence range as well as cultural transfer through the silk road.
Korean pagodas were constructed in the shape of a wood pagoda, brick pagoda, stone pagoda, etc. On the other hand, the currently remaining traditional pagodas are those having nonflammable materials, such as brick, stone, etc. Compared to the stone pagoda, there is data regarding brick pagodas, but there is little literature data on how to construct these pagodas. This appears to be because there are relatively few Korean brick pagodas currently remaining, they are locally restricted, the material limit is not overcome, pagoda's historical and regional problems have not been analyzed, and pagoda construction is centered on pagoda construction. Therefore, this study examined the local cultural characteristics on the construction of brick pagodas. As a result,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China was performed through the silk road and there was a marine route for cultural exchange. Such exchange was shared with the East Asia area as well, which can be found by comparing remains at related areas. Exchange with China can be mentioned as the selective exchange of local powers as well as blind learning. Second, brick pagoda were constructed in Korea because of the good quality soil easily. Uisang's Hwaeomjong was negotiated with the main power not agreeing with Buddhism, which was popularized and the local power. Third, brick pagoda construction was influenced by negotiation related between Balhae and Silla, in which the ethnic influence was locally affected and could be mentioned as being a culturally selective result transferred from China. As a result, brick pagodas can be oriented by forming a unitary state rather than a small country within China's influence range as well as cultural transfer through the silk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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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화적 전파의 중심인 세력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전탑 및 건축적인 행위의 성립과정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문화교류의 대한 의견을 필역하고 안동지역의 지역적인 지배세력에 대한 점을 고찰하여 이제까지의 관점에서 탈피한 시점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이제까지 전탑이 축조된 지역에서의 지역적 문화적인 특성을 중점적으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당시 의상의 입당(入唐) 시 요동지방에서 고구려의 첩자로 오인되어 곤욕을 치르고 다시 해상경로를 통하여 당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던 내용만 보더라도 신라에서 고구려를 통한 실크로드로의 육로 교류만은 어려움이 있어 여러 경로로 문화가 들여져 왔으며, 그 후 문화는 시대적인 요구에 맞게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신라에서 지역적으로 맞게 바뀌어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 이외 다른 국가와 신라의 유적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
이제까지 국제적인 교류의 관점과 불교적, 지역적인 관점에서 본 전탑의 구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제까지 중국에서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으로 전파된 문화적 교류, 전탑의 발생은 중국에서 들여온 문화가 신라에서 지역세력과 접합한 후 우리나라에 맞도록 선택적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세력에 따른 조영의 법식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특히, 발해 지역과 안동지역에서 조영된 전탑의 조영은 우리나라만의 특색이 깃들여져 있어 시대적, 민족적 상황을 파악한 후 재해석하여야 될 것으로 보았다.
대상 데이터
둘째, 모전석탑 등 중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이한 재질의 석탑을 세운 점이다. 모전석탑은 석재를 벽돌모양으로 잘라 전의 형식으로 조영한 탑으로 경주, 안동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모전은 전의 제작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 진행되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석재를 전의 모양으로 다듬어 탑을 세울 만큼 공을 들인 점 또한 아직까지 알 수 없다.
성능/효과
그 결과, 첫째,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는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와 함께 해상경로로의 교류가 있었으며, 그 증거로 비슷한 시기 중국과 동아시아지역의 유적을 비교하여 본 결과 아래 그림과 같이 중국과의 문화교류는 전파되어 맹목적인 습득이 아니라 지역적인 세력의 선택적인 교류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의상과 원효중심으로 두고 개인적 사상적으로 풀어보면 의상은 후진의 교육, 화엄교단의 확립을 두고 화엄사상을 펼친 화엄종으로 사찰공간은 단탑형-2불전형-다영역형-중축형으로 나타나나, 원효는 사상과 저술, 대중교화를 중심으로 일심사상, 무애사상, 원융회통사상으로 법성종을 펼쳐 사찰공간이 쌍탑형-2불 전형-2영역형-병렬형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로 원효의 사찰은 전국적으로 창건되어 지고 의상의 사찰은 경상북도 및 전라도에서만 창건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전탑이 조영된 이유는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양질의 흙 뿐만 아니라 불교적으로 신라중심세력의 배타 및 이에 부합하지 않는 의상의 화엄종, 불교의 대중화, 지방세력의 거점화 등이 밀접하게 연계된 결과가 전탑 조영의 원인으로 나타났다.
셋째, 전탑은 중국에서 발생한 탑의 조영이 교류를 통해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지역으로 전달되었으며, 우리나라는 선택적 입장에서 문화가 받아들여져 발해, 안동지역에서 독특한 형식으로 발전, 조영되었다. 이러한 전탑 형식은 발해와 신라와의 교섭관계 및 지역적, 민족적 영향력이 작용하였으며, 최종적으로 교류에 의한 선택적인 문화의 소산물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나라 전탑이 조영되기 시작한 7세기라는 시대적인 점을 감안하면 이제까지 풀리지 않았던 전탑의 축조에 대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풀리지 않은 문제는 첫째, 기술력의 전파는 세워진 조영물의 형식이 같게 형성될 수밖에 없는데 중국에서의 전탑이 크기는 우리나라에서 세워진 전탑의 크기와 확연히 달리한다는 점이다. 중국 서안에 있는 흥교사에서 현장법사탑을 중앙에 두고 양측으로 조영된 전탑인 홍교사의 원측법사탑, 규기대사탑[9]을 제외하고는 크기가 우리 나라에 세워진 전탑보다 약 10배가량 크게 축조된 점은 이해할 수가 없다.
후속연구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이러한 점에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교류, 전파 등 다른 단어를 같이 혼용하고 있는 점이다. 그 근거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밝혀지고 있는 유물 및 유적의 내용을 보면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유적이 있는 점 등 전파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교류적인 접근에서 건축적 유적을 이해하여야 될 것이다.
특히, 발해 지역과 안동지역에서 조영된 전탑의 조영은 우리나라만의 특색이 깃들여져 있어 시대적, 민족적 상황을 파악한 후 재해석하여야 될 것으로 보았다. 본 연구는 앞으로 전탑 연구에 있어 다른 각도로서의 접근을 제시하는 논문으로 많은 직접적인 증거를 자세히 제시하지 못한 점이 있다. 이는 앞으로 더욱 문화적인 증거를 찾아 우리나라 선조들의 역사적이 우수성을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는 앞으로 전탑 연구에 있어 다른 각도로서의 접근을 제시하는 논문으로 많은 직접적인 증거를 자세히 제시하지 못한 점이 있다. 이는 앞으로 더욱 문화적인 증거를 찾아 우리나라 선조들의 역사적이 우수성을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불탑은 어떻게 조영되었는가?
본 우리나라의 불탑은 목탑, 전탑, 석탑 등 다양하게 조영되었다. 하지만 전래되어 지고 있는 불탑은 전탑, 석탑 등 소실되기 어려운 재질의 불탑 형식만이 있다.
전래되는 불탑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본 우리나라의 불탑은 목탑, 전탑, 석탑 등 다양하게 조영되었다. 하지만 전래되어 지고 있는 불탑은 전탑, 석탑 등 소실되기 어려운 재질의 불탑 형식만이 있다. 석탑에 비해 전탑의 경우 실측 등 실물에 대한 자료는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으나, 문헌적인 자료 및 축조방법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불탑 중 전탑 연구의 한계는 무엇인가?
하지만 전래되어 지고 있는 불탑은 전탑, 석탑 등 소실되기 어려운 재질의 불탑 형식만이 있다. 석탑에 비해 전탑의 경우 실측 등 실물에 대한 자료는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으나, 문헌적인 자료 및 축조방법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탑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점, 지역적으로 제한적인 점, 재료적인 한계를 문헌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점, 탑의 구성을 시대적, 지역적인 문제로 해석하지 않고 탑의 조영에만 초점을 맞추어 연구한 것 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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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eong-gun, Lee,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Meaning of Balhae Brick Pagoda in Northeast Asia,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Number 21, 2009,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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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trich Seckel, Buddhist, 2002, YeKyong,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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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hong, Park,, Wang-Jik, Kim,, A Study on the Ugajong Temples for the temple's architectural features discussion, Korea Institute of Architectural History, 2007, Conference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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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koksagi sinlabongi Number 7 monmu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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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eong-gun, Lee,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Meaning of Balhae Brick Pagoda in Northeast Asia,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2008, p139
TONGWON UNIVERSITY, A comparative study of the architectural form on the Balhae Young-gwang pagoda and south of the Han river brick pagoda, 2009, MINISTRY OF EDUCATION Research, Association of Koguyo Balhae, 2010, p6
Byeong-gun, Lee,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Meaning of Balhae Brick Pagoda in Northeast Asia,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Number 21, 2009,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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