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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정계시 '입지암류(入地暗流)'의 위치와 '토문강원(土門江源)'의 송화강 유입 여부
A Reinvestigation on Key Issues Associated with the Yimjin(1712) Boundary Making and Demarcation: Location of 'Yipjiamlyu' and the Confluence of 'Tomungangweon' into the Sungari River 원문보기

대한지리학회지 =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v.50 no.6, 2015년, pp.571 - 605  

이강원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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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다음과 같은 점이 확인되었다. 첫째, 목극등 지도의 '입지암류(入地暗流)'는 지리학적으로 '복류시작지점'을 의미하며, 오늘날 대각봉 북북동의 흑석구 하도, 해발고도 약 1,840m 지점이다. 둘째, 임진정계시 '토문강원(土門江源: 두만강원)'[흑석구]은 송화강에 유입되며, 목극등과 조선측 임진정계 참여자들도 1712년 5월 17~18일경 이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두 가지 사실에 입각하여 임진정계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목극등은 정계비를 압록강 송화강 최상류 분수계 부근에 세웠다. 압록강 토문강(두만강)의 최상류 분수계를 찾는다는 그의 의도대로라면, 정계비는 대연지봉에 세웠어야 한다. 5월 12일 그는 자신이 '토문강원(두만강원)'[흑석구]이라고 간주한 하도에서 '입지암류'를 발견했으며, 이곳으로부터 하도를 따라 복류하는 물이 다시 용출하여 토문강(두만강)이 된다고 생각하고, 5월 15일 정계비를 세웠다. 그러나 5월 17~18일경 이 하도가 토문강(두만강)이 아닌 '서류하천'(송화강 지류)에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5월 19일 그는 다시 조선측이 가리킨 두만강(토문강) 용출처로 향했으며, 도중에 물이 나오는 것('수출(水出)')을 발견하고 자신이 '토문강원(두만강원)'이라고 생각한 물줄기가 다시 용출한 것이라고 지목하였다. 정계비로부터 이어지는 물줄기가 '입지암류' 지점에서 복류하기 시작하여 '수출'에서 다시 나와 토문강(두만강)이 된다고 이해한 것이다. 그는 "정계비-'토문강원(두만강원)'-'입지암류'-'수출'-토문강(두만강) 본류"로 물이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이를 조 청 국경으로 삼았으며, 그중 "정계비-'토문강원(두만강원)'-'입지암류'-'수출'"을 따라 경계표지물을 설치할 것을 조선측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목극등 귀국 후인 8월초 조선측 경계표지물 설치 실무자들은 목극등이 지목한 '수출'이 두만강(토문강) 수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조선측 실무자들은 "정계비-'토문강원(두만강원)'-황화송전자 부근-'수출'"을 목극등이 설정한 경계로 이해하고 경계표지물 설치작업을 하다가, 자신들이 확인한 두만강(토문강) 용출처까지 경계표지물을 연결하였다. 조선정부도 1713년 3월 이를 추인하였고, 이후 이러한 실무자들의 견해에 따라 중간의 경계표지물 미설치 구간에 대한 공사를 진행하였다. 경계표지물 설치에 대한 목극등의 요구와 조선측의 실행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조선측 실무자들이 이렇게 경계표지물을 설치한 것은 황화송전자 부근을 목극등의 '입지암류' 지점으로 이해했고, 자신들이 확인한 두만강(토문강) 용출처가 진정한 두만강(토문강) 용출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진정계시 조 청 모두 압록강과 두만강(토문강)을 국경으로 인식하고 정계에 임하였다. 문제는 두만강(토문강) 수계를 잘못 이해했다는 점이다. 압록강에 대한 수계 판단은 비교적 정확했으나, 두만강(토문강)에 대한 수계 판단에서 유일하게 옳았던 것은 조선측 실무자들이 발견한 두만강(토문강) 용출처였을 뿐이다.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This research revealed that 'Yipjiamlyu' in the Mukedeng's map is geographically 'a beginning point of underf low,' whose location is on the Heishigou's riverbed(E.L. 1,840m) in the NNE side of Daegakbong peak, and that 'Tomungangweon'(Heishigou) is one of the upstream reach of the Sungari River, wh...

주제어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임진정계란 무엇인가? 이 글에서 ‘임진정계(壬辰定界)’라고 칭하는 것은 1712년(壬辰年, 朝鮮 肅宗 38年; 淸 康熙 51年) 5월 15일 백두산 정상 부근에 ‘정계비’를 설치한 사건을 전후로 한 일련의 국경획정 및 경계표지물 설치 과정을 말한다. 1885년과 1887년의 조·청 국경 회담을 각각 ‘을유감계(乙酉勘界)’, ‘정해감계(丁亥勘界)’라 하고, 조선시대 주요 사건명 앞에 해당연도의 간지[干支(太歲)]를 붙이는 경향이 있으므로, 1712년 정계비 설치를 전후한 일련의 과정을 ‘임진정계’라고 부르기로 한다.
간도영유권 주장의 중요한 근거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경계표지물의 방향 여하가 이른바 ‘간도영유권(間島領有權)’ 주장의 성립 여부에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고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정계비 비문 중에 ‘서위압록, 동위토문(西爲鴨綠 東爲土 門)’이 언급되고, 정계비와 이어져 있는 하천 동남안에 경계표지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또한 이 하천이 두만강(豆滿江)이 아닌 송화강(松花江)으로 흘러든다는 사실은 이른바 ‘간도영유권’ 주장의 중요한 근거가 되어 왔다.
경계표지물이 임진정계 연구의 핵심 사안이 된이유는 무엇인가? 정계비 건립 이후 설치된 경계표지물(石堆·土堆·木柵)은 임진정계 연구의 핵심 사안이 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경계표지물의 방향 여하가 이른바 ‘간도영유권(間島領有權)’ 주장의 성립 여부에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고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정계비 비문 중에 ‘서위압록, 동위토문(西爲鴨綠 東爲土 門)’이 언급되고, 정계비와 이어져 있는 하천 동남안에 경계표지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또한 이 하천이 두만강(豆滿江)이 아닌 송화강(松花江)으로 흘러든다는 사실은 이른바 ‘간도영유권’ 주장의 중요한 근거가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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