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시대 한국 하청애니메이션에 대한 연구 - 1970-80년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 A Study on Subcontract Animation in Korea during the Industrialization Era - Centered around Animations in 1970-80s -원문보기
본 연구는 1966년 TBC 동화부의 황금박쥐로 시작된 한국 하청애니메이션의 역사를 1980년대 시기까지 분석하여, 한국애니메이션에서 30년 넘게 진행되어 온 하청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재조명하였다. 이를 위해 하청애니메이션 제작사 제작현황 산업의 규모 등 하청애니메이션 개괄적인 상황을 통해 당시 OEM산업의 실태를 점검하였고, 애니메이션이 하청제작산업으로 고착화된 배경을 시대상황과 연계하여 분석하였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하청애니메이션산업이 발생시킨 문제점과 한계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창작애니메이션을 활성화하기 위한 새로운 모색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애니메이션 역사 연구의 지평을 넓혀보고자 하였다. 1970년대는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이 국가적 목표였던 시기였다. 70년대 후반부터 애니메이션도 해외애니메이션 하청 수주를 통해 수출 주력산업으로 주목받았다. 하청 해니메이션 제작의 확대는 당시 대중문화에 대한 국가의 정책과 칼라TV보급, 비디오 제작 시장 활성화 등의 매체 변화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관객이 축소된 점에도 영향을 받았으며 경제적 논리로 자체 애니메이션 제작을 기피했던 방송사 등 플랫폼 부재도 그 원인이었다. 하청애니메이션산업은 애니메이션 인프라의 구축과 신진 인력 양성 등 애니메이션 환경을 확장시켰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집약적인 '프로덕션' 단계 중심의 발전은 기획력 등 '프리 프로덕션'의 부재와 '포스트 프로덕션(후반작업)'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전문인력 양성에 왜곡된 구조를 만들었고, OEM산업으로 축적된 자본을 창작애니메이션 제작에 재투자하여 내수시장을 형성하지 못한 점은 부정적 측면으로 평가된다. 애니메이션은 한 나라의 문화적, 정신적 산물이다. 따라서 전문인력의 양성과 우수한 작품의 창작,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시장의 형성 등 창작애니메이션 활성화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 정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산업이지만 하드웨어 중심의 제조업이 아닌 창의력에 기반한 문화산업이라는 인식은 없었다. 이러한 인식의 부재로 이 시기 한국 애니메이션은 독자적인 작품 제작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를 통해 시장을 만들고, 창작애니메이션을 활성화하는 어떠한 정책 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이러한 시도는 1990년대 이후 한국도 창작 애니메이션 보호 육성을 위한 다각적인 모색을 통해 새롭게 시작된다.
본 연구는 1966년 TBC 동화부의 황금박쥐로 시작된 한국 하청애니메이션의 역사를 1980년대 시기까지 분석하여, 한국애니메이션에서 30년 넘게 진행되어 온 하청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재조명하였다. 이를 위해 하청애니메이션 제작사 제작현황 산업의 규모 등 하청애니메이션 개괄적인 상황을 통해 당시 OEM산업의 실태를 점검하였고, 애니메이션이 하청제작산업으로 고착화된 배경을 시대상황과 연계하여 분석하였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하청애니메이션산업이 발생시킨 문제점과 한계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창작애니메이션을 활성화하기 위한 새로운 모색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애니메이션 역사 연구의 지평을 넓혀보고자 하였다. 1970년대는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이 국가적 목표였던 시기였다. 70년대 후반부터 애니메이션도 해외애니메이션 하청 수주를 통해 수출 주력산업으로 주목받았다. 하청 해니메이션 제작의 확대는 당시 대중문화에 대한 국가의 정책과 칼라TV보급, 비디오 제작 시장 활성화 등의 매체 변화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관객이 축소된 점에도 영향을 받았으며 경제적 논리로 자체 애니메이션 제작을 기피했던 방송사 등 플랫폼 부재도 그 원인이었다. 하청애니메이션산업은 애니메이션 인프라의 구축과 신진 인력 양성 등 애니메이션 환경을 확장시켰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집약적인 '프로덕션' 단계 중심의 발전은 기획력 등 '프리 프로덕션'의 부재와 '포스트 프로덕션(후반작업)'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전문인력 양성에 왜곡된 구조를 만들었고, OEM산업으로 축적된 자본을 창작애니메이션 제작에 재투자하여 내수시장을 형성하지 못한 점은 부정적 측면으로 평가된다. 애니메이션은 한 나라의 문화적, 정신적 산물이다. 따라서 전문인력의 양성과 우수한 작품의 창작,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시장의 형성 등 창작애니메이션 활성화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 정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산업이지만 하드웨어 중심의 제조업이 아닌 창의력에 기반한 문화산업이라는 인식은 없었다. 이러한 인식의 부재로 이 시기 한국 애니메이션은 독자적인 작품 제작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를 통해 시장을 만들고, 창작애니메이션을 활성화하는 어떠한 정책 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이러한 시도는 1990년대 이후 한국도 창작 애니메이션 보호 육성을 위한 다각적인 모색을 통해 새롭게 시작된다.
This study has analyzed the history of the subcontract animation in Korea that began with Golden Bat of TBC Animation Division in 1966 to 1980s and shed the light on the history of subcontract animation that has been processed over 30 years in Korean animation. For this purpose, through the outlined...
This study has analyzed the history of the subcontract animation in Korea that began with Golden Bat of TBC Animation Division in 1966 to 1980s and shed the light on the history of subcontract animation that has been processed over 30 years in Korean animation. For this purpose, through the outlined status of subcontract animation, such as, production company, production status, scale of industry and so forth, the status of the OEM industry then has been checked and it links the solidified background of animation into subcontract production industry with the situation in time for analysis. In addition, on the basis of the foregoing, it is intended to broaden the horizon of the history of animation through the analysis on new search for facilitating the creative animation by overcoming the issues and limits generated by the subcontract animation industry. 1970s was the time that the national objective is to advance heavy-chemical industry and export-led economic growth. From the late 1970s, the animation has been spot lighted as the main-stream export industry through the overseas subcontract orders for animation. Expansion of the subcontract animation production has been influenced from the national policies on public culture, dispersion of color TV, facilitation of video production market and other media changes of the time that led the decline of animation audiences in theaters, and another cause would be in lack of platform of broadcasting companies that avoided the independent animation production for its economic theory. The subcontract animation industry may have the positive evaluation in the aspect of expanding the animation environment, such as, structuring of animation infra, development of new human resources and etc. However, the technology-incentive 'production'-oriented advancement has created distorted structure in advancing the professional human resources due to the absence of 'pre-production' of planning and others as well as the insufficient perception on 'post production (post work)', and it was unable to formulate domestic market by re-investing the capital accumulated for OEM industry into the production of creative animation and it has been assessed as negative aspect. Animation is a cultural and spiritual product of a country. Therefore, the systematic support policy for the facilitation of the creative animation, such as, development of professional human resources, creation of outstanding work, formation of market to make the pre-circulation structure and so forth has to be sought. However, animation is an industry, but there is no perception that it is a cultural industry based on the creativeness, not hardware-oriented manufacturing business. Such a lack of recognition, there was no policies to make the market and facilitate the creative animation by the animation of Korea for this period through the long-term plan and investment for independent work production. Such an attempt is newly begun through diverse searches for protection and advancement of creative animation in Korea after 1990s.
This study has analyzed the history of the subcontract animation in Korea that began with Golden Bat of TBC Animation Division in 1966 to 1980s and shed the light on the history of subcontract animation that has been processed over 30 years in Korean animation. For this purpose, through the outlined status of subcontract animation, such as, production company, production status, scale of industry and so forth, the status of the OEM industry then has been checked and it links the solidified background of animation into subcontract production industry with the situation in time for analysis. In addition, on the basis of the foregoing, it is intended to broaden the horizon of the history of animation through the analysis on new search for facilitating the creative animation by overcoming the issues and limits generated by the subcontract animation industry. 1970s was the time that the national objective is to advance heavy-chemical industry and export-led economic growth. From the late 1970s, the animation has been spot lighted as the main-stream export industry through the overseas subcontract orders for animation. Expansion of the subcontract animation production has been influenced from the national policies on public culture, dispersion of color TV, facilitation of video production market and other media changes of the time that led the decline of animation audiences in theaters, and another cause would be in lack of platform of broadcasting companies that avoided the independent animation production for its economic theory. The subcontract animation industry may have the positive evaluation in the aspect of expanding the animation environment, such as, structuring of animation infra, development of new human resources and etc. However, the technology-incentive 'production'-oriented advancement has created distorted structure in advancing the professional human resources due to the absence of 'pre-production' of planning and others as well as the insufficient perception on 'post production (post work)', and it was unable to formulate domestic market by re-investing the capital accumulated for OEM industry into the production of creative animation and it has been assessed as negative aspect. Animation is a cultural and spiritual product of a country. Therefore, the systematic support policy for the facilitation of the creative animation, such as, development of professional human resources, creation of outstanding work, formation of market to make the pre-circulation structure and so forth has to be sought. However, animation is an industry, but there is no perception that it is a cultural industry based on the creativeness, not hardware-oriented manufacturing business. Such a lack of recognition, there was no policies to make the market and facilitate the creative animation by the animation of Korea for this period through the long-term plan and investment for independent work production. Such an attempt is newly begun through diverse searches for protection and advancement of creative animation in Korea after 199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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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논문은 하청애니메이션 제작사·제작현황·산업의 규모 등의 개괄적인 상황을 정리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하청산업이 한국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고착화된 배경과 한계 그리고 새로운 모색이라는 측면을 점검하여 애니메이션 역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OEM산업구조의 형성배경과 문제점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새롭게 모색된 한국 창작애니메이션의 활로를 분석하여 이시기가 갖는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자료조사와 평가를 기반으로 당시 하청애니메이션의 제작현황 및 산업규모 등을 정리하여 하청애니메이션산업의 역사적 흐름을 개괄적으로 평가하고, 둘째 당시의 시대상황과 연계하여 하청애니메이션으로 산업구조가 편중된 원인에 대해 분석해보고, 마지막으로 하청애니메이션 산업의 한계와 문제점 및 대안을 점검하였다.
본 연구는 1966년 TBC 동화부의 황금박쥐로 시작된 한국 하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1980년대까지 정리하여, 한국애니메이션에서 30년 넘게 진행되어 온 하청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재조명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역사에 대한 연구는 지난 애니메이션산업의 발자취를 점검하고 그 당시의 기록을 발굴하여 시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 글은 한국 근대화의 과정에서 정부의 경제·문화관련 정책이 한국애니메이션 산업 왜곡의 중요한 한 원인이었다는 측면도 하청애니메이션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후발주자인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하청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창작 애니메이션 활성화를 위해 전방위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사례를 간략히 정리하며 한국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모색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이 논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캐나다나 프랑스는 방송쿼터제 등의 정책입안이나 재원조달 등을 통해 창작애니메이션 제작 확대를 지원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인력양성을 위한 전문기관의 설립과 확장을 통해 창작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제안 방법
그나마 존재하는 자료는 애니메이션관련 협회의 회지 및 심포지엄자료와 잡지 등의 인터뷰 그리고 당시 만화영화 수출에 관한 신문기사 정도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현재 남아있는 기록(자료)은 최대한 발굴하고,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 부분은 하청애니메이션제작에 참여했던 제작사 및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완하여 작성하였다.
형성배경에 대한 분석은 향후 독자적인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해서는 창작애니메이션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플랫폼 확대의 필요성, 자유로운 창작환경의 중요성을 지적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또한 하청 중심 산업으로 왜곡된 산업구조를 보완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조업이 아닌 문화산업이라는 시각으로 경제 모델을 새롭게 확립하여야 함도 분석했다. 이는 애니메이션을 창작 할 수 있는 장기적인 투자와 지원을 통해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을 복원하고,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OEM산업구조의 형성배경과 문제점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새롭게 모색된 한국 창작애니메이션의 활로를 분석하여 이시기가 갖는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자료조사와 평가를 기반으로 당시 하청애니메이션의 제작현황 및 산업규모 등을 정리하여 하청애니메이션산업의 역사적 흐름을 개괄적으로 평가하고, 둘째 당시의 시대상황과 연계하여 하청애니메이션으로 산업구조가 편중된 원인에 대해 분석해보고, 마지막으로 하청애니메이션 산업의 한계와 문제점 및 대안을 점검하였다. 한국 애니메이션산업에서 하청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70년대 중반부터이며, 이 시기 한국사회는 비민주적 정치상황과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등 왜곡된 정치·경제적구조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쳤던 시점이다.
미국의 만화영화 방영구조를 보면, NBC, CBS 등 대형방송사 네트워크는 주로 가을에 프로그램을 편성하였고, 제작사들은 방송편성에 맞추어 제작스케쥴을 진행하였다. 주로 미국에서 12월부터 4월경까지 기획단계를 진행하고, 그 이후 한국의 제작사에서 프로덕션 부분을 진행하였다. 보통 13편 정도의 작품인데 미리 준비를 하기 위해 5월~8월까지 8편 정도를 제작하여 프로그램으로 편성하여 방영하고, 8~12월까지 후반 5편을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성능/효과
또한 만화영화 용역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상공부는 만화영화 보세가공 부분에 국고 보조금의 지원을 약속했는데, 첫째는 외국과의 보세가공 계약이 성사되면 그 계약액의 80%를 융자해준다는 것과 둘째, 보세가공에 사용될 카메라 및 기자재 일체는 완전 면세를 해준다는 것이었다.11) 이는 당시 애니메이션이 서비스업종으로 분류되어있어서 세제, 금융, 외화, 수출입 통관 등에서 다른 업종보다 재정적 지원과 혜택은 미비했음을 보여준다.12)
1%의 보급률로 매체의 보급은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졌다.18) 대중매체의 확대는 대중문화의 상업주의 성격과 광고를 기반한 대형 자본의 영향력 강화를 의미하며, 정책적 측면에서는 검열과 규제 장치의 강화를 동반한다.
1970년대의 정부 시책이 군대식 목표 설정과 비합리적 운영방식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만화영화 용역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상공부는 만화영화 보세가공 부분에 국고 보조금의 지원을 약속했는데, 첫째는 외국과의 보세가공 계약이 성사되면 그 계약액의 80%를 융자해준다는 것과 둘째, 보세가공에 사용될 카메라 및 기자재 일체는 완전 면세를 해준다는 것이었다.11) 이는 당시 애니메이션이 서비스업종으로 분류되어있어서 세제, 금융, 외화, 수출입 통관 등에서 다른 업종보다 재정적 지원과 혜택은 미비했음을 보여준다.
후속연구
한국애니메이션도 1987년 TV애니메이션의 시작과 1990년 이후 해외의 성공 사례에 기반한 문화콘텐츠 산업 발전방향, 실험적인 단편애니메이션을 통한 다양성 시도 등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을 통해 한국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동양방송은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는가?
한국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하청의 시작인 동양방송은 일본에 자회사 제일기획을 통해 도에이의 작품의 프로덕션 부문을 수주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였다. 동양방송은 프로덕션 부분을 한국이 담당한 ‘합작’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동화·칼라·배경 등 프로덕션의 일부를 맡아서 진행한 기술집약적인 작업으로 일본 하청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고, 동양방송의 ‘합작’이라는 명분이 이 시기 창작된 <황금박쥐>, <요괴인간> 등의 작품이 한국TV에서 방영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부정적 출발의 계기가 되었다.
1970-80년대 미국의 만화영화 방영구조는 어떠하였는가?
다만, 미국물량의 경우 미국방영구조 때문에 성수기와 비수기가 존재하는 하청생산구조가 문제였다. 미국의 만화영화 방영구조를 보면, NBC, CBS 등 대형방송사 네트워크는 주로 가을에 프로그램을 편성하였고, 제작사들은 방송편성에 맞추어 제작스케쥴을 진행하였다. 주로 미국에서 12월부터 4월경까지 기획단계를 진행하고, 그 이후 한국의 제작사에서 프로덕션 부분을 진행하였다.
1970-80년대 한국애니메이션회사의 제작 성수기와 비수기는 어떠하였는가?
즉 5월~12월까지만 한국애니메이션회사에 일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작 성수기인 5월부터 12월까지는 메이저 회사를 중심으로 대량의 물량을 수주하여 자체 제작 및 군소 프로덕션에 재하청 등이 이루어지지만, 12월 제작필름을 보낸 이후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비수기로 거의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제작사가 작업물이 없었다. 이러한 악순환은 메이저 일부 회사를 제외하고 소규모 하청회사들이 성수기에 생겼다가 비수기에 사라지는 불완전한 산업구조를 만들었고, 애니메이터의 경우도 안정적인 수입을 갖지 못하는 불안정한 생활로 인력의 부침도 심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문헌 (27)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 인물과 사상사, 2014
김미현 외, 한국영화사,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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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김재웅, 한국애니메이션에 있어 문화정책의 영향과 그 변용: 1960-1980년대 중반, 반공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007 제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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